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 같은 시간, 철학 PT
이여민(북드라망 철학PT 참가자)
철학 PT! 어느 날 아침 메일에서 확인한 눈에 번쩍 띄는 공지였다. ‘북드라망’에서 일요일 아침에 사유 근력을 기르는 기초로 철학을 공부한다는 것이다. 마침, 나는 딸에게서 “엄마는 10년이나 인문학 공부했지만, 글에 본인의 사유가 부족하다.”라는 따끔한 지적을 받은 터였다. 그래서인지 ‘사유 근력을 키운다.’라는 문구는 철학 PT가 ‘나를 위한 강좌’라는 착각에 빠지게 했다. 그래서 메일에서 공지를 확인하자마자 혹시라도 마감되는 불운을 피하려고 바로 신청하는 순발력을 발휘했다. 그러고 나서 다시 꼼꼼히 안내 글을 읽어보니 인문학 공부 초보자들을 환영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에 10년이나 인문학을 공부한 내가 누군가의 첫 공부 기회를 뺏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잠시 주춤했다. 그러나 나의 공부 역사를 되돌아보니 나 또한 서양 철학에 있어서는 초보라는 생각이 들었고, 덕분에 첫 수업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이렇게 시작한 철학 PT 수업은 웃음과 왁자지껄, 침묵이 간간이 흐르는 즐거운 시간으로 매주 채워졌다. 일단 강의를 맡은 정승연 선생님의 이력이 흥미로웠다. 로커를 꿈꾸던 청년이 서울에 입성하려고 택한 철학과가 평생의 공부가 되었으니 말이다. 철학을 사랑하는 선생님의 에너지는 듣고 있는 우리에게도 전달되어 8주 수업 동안 탈락자가 거의 없었다.
첫 시간은 선생님이 쓰신 『세미나 책』으로 시작했다. 선생님의 철학 공부 이유가 강좌의 도입부였다. 철학 공부는 세계와 마주친 나를 해석하는 다양한 사유의 길을 여는 것이다. 공부를 통해 나와 세계에 대한 해석이 많아질수록 나를 변화시킬 가능성이 커진다고 강조했다. 강의를 듣고 있으니 ‘철학은 고리타분하다’라는 이미지가 벗겨졌다. 오히려 철학은 항상 내 삶에서 생생하게 작동하고 있었는데 단지 내가 몰랐을 뿐이었다. 몰랐던 것을 새롭게 알아가는 수업은 아주 재미있었다. 또한, 선생님은 공부를 통해 나의 변환이 일어나려면 양적으로 많이 읽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의 시간 이야기를 종합하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상에 시간을 더 많이 투자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면 나에 대해, 세계에 대해 호기심이 생기고, 질문이 만들어지면 결국 계속 새로운 텍스트를 읽고 공부하게 된다는 말이니 이보다 더 좋은 삶의 길이 있을까 싶었다.
본격적으로 시작한 『서양 철학사』 공부는 질문으로 채워졌다. 선생님이 정해 준 분량을 매주 읽고 생긴 나의 질문을 카페에 올리면 그 질문을 중심으로 선생님이 강의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한주의 수업이 끝난 뒤, 2명이 수업 후기를 올리면 나머지 학우들은 그 글에 댓글을 달아야 했다. 매주 꾸준히 읽고 쓰기가 절묘하게 이루어진 강좌였다.
내용으로 훑어보면, 서양 철학사이니만큼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으로부터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를 거쳐 플라톤으로 이어지는 계보가 어떻게 연결되었는지를 배웠다. 전쟁이나 이민족들과의 교역과 같은 사회적 조건이 사람들에게 압박을 주면, 이전과 다른 방향으로 사유하게 하는 것이 곧 철학을 탄생하게 하는 조건이라는 말에 고개가 끄떡였다. 딜레마에 빠졌을 때 하는 사유가 그 사람의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그 딜레마가 사유를 성장시키기도 한다니! 사회를 살아가는 개개인 중 누군가도 딜레마적 사회적 현상이나 당혹스러운 개인사를 경험하면서 하는 고민이 철학적 사유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인생의 길섶 곳곳에 선물이 숨겨져 있다는 박노해의 시가 생각나는 순간이었다. 한편, 상업이 발달하고 이익을 추구하는 도시에서 철학적 사고가 더 발전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들뢰즈는 ‘철학은 도시에서 하는 것'이라고 했다고 알려 주셨다.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생기는 문제들이 곧 철학을 발생시켰다는 뜻이다. 그리고 사회가 변하니 그 문제를 바라보는 시선도 변하고, 이는 앞선 전제들을 깨면서 새로운 철학이 계속 나타난 것이었다. 이렇게 시대마다 일시적으로 정해진 ‘옳고 그름’의 기준이 있다는 것은 맹목적으로 따라야 할 ‘옳고 그름’이 없다는 뜻이다. 변화 가능성에 대한 철학적 사유를 배우는 것은 우리를 얽매인 생각에서 풀려나서 자유롭게 하는 즐거움을 주었다.
한편으론 내가 어떤 전제에 묶여서 괴로운지도 철학 수업을 통해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소크라테스 편을 읽으면서 ‘옳은 일을 하면 행복하다.’라는 소크라테스의 전제에 매료되어 ‘옳음’을 추구하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았다. 이 경우 옳은 것을 상정하게 되면 옳지 않은 것을 제거하고 싶어 한다. 결국 이분법에 빠지는 것이다.
이와 다른 시각으로 소크라테스 이전의 자연 철학자인 아낙시만드로스는 ‘아페이론(apeiron)’을 말했다. ‘아페이론’이란 ‘규정되지 않은 것, 한정되지 않은 것’이라는 뜻이다. 예를 들어 점토(무규정)로 항아리(규정)를 만들 듯이 완전 무규정 상태는 규정을 계속 생산한다. 자연은 무규정이므로 계속 새로운 규정을 생산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하나의 규정에 묶이는 사고를 하면 어떻게 될까? ‘내가 소싯적에 oo였어.’하는 꼰대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규정에서 무규정으로 향하는 역순도 가능하다. 항아리가 깨지고 흙으로 돌아가듯이 말이다. 돌고 돈다는 세계관! 아페이론을 들으면서 우리가 하는 공부는 다양한 규정이 있음을 배우고 역으로 이 규정의 근원도 추적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째 읽은 책은 『소크라테스의 변론』이었다. 마침, 한국에는 대통령 담화 내용에 실망하는 소리가 들리고, 미국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었다는 우울한(?) 소식이 전해진 뒤 이루어진 수업 시간이었다. 선생님은 암울해 보이는 때가 바로 ‘위트와 농담이 필요한 시기’라고 했다. 지금 읽는 책에서도 법정에 선 소크라테스는 자기를 고발하는 자들 앞에서, 죽음을 앞두고서도 유머를 구사하고 평화로웠다. 2024년 현재와 2500년 전 소크라테스의 현장이 절묘하게 겹친 느낌이었다. 소크라테스는 ‘부당하게 죽는 것은 나빠.’로부터 ‘너는 왜 죽음이 두려운데? 죽음을 알아?’라는 질문을 하게 한다. 죽음에 대해 사유하는 소크라테스와 제자의 대화는 90세 어머니의 말을 생각나게 했다. “잘 죽는 것은 잘 사는 것인 것 같아.” 매일 죽음을 생각하고 자식들에게 아침마다 ‘사랑한다.’. ‘고맙다.’하고 안부 톡을 남기는 어머니도 철학자였다.
8주간 책을 읽고 질문하고 강의를 듣는 철학 PT 시간은 다양한 질문들이 이 세상에서 춤추고 있음을 알게 한 시간이었다. ‘우주 만물을 이루는 기본 요소는 무엇인가?’, ‘내 생각, 내 느낌이라 여기는 것이 어떻게 생성되었는가?’, ‘지금 이 사회는 왜 이렇게 흘러가는가?’, ‘유한한 삶 속에서 지혜롭게 살려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가?’ 이렇게 질문이 일어나면 인간은 탐구하고, 그 질문을 풀면서 알게 된 것들을 글로 쓰면서 철학이 발달한 것이다. 나는 수업을 들으면서 관성적으로 하던 것에 조금씩 질문이 생기고, 이게 정말 나와 남에게 좋은 일인지 따져 묻는 순간이 들뢰즈가 말하는 탈영토화를 실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탈영토화하는 삶의 태도는 변화무쌍한 우주의 흐름을 타는 서핑과도 같을 것이다. 철학 PT 후기를 쓰면서 내가 고집하던 전제를 도장 깨기를 하듯 부수면서 점점 자유로워지는 상상의 나래를 폈다. 8주간의 일요일 아침은 명랑하고 까칠했던 정승연 선생님과 친구들이 같이 웃고 떠들며 함께 공부하는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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