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슬기로운 복학생활] 중간고사 견문록

중간고사 견문록




반(半)세속인의 시험 맞이


시험기간이 찾아왔고 나는 한숨이 푹푹 나온다. 규문에서의 공부만 해도 벅찬데 시험공부까지 해야 한다니. 시험 전날 벼락치기를 하면서 ‘이런 걸 배워서 뭐하나’ 하는 생각을 한다. 이 공식을 알아서 어디에 쓸까? 결국 시험 잘 봐 학점 따려고 하는 거 아닌가. 따지고 보면 대학공부라는 게 어차피 스펙과 취업 그 이상이 아니다. 그걸 다 알면서도 나는 왜 늦은 시간까지 도서관에 앉아있는 걸까.




언제부턴가 나는 세속(世俗)과 탈속(脫俗)이라는 영역을 나누기 시작했다. 규문에서 듣고 배우는 것들은 돈이나 스펙과는 무관한 탈속의 공부이고, 내가 대학에서 배우는 것들은 세속적인 것이라고. 그리고 세속적인 것만 따라가지 않고 ‘인문학적 소양’까지 기르고 있는 범상치 않은 놈이라며 은근히 스스로를 미화한다. 어디선가 주워들은 n포 세대, 취업경쟁 같은 말들은 나의 이 ‘세속/탈속’의 이분법을 더 강화한다. 그럴수록 이쪽이 더 의미 있고 저쪽은 덜 의미 있고, 여긴 어떻고, 저긴 어떻다는 나의 선판단만 점점 더 견고해진다. 그러고 나면 결국 좋다 나쁘다는 식의 구분만 남게 된다.


나는 대학을 그만 둘 것도 아니면서 뭐가 의미 있고 뭐가 의미 없다는 식의 관념들만 뚱뚱하게 살찌우며 나를 괴롭히고 있다. 공부에 대해 ‘무슨 이유 때문이다’라고 하는 의미만 따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보니 막상 내가 의미 없고 세속적이라고 폄하했던 공부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생각해보지 않게 되었던 것 같다. 시험기간을 맞이하여 세속의 공부 현장을 살펴보자.



그들 각자의 강의실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딱 앉아야 할 자리가 보인다. 왼쪽 구석에 복학생들이 모여 있고 그 중 한 명이 기다렸다는 듯이 팔을 높게 들어 크지 않은 목소리로 “여기~”하고 말한다. 그 곳으로 들어가 앉으면 한결 마음이 편해진다. 2학년 강의실의 자리배치는 너무나 분명하다. 가운데에는 예쁘게 꾸미고 온, 가장 대학생스러워 보이는 여후배들이 모여 있고, 왼쪽 구석에는 아직도 어눌하고 쭈뼛거리는 복학생 무리, 오른쪽 구석은 재수강생 및 고학년들이 채우고 있다. 중간고사가 끝나가는 데도 섞일 줄 모르는 이 상호불가침의 영역은 아마 종강할 때까지도 견고하게 유지될 것 같다.


수업이 시작되면 학생들은 조용히 앉아있지만 저마다의 스타일로 강의를 듣는다. 앞머리를 말고 있는 아이, 핸드폰 게임을 켜 놓고 듣는 놈, 에어팟을 꽂고 다른 과목 공부를 하는 놈, ‘출튀’하는 놈 등. 조용한 강의실에서 다른 곳에 가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침묵을 깨지는 않는다. 교수는 매번 수업을 끝내기 전에 “오늘 내용 중에 질문 있는 사람?”하고 묻지만, 여기서 손을 든다는 것은 이미 가방을 싸 놓고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는 모두의 눈초리를 한 몸에 받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이다. 끝나자마자 하나도 모르겠다고, 뭐 저렇게 못 가르치냐고 투덜거리지만, 마지막 순간만큼은 한마음으로 또 온 몸으로 ‘질문 없음’을 표현한다.


대부분 학생들이 수강신청을 할 때 가장 먼저 따지는 것은 그 교수가 어떤가이다. 잘 가르치는지, 과제는 조금 내는지, 성적은 잘 주는지 깨알같이 따진다. 같은 과목이어도 교수에 따라 호불호가 강하게 갈린다. 젊은 교수님들은 효과적으로 가르치려고 이런저런 시도를 하기도 한다. 아마 분기별로 실시하는 학생들의 교수평가를 고려하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몇몇 할아버지 교수님들은 문제가 심각하다. 어떤 교수님은 연필 물고 발음 연습이라도 좀 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 한 문장도 제대로 완성시키지 못한다. 책에도 없는 내용을 허공에 대고 웅얼거리지만 맨 앞자리에서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 내용을 시험에 낸다. 학생들은 평가에서 매번 마음모아 최하점을 주지만 그들은 평가 따위에 아랑곳 하지 않는 ‘철밥통’이다. 그 평가가 반영되었으면 이렇게 오래도록 그 자리에 있을 리가 없겠지. 물론 그 과목 시험은 망쳤다.


수업이 끝나면 어디서 공부할거냐고들 묻는다. 그렇다. 바야흐로 시험기간이다. 평소처럼 게임방 가고, 술 마시며 마냥 놀 수만은 없는 법. 책보다 핸드폰 보는 시간이 더 길더라도 어쨌든 앉아있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고, 그 외에 다른 일을 하면 괜히 불안하다. 시험이라는 이 범대학적(?) 위기를 맞은 이들은 터덜터덜 ‘그곳’으로 향한다.



하태하태 도서관


새벽까지도 도서관이 후끈후끈하다. 두꺼운 전공책에 밑줄을 그어대는 사람, 노트북을 두들기는 사람, 프린트물을 넘기며 외우는 사람. 시험기간 도서관의 인구밀도는 평소의 두 배가 넘는다. 그들이 내뿜는 CO2 농도 역시 2배이므로 공기도 혼탁하다. 구석진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일단 책은 펴 놓았지만 구불구불한 공식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자꾸만 좌석 칸막이 너머로 두리번거리게 된다.


연인들은 집에 가, 가라고...



곧바로 눈살을 찌푸리게 되는 광경을 발견한다. 귓속말을 주고받으며 서로 좋다고 키득거리는 커플. 도서관 구석진 곳엔 이런 연놈들이 꼭 있다. 왜 굳이 여기까지 와서 수작질이냐고 아무리 눈총을 보내도 떨어질 줄을 모른다. 옆으로는 몇 시간째 숙면을 취하고 있는 사람, 가방도 풀지 않고 줄곧 핸드폰만 만지는 사람 등 특이한 유형들이 눈에 들어온다. 간혹 비슷비슷한 애들 사이로 도저히 학생으로 보이지 않는 분들이 보이기도 한다. 세월을 정통으로 맞은 것 같아 보이는 그들은 ‘지박령’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고시공부를 하는 건지 취업준비를 하는 건지 독서대, 사전, 보온병 등을 갖춰두고 프로페셔널한 아우라를 뿜는다. 그들은 시험에 구애받지 않고 사시사철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시험기간에 몰려든 인파 때문에 그들이 피해 받는 건 아닌가, 괜히 걱정스런 마음이 든다.


도서관의 자리 유형은 칸막이책상, 오픈테이블, 스터디룸 세 가지이다. 칸막이책상은 시선을 차단해 집중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을 거라고 흔히들 착각한다. 하지만 칸막이는 시선을 차단하는 동시에 자제력도 차단해버린다. 그 조그만 공간은 앉은 사람에게 달콤한 자유를 선사하고 거기서 우리는 스마트폰, 멍 때리기, 잠의 유혹에 고스란히 노출된다. 빽빽한 칸막이 책상에 있는 사람 중 3분의 1의 영혼은 이미 어딘가 다른 곳에 가 있다. 바로 그런 이유로 몇몇 고수들은 오픈테이블을 선택한다. 이는 사람들의 시선 속에 스스로를 노출하겠다는 선언이자 딴 짓 하지 않겠다는 각오이기도 하다.


지박령들은 오픈테이블을 선점하고 있다. 하지만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렇게 앉아있으면 끊임없이 주변 사람들의 시선도 신경 쓰이고 이리저리 시선이 뻗치고 말텐데. 거기 앉아 있다 보면 누군가 지나가면 나도 모르게 슥 쳐다본다. 아는 사람인지, 예쁜지, 뭘 입었는지 확인하게 된다. 사실 이 무의식적인 시선이 늘 말썽이다. 칸막이에 앉아도 고개를 살짝 들면 지나가는 사람이 보인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도 발이 보인다. 특히 딱 붙는 레깅스를 입은 다리가 지나가면 자동으로 눈이 따라가게 된다. 칸막이도 소용없다.


스터디룸은 인싸들의 영역이다. 예약제이기 때문에 반드시 함께할 누군가가 있어야 한다. 집단지성의 힘을 보여주려는 듯 그들은 ‘스룸’안에서 정보를 공유하며 효율성을 높인다. 특히 족보가 적용되는 과목은 정보력이 생명이기 때문에 ‘인싸력’과 성적이 비례하기도 한다. 그들은 공부도 하고 돈독함도 쌓으며 시험공부를 하지만 시너지 효과도 잠시, 자칫 수다와 야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위험성이 있다.


도서관에서 CO2를 너무 많이 마시다 보면 정말 머리가 혼탁해진다. 그래서인지 내 친구들은 현기증 난다며 정기적으로 야식을 먹으러 나간다. 떡볶이와 순대를 흡입하고 돌아오면 또 슬슬 졸기 시작한다. 집에 가서 편하게 자는 게 낫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지만 이들에게 밤은 길다. 여기저기 탁해진 머리로 탁한 공기 속에서 북적이고 있는 도서관의 새벽은 후끈후끈하다.



그리고 성적은 미궁 속으로


공부한다고 앉아있는 우리에게는 공부와 나, 시험과 나라는 관계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수시로 집중을 방해하는 옆 사람과의 미묘한 시선교차부터, 저녁은 누구랑 뭘 먹을지, 쟤들은 왜 저러고 있는 건지 하는 끊이지 않는 잡념들까지 온갖 것들이 항상 끼어들고 있었다. 그러다보면 어느 순간 핸드폰을 잡고 있고, 또 옆 사람을 쳐다보고 있다. 추리닝을 입고 안경을 썼는데 풀메이크업을 하고 있는 애들. 계속 자면서 굳이 도서관에서 밤을 새겠다는 애들. 그걸 두리번거리고 있는 나. 참 다양한 꼬라지들이다. 다들 나처럼 이런저런 기분 속에서 꾸물대는 생각을 가지고 앉아있는 것일까? 이들은 지금 자기가 하는 것에 대해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있을까?




이렇게 살펴보니 우리는 그냥 지금 해야 할 것들을 할 수 있는 대로, 저마다의 방식대로 하고 있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보면 몸도 배배 꼬이고, 나름의 성취감도 든다. 그러고 보면 내가 규문에서 하는 탈속의 공부도 (세속의 그것이 그러하듯) 별다른 의미가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어쩌다보니 하게 되어서 하고 있는 것이지 대단한 동기나 목적이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이 역시 때로는 하기 싫기도 하고, 갓 전역한 내가 왜 이런 걸 하고 있어야 하나 하는 생각도 종종 들고, 그러는 와중에 놀랍고 재밌는 순간들도 있다. 그렇게 두고 보면 내가 뭐 대단한 걸 하고 있다고 뻐길 것도, 학교 공부를 폄하할 것도 없었다. 별로 달라진 것도 없고 다르게 보게 된 것도 없지만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시험 성적은 미궁 속으로 가겠지만.


글_민호(고전비평공간 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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