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지서당』지은이 박장금 선생님 인터뷰
1. ‘간지’란 무엇인가요? 그리고 왜 간지를 알아야 할까요?
요즘 감각이 좋은 사람에게 ‘간지난다’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제가 말하려는 간지가 그 간지는 아니지만, 간지 자체가 오래된 느낌이 아니라 최신의 감각을 주는 단어와 어감이 같아서 나름 세련되고 친숙한 느낌이 있습니다. 보통 한자에서 음이 같으면 뜻이 달라도 소리 파동과 연결되기 때문에 통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전 간지를 잘 이해하면 ‘간지 제대로 난다’고 주장하고 싶어집니다.^^; 이건 여담이고 간지는 천간과 지지의 축약어입니다. 동양의 세계관은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다고 전제하는데, 이제 이런 연결성이 동양적 특징이라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외적으로는 단절된 것처럼 보여도 모든 것이 연결된 디지털 시대가 열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본다고 생각하지만 ‘배운 대로’ 보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왔던 시대는 근대로 뉴턴 역학적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해왔습니다. 3차원의 공간을 절대적인 것으로 설정하고, 시간 또한 과거-현재-미래라는 선형적인 시간 진행으로 보는 방식이죠. 이것은 보이는 것을 중시하면서 우리가 감각하는 경험을 현실 그 자체로 보게 만듭니다. 하지만 디지털 시대는 양자역학적인 접근입니다. 제가 과학자가 아니라서 조심스러움을 무릅쓰고 거칠게 말하자면 보이지 않는 세계와 보이는 세계를 모두 포괄하는 접근입니다. 이런 접근이 동양의 세계관과 통하는데, 동양에서 모든 것을 연결하기 위해 만들어낸 개념이 ‘기’(氣)입니다.
간지, 천간과 지지는 기를 10개와 12개로 클로즈업한 것으로,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세상과 접속할 수 있는 입구이자 출구라 할 수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기는 하늘과 땅으로 구분되는데, 천간은 하늘의 기를 10개로 분화한 것이고, 지지는 땅의 기를 12개로 분화한 것입니다. 기를 이렇게 세분화한 것은 다양한 힘들의 어울림과 맞섬으로 다양한 리듬과 템포를 느끼기 위함입니다. 근대 시공간에서는 목표가 명확하고 시작과 끝이 있기 때문에 한 가지 목표를 향해 달려야 합니다. 다양한 리듬과 템포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속도 경쟁만 하고 있는 것이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맹목적으로 달리는 것입니다. 아무튼 인간은 감각적 한계로 인해 만물의 연결성을 보기가 어려운데, 간지를 통과하면 연결된 세계와 접속이 가능해집니다. 마치 스마트폰이 무선 기지국 안테나와 접속하여 우리를 디지털 세상과 접속 가능하게 하는 것처럼 말이죠! 간지를 통과하는 순간, 나라는 개체성을 벗어나 자연적인 리듬과 템포를 느낄 수 있는 우주적 존재로 도약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마트폰 등 첨단 기기는 최신 버전을 사용하지 못해 안달하면서도, 자신의 삶은 여전히 뉴턴 역학적인 방식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제 디지털 시대에 알맞은 새로운 삶을 창조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간지가 여는 세상은 새로운 삶을 위한 영감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간지는 중국의 선현들이 수천 동안 자연을 관찰하여 알아낸 시공을 초월한, 모든 것을 연결시켜 주는 ‘자연과 우주적 관점’이기 때문입니다. 이 ‘오래된 미래’의 인식 지도를 반드시 배워야 새로운 시대에 맞게 자신을 변용할 수 있는 것이죠. 즉, 이 시대에 간지(?)나게 살려면 반드시 간지를 배워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a
2. 천간(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의 특징을 공자와 그 제자들을 가지고 풀어 주셨습니다. 천간을 풀어가는 캐릭터로 특별히 공자와 제자들을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기의 세계에서는 인간 또한 기의 이합집산이므로, 인간도 기의 흐름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천간은 계절을 10개로 분화한 것으로 갑목은 초봄이고 을목은 늦봄이고, 병화는 초여름이고 정화는 늦여름의 기운 등으로 이어집니다. 이렇게 기는 시간차에 따라 변화의 리듬이 생기는데 인간도 같은 적용을 받게 됩니다. 천간 10개로 분화된 인간들은 각각 타고난 고유성이 다를 뿐 아니라 그것을 드러내야 할 타이밍도 각각 다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각자 자신이 타고난 기질과 관계 맺는 방식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타자와 관계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마치 10개의 악기가 함께 협연하는 것과 같아서, 내가 연주할 타이밍과 다른 악기가 연주할 타이밍을 알지 않고서는 조화로운 음악을 연주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기를 기준으로 남을 보면서, 남도 나와 비슷하게 생각하겠지 하다가 운이 좋아서 문제가 없으면 상대를 전폭적으로 믿고, 그게 아니면 서로에게 배신감을 느끼기 일쑤입니다. 겉으로는 관계가 좋아 보여도 자신의 이익 여부에 따라 일방적으로 맞춰주거나 말거나 하는 식이지 서로 소통한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참거나 결별하거나! 그 결과 사람들은 관계의 어려움을 토로하거나 혼밥, 혼술, 혼, 혼, 혼… 고립된 채로 사는 삶이 남을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솔직히 관계는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그것을 손댈 수 없는 영역이라 치워 버릴 수 없는 것이죠.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더 적극적으로 관계 맺는 법을 배우고 훈련해야 합니다. 관계가 어렵다고 포기하는 것은 연결이 생명의 원리라는 걸 모르기 때문입니다. 간지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것은 관계가 존재에 선행한다는 것입니다.
『논어』를 읽다 보면 공자가 같은 사안인데 어떤 제자에게는 빨리하라고 하고, 다른 제자에게는 천천히 하라고 합니다. 그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제자들의 기질이 각기 다르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초여름 기운을 타고난 병화 자로는 열정적이고 맹렬한 기운을 타고났습니다. 그런 그가 “도를 배우면 즉시 실천해야 합니까?”라고 묻자, 공자는 넘치는 의욕을 자제시키며 신중하게 행할 것을 강조합니다. 반면, 늦가을 기운을 타고난 염유는 열매를 완성하는 기운이라 정확하고 실리적인 특징이 있습니다. 그는 늘 결과를 염두에 두기 때문에 일을 막바로 시작하지 못합니다. 그것을 간파한 공자는 옳은 일이라면 결과 여부에 상관없이 바로 실천할 것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죠.
전 이번 작업을 통해 과거에 『논어』를 공자님의 권위에 압도된 채 읽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천간으로 공자와 그 제자들의 기질을 연결시켜 보자 그들은 훌륭해서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옛날 어른들이 아니라, 내 옆에서 함께 공부할 것 같은 스승과 친구들로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갑자기 『논어』의 대화가 음성 지원되면서 그들의 삶이 생생하게 다가온 것이죠. 『논어』는 제자들의 타고난 원석 같은 기질에서 출발하지만 배움을 통해 절차탁마하는 과정을 잘 보여 줍니다. 이기적인 신체에서 배움을 통해 소통하고 이타적인 신체로 거듭나는! 이런 과정은 우리 삶에서 배움의 필요성을 알려주며 스승과 도반이야말로 나를 비추는 거울임을 사무치게 깨닫게 만듭니다. 간지를 통과하면 자연스럽게 내가 연결된 존재라는 인식이 생기게 되는데, 그다음 스텝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가 될 것입니다. 정말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바로 그 질문에 대한 답을 공자와 제자들이 잘 보여 주고 있는 것이죠. 그들이 연결된 삶, 가장 혁명적인 삶의 방식을 보여 주기 때문에 그들을 천간과 연결시키고 싶었습니다.
3. 지지(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의 특징은 고전소설 『서유기』의 캐릭터를 가지고 설명해 주시는데요, 많은 고전 중 『서유기』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으실까요?
천간이 하늘의 기의 분화라면 지지는 땅의 기의 분화로 지지는 천간보다 좀 더 변화무쌍하고 구체적입니다. 지지를 동물과 연결시킨 것은 선현들이 지상의 생명체와 연결시키려는 의지의 표현이라 생각됩니다. 『서유기』는 구법의 여행기입니다. 이 소설에는 동물 요괴가 많이 등장합니다. 왜 동물들을 등장시켰을까요? 동물은 인간과 분리된 생명체가 아니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기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과 동물은 시차만 있을 뿐 연결되어 있는 것이죠.
4만 년 전, 유럽 빙하기 때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매머드 상아로 만든 조각이 발견됐는데 그것은 사자인간(Lion Man)의 형상이었습니다. 전 이 조각 사진을 보는 순간, 어떤 전율과 함께 눈물이 핑 돌면서 먹먹함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마치 전기 자극이 강하게 온 것과 같은 느낌 같은 것이죠! 4만 년 전 그들과 텔레파시가 통한 것일까요? 한참 동안 제 노트북 바탕화면은 사자인간이었는데 쉽사리 그 사진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여운까지도 강렬했습니다. 도대체 왜 먹고 살기도 어려웠을 빙하기 때 이런 오브제를 만들었던 걸까요? 당시 도구 발달이 미미한 시대라서 전문연구자들은 수백 년에 걸쳐서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조각은 그 당시 사람들의 상상력의 표현이었습니다. 인간은 직립을 하면서 손은 더 이상 땅을 밟지 않은 대신 창조적인 작업을 하게 되었는데, 인간의 형상을 유지하지만 사자와 결합한 사자 인간을 조각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과 동물들이 연결되어 있음을 온몸으로 느꼈던 것이죠. 그러니까, 이 조각의 의미는 세상과 ‘연결하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빙하기, 인류가 절멸할지 모르는 그 암흑 환경 속에서도 인간은 ‘연결 접속’만이 생명의 길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렇게 풍요로운 세상에 살면서도 고립을 선택한다는 건 생명에 대해 무지해도 너무 무지한 게 아닐까요? 4만 년 전에 이것을 조각했던 자들이 우리의 모습을 보게 된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4만 년 전 인간의 마음과 지지를 만든 선현의 마음은 다르지 않다고 전 생각합니다. 『서유기』는 이런 마음과 연결된 소설입니다. 이 소설에서 삼장 일행은 인간이 가야 할 길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인간 삼장과 원숭이 요괴 손오공, 돼지 요괴 저팔계, 뭐라 딱히 말할 수 없는 동물 요괴 사오정은 어떤 위계도 없이 서로 연결되어 있으며, 자신도 살리고 남도 살리는 길을 함께 떠납니다. 기라는 개념은 생명을 바탕으로 한 연결 의지 속에서 나온 개념이기 때문에 기의 분화된 표현인 지지 또한 생명력의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지지는 천간의 변화하는 힘을 받아 공간과 일치할 수 있는 장의 변용력으로 매 순간 유동하는 생명의 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런 지지의 길을 가는 인간의 삶은 어떤 삶이어야 할까요?
『서유기』의 삼장 일행은 각기 다른 기질을 타고난 존재들이 처음엔 고정된 신체(이기적인 신체)에서 유동하는 신체(이타적인 신체)로 변신하는 과정을 잘 보여 줍니다. 예컨대 손오공은 원숭이로 초가을 신금 기운을 타고났습니다. 초가을 신금은 여름 다음에 오는 계절로 발산에서 수렴으로 방향을 틀게 되는데, 이렇게 벡터를 바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손오공은 우주적 혁명을 이끄는 신금 기운을 타고났기 때문에 어떤 것으로도 변신 가능하고, 근두운을 타고 10만 8천리를 오가는 등 탁월한 재주를 자랑합니다. 하지만 그는 81개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자신이 과신했던 능력이 얼마나 하찮은 것이지, 도반들과의 우정이 자신을 살린다는 것을 사무치게 깨닫게 됩니다.
저팔계는 초겨울 해수 기운을 타고났습니다. 초겨울 해수는 이제까지 싹을 틔우고 꽃을 피웠으며 열매를 맺은 그 모든 과정을 일시에 해체하여 씨앗으로 만드는 기운입니다. 지금까지 열심히 달려온 결실을 모두 놓아버리려니 쉽지 않은 것이죠. 그래서 저팔계는 탐욕의 아이콘이 됩니다. 하지만 해수는 기존의 성과를 움켜쥐는 게 아니라 새로운 씨앗을 만들기 위해 전혀 다른 무형의 기운을 응축해야 합니다. 쉽게 말해 물질적인 것들이 아니라 정신적인 가치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죠. 저팔계가 시간이 지난다고 저절로 그렇게 되지는 않습니다. 삼장 스승을 만나야 도약이 가능한 것이죠. 이치를 배워 수행 정진할 때 존재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을 저팔계는 드라마틱하게 보여 줍니다. 대단한 능력자 손오공, 구제불능 탐욕의 아이콘 저팔계, 이 밖에도 멍 때리는 사오정을 비롯하여 온갖 요괴들이 출몰합니다. 그리고 서유기의 여정을 끝까지 완수해 내는 삼장법사까지! 다양한 캐릭터들의 펼치는 과정을 보면, 어떤 대단한 존재(기운)도, 아무리 찌질한 존재(기운)도 기의 세계에서는 계속될 수 없으며, 자기 혼자만으로는 살아갈 수 없으며 오직 연결 접속할 때만이 자유를 누릴 수 있음을 삼장 일행은 잘 보여 줍니다.
인간과 동물 간에 위계는 없지만, 인간은 직립을 선택한 생명체로 하늘을 보고 자신이 가야 할 삶의 방향을 스스로 아는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몸의 한계로 인해 개체적인 존재로 인식하기 때문에 이기심에 묶여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그것이 전부인 양 살아갑니다. 사실 우리의 실상을 솔직하게 들여다보면 소비가 주는 달콤한 쾌락을 누리는 것 이상 다른 것이 없죠. 요즘 먹방, 관광, 게임 등. 우리에게 쾌락을 주는 것이 넘쳐납니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생명력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성공을 못해서 다행이지, 그런 상태에서 성공을 하면 더 위험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 보상으로 주어지는 게 쾌락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중독을 부추기는 사회에 살고 있는지 모릅니다. 지금 자리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질문하지 않고는 자본의 소비에 자신을 던지는 삶을 살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소비를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중심이 되어 이 시대가 주는 풍요로움을 제대로 누리려면 나뿐 아니라 타자는 물론 다른 생명체까지도 연결되어 있다는 전제 위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죠.
공존한다는 설정 속에서 살려면 사유를 하면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 땅의 원리인 지지는 사유의 지도이자 삶의 지도가 되어 줄 거라 생각합니다. 지지를 통과하는 순간 모든 사건이 자연과 우주의 원환 고리 안으로 연결되는 매직이 일어나게 됩니다. 자축인묘진사오미로 시작되는데 자수는 아주 미미한 기운입니다. 이것을 알게 되면 당장 성공하고 싶고, 갑자기 로또 맞고 싶은 욕망이야말로 자연과 얼마나 동떨어진 마음인지를 알게 됩니다. 그러니까 자연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은 지지의 타이밍을 찬찬히 밟았기 때문인 것이지 처음부터 결과나 결실이 생기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그러니까 생명은 12개의 과정을 찬찬히 밟아 가면 됩니다. 오직 프로세스만 있는 것이죠. 때에 맞게 과정을 밟다 보니 싹도 나고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게 되는 것이죠. 그런 삶을 살게 될 때 가장 자유로운 삶, 좋은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서유기』는 지지의 흐름처럼 머물지 않을 때, 인간이 어디까지 도약해서 고귀한 존재가 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줍니다. 머물지 않고 비워내는 태도로 사는 삶을 상상하게 만드는 것이죠. 이것은 지지적인 삶의 방식이면서 모든 것이 연결되는 디지털 시대에 가장 창조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만드는데 영감을 줄 거라 확신합니다. 정리하자면 지지는 수천 년 동안 선현들이 고민해서 낳은, 이미 검증된 지혜의 정수이고, 『서유기』는 우리 시대에 가장 노마드적인 삶을 위한 지도와 같은 이야기라 생각합니다.
4. 10개의 천간과 12개의 지지 가운데 선생님께서 특별히 마음이 가는 것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솔직히 천간 10개와 지지 12개는 어떤 게 더 특별하다 말할 수 없습니다. 천간과 지지의 리듬은 매일 매일 변화하는데, 매달, 매년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런 간지의 변화를 감지하다 보니, 매일 매일 하루에 해당하는 천간과 지지의 내용을 이해하면서 좋은 일이 있으면 그것에 머물지 않고 그다음 스텝으로 가도록 마음을 비우고, 나쁜 일이 있으면 내가 어떤 고집을 부렸는지 아니면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었는가를 점검하면서 새롭게 다가올 기운을 수용하게 됩니다. 특히 저는 감이당 울타리에서 15년 동안 머물다가 2024년에 독립을 해야 하는 때가 되었습니다. 갑작스러운 변화를 겪으면서 매일매일 마음의 요동침을 심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요동치는 이유를 잘 들여다보면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것을 기준 삼기 때문에 예측되지 않는 미래가 두려운 것입니다. 하지만 간지적인 접근을 하게 되면 이 변화를 겸허하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때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감이당이라는 울타리에서 배워야 하는 때였다면 이제 독립하여 두발로 서서 여태까지 배운 것을 나누는 때로 전환해야 하는 것이죠. 예컨대 지금까지 공동체에서 받는 사계절의 시간을 보낸 것이고, 이제 내가 주는 새로운 사계절의 시작을 해야 하는 때가 온 것입니다.
이제서야 특별히 마음 가는 지지를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자수’입니다. 자수는 한겨울 동지의 기운입니다. 『주역』에서는 중지곤괘로 감이당의 감괘에 해당합니다. 송나라 사상가 정이천은 『주역』 주석서에서 감괘는 위험에 빠진, 역경의 시기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런 조건이야말로 생명이 시작되는 순간이라는 것이죠. 사계절의 사이클이 끝나고 새로운 생명이 잉태된다는 것은, 기존에 이룬 것들의 소멸이기 때문에 어려운 조건이 만들어지는 것이죠. 그런 조건이 정자와 난자가 만나 생명을 잉태하게 하는 것입니다. 제가 바로 독립이라는 잉태의 순간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아주 미미한 씨앗이 ‘자수’라면 엄마 뱃속에서 자라는 과정이 ‘축토’의 시간이고 탄생의 시간은 ‘인목’이며, 성장하는 시간은 ‘묘목’이며 사회에 진출하는 시간이 ‘진토’이며 사오미는 세상에 자신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이며 등등 간지를 통해 인간의 생로병사의 과정들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이런 과정들의 흐름은 음악을 들을 때와 비슷합니다. 음악은 잡을 수 없듯이 간지의 리듬은 자신을 고정되게 만들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새로운 스텝을 제시함으로써 두려움에서 벗어나 낯선 곳으로 한 발을 내딛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 지금 자수의 단계이기 때문에 그 시기에 맞는 준비를 하는 중입니다. 독립에 대한 비전을 세우고, 그것을 어떻게 펼쳐갈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중입니다. 자수는 아무것도 없는 조건 속에서 아주 작은 씨앗을 만드는 일이라 우주적인 꼿꼿함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전 요즘 도대체 나의 독립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공동체를 어떻게 꾸려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강렬하게 하는 중입니다.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일이라 두렵고 설레지만 자수의 시기 또한 계속되지 않기 때문에 이 시기가 저에게는 주는 시절을 마음껏 누려보려고 노력하는 중입니다. 지금 저에게 펼쳐지는 우주와 자연의 리듬에 제 몸을 맡겨보는 것이죠. 그래서 그런가! 그런 시도가 통한 건지는 잘 모르겠는데 요즘 새로운 경험을 하는 중입니다. 내가 무엇을 한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어떤 흐름이 율동을 하는 중이고 제가 그 흐름에 맞게 움직이는 느낌입니다. 내가 어떻게 하지 않아도 모든 것이 저절로 열리는 경험을 하는 것이죠. 독립 공간도 제가 노력하지 않아도 예상치 않게 생기고, 공간 이름은 아직 확정하지는 못했지만 갑자기 어디서 튀어 나왔는지 모락모락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며, 제가 잘 모르겠다고 여겨지는 부분이 생기면 도와주는 사람들이 저절로 나타나는 신기한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설마 이런 일이 요즘만 일어났을까? 내가 감지하지 못했을 뿐이고, 나의 지독한 욕심이 간지의 변화를 읽지 못하게 했을 뿐, 이미 내 삶은 간지의 흐름대로 변화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전 간지 탐구를 통해 시공의 문을 연 느낌입니다. 간지를 통과하는 순간, 자연과 우주의 흐름을 타게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아침’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는 프랑스의 파스칼 키냐르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것입니다. 오직 서로의 음악 세계를 이해했던 스승과 제자는 삶의 엄청난 미움과 회한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통해 연결됩니다. 마치 동양의 백아와 종자기의 지음(知音)을 생각나게 하는데, 그 둘은 음악을 연주함으로써 ‘세상의 모든 아침’을 열어젖힙니다. 그렇습니다. 간지는 어떤 상황이 온다 해도 세상의 모든 것들과 접속하게 하고 연결시켜서 자수부터 출발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간지는 세상의 모든 음악이자 활기이며 휴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전 출구가 막힌 친구들에게 자유의 문으로 들어가는 ‘간지 초대장’을 보내고 싶습니다. 부디 이 책이 경쟁과 소유만이 삶의 전부라고 여기는 친구들에게 ‘세상의 고유한 자신만의 삶’을 창조하는 지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 또한 그런 경지에 오른 것은 아니지만, 간지라는 안테나와 접속한 덕분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방향을 잡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해서 그 자유의 여정을 가고 싶은 친구들을 간지 서당으로 초대하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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