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궁, 아이를 키우거나 암을 키우거나?
주간 김현경
자궁적출술은 제왕절개술 다음으로 널리 시행되고 있는 외과수술이다. “자궁은 아이를 키우기 위한 것이거나 암을 키우기 위한 것이다.”(크리스티안 노스럽,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 169쪽) 이것이 임상의학의 대전제다. 그래서 심지어 완전히 정상적으로 보이는 자궁을 제거하기도 한다. 암을 미리 예방한다는 명분에서다. …… 그뿐 아니다. 암이 아닌 근종이나 내막증 같은 경우도 여차하면 자궁을 제거해 버린다. 의사들은 너무 쉽게 권유하고 환자들은 너무 빨리 승낙한다. …… 남자들도 생식기 질환이 많다. 그러면 아이를 낳을 생각이 없다면 생식기를 미리미리 절단해도 되는가? 말도 안 된다고 펄쩍 뛸 것이다. 그런데 왜 여성은?─고미숙,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372쪽
"여성에게 필요한 건 각종 서비스와 호르몬제가 아니라, 스스로의 몸과 그 몸에서 작동하는 우주적 지혜를 알아차리는 배움의 현장이다."
─고미숙,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383쪽
지금으로부터 20년도 더 전쯤 저희 엄마는 자궁을 들어내는 수술을 받으셨습니다. 암은 아니었고, 자궁근종이었지요. 수술 후 마취가 깨면서부터 원래 신경이 굉장히 예민한 엄마는 고통에 어쩔 줄 몰라 하셨고, 고등학생이던 저 역시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는 엄마 옆에서 안절부절못했습니다. 하지만 통증보다도 엄마가 더 힘들어했던 건, 이후로도 조금이라도 무리하면 “밑이 텅 비어 있는 것” 같은 자궁의 빈자리를 느끼실 때였습니다. 힘이 안 들어간다고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생각해 보면 40대 초반(지금 제 나이에서 두세 살 더 많은!!)에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일도 없는(그러니까..... 있어야 할 이유가 사라졌으니....) 데다 병이 생기기까지 했으니 제거해 버린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주변 여성들로부터 근종으로 자궁을 적출한 이야기를 아무렇지도 않게(다들 그렇게 하더라!) 나누고 듣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자궁은 이제 아이를 낳을 필요가 없으면 그렇게 들어내도 괜찮은 걸까요? 예전에는 맹장염에 걸릴까봐 개복 수술을 할 일이 있을 때 맹장 제거도 같이 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생각했지만, 맹장도 우리 몸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게 알려지면서 더 이상 맹장염에 걸리기 전에 떼어내는 일은 없어졌습니다. 미국의 의학박사이며 심신의학자인 크리스티안 노스럽은 “자궁에 대해서 출산의 역할 외에 따로 연구한 적이 거의 없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의 문화적인 편견을 잘 반영해” 주고 있다는 걸, 그러니까 아기를 갖지 않으면 자궁의 가치를 잃어버린 것으로, 무엇보다 여성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교육받고 있다는 점을 강조해서 이야기합니다.
뭐든 직접적인, 눈에 보이는 쓸모로만 그 가치를 판단하는 데 익숙해진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몸에 대해서도 그런 잣대를 들이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쩌면 제도적인 ‘남녀평등’에 몰두하면서 여성 자신의 몸에 대해서는 지독하게도 남성의 시선으로, 남성적 효율성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건 아닐까요? 여성의 지혜가 지금 무엇보다 우리 자신의 몸, 우리의 자궁에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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