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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설수설

[행설수설] 한자를 사용하지 않고 문자를 아예 만들어버리는 유목민

by 북드라망 2023. 12. 4.

한자를 사용하지 않고 문자를 아예 만들어버리는 유목민

*이 글은  <2021고미숙의 行설水설 – 달라이라마, 칸을 만나다!> 강의의 일부 내용입니다.

 

 

몽골어를 배워 언어의 장벽을 넘은 파스파
몽골의 대칸 밑에는 많은 칸들이 있었어요. 칸들은 각국에 침략을 해서, 어떤 칸들은 약탈과 학살을 했고, 어떤 칸들은 사원을 적극적으로 후원하고 보호하였습니다. 이렇게 침략과 충돌이 일어나는 혼란스러운 시기에, 파스파(phags-pa)는 고담 칸의 야영지에서 몽골어를 익히고 있었어요. 왜 몽골어를 배우고 있었을까요? 어떤 세계에 진입하려면 그 언어의 장벽을 통과해야 돼요. 언어를 통해 그 역사와 풍습, 그 삶의 방식을 배워야 내가 자유롭게 그 세계를 헤엄칠 수 있어요. 그래야 나의 성격이나 기질의 미덕을 발휘할 수가 있죠. 우리가 이런 언어의 기운을 돌리지 못하면 무력해져요. 언어가 이렇게 중요합니다.

쿠빌라이가 대칸 자리에 오르자, 쿠빌라이는 티베트에게 ‘파스파를 나한테 넘겨라’라고 요구 합니다. 이때 파스파는 스물세 살밖에 안됐지만 굉장히 높은 경지에 올라가 있었어요. 그래서 쿠빌라이는 파스파를 자신에게 보내라고 합니다. 파스파는 황제의 스승이라는 재사 자리에 임명이 됩니다. 그 속을 알 수 없는 음흉한 쿠빌라이가 형식적으로 파스파를 임명했을까요? 그랬을 리가 없죠. 파스파에게 완전히 감화 받은 겁니다. 

 

 

 

쿠빌라이에게 생사의 이치를 알려주는 파스파
파스파는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불교가 꼭 필요한 이유에 대해 말해줄 현명한 대답을 가지고 있었어요. 당시 전 세계에서 쿠빌라이보다 더 많은 부와 권력을 누린 사람은 없었어요. 칭기즈칸 시절에도 쿠빌라이만큼 부를 가지지 못하였습니다.

파스파는 ‘대칸께, 제 교리를 선물해드리고 싶습니다. 속세의 불을 가지셨지만, 진정한 교리는 아시지 못하여 마치 독이 섞인 성찬 앞에 앉은 것 같고, 행복하지 못하여 불행합니다.’ 이 말이 굉장히 함축적인 말이에요. 속세의 불을 다 가졌지만 생사의 이치를 모르는 자에게 있어서 행복은 너무너무 제한적이고 상대적이라는 뜻입니다. 현대인은 이 이치를 망각하고,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어도 왜 불행한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어서 스스로에게 질문해도 대답을 얻지 못합니다. 

속세의 불을 다 가졌지만 생사의 이치를 모르는 자에게 있어서 행복은 너무너무 제한적이고 상대적이라는 뜻입니다. 현대인은 이 이치를 망각하고,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어도 왜 불행한지 그 이유를 알 수 없어서 스스로에게 질문해도 대답을 얻지 못합니다.

 

생사의 이치를 알지 못 한 채로, 예를 들어서 물질적 행복을 3분의 1 정도 누리려 해도, 그게 실제로는 30% 이상의 행복조차 줄 수가 없어요. 이제까지의 모든 인류사가 그걸 증명해왔어요. 이 무지 안에서는 항상 독이 섞인 성찬 앞에 앉는 것과 같아요. 내가 엄청난 부의 향연, 권력의 성찬을 누려도, 여기에 독이 있다고 느끼게 돼요.

파스파는 ‘불교와 재물이란 이 두 가지 부를 가진 사람은 자신과 타인에게 이익을 줍니다, 당신은 모든 부를 가졌는데 불교의 교리를 알게 되면, 당신만 행복한 게 아니라 자신과 타인에게 모두 이로움을 줍니다.’ 아주 간결하지만 대칸이라면 꼭 들어야 하고, 부와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반드시 알아야 되는 핵심이지요. 파스파는 쿠빌라이가 철학적 통치를 하도록 도왔어요.

 


몽골의 제국통일을 위해 만들어진 문자 ‘파스파 문자’
쿠빌라이는 티베트 사람들의 전설적인 언어 천재성을 알고 있었습니다. 티베트는 이미 7세기에 불교를 받아들이면서 산스크리트어를 모방해서 티베트 문자를 만들었어요. 이렇게 빨리 자기 문자를 만든 경우가 없어요. 우리나라는 한자를 계속 써왔기 때문이기도 하고 좀 늦은 시기인 15세기에서야 문자가 나왔어요. 또 티베트인들은 산스크리트어 경전을 거의 다 티베트 경전으로 옮길 정도로 탁월한 번역능력을 가졌습니다. 언어는 어떤 한 지역의 보이지 않는 파동을 만들어요. 마치 바다에 물길이 있듯이 대기의 흐름을 만드는 게 언어권입니다. 이 언어에서 저 언어로 갈 때는 바다에 있는 물살의 변화처럼 엄청난 장벽이 있어요. 근데 티베트는 그 이른 시기에 이런 놀라운 일을 했던 거죠. 그래서 쿠빌라이는 파스파에게 모든 속국들과 의사소통하고 그곳들을 통치하기 위해 문자를 발명하도록 합니다. 

파스파는 파스파 문자(Phags-pa script)를 만들어요. 그게 공용문자로 사용이 되어서 제국의 통일에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1268년에 완성이 됐다니깐, 5~6년 만에 만든 겁니다. 

 

 

 

한자가 너무 어려운 유목민, 문자를 새로 발명하는 유목민
근데 왜 쿠빌라이는 중국을 통치하고 있는데 한자를 안 썼을까요? 티베트 7세기의 송첸캄포 때와 비슷한 상황인거죠. 이때 티베트는 중국과의 문명교역을 위해서 중국을 침략을 했습니다. 그래서 중국의 문성공주와 혼인을 하면서 중국의 문명이 티베트로 갔어요. 그런데 송첸캄포가 딱 한자를 본 순간 완전히 카오스에 빠집니다. 한자를 배우느니 새로운 문자를 만드는 게 낫겠다고 생각합니다. 

쿠빌라이 칸도 송첸캄포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는 것이죠. 이 유목의 대칸들은 한자하고 안 맞아요. 한자가 갖고 있는 어떤 지형적 지리적 매트릭스가 있는데, 한자 언어의 파동 패턴이 유목 제국 하고는 안 맞는 거죠. 이게 되게 중요해요. 그래서 파스파 문자가 개발이 됐고 무려 110년간 사용이 됐어요. 

몽골제국은 쿠빌라이 시대 이후 100년 정도 더 지속되고 붕괴됩니다. 몽골이 더 이상 지배계급이 아니게 되어서 파스파 문자는 역사에서 사라집니다. 현재 몽골은 위구르 문자라고 해서, 러시아 알파벳과 비슷한 알파벳을 씁니다. 파스파는 샤카판디타 삼촌과 여행을 떠난 지 36년 뒤에 숨을 거둡니다. 결국 파스파는 쿠빌라이 칸 치하에서 궁정의 재사로써 티베트 불교를 몽골에 확실히 전파한 것이지요. 

쿠빌라이와 티베트 불교, 한자와 파스파 문자에 대해서 생각하다보면 언어와 인간의 문제, 언어와 신체의 문제가 문명권에 아주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강의_고미숙


** 이번 화를 마지막으로 <달라이라마, 칸을 만나다> 연재가 종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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