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칩驚蟄, 내 마음이 개구리처럼 팔딱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왔다고 하는데, 도시에서 날씨 빼고는 당최 봄이 왔음을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런데 조금만 주의 깊게 관찰해보면 도시에도 봄의 생리가 조금씩 돌아가고 있음을 알아챌 수 있다. 그동안 숨어있던 카페의 의자들도 슬금슬금 밖으로 나오고 있고 나들이 가는 사람들도 부쩍 늘었다. 무엇보다 도시의 봄은 출근 준비하는 시간이 늘어진 데서 느낄 수 있다. 무슨 소리냐고? 출근할 때 가장 시간을 잡아먹는 것은 옷 고를 때기 때문. 기온이 크게 변한 것 같지는 않은데 이제는 두툼한 파카 입기는 좀 민망하다. 그렇다고 트렌치코트를 걸치기엔 이른 것 같고. 겨우내 한참 손이 가던 옷을 선뜻 입지 못 한다는 건 봄이 피부에 느껴질 정도라는 것이다. 특히 경칩(驚蟄)은 그간 눈에 보이지 않게 움직이던 봄이 눈에 띄게 도약하는 절기다.
천둥 번개로 깨우는 봄
24절기 중에서 가장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름이 경칩(驚蟄)이다. 경(驚)은 ‘말(馬)이 몸을 긴장시켜(敬) 놀라다’라는 뜻이다. 칩(蟄)은 ‘벌레(虫)가 땅 속에 붙잡히다, 숨다(執)’의 뜻이다. 절기의 대부분이 기후나 농사일과 밀접한 실용적인 이름인데 반해, 경칩은 겨우내 잠을 자다 어느 순간 팔딱 깨어나는 개구리와 벌레들을 떠올리게 해 땅 속 세계에 대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땅 속에 숨어 있던 벌레들이 개구리를 깨우는 알람은 뭘까? 이 즈음이면 하늘에는 이미 봄이 왔고 땅 속 깊은 곳에도 봄이 도착했다. 이제 그 중간에 사는 식물, 동물들에게 봄의 바통이 넘겨져야 한다. 봄의 양기는 땅 속 깊은 곳에서 점차 지면으로 향하던 중 동면하는 생물들의 맥을 살살 건드리며 움직거리게 한다. 그리고 이때, 하늘과 땅의 기운을 뒤섞는 외침이 들린다. 번쩍! 콰과광!! 경칩은 12지 중에 卯월에 해당하는데 이는 木에 해당하고 木은 바람이나 천둥, 번개를 일으키는 기운이다. 물론 입춘인 寅월도 木이긴 마찬가지나 그때는 땅에 음기가 가득해 함께 약동할 수 없는 시기였다. 즉 옛사람들은 경칩에 이르러 치는 천둥, 번개가 땅 속의 생물을 깨운다고 생각한 것이다.
여기서 잠깐! 봄이 오는 순서를 음미해보면 재미있는 음양(陰陽)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다. 봄은 천지의 기운이 음(陰)에서 양(陽)으로, 정(靜)에서 동(動)으로 이동하는 때다. 땅에서도 가장 먼저 봄을 맞는 것은 정적인 음(陰)의 기운을 가진 식물, 그 다음이 동적인 양(陽)의 기운을 가진 동물이다. 그러니 우수(雨水)의 마지막 5일, 어린 아이 이가 나듯 초목이 쑤욱 올라온 무대에 땅 속에 있던 동물들이 잠을 털고 지면 위로 팔짝! 튀어 오르게 되는 것이다.
넘쳐나는 木기
경칩은 卯월에 해당한다. 좋아하는 친구를 생각하면 든든하고 힘이 나듯 卯의 마음에는 항상 ‘절친’ 甲과 乙이 있다. 卯와 甲, 乙 모두 木기운에 해당한다. 즉 세 친구의 木기가 천하를 ‘접수’하게 되는 것이다. 木은 싹이 땅을 뚫고 움터 오르듯 야무지게 솟아오르고 뻗어나가는 기운이다. 그러니 이 즈음되면 사람의 마음에도 불쑥불쑥 초목이 올라오고 개구리가 뛰어다닌다. 그런 고로 무언가 시작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자연 들게 마련인 것이다.
옛사람들은 겨우내 매서운 추위와 바람에 무너진 흙벽과 담을 쌓는 것으로 움직임을 시작하였다. 경칩에 흙일을 하면 탈이 없다고 여겼는데, 이는 경칩이 卯월 즉 木의 기운이 생동하는 시기라 木을 제어하기 위해 흙(土)의 기운을 빌린 것이다.
엥? 당최 무슨 소린지 모르시겠다고? 그렇다면 앞으로 자주 등장하게 될 오행의 순환 관계를 살짝 익혀보도록 하자. 동양학에서 오행을 모르면 그야말로 간첩(?)이니까. 옛 동양인들은 세상을 木, 火, 土, 金, 水의 다섯 가지 요소가 발현된 시공간으로 보았다. 즉 나무(木)처럼 쭉쭉 뻗어나는 기운, 불(火)처럼 뜨겁고 마구 번져나가는 기운, 금속(金)처럼 날카롭고 수렴하는 기운 그리고 물(水)처럼 응축하는 기운 그리고 이 모든 걸 조화롭게 조정하는 흙(土)으로 말이다. 그리고 이들은 서로 더 잘하라고 서포트해주거나(생生) 너무 오바하면 다친다며 말려주는(극克)의 관계로 얽혀있다. 우선 이들은 목화토금수의 순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서로를 생해준다. 동시에 도끼(金)로 나무(木)를 치듯 金이 木을 극하며, 초목(木)이 땅(土)을 뚫고 나오듯 木극土하며, 흙(土)이 물길(水)을 막듯 土극水하고, 물(水)이 불(火)을 끄듯 水극火하고, 불(火)이 금속(金)을 녹이듯 火극金한다. 이는 어린아이가 들어도 끄덕거릴 만큼 자연스러운 세상의 이치다.
그럼 다시 木기 넘치는 경칩에 왜 흙일(土)을 했는지 살펴보자. 오행의 순환에서 木극土의 관계를 떠올려보면 쉬운데, 이는 아마 넘치는 木기에 극을 당하는 土기를 보완하기 위해 특별히 흙을 가까이 할 것을 권한 것이리라. 또한 이때 고로쇠나무를 베어 달달한 수액을 마셔 위장병과 속병을 예방했다고 한다. 이것은 흙(土)으로부터 흡수한 나무의 수액을 마심으로써 土에 배 비, 위에 돌려주어 위장병을 예방한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 몸의 장부 역시 오행으로 설명가능한데 비, 위는 땅(土)에서 자란 것을 바로 받아들이는 장기이므로 土에 배속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액의 달달한 맛 또한 土기를 보완하는데 도움이 된다. 앗! 이 말이 설탕물에 푹 절인 ‘크리스피 도넛’을 먹는 누군가의 마음을 가볍게 만들지 않기를. 土기가 조화와 균형을 의미한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土기를 돋구어주는 단맛은 설탕이나 초콜릿처럼 자극적인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같은 단맛이라도 이런 자극적인 단맛은 위로 치밀어 오르거나 빠른 변화를 상징하는 火기가 되어버린다. 즉 土는 조청이나 꿀, 고구마, 과일처럼 우리 몸이 놀라지 않는 은은한 단맛에서 얻을 수 있는 기운인 것이다.
또 하나! 경칩은 자꾸 눈이 가고 마음이 쓰이는 누군가에게 마음을 표현하기 좋은 절기다. 그래서 이때 서로 사랑을 확인하는 징표로 은행을 선물로 주고받거나 몰래 나눠 먹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은행이 사랑의 징표일 수 있는 것은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암수가 따로 있는 나무(木)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은행 철도 아니거늘 굳이 봄에 나무(木)열매로 마음을 표현한담? 봄이 되어 나무에 새순이 돋는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긴 겨울을 버텨낸 생명의 기운이 농축되어 있어야 가능하다. 즉 보기 좋은 연두색 싹 이면에는 긴 숙성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水生木) 그런 마음은 쉽게 바뀌거나 흔들리지 않기에 불(火)이 붙어도 금세 재가 되지 않고 위기를 조화롭게 넘겨(土) 결국 열매(金)를 맺을 수 있다. 이렇듯 목화토금수의 오행을 자연스럽게 밟아가는 사랑의 순환은 새로운 木기가 되어 돌아온다. 그리고나서 또 다른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씨앗이 된다. 오래 누군가와 사랑할 수 있고, 사랑이 나에게 힘이 되는 비밀은 바로 경칩의 木기에서 찾을 수 있고 은행은 바로 그 상징인 것이다.
내 맘 속 개구리, 팔딱!
일 년 농사로 무엇을 지을지 입춘(立春)에 가닥을 세워보고 우수(雨水)에 염려되는 것을 방지한다면, 경칩(驚蟄)은 계획한 바를 저지르는 시기다. 저지른다고 하면 ‘나’ 스스로가 못미더워 덜컥 겁이 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봄의 木기운이 뻗쳐나가는 양태는 여름의 火기운과는 다르다. 火기는 불이 마구잡이로 번져나가는 모양새가 그려지는데 비해, 木기는 나무가 쭉 뻗어 반듯하게 올라가는 것처럼 정확한 표적을 향해 밀고 나아가는 그림이 그려진다. 그러니 안심하시라!^^ 그렇기에 우리의 마음에도 목표가 뚜렷한 木기가 ‘톡!’하면 터질 것 같은 자세로 나갈 태세를 갖추고 있을 것이다.
나같이 시작하기를 두려워해서 멈칫거리거나 망설이는 사람들에게는 경칩이 반가운 절기다. 木기가 천지만물에 가득하니 등 떠밀어주는 木기운에 몸을 맡겨도 좋을 것이다. 한때 유행했던 모 통신사의 ‘되고송’처럼 누가 좋아지면 고백하면 되고, 하고픈 게 있으면 시작하면 되고 그냥 생각대로 하면 된다. 에잇, 긴 말 필요 없다. 그냥 ‘질러’버리면 된다.
반면, ‘시작이 반’인 걸 믿고 여기저기 일을 벌이며 그걸로 위안 삼는 사람들은 좀 다른 경칩을 보내야 한다. 그 분들은 본래 木기운을 많이 타고 났을 것인데, 경칩의 木기까지 받으면 木이 태과다. 여기서 퀴즈! 木이 넘치면 가장 힘들어질 오행은 무엇일까? 딩동댕~~ 바로 木에게 극을 당하게 되는 土다. 따라서 이런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건 ‘土종합세트’! 믿거나 말거나 일지도 모르지만, 일 벌려놓고 늘 괴로워하는 분들은 눈 딱 감고 시도해볼만하다. 이 시기에 비위가 약해져 소화력이 떨어질 수 있으니 가까운 산에 산책이든 등산이든 가서 자주 흙(土)과 접촉해보자. 또 달달한 과일과 꿀차, 고구마 등도 특효약! 덧붙여 土의 색인 황색 위주로 코디를 한다면 블링블링~~까지는 보장 못하더라도 土기운을 받아 일상의 조화와 균형을 지키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지난 우수 절기는 잘 보내셨나요? 절기력을 기준으로 살다보니 봄기운을 찾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먼저, 2월 23일! 우수라는 이름에 걸맞게 정말 새벽에 비가 온 거 있죠? 분명 입춘 즈음에는 눈이 내렸었거든요. 그리고 저는 우수 마지막 무렵, 홍대에 놀러갔다가 도시 한 가운데에서 냉이를 발견하는 쾌거를 얻기도 했답니다. 진짜 신통방통한 절기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저랑 같이 절기를 담당하고 있는 동철과 수다를 떨다가 ‘雨水의 水가 水生木을 하여 봄의 木기운을 부른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팔짝팔짝 뛰었습니다.^^;;; 봄의 개구리처럼 말이죠.ㅋㅋㅋ 절기의 이치를 온몸으로 깨닫고 있네요.
그런데 사실 우수雨水는 이렇게 마냥 희망차고 ‘샤방샤방’한 절기만은 아닙니다. 건강에 매우 유의해야하는 기간이에요. 택시 기사 아저씨들이 말씀하시기를 이때 교통사고가 많이 난다고 하더라구요. 또 친구의 할머니도 뇌경색으로 쓰러지시기도 하셨구요. 게다가 함께 공부하는 ‘장금언니’도 우수雨水에 산 절벽에서 구르는 대형 참사를 겪었답니다.ㅠㅠ 이름 그대로 우수憂愁에 빠지게 되는군요. 본문에 있듯이 봄은 음陰에서 양陽으로 정靜에서 동動으로 기운이 바뀌는 시점이기 때문에 긴장이 풀려 이 때 사건, 사고가 많이 난다고 합니다. 그러니 다들 조심조심 팔짝팔짝 뛰는 경칩 보내세요.^^
※ 임진년 경칩 절입시간은 3월 5일 13시 15분입니다.
송혜경(감이당 대중지성)
인월(寅月, 입춘-우수)엔 하늘에 봄이 오고 묘월(卯月, 경칩-춘분)엔 땅에 봄이 온다. 그럼 사람에게는 언제쯤 봄이 오냐고? 진월(辰月, 청명-곡우)이 되면 사람들은 드디어 곡식의 씨를 뿌리고 한 해의 농사를 시작한다. 봄의 시작하는 기운이 사람들에게로 온 것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이 왔다고 하는데, 도시에서 날씨 빼고는 당최 봄이 왔음을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런데 조금만 주의 깊게 관찰해보면 도시에도 봄의 생리가 조금씩 돌아가고 있음을 알아챌 수 있다. 그동안 숨어있던 카페의 의자들도 슬금슬금 밖으로 나오고 있고 나들이 가는 사람들도 부쩍 늘었다. 무엇보다 도시의 봄은 출근 준비하는 시간이 늘어진 데서 느낄 수 있다. 무슨 소리냐고? 출근할 때 가장 시간을 잡아먹는 것은 옷 고를 때기 때문. 기온이 크게 변한 것 같지는 않은데 이제는 두툼한 파카 입기는 좀 민망하다. 그렇다고 트렌치코트를 걸치기엔 이른 것 같고. 겨우내 한참 손이 가던 옷을 선뜻 입지 못 한다는 건 봄이 피부에 느껴질 정도라는 것이다. 특히 경칩(驚蟄)은 그간 눈에 보이지 않게 움직이던 봄이 눈에 띄게 도약하는 절기다.
천둥 번개로 깨우는 봄
24절기 중에서 가장 상상력을 자극하는 이름이 경칩(驚蟄)이다. 경(驚)은 ‘말(馬)이 몸을 긴장시켜(敬) 놀라다’라는 뜻이다. 칩(蟄)은 ‘벌레(虫)가 땅 속에 붙잡히다, 숨다(執)’의 뜻이다. 절기의 대부분이 기후나 농사일과 밀접한 실용적인 이름인데 반해, 경칩은 겨우내 잠을 자다 어느 순간 팔딱 깨어나는 개구리와 벌레들을 떠올리게 해 땅 속 세계에 대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
땅 속에 숨어 있던 벌레들이 개구리를 깨우는 알람은 뭘까? 이 즈음이면 하늘에는 이미 봄이 왔고 땅 속 깊은 곳에도 봄이 도착했다. 이제 그 중간에 사는 식물, 동물들에게 봄의 바통이 넘겨져야 한다. 봄의 양기는 땅 속 깊은 곳에서 점차 지면으로 향하던 중 동면하는 생물들의 맥을 살살 건드리며 움직거리게 한다. 그리고 이때, 하늘과 땅의 기운을 뒤섞는 외침이 들린다. 번쩍! 콰과광!! 경칩은 12지 중에 卯월에 해당하는데 이는 木에 해당하고 木은 바람이나 천둥, 번개를 일으키는 기운이다. 물론 입춘인 寅월도 木이긴 마찬가지나 그때는 땅에 음기가 가득해 함께 약동할 수 없는 시기였다. 즉 옛사람들은 경칩에 이르러 치는 천둥, 번개가 땅 속의 생물을 깨운다고 생각한 것이다.
경칩의 원래 이름은 계칩(啓蟄)이었다. 겨울잠을 자던 동물들(蟄)이 땅을 열고(啓) 나온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한무제의 이름이 계(啓)였던 까닭에 경(驚)으로 글자를 바꿨다. 황제의 이름은 함부로 쓸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잠깐! 봄이 오는 순서를 음미해보면 재미있는 음양(陰陽)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다. 봄은 천지의 기운이 음(陰)에서 양(陽)으로, 정(靜)에서 동(動)으로 이동하는 때다. 땅에서도 가장 먼저 봄을 맞는 것은 정적인 음(陰)의 기운을 가진 식물, 그 다음이 동적인 양(陽)의 기운을 가진 동물이다. 그러니 우수(雨水)의 마지막 5일, 어린 아이 이가 나듯 초목이 쑤욱 올라온 무대에 땅 속에 있던 동물들이 잠을 털고 지면 위로 팔짝! 튀어 오르게 되는 것이다.
넘쳐나는 木기
경칩은 卯월에 해당한다. 좋아하는 친구를 생각하면 든든하고 힘이 나듯 卯의 마음에는 항상 ‘절친’ 甲과 乙이 있다. 卯와 甲, 乙 모두 木기운에 해당한다. 즉 세 친구의 木기가 천하를 ‘접수’하게 되는 것이다. 木은 싹이 땅을 뚫고 움터 오르듯 야무지게 솟아오르고 뻗어나가는 기운이다. 그러니 이 즈음되면 사람의 마음에도 불쑥불쑥 초목이 올라오고 개구리가 뛰어다닌다. 그런 고로 무언가 시작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자연 들게 마련인 것이다.
옛사람들은 겨우내 매서운 추위와 바람에 무너진 흙벽과 담을 쌓는 것으로 움직임을 시작하였다. 경칩에 흙일을 하면 탈이 없다고 여겼는데, 이는 경칩이 卯월 즉 木의 기운이 생동하는 시기라 木을 제어하기 위해 흙(土)의 기운을 빌린 것이다.
엥? 당최 무슨 소린지 모르시겠다고? 그렇다면 앞으로 자주 등장하게 될 오행의 순환 관계를 살짝 익혀보도록 하자. 동양학에서 오행을 모르면 그야말로 간첩(?)이니까. 옛 동양인들은 세상을 木, 火, 土, 金, 水의 다섯 가지 요소가 발현된 시공간으로 보았다. 즉 나무(木)처럼 쭉쭉 뻗어나는 기운, 불(火)처럼 뜨겁고 마구 번져나가는 기운, 금속(金)처럼 날카롭고 수렴하는 기운 그리고 물(水)처럼 응축하는 기운 그리고 이 모든 걸 조화롭게 조정하는 흙(土)으로 말이다. 그리고 이들은 서로 더 잘하라고 서포트해주거나(생生) 너무 오바하면 다친다며 말려주는(극克)의 관계로 얽혀있다. 우선 이들은 목화토금수의 순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고 서로를 생해준다. 동시에 도끼(金)로 나무(木)를 치듯 金이 木을 극하며, 초목(木)이 땅(土)을 뚫고 나오듯 木극土하며, 흙(土)이 물길(水)을 막듯 土극水하고, 물(水)이 불(火)을 끄듯 水극火하고, 불(火)이 금속(金)을 녹이듯 火극金한다. 이는 어린아이가 들어도 끄덕거릴 만큼 자연스러운 세상의 이치다.
그럼 다시 木기 넘치는 경칩에 왜 흙일(土)을 했는지 살펴보자. 오행의 순환에서 木극土의 관계를 떠올려보면 쉬운데, 이는 아마 넘치는 木기에 극을 당하는 土기를 보완하기 위해 특별히 흙을 가까이 할 것을 권한 것이리라. 또한 이때 고로쇠나무를 베어 달달한 수액을 마셔 위장병과 속병을 예방했다고 한다. 이것은 흙(土)으로부터 흡수한 나무의 수액을 마심으로써 土에 배 비, 위에 돌려주어 위장병을 예방한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 몸의 장부 역시 오행으로 설명가능한데 비, 위는 땅(土)에서 자란 것을 바로 받아들이는 장기이므로 土에 배속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수액의 달달한 맛 또한 土기를 보완하는데 도움이 된다. 앗! 이 말이 설탕물에 푹 절인 ‘크리스피 도넛’을 먹는 누군가의 마음을 가볍게 만들지 않기를. 土기가 조화와 균형을 의미한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土기를 돋구어주는 단맛은 설탕이나 초콜릿처럼 자극적인 게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같은 단맛이라도 이런 자극적인 단맛은 위로 치밀어 오르거나 빠른 변화를 상징하는 火기가 되어버린다. 즉 土는 조청이나 꿀, 고구마, 과일처럼 우리 몸이 놀라지 않는 은은한 단맛에서 얻을 수 있는 기운인 것이다.
달콤한 봄의 물, 고로쇠 수액! 단맛은 우리 몸의 중심인 비위를 튼튼하게 만든다. 비위가 망가지면 기와 혈이 부족해져서 사지가 늘어진다. 이때는 단맛이 나는 음식들이 제격이다. 그러나 과용은 금물!
또 하나! 경칩은 자꾸 눈이 가고 마음이 쓰이는 누군가에게 마음을 표현하기 좋은 절기다. 그래서 이때 서로 사랑을 확인하는 징표로 은행을 선물로 주고받거나 몰래 나눠 먹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은행이 사랑의 징표일 수 있는 것은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암수가 따로 있는 나무(木)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은행 철도 아니거늘 굳이 봄에 나무(木)열매로 마음을 표현한담? 봄이 되어 나무에 새순이 돋는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다. 그러나 그것은 긴 겨울을 버텨낸 생명의 기운이 농축되어 있어야 가능하다. 즉 보기 좋은 연두색 싹 이면에는 긴 숙성의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水生木) 그런 마음은 쉽게 바뀌거나 흔들리지 않기에 불(火)이 붙어도 금세 재가 되지 않고 위기를 조화롭게 넘겨(土) 결국 열매(金)를 맺을 수 있다. 이렇듯 목화토금수의 오행을 자연스럽게 밟아가는 사랑의 순환은 새로운 木기가 되어 돌아온다. 그리고나서 또 다른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씨앗이 된다. 오래 누군가와 사랑할 수 있고, 사랑이 나에게 힘이 되는 비밀은 바로 경칩의 木기에서 찾을 수 있고 은행은 바로 그 상징인 것이다.
내 맘 속 개구리, 팔딱!
일 년 농사로 무엇을 지을지 입춘(立春)에 가닥을 세워보고 우수(雨水)에 염려되는 것을 방지한다면, 경칩(驚蟄)은 계획한 바를 저지르는 시기다. 저지른다고 하면 ‘나’ 스스로가 못미더워 덜컥 겁이 날지도 모른다. 그러나 봄의 木기운이 뻗쳐나가는 양태는 여름의 火기운과는 다르다. 火기는 불이 마구잡이로 번져나가는 모양새가 그려지는데 비해, 木기는 나무가 쭉 뻗어 반듯하게 올라가는 것처럼 정확한 표적을 향해 밀고 나아가는 그림이 그려진다. 그러니 안심하시라!^^ 그렇기에 우리의 마음에도 목표가 뚜렷한 木기가 ‘톡!’하면 터질 것 같은 자세로 나갈 태세를 갖추고 있을 것이다.
나같이 시작하기를 두려워해서 멈칫거리거나 망설이는 사람들에게는 경칩이 반가운 절기다. 木기가 천지만물에 가득하니 등 떠밀어주는 木기운에 몸을 맡겨도 좋을 것이다. 한때 유행했던 모 통신사의 ‘되고송’처럼 누가 좋아지면 고백하면 되고, 하고픈 게 있으면 시작하면 되고 그냥 생각대로 하면 된다. 에잇, 긴 말 필요 없다. 그냥 ‘질러’버리면 된다.
목(木)은 시작의 기운이다. 시작은 결단하고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김을 의미한다. 그 전까지는 시작이 아니다. 목(木)의 기운을 제대로 쓴다는 건 초목이 땅을 뚫고 올라오듯 눈에 보이는 행동까지 밀고 나가는 것을 의미한다.
반면, ‘시작이 반’인 걸 믿고 여기저기 일을 벌이며 그걸로 위안 삼는 사람들은 좀 다른 경칩을 보내야 한다. 그 분들은 본래 木기운을 많이 타고 났을 것인데, 경칩의 木기까지 받으면 木이 태과다. 여기서 퀴즈! 木이 넘치면 가장 힘들어질 오행은 무엇일까? 딩동댕~~ 바로 木에게 극을 당하게 되는 土다. 따라서 이런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건 ‘土종합세트’! 믿거나 말거나 일지도 모르지만, 일 벌려놓고 늘 괴로워하는 분들은 눈 딱 감고 시도해볼만하다. 이 시기에 비위가 약해져 소화력이 떨어질 수 있으니 가까운 산에 산책이든 등산이든 가서 자주 흙(土)과 접촉해보자. 또 달달한 과일과 꿀차, 고구마 등도 특효약! 덧붙여 土의 색인 황색 위주로 코디를 한다면 블링블링~~까지는 보장 못하더라도 土기운을 받아 일상의 조화와 균형을 지키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독자 여러분들께
지난 우수 절기는 잘 보내셨나요? 절기력을 기준으로 살다보니 봄기운을 찾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먼저, 2월 23일! 우수라는 이름에 걸맞게 정말 새벽에 비가 온 거 있죠? 분명 입춘 즈음에는 눈이 내렸었거든요. 그리고 저는 우수 마지막 무렵, 홍대에 놀러갔다가 도시 한 가운데에서 냉이를 발견하는 쾌거를 얻기도 했답니다. 진짜 신통방통한 절기력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리고 저랑 같이 절기를 담당하고 있는 동철과 수다를 떨다가 ‘雨水의 水가 水生木을 하여 봄의 木기운을 부른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팔짝팔짝 뛰었습니다.^^;;; 봄의 개구리처럼 말이죠.ㅋㅋㅋ 절기의 이치를 온몸으로 깨닫고 있네요.
그런데 사실 우수雨水는 이렇게 마냥 희망차고 ‘샤방샤방’한 절기만은 아닙니다. 건강에 매우 유의해야하는 기간이에요. 택시 기사 아저씨들이 말씀하시기를 이때 교통사고가 많이 난다고 하더라구요. 또 친구의 할머니도 뇌경색으로 쓰러지시기도 하셨구요. 게다가 함께 공부하는 ‘장금언니’도 우수雨水에 산 절벽에서 구르는 대형 참사를 겪었답니다.ㅠㅠ 이름 그대로 우수憂愁에 빠지게 되는군요. 본문에 있듯이 봄은 음陰에서 양陽으로 정靜에서 동動으로 기운이 바뀌는 시점이기 때문에 긴장이 풀려 이 때 사건, 사고가 많이 난다고 합니다. 그러니 다들 조심조심 팔짝팔짝 뛰는 경칩 보내세요.^^
─ by 송혜경
※ 임진년 경칩 절입시간은 3월 5일 13시 15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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