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역와(玩易窩) : 운명아 놀자! 운명? 아, 모르겠는 파티!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왕양명의 ‘슬기로운 유배생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에 대해 저는 두 개의 큰 범주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군자는 어떻게 유배지와 만나는가’이고, 다른 하나는 ‘유배자=군자의 삶과 앎’입니다. 물론 둘 사이가 서로 엄격하게 분리될 수는 없어서 이야기 도중 왕왕 섞이게 될 수도 있겠습니다만, 여하간 왕양명의 유배생활을 통해 유배지와 유배자를 좀 더 구체적이고 입체적으로 그려보는 것이 목표라면 목표입니다.
군자의 유배생활. 그 첫 번째 키워드는 운명과 대결하기입니다. 유배객이 된다는 것, 물론 그것은 유배의 경중(?)에 따라 유배를 받아들이는 마음가짐도 유배 생활의 태도도 다를 것입니다. 하지만 유배라는 형벌 자체는 크고 작음과 상관없이 원칙적으로 기존의 공동체에서 강제적으로 배제되는 것입니다. 어감 상 조금 강하게 느껴질 수 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그것은 격리이고 축출입니다.
많은 경우 유배는 상징적인 형벌처럼 보일 정도로 결행과 해배가 쉽게 번복되기도 했지만, 또한 적지 않은 경우 유배는 유배자에게 결정적인 운명의 변곡점이 되곤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유배로 인생 역전(?)한 최고의 인물은 아마 다산 정약용일 것입니다. 다산은 40세에 시작된 유배가 57세가 되어서야 끝납니다. 무려 18년간입니다. 조선이 땅이 작아 그렇지 다산이 유배생활을 한 강진땅은 수도 한양땅에서 볼 때 내륙으로는 가장 먼 외부에 해당합니다. 상징적으로 그렇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잘 알려진 것처럼, 다산은 이 유배 기간 중 수백 권의 책을 저술합니다. 이른바 ‘다산학’이 탄생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다산을 기억하는 핵심이 조선 후기 최고의 지식인(저자)이라는 측면인 것을 생각해보면 유배생활이야말로 다산을 다산이게 한 모든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유배는 다산의 운명의 변곡점인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 다산과는 수백 년 그리고 수천 리 떨어진 시공간의 좌표 속에 있는 왕양명이 있습니다. 양명의 유배생활은 그 기간으로 보자면 다산과 비교가 안 됩니다. 유배지까지 가는 험난한 과정부터 유배생활이었다고 쳐도 실제로 생활한 2년여와 이동기간 1년여, 도합 3년여에 불과합니다. 물론 공간적 거리로야 수도인 베이징에서 귀주성 용장까지는 다산이 겪었던 18년 시간의 세월만큼이나 멀고 멀었다고 할 수 있겠죠. 그러고 보니 다산의 시간성과 양명의 공간(거리)성, 이라는 측면에서 두 거인의 유배생활을 비교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갑자기 듭니다. 다산의 엄청난 저작은 그 시간성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물리적으로 불가능했을 테니까요. 이에 반해 양명의 저작은 상대적으로 소략합니다. 대신 그 이질적 공간이 강도 높게 삶을 통해 폭발합니다. 요컨대 유배자에게 유배는 존재의 일부가 아니라 전부입니다.
운명과 대결한다는 것. 유배는 숙명적으로 이 구도를 피하기 어렵습니다. 유배는 사대부에게나 일어나는 형벌이고, 그 대척점엔 언제나 최고 권력인 왕이 있기 때문입니다. 양명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운명이라는 키워드로 양명의 연보와 글들을 살펴볼 때, 흥미로운 지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양명이 <주역>과 만나는 대목입니다. 요컨대 고대로부터 중국 아니 한자문명권역에서 <주역>은 운명을 결정짓는(!) 부동의 텍스트였습니다. 그런데 양명의 삶에서 <주역>이 등장하는 것은, 어찌됐건 유근과의 대결 이후입니다.(cf.앞에서 한 번 소개한 적이 있던 옥중 시 <주역을 읽다>).
이 말은 총명한 양명 선생이 30대 중반에 감옥에 갇혀서야 비로소 <주역>을 읽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양명의 일생에서 운명과 맞서는 어떤 대결(?)의 국면이 <주역>이라는 텍스트로 상징화된다는 말입니다. 이후 양명의 연보 혹은 삶(=문장)에는 <주역>이 종종 그리고 광범위하게 등장합니다. (cf. 용장으로 유배 가는 중에 쓴 시, <夢與抑之昆季語>, <雜詩>, <憶昔答喬白巌因寄儲柴墟> 등). 양명은 자신 앞에 펼쳐지게 될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해 때로는 희롱삼아 때로는 적극적으로 <주역>을 활용합니다.
양명이 오랑캐땅(귀주 용장)에 살 때, 산기슭 동굴에서 살면서 그 안에서 <주역>을 읽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이치를 터득하지 못하여 우러러 이치를 따져보고 굽어보며 의심스러운 바를 살폈습니다. <주역>은 크게는 우주를 품고 작게는 아주 미세한 것까지 아우르지 않음이 없었기에, 그 가리키는 바를 알지못해 망연할 때에는 우두커니 서있는 한 그루 나무처럼 외로웠습니다. 그러다 혹 뭐라도 깨닫게 되면, 세찬 빗줄기가 쏟아져내려 씻어 내린 듯, 온갖 것들이 연결되어 꿰뚫어진 듯했습니다. 그것은 나쁜 독소들을 뱉어내고 깨끗한 정수들을 채워 넣는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아슴프레 형상만 잡힐 뿐 왜 그런지 까닭을 알지 못하면 깨닫게 된 바를 가지고 궁글리는 중에, 유유자적해지고 환희가 벅차 오르고 생명력이 이글이글해집니다. 정밀함과 거친 것이 한 가지이고, 안과 밖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며, 위험한 것(險)은 평이한 것(夷)으로 볼 수 있게 되어, 오랑캐땅(夷)에서 지금 엄청난 곤경스런 상황에 처해있다는 것도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양명은 책상을 두드리며 탄식했습니다. “아! 이것이 옛 군자들이 구속되고 유폐된 감옥살이조차 달게 여기고, 장차 늙음이 닥치는 것도 알지 못한 이유였구나! 나는 이제 어떻게 생을 마쳐야 할지 알겠다.” 이에 동굴의 이름을 “완역(玩易)”이라 짓고 그 뜻을 이야기합니다.
대저 <역>이란 천지인 삼재(三才)의 도를 갖추고 있습니다. 옛날 군자께서는 머물 때는 하늘의 상징(象)을 보면서 그 말(괘사)을 이리저리 궁글리고, 움직일 때는 모든 변화를 보면서 점을 치며 이리저리 궁글립니다. 상(象)을 보면서 그 말(辞)을 갖고 노는 것은 삼재의 골격(體)을 세우는 것이고, 변화를 보고 점을 쳐 노는 것은 삼재의 운용(用)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골격을 세우면(體立)’ 존재하면서 신령스럽고(神), ‘운용이 실행되면(用行)’ 움직이면서 변화무쌍(化)합니다. 신령스럽다(神)는 것은, 역의 지혜가 그만큼 온갖 만물에 두루 적용되며 치우치는 방향이 없기 때문입니다. 변화무쌍하다(化)는 것은, 천지간에 흔적이 남지 않기 때문입니다. 치우치는 방향이 없기(无方)에 그 바탕(基)에서 상징을 말로 푸는 것이고(象辞), 흔적이 없는 것이기에(无迹) 그 생겨나는(生) 데서 변화무쌍함을 점치는 것(變占)입니다. 이런 까닭에 군자는 마음을 씻고는 은밀한 곳으로 물러나 스스로를 감추고, 재계(齋戒)하여 삼가 그 덕을 신명스럽게 합니다. 공자께서는 일찍이 <주역>책의 가죽끈이 세 번이나 끊어질 정도로 공부했습니다. 아아! 나에게도 몇 십년쯤 <주역>을 공부할 시간이 주어진다면, 인생에서 큰 잘못은 없게 될 텐데 말입니다.
(<완역와기(玩易窩記)>/ 양문영, 문리스 번역)
陽明子之居夷也,穴山麓之窩而讀《易》其間。始其未得也,仰而思焉,俯而疑焉。函六合,入無微,茫乎其無所指,孑乎其若株。其或得之也,沛乎其若決,了兮其若徹,菹淤出焉,精華入焉,若有相者,而莫知其所以然。其得而玩之也,優然其休焉,克然其喜焉,油然其春生焉。精粗一,外內翕,視險若夷,而不知其夷之為阨也。
於是陽明子撫幾而嘆曰:「嗟乎,此古之君子所以甘囚奴,忘拘幽,而不知其老之將至也。夫吾知所以終吾身矣。」名其窩曰「玩易」,而為之說。曰:夫《易》,三才之道備焉,古之君子,居則觀其象而玩其辭,動則觀共變而玩。觀象玩辭,三才之體立矣;觀變玩占,三才之用行矣。體立故存而神,用行故動而化。神故知周萬物而無方,化故範圍天地而無跡。無方則象辭基焉,無跡則變占生焉。是故君子洗心而退藏於密,齋戒以神明其德也。蓋昔者夫子嘗韋編三絕焉。嗚呼,假我數十年以學《易》,其亦可以無大過已夫。
(계속)
글_문리스(남산강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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