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1월 넷째주 소개코너 - 복스럽게 산다는 것은?!

편집자의 Weekend  소개 코너



한자덕후 시성's

복지(福祉), 신과 술이 머무는 곳

 

 

다큐멘터리 <최후의 제국>. 여기엔 배고픈 아이들이 등장한다. 체육시간이 끝나고 너무 배가 고파서 물로 배를 채우는 아이들. 집에 돌아와도 먹을 것이 없어서 배고프다는 말만 내뱉는 아이들. 저녁은 케찹 몇 방울이 뿌려진 파스타가 전부인 아이들. 매일 먹은 것이어서 지겹지만 이것마저도 먹지 않으면 허기를 달랠 수 없는 아이들. 이 아이들이 사는 나라는? 바로 미국이다. 세계에서 가장 잘 산다는 나라. 세계에서 가장 힘 있는 나라. 이 나라엔 요새 기아로 허덕이는 아이들이 점차 늘어가고 있다. 그런데 왠지 그게 남의 일 같지 않다. 그들의 모습이 자본주의의 극(極)을 달리고 싶은 나라들의 견본 같아서 그렇다. (심심하시면 한번 감상해보시라. 이병헌의 나레이션이 아주~ 죽인다.^^)

 

이것이 이 국회의원의 '정치'이자 '철학'인 걸까(^^;;)

 

최근 박근혜 당선인이 갈림길에 놓여 있다는 뉴스를 접했다. 골자는 ‘그가 내놓은 공약들을 파기하느냐 아니면 세금을 더 걷어서 공약들을 지킬 것이냐’하는 문제에 봉착했다는 내용이었다. 아직 임기를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공약을 지킬 것이냐 말 것이냐의 갈림길에 서게 되었다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좀 씁쓸하다. 물론 그런 선택의 과정들이 정치인을 강하게 만드는 훈련의 과정이긴 할 것이다. 조정과 조율 그리고 설득. 이 과정이 정치술의 핵심이 아닌가. 권력과 자유의 문제를 삶의 화두로 들었던 푸코, 그를 다룬 한 책에는 이런 구절이 등장한다. “정치적 경험이 있어야만 인식론적으로 단절할 수 있다.” (이영남, 『푸코에게 역사의 문법을 배우다』) 정치적 선택과 인식론적 단절. 우리에게 참으로 낯설다. 푸코는 이런 말을 보탠다.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대신에 어떻게 그리고 얼마나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 가능한지를 알려고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푸코, 『성의 역사 2』) 푸코의 이 말은 철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그가 대답한 것이었다. 철학과 정치. 둘 다 삶의 문제를 다루려는 기술들이다. 또한 둘 모두 이전의 것을 반복하지 않는 것을 핵심으로 삼고 있다. 이 앞에서 그는 어떤 선택을 할까. 궁금하다.

 

좀 옆으로 샜다.^^ 사실 오늘 하려고 했던 이야기는 복지(福祉)다. 미국의 굶주린 아이들과 복지라는 공약을 대대적으로 추진할 것이라고 선언한 대통령 당선인. 둘 모두 복지에 대해서 말하고 있기에 그것이 어떤 글자들인지 궁금했다.

 

(福)의 원형도 기(示:제사를 지내는 돌로 된 탁자와 그 위에 놓인 희생과 희생이 흘린 피의 상형)와 술단지를 본뜬 복(畐), 뒤에 생략된, 이를 두 손으로 받쳐든 모양인 공(廾)이 합쳐진 것이었다. 술항아리를 들고 신에게 바치며 복을 비는 모습인 것이다.

 

ㅡ김언종, 『한자의 뿌리』, 문학동네, p.1032

 

(福)은 신에게 희생물과 술을 공손하게 바치는 행위를 그렸다. 언제 이런 행사들이 벌어졌을까. 풍요로운 수확의 계절? 배고픔에 허덕이는 계절? 아마도 풍요로운 수확의 계절이었을 거다. 먹고 살기 힘들어 죽겠는데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행사에 누가 참여하려고 하겠나. 가끔 배고픔과 가난은 마음에서 신(神)마저 지운다. 사는데 집중할 뿐이다. 과거 이런 행사의 주관자는 마을에서 가장 부유한 존재들이었다. 그들이 이 잔치에 들어가는 돈을 대고 가난한 사람들은 이날만큼은 배불리 먹었다. 그게 부유한 존재들에게는 복을 짓는 일이었다. 신(神)은 그냥 얼굴마담에 불과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복(福)이라는 글자는 잔치고 축제다. 나눠먹는 거고 베푸는 거다. 순환이 복(福)을 부른다. 그럼 지(祉)는 어떤 글자일까.

 

(示) + 지(止). ‘기(示)’는 ‘신’의 뜻. ‘지(止)’는 ‘머무르다’의 뜻. 신이 머무르는 곳, ‘행복’의 뜻을 나타냄.

 

<한한대자전>, p.1591

 

뜻과 기원은 얼추 비슷하다. 신(神)과 관련되어 있고 신에게 복을 비는 행사에서 파생된 글자다. 주목하고 싶은 건 지(止)의 뜻, ‘머무르다’이다. 동아시아 선비들의 공부법을 간결하게 정리하고 있는 『대학(大學)』이라는 책의 첫 문장에 저 글자가 나온다. 지어지선(止於至善). 지극한 선(善)에 머무르고자 해야 한다는 것. 공부하는 자라면 깨닫는 것보다 그 상태에 머무르는 것이 더 어려운 경지라는 것을 가르쳐주는 구절. 지(祉) 또한 이러한 지속을 의미한다. 신도 오래 머무르고 싶어 하는 곳. 그런 상태를 지속시키는 것. 이게 지(祉)의 본뜻이다. (일명 무릉도원?^^)

 

유토피아란 비-장소(u-topia)가아닌 현재를 넘어서는-장소로서의 유토피아로, 그리고 공상이 아니라 미래를 바로 '지금, 여기'(now here)로 가지고 오는 새로운 상상력을 의미한다.
─김태진, 『대동서, 유토피아를 찾아 떠나는 여행』, 195쪽


그럼 조합해보자. 복(福)은 베풀고 순환시키는 일이고 지(祉)는 그런 상태를 지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것이 있다. 받는 데만 익숙해지면 멍청해진다는 거다. 『논어』엔 이런 말이 나온다. 군자회형 소인회혜(君子懷刑 小人懷惠). 군자는 법(法)을 가슴에 품고(懷) 소인은 은혜(惠)를 가슴에 품는다(懷). 무슨 말인고 하니 군자라는 존재는 물(氵)이 스스로 흘러갈(去) 길을 만들 듯이 스스로의 길을 내는 사람이고 소인은 남이 베풀어주는 은혜만을 마음속으로 바라는 존재라는 말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자기 삶의 주도권을 가지려고 하는가, 남에게 의탁해서 살려는 마음만을 내고 있는가. 둘 가운데 어떤 마음을 갖느냐에 따라 군자와 소인이 구분된다는 이야기다. 우리 시대의 복지는 무엇을 향해 가고 있을까. 삶의 주도권? 은혜 받으려는 마음? 무엇이 신과 술이 머무는 곳(福祉)의 실현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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