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생과 브리콜라주
현대인의 ‘플러스’ 건강법
언젠가부터 주변에서 건강하던 지인들이 ‘여기가 아프다, 저기가 아프다‘는 말들을 하기 시작했다. 그런 지인들 중에는 그 이전부터도 건강에 관심이 많았고 일상에서도 건강을 위해 더 많이 애를 쓰던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몸이 안 좋은 경우들이 생기면 좀 의외라는 생각이 든다.
그 중 한 사람은 건강한 게 돈 버는 길이고, 건강하려면 잘 먹어야 한다는 주의다. 재료는 항상 최상의 것으로 마련한다. 유기농은 물론이고 특별히 건강한 먹을거리라고 하면 어디든 멀다 않고 찾아간다. 그렇게 마련한 재료들을 아낌없이 쓴다. 물김치 하나를 담가도 거기에 들어가는 재료 각각도 최상급일 뿐 아니라 가짓수도 정말 많다. 원재료만으로 맛깔나게 하려니 갖가지 색깔의 온갖 재료들이 동원된다. 그러면 정말 맛도 있다. 라면을 끓일 때도 전복을 넣는다. 그런데 그 사람이 몇 년 전 심장에 약간의 이상을 느꼈다. 대동맥 속으로 금속 철망 모양의 스텐트를 넣어서 막힌 심장 혈관을 뚫는 이른바 스텐트 시술을 받았다. 본인도 놀라고 우리도 다 놀랐다.
또 한 사람은 하루에 먹는 영양제와 기능성 건강식품의 양과 가짓수가 어마어마하다. 거기다가 가끔은 몸에 좋다는 한약까지 주문해서 먹는다. 그분을 보고 있노라면 ‘몸의 생리시스템이 저걸 다 감당할 수 있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더군다나 몸에 좋다는 걸 다 찾아먹는데도 그 지인은 피곤하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래서 피곤을 풀어줄 영양제와 좋은 약을 또 찾는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자궁에 용종이 생겨서 그걸 떼어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두 사람이 건강을 생각하는 태도가 대부분의 현대인들이 건강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의 현주소다. 어디가 안 좋으면 바로 무언가 부족하구나 라고 해석한다. 이렇듯 결핍을 전제로 한 해석이 각종 건강정보, 넘쳐나는 건강 관련 상품과 만나서 저절로 무얼 먹을까 하는 쪽으로 이어진다. 나 역시 류머티즘으로 30년이나 명약을 찾아다닌 이후, 갑상선기능항진증을 만났을 때도 여전히 같은 생각을 했다. 뭘 먹어야 나을까. 그런데 내 경험으로도 그렇고 주변 사람들을 봐도 그렇고, 그저 몸에 좋다는 음식과 기능성 식품들을 먹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동의보감』의 ‘마이너스’ 건강법
『동의보감』에 행여 내가 모르는 비법이 있는가 하는 기대를 가지고 공부를 시작했다. 먼저 태을진인이라는 분이 일곱 가지 금해야 할 것을 제시해 놓았다. 말을 많이 하지 말아서 정기(正氣)를 보양하고, 색욕을 경계해서 정기(精氣)를 보양하고, 성내지 말아서 간기(肝氣)를 보양하고, 사색과 걱정을 적게 해서 심기(心氣)를 보양하고, 침을 삼켜 오장의 기운을 보양하란다. 가지고 있는 기운[元氣]을 보존하는 것이 건강하게 사는 첫걸음이라는 뜻이다. 먹으라는 이야기는 그저 담백하게, 그리고 뭐든 맛있게 먹으라는 말뿐이다.
이어지는 포박자의 경구는 한 술 더 뜬다. 뭘 먹으라는 말은 아예 없다. 줄여야 할 것들만 열거하고 있다. 생각, 걱정, 욕심, 일, 말, 근심, 노여움, 싫어하는 것, 좋아하는 것, 즐거움, 기쁨, 웃음 등. 그는 섭생, 즉 건강관리를 잘 해서 장수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이 12가지를 줄여야 한다고 단언한다. 웃음, 즐거움, 기쁨, 좋아하는 것까지도 줄이라는 데서는 아예 죽으라는 건가 싶다.
혹시나 다른 방법이 있나 해서 더 읽어 보니, 『황제내경』을 인용한 구절이 눈에 들어온다. 황제가 기백에게 ‘옛날 사람들은 나이가 100세가 되어도 몸이 가벼웠다고 하는데 요즘 사람들은 나이가 50세만 되어도 동작이 굼뜨니 이게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를 묻는다. 기백 역시 태을진인이나 포박자와 같은 말을 한다. 옛날 사람들은 음식을 절제했고, 생활에 일정한 규칙이 있었으며, 힘을 함부로 낭비하지 않았다고. 이 세 사람이 공통으로 하는 말은 한 마디로 몸이 안 좋으면 뭘 더 먹어서 보탤 생각 말고 쓸데없는 기의 낭비를 막는 것부터 하라는 것이다.
그 즈음 나도 갑상선 기능항진증이 재발해서 고생을 하던 차라 이 대목을 적용해 보기로 했다. 에너지 소모를 줄이는 쪽으로 일상을 재배치했다. 가장 먼저 말을 줄였다. 인터넷 전화만 열어놓고 핸드폰과 집전화 사용을 중단했다. 그리고 날마다 산책을 하면서 근력 유지와 컨디션 조절을 했다. 식사를 규칙적으로 하고 적은 양을 꼭꼭 씹어서 천천히 먹었다. 학생들 독서토론 수업도 더 이상 늘이지 않았다. 일찍 잠자리에 들고 충분히 잤다. 한 달쯤 지나자 몸에 기운이 차오른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렇게 갑상선기능항진증은 서서히 회복되었다.
그런데 몸이 좀 나아지면서 나도 모르게 예전의 습관대로 돌아가 있는 게 아닌가. 취침 시간이 늦어지고, 글쓰기 과제를 몰아서 하고, 이것저것 장을 봐서 식사 준비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투여하는 등등. 그러던 중에 감정을 심하게 쓰면서 전에 없던 방광염이 생겨났고, 그 이후 재발하는 횟수가 잦아졌다. 다시 방광염에 대처하는 처방을 익히기 시작했고 어느 정도 스스로 관리가 가능했다. 그런데 이렇게 가다가는 문제가 생길 때마다 건건이 해결해야 하는 수밖에는 길이 없을 것 같았다. 다른 접근이 필요했다. ‘마이너스’ 건강법을 생활 전반에 적용할 수 있어야만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고 그래야만 내 삶에도 힘을 받을 것 같았다.
패턴을 바꿔라_브리콜라주 요리법
가장 먼저 시도한 게 먹는 습관을 바꾸는 거였다. 수년 전부터 먹는 것에 너무 시간과 에너지를 투여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때는 사실 그 지적이 흔쾌히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건강이 안 좋으니 잘 먹어야 하고 그러려면 시간과 노력을 들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손 관절 변형이 더 심해지면서 조리하는 데 드는 시간과 에너지가 부담스러워졌다. 그러다 보니 먹어서 기운을 북돋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먹을 걸 장만하는 데 드는 에너지를 줄이는 것도 중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몇 번 시도하다가 도루묵이 되어버린 냉장고 털기를 이참에 다시 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냉장고에 있는 재료가 다 동이 날 때까지 장을 보지 않기로 했다. 처음 며칠, 여러 가지 재료가 있을 때는 순조롭게 진행이 되었다. 냉장고 속 재료가 점차 줄어들면서 다시 그 습관의 벽에 부딪쳤다. 어떤 재료를 보면 즐겨먹던, 또는 먹고 싶은 어떤 음식이 생각나고, 그걸 만들기 위해서는 다른 재료가 꼭 필요하다. 그러면 나도 모르게 장을 보러 가고, 그러다 보면 먹고 싶은 음식들이 줄줄이 생각나고 저절로 손이 간다. 어느새 냉장고는 도루묵이 되고 만다.
조리패턴 자체를 바꾸지 않고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다시 떠오른 장면이 2016년 뉴욕에 한 달 정도 체류하면서 경험한 브리콜라주 요리법이었다. 조리시간을 줄이고, 장보는 시간을 줄여서 에너지 소모와 시간 낭비를 막으려면 다른 길이 없었다. 냉장고에 여러 가지 재료를 넣지 않는다. 음식을 오래두지 않는다. 이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는 일은 결국 조리 방법 자체를 바꾸지 않고는 불가능했다. 이는 식습관 전체를 바꾸는 일이고 음식에 대한 태도 자체를 바꾸는 일이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는 지금까지 탐하던 미각을 포기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걸 그저 좀 덜 먹고 장을 덜 보면 되겠지 하는 안이한 마음으로 시작을 하니 중도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패턴은 그대로 둔 채 표면만 바꾸려는 어리석은 짓을 한 것이다. 그러니 번번이 도루묵이 될 수밖에.
배치를 바꿔라_아침마다 글쓰기
글쓰기 습관도 그 중 하나다. 늘 써야 할 글이 있다 보니 하루 일과가 끝난 조용한 저녁 시간에 글쓰기를 했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취침 시간을 넘기기 일쑤였다. 내일은 내일의 일이 있으니, 잠자기 전에 어느 정도 과제를 해 놓아야 마음 편히 잘 수 있겠다는 생각이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쉽게 어그러뜨리게 했다. 그러다 보면 때로는 뜻하지 않은 일들이 끼어들어 밤 늦게까지 통화를 하거나 고민을 하느라 하기로 한 글을 쓰지 못하고 잠자리에 드는 날이 많다. 그러다 마감이 임박하면 시간에 쫓기기 마련이다. 다음부터는 절대 그러지 말아야지 하지만 그런 반성 또한 반복된다.
그래서 올 3월부터 과감하게^^ 글 쓰는 시간을 아침으로 바꿨다. 무조건 아침 7시-8시 30분까지는 글을 쓰기로 했다. 그리고 ‘글쓰기로 수련하기’라는 감이당의 모토를 명심하기로 했다. 그런 후부터 글쓰기의 부담이 줄어들었다. 일단 어떤 새로운 사건이 끼어들기 전 조용히 글을 쓸 수 있어서 좋았다. 하루에 쓸 분량을 쓰고 연구실로 나가면 어떤 일이 생겨도 마음에 부담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수련하기라는 자세로 글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으니 잘 써야 한다는 자의식에 덜 시달린다. 그런 마음이 올라와도 곧바로 ‘나는 지금 수련 중이다’를 되뇌이며 노트북을 켠다. 그리고 뭐든 쓴다. 어제 읽은 책에서 이 글과 연결될 것 같은 내용을 옮겨 놓을 때도 있고, 생각나는 사례가 있으면 그걸 적어 놓기도 한다. 그렇게 몇 덩어리를 여기 저기 적어 놓고 나면 얼추 얼개가 잡히고 글이 만들어진다.
그렇게 2주일 동안 한 편의 글을 완성해서 MVQ에 넘긴다. 날마다 일정한 시간에, 그것도 내가 일어나기 힘들어하던 아침 시간에 글을 쓰고 있다는 그 자체가 큰 힘이 된다. 그것이 주는 뿌듯함이 하루 일과에 또 다른 힘을 준다. 물론 아직도 예전의 습이 남아서 마감 시간에 맞춰서 글을 넘긴다는 문제는 남아 있다. 앞으로는 이 습관을 바꾸는 게 과제다.
* * *
결국 양생이라는 것은 뭔가 좋은 걸 먹거나 새로운 것을 더하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줄이자고 마음먹는 것이 또 능사는 아니다. 지금 내가 가진 것들, 처한 조건, 상황을 다시 조합하고 배열해서 나의 생명력을 북돋는 데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느냐 하는 게 관건이다. 손에 닿는 어떤 재료들이라도 창조적으로 활용하는 감각 또는 능력, 즉 양생에도 브리콜라주가 필요하다.
글_복희씨(감이당)
'복희씨가 들려주는 동의보감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복희씨가들려주는동의보감이야기] 정(精) 부족 인생의 고달픔이여~ (0) | 2022.11.22 |
---|---|
[복희씨가들려주는동의보감이야기] 양생의 달인, ‘그랑’ (1) | 2022.11.14 |
[복희씨가들려주는동의보감이야기] “바보야, 문제는 리듬이었어!” (0) | 2022.11.03 |
[복희씨가들려주는동의보감이야기] 병이 약이다 (0) | 2022.09.27 |
[복희씨가 들려주는 동의보감 이야기] ‘명의(名醫)’는 반쪽짜리 의사다? (0) | 2022.09.14 |
[복희씨가 들려주는 동의보감 이야기] 할머니와 어머니의 장수(長壽) (0) | 2022.08.2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