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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편집자 k의 드라마 극장

[편집자 k의 드라마극장] 드라마 속 그 책 다시보기

by 북드라망 2014. 8. 13.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 다들 읽어 보셨나요? 네, 저도 안 읽었습니다(하지만 전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를 여러 번 읽었지요^^). 좌우간 1976년에 한국에 처음 번역되었던 이 책이 무려 15년 후인 1991년 갑자기 폭발적인 인기를 얻습니다. 바로 당시 인기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에 이 책이 간접적으로(?) 출연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풋풋의 초절정을 달렸던, 현 동탄의 왕언니 염정아 언니와 이때까지만 해도 청춘스타였던 박철 아저씨가 이 드라마에서 썸남&썸녀를 연기했더랬습니다. 썸녀가 썸남에게 『사랑의 기술』 읽어 봤냐고 하자, 썸남의 "나도 영화로 봤지, 테크닉…" 하는 소리에 『사랑의 기술』도 읽어 보지 못한 애하고는 사귈 수 없다며 싸늘하게 돌아서는 염정아 언니, 그리고 다음날부터 썸을 꿈꾸던 젊은이들이 너도 나도 『사랑의 기술』을 찾아서 한달반 만에 5만 5천부가 팔렸다는 진기록이 세워졌다고 합니다. 


『사랑의 기술』 읽으면 다 이런 사람들이랑 썸 탈 수 있겠다고 생각했겠지요?:;;


그래서, 오늘은 이렇게 책을 출연시켜서(?) 대박을 치게 한 착한(?) 드라마들을 소개해드려 볼까 하였는데, 저희 블로그에 들러주시는 분들이라면 그런 드라마가 꽤 많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계실 테지요. 당장 올해 초 한반도 이남은 물론이고 중국 대륙에까지 열풍을 일으킨 <별에서 온 그대> 때문에 중국에서 『구운몽』(도민준이 자기 인생 최고의 책이라고 추켜세웠었지요^^;)이 동이 나기도 했었구요. 작년 이맘때쯤에는 <주군의 태양>에 등장했던 『폭풍우 치는 밤에』라는 그림책이 큰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드라마에 나와서 많이 팔린 책은 기사를 검색해 보시는 것이 훨씬 더 정확하고 빠르게, 아실 수 있을 겁니다요. 해서, 저는 사람들이 알아볼 틈도 없이 훅 지나가 버린 (그러나 드라마에서의 여운은 오래갔습니다!) 책이 나왔던 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를 골랐습니다. 


단언컨대, <꽃보다 아름다워>는 고두심 아줌마의 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는 요즘 방영되고 있는 <괜찮아 사랑이야>의 노희경 작가의 2004년 작품입니다. KBS에서 방영됐었고, "노희경 드라마답지 않다"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던 드라마였습니다. 여느 노희경 드라마와 달리 20%대의 시청률을 유지할 정도로 시청률이 높았기 때문이었습지요. 주인공 고두심 아줌마의 가족은 나름 ''가족입니다. 일단 기본이 딸 둘에 아들 둘(이었지만 큰아들은 사고로 죽은 것으로 나옵니다)로 자식도 많은 편이고, 큰딸 미옥이가 이혼해서 딸을 데려와서 살기 때문에 손주도 있습니다. 거기에 자신을 엄마처럼 따르는 시누이와 그 식구들은 한 동네 살며 수시로 왔다 갔다 하고, 시누의 시어머니는 치매에 걸렸지만 고두심 아줌마의 가장 친한 친구입니다. 결정적으로 이 집이 '대'가족이 된 것은 고두심 아줌마의 남편 주현 아저씨가 바깥에 차린 살림 때문인데요. 큰딸보다 쪼끔 나이가 더 많은, 한마디로 딸뻘의 여자와 사는데 (아니면 살아서 그런지?) 금슬은 또 어찌나 좋은지 그 사이에 낼모레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한마디로 '진정한' 가족 드라마입니다. 


좌우간 자식이 많으니 당연히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둘째 아들인 재식이는 나이트클럽에서 친구들과 시비가 붙는 바람에 제 명대로 살지를 못 했고, 첫째 미옥이는 씩씩하지만 때로는 욱하는 성질로 엄마의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막내 재수는 형을 죽인 범인을 잡겠다며, 대학도 안 가고 나이트클럽 삐끼를 하고 돌아다닙니다. 그리고 제일 똑 부러지고, 성공하여 온 집안의 기대를 받고 있으나 이혼남 인철과 만나겠다며 온 집안 식구들을 멘붕에 빠뜨린 셋째 미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인철과 미수에게는 사랑을 끝내야 할 시절인연이 찾아오고, 아직 서로에 대한 마음이 채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책이 등장합니다.  


사실, 이런 가족 드라마에서 책이 등장할 때는 거의 종교서적이지요. 엄마나 할머니들이 심란할 때마다 펼치는 성경 아니면 불경. 그러나 인철과 미수의 사이가 사이이니만큼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안나 가발다, 문학세계사)라는 연애소설입니다.


인철 : 내가 좋아하는 책 한 구절 읽어줄까?

미수 : (누워서 인철을 바라보며) 뭔데?

인철 : (옆에 있는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라는 책을 들고) 이건데… 

         여기에 한 여자가 한 남자를 사랑하면서… 그 사람하고 같이 하고 싶은 일들을 편지로 쓴 대목이 있어. 

         내가 이 책 읽고 나도 사랑하는 사람하고 했으면 하는 걸 밑줄 쳐 놓은 게 있는데, 들어봐.

미수 : (일어나 무릎세우고, 인철을 보는)

인철 : (책 펴서 읽어주는, 차분하게)

         그와 소풍가기, 낚시로 잡은 물고기 구워 먹기, 수영하기, 춤추기, 지하철 타기, 빨래 널기, 

      시장 보러 가기, 바비큐 해먹기, 동시에 양치질하기, 그의 팬티 사주기, 바보처럼 굴기, 

      재잘거리기, 심심하다고 투정 부리기, 변덕 부리기, 야한 농담 주고 받기, 공연히 그 사람의 

      이름을 불러보기, 게임하면서 속임수 쓰기, 빗속에서 노래부르기, 술에 취하기, 

      그에게 모든 것을 사실대로 말하고 나서 때론 거짓말이 약이 된다는 걸 새삼 깨닫기, 

      쓰레기통 비우기, 세월이 흘러도 그가 여전히 날 사랑하는지 자꾸자꾸 물어보기…(하고, 책 덮는)



지금 바로 할 수 있는, 동시에 양치질 하기!


사실 저는 외쿡인의 이름이 많이 나오는 소설을 잘 못 보는데요(낯설어요;;), 당시 이 드라마에 빠져 있었기에 곧장 빌려다가(;;) 보았습니다. 주인공은 중년 여성 클로에, 어린 딸이 둘 있습니다. 그리고 <꽃보다 아름다워>의 고두심 엄마처럼 어느 날 갑자기 날벼락을 맞게 됩니다. 남편이 다른 여자가 생겼다며 집을 나가겠다는 것. 이 여자는 그 충격으로 아이를 데리고 시아버지가 있는 시골로 갑니다. 아, 문화충격! 남편이 바람이 났는데 친정엄마나 언니를 찾아가는 게 아니라 시아버지한테 가다니! 한국(드라마) 같으면 일단 시댁에 발부터 끊어버릴 텐데 말입니다. 뭐하러 가나요, 오죽이나 못났으면 서방을 밖으로 돌게 하느냐고 본전도 못 찾을 것이 뻔한데 말입니다. 그리고 저에게 계속해서 이어지는 충격! 시아버지는 며느리를 위로하면서 자신이 젊은 날 저지른 '불륜'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한국(드라마)에서는 며느리에게 굳이 본인 치부를 드러내지도 않을뿐더러 발각(?)돼 봤자 '그 아비에 그 아들'이라고 비난받기 딱 좋은 상황 아닙니까;;; 인철이가 미수에게 읽어준 부분은 시아버지의 연인이 시아버지에게 썼던 편지의 일부입니다. 실제로는 엄청 많습니다(;;). 판형이 크지 않았던 걸로 기억하는데, 저렇게 같이하고 싶은 일 리스트로 몇 페이지나 넘어갔던 기억이 나는 듯도 하네요. 그리고 좋은 말씀, 다 맞는 말씀인데 역시나 상대가 시아버지이기에 계속해서 쇼킹한 아버님의 말씀, 



"내가 만약 너를 사랑하는 남자라면, 나는 네 멱살이라도 잡고 너를 환한 세상으로 끌고 나올 거야. 네 손에는 무언가가 있고 너 자신도 그걸 알고 있어. 그걸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 너의 타고난 재주를 받아들이라고. 네 능력에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지란 말이다. 나 같으면 너에게 다른 일거리를 제안하면서 말할 거야. '자아, 이제 당신 차례야. 당신 마음껏 해봐, 클로에. 당신 안에 있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줘.' 하고 말이야"

"그러다가 제 안에 아무것도 없으면요?"

"까짓 거, 그 사실을 깨닫는 기회로 생각하면 그만이지. 그러니, 얘야, 이제 하고 싶지 않은 일 억지로 하지 말고, 그만 올라와. 네가 계속 그러고 있으니까 내 마음이 아파."




"나는 조금 괴롭다고 해서 모든 걸 망쳐버리는 사람들을 많이 보아 왔어. 헤어지는 게 괴롭다고 해서 계속 함께 살다가 평생을 망쳐 버리는 사람들 말이야 …… 그들은 '우리는 꿋꿋하게 잘 버텨 왔어'라고 말하고 싶겠지. 하지만 그렇게 잘 버텨 온 대가가 뭐지? 아쉬움, 회한, 상처, 비겁자의 낙인이야. 그런 것들은 아물지 않아."


극중에는 나오지 않지만, 미수 역시 이 소설을 읽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미수는 인철에게 자기 오빠 (재식이와 시비가 붙었던 친구가 바로 인철이었습니다) 일에 대해 더 이상 죄책감을 갖지 말라고, 그건 사고였다고, 그러니 다시 볼 땐 처음 봤을 때처럼 어둡지 않길 바란다고, 본인 스스로 행복해지라고 빌어 주며 공항의 이별을 합니다. 이렇게 해서 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의 가장 굵직한 멜로 라인이 마무리됩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인철이와 미수보다 더 절절한 러브라인은 고두심 엄마와 장씨 아저씨의 그것! 젊었을 때부터 엄마를 좋아했지만 주변을 맴돌기만 했던 장씨 아저씨(역은 장용 아저씨였는데 <목욕탕집 남자들>에서는 무덤덤한 부부였던 이분들이 이렇게 애절한 감정연기를 하실 줄이야!)가 "영자야, 장기 주지 마! 그건 안 된다. 영자야, 전화해! 니가 오라면 오빠 갈 거니까, 전화해, 꼭!" 이렇게 울부짖으셨을 때, 정말이지 너무 짠해서 가슴이 다 너덜거리는 기분이었습니다(당시만 해도 저는 20대 초반;;; 지금보다는 ‘그래도’ 감상적이었다구요, 호홋!)


아무튼 쓰다 보니 드라마도 다시 보고 싶고, 책도 왠지 다시 읽고 싶습니다. 저도 이제 서울 생활하면서 개화가 제법 되었으니, 적어도 문화충격에서만큼은 벗어나서 책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언제나처럼 저 혼자 북 치고 장구 치고 하였지만 어쨌거나 <꽃보다 아름다워>는 죽기 전에 꼭 한 번 봐야 할 드라마 중 하나라고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습니다. 전 <거짓말>이 노희경 작가의 최고작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이가 들수록 <꽃보다 아름다워>가 최고라는 생각이 드네요(아, <기적>이라는 특집극도요!). 한 회, 한 회마다 쏟아졌던 명대사, 명장면들의 백분의 일도 전해드리지 못했지만 오늘은 이만 마칩니다! 다음에 또 기회가 있겠죠?^^ 


글_편집자 k

나는 그녀를 사랑했네 - 10점
안나 가발다 지음, 이세욱 옮김/문학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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