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둥 속에서 웃는 법
重雷 震 ䷲
震, 亨. 震來虩虩, 笑言啞啞. 震驚百里, 不喪匕鬯
진괘는 형통하다. 우레가 진동할 때 돌아보고 두려워하면 훗날에 웃고 말하며 즐거워할 때가 있으리라. 우레가 진동하여 백 리를 놀라게 할 때, 큰 숟가락과 울창주를 잃지 말아야 한다.
初九, 震來虩虩, 後笑言啞啞, 吉
초구효, 우레가 진동할 때 돌아보고 두려워해야 훗날 웃고 말하는 소리가 즐거울 것이니 길하다.
六二, 震來, 厲, 億喪貝, 躋于九陵. 勿逐, 七日得.
육이효, 우레가 맹렬하게 진동하여 위태로운 것이라 재물을 잃을 것을 헤아려서 높은 언덕에 올라간다. 잃어버린 것을 쫓아가지 않으면 7일이 지나서 얻으리라.
六三, 震蘇蘇, 震行, 无眚.
육삼효, 우레가 진동하여 정신이 아득해지니 놀라고 두려워하면서 행한다면 과실이 없으리라.
九四, 震遂泥.
구사효, 진동하여 끝내 진창에 빠져 버렸다.
六五, 震往來, 厲, 億, 无喪有事.
육오효, 진동하여 위로 가거나 아래로 내려가는 것 모두 위태로우니, 현실을 헤아려서 그 자리에서 해야 할 일을 잃지 말아야 한다.
上六, 震索索, 視矍矍, 征凶. 震不于其躬, 于其隣, 无咎, 婚媾有言.
상육효, 우레가 진동하여 넋이 나가 두리번거리는 것이니, 나아가면 흉하다. 우레가 자신에게 떨어지지 않고 그 이웃에 떨어지면 허물이 없을 것이지만, 혼인한 짝은 원망하는 말을 할 것이다.
작년 초 한 해 동안 공부할 텍스트로 『에티카』를 선택했다. 『에티카』라는 제목이 참 멋져 보여서였다. 주변에선 『에티카』를 고른 나의 무모한 행동에 대해 우려의 시선이 있었다. 텍스트를 읽다가 알았다. 그 우려가 무엇이었는지. 글자만 읽을 수 있었지 도무지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었다. 텍스트를 바꿀까, 바꾼다고 뭐가 달라지나 어렵긴 마찬가지지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중 그 외계어 같은 글 속에 흥미롭고도 익숙한 단어를 발견했다. ‘신’. 스피노자가 말하는 신을 만나는 순간 나에게 강력한 우레가 진동했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인간은 자신이 못하는 것을, 다 하는 완전한 존재로, 자신의 목적을 위해 신을 상상해서 만들었다. 신이란 초월적이고 인격적 대상이 아닌 끊임없이 변화하고 생성하는 자연법칙이었다. 이게 무슨 소리? 스피노자는 내가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신과는 전혀 다른 신을 말하고 있었다. 이 새로운 앎의 진동은 나를 흔들었다. 이런 나에게 진괘가 눈에 들어온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진(震)괘는 우레가 겹쳐져 있는 괘다. 우레란 천둥번개를 말한다. 천둥은 천동(天動)이 변한 말인데 하늘이 흔들리는 소리가 천둥이다. 이 우레는 땅의 움직임(地動)과 짝이다. 그런 면에서 우레가 두 개나 겹쳐있는 진괘는 하늘과 땅의 소리가 만나 내는 천지를 뒤흔드는 가장 큰 소리이며 진동이다. 그래서 진괘는 맹렬하게 천지를 흔드는 모습이 있고 이런 진동은 떨면서 두려워하는 뜻이 있다. 괘상을 보면 하나의 양이 두 음 아래에서 생겨난다. 아래에서 생긴 양은 음을 뚫고 나아가며 만물을 흔들어 깨우고 세상을 밝게 비춘다. 진괘가 형통한 이유다.(震, 亨) 이 음이란 나에게 새겨진 습이며 전제이기도 하다. 길흉이 신을 믿든 믿지 않든, 모두에게 일어난다는 걸 알면서도 나는 여전히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새로운 사유를 하는 건 힘든 일이고 그냥 습관대로 사는 게 편해서였다. 텍스트를 읽을 때도, 신을 자연법칙으로 바꿔서 읽으면 이해가 되다가도, 신으로 읽으면 자동으로 하느님 아버지로 연결됐다. 그래서 읽기가 더 어려웠다. 스피노자가 신에 대해 하나하나 풀어주는 정리는 오래된 나의 아버지 하느님을 흔들었다.
나는 이 진동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걸까? 우레를 피해 귀를 막고 어딘가로 숨을 수 있을까? 내 안에서 일어나는 진동이기에 숨을 곳이 없고, 스피노자를 통해 새로운 길을 알게 되었기에 과거로 돌아갈 수도 없다. 진동이 나를 통과하도록 해야 한다. 어떻게? 나는 초효에서 답을 구했다. 초구효는 ‘우레가 진동할 때 돌아보고 두려워해야 훗날 웃고 말하는 소리가 즐거울 것이니 길하다’. (初九, 震來虩虩, 後笑言啞啞, 吉)이다. 초효는 진동을 일으킨 당사자며 진동의 시초다. 양자리에 양이 왔기에 크게 동요하는 상황이지만 양이기에 그것을 뚫고 나갈 힘이 있다. 초구에서는 먼저 우레가 진동할 때 호랑이를 만난 듯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며 두려워하라고 한다. 이때의 두려움은 나를 성찰하고 내 전제를 깨고 나가게 해주니 긍정적인 두려움이다. 예전에 선비들이 우레가 치면 자다가도 일어나 의관을 정제하고, 자신이 법도에 어긋난 일을 하지 않았을까 두려워하며 자신의 마음가짐과 행동을 돌아보듯 말이다. 초효는 그런 후에라야 웃으면서 말할 수 있고, 길 하다고 말한다. 우레는 엄청난 공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상전에서 말하는 것처럼 우레를 통해 두려워하고 자신을 수양한다면(象曰, 洊雷震, 君子以恐懼修省) 고정되고 익숙한 것들을 뚫고 나아가, 새로운 것과 접속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스피노자라는 진동은 나를 두렵게 했다. 내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 신앙생활이 잘못된 방향이 아니었는지 두려워졌다. 이 두려움은 신에 대한 내 마음과 행동을 돌아보게 했다. 한편으로는 스피노자를 통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살고 싶은 가슴 벅찬 전율도 있었다. 나는 신이란 나에게 도움을 주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신에게 도움을 받으려면 신을 믿고 신에게 매달리는 게 중요했다. 신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게 아니라 신의 사랑을 받아 힘들 때 꺼내 쓰려고 열심히 봉사도 하고, 미사도 드리고, 교무금도 냈다. 신은 내가 이용할 대상이자 보험이었다. 또한, 비워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데 나는 내 소유를 늘리기 위해 신을 믿었다. 재테크에 성공하면 그것의 일부를 바치겠으니 기도를 들어달라고 신과 거래하는 마음으로 빌었다. 실패했을 때는 기도가 부족했고, 구체적이지 않아서 그렇게 된 것이기에 주식 종목과 부동산 주소를 꼭 찍어 더 열심히 기도했다. 그러다 성공해서 돈을 벌면 난 그것의 일부를 감사헌금으로 냈다. 실패했으면 안 냈을 것이다. 이런 기도로 번 돈은 아름다운 기부로 둔갑했다. 내 탐욕은 보지 못하고 기부해서 즐거운 나만 있었다. 이런 욕심을 신앙으로 포장했다. 예수의 자기를 비우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은 뒷전이었고 언제나 나를 앞세우고 채우려 했다. 그러면서도 구원받기를 원했다. 뭔가 한참 어긋났다.(震來虩虩)
초효의 상전에서는 우레의 진동으로 자신을 성찰할 수 있다면, 새로운 사유를 통해 법칙을 세울 수 있고, 그 법칙으로 인해, 웃고 말하는 것이 즐겁게 된다고 한다.(笑言啞啞, 後有則也) 법칙이 생기면 법칙을 따라야 하니 삶이 피곤해질 것 같은데 왜 웃을 수 있다고 하는 걸까? 법칙이란 윤리다. 윤리란 도덕의 명령이 아닌 성찰을 통해 자신이 세우는 것이니 기쁨일 수밖에 없다. 스피노자에 따르면 신이란 초월적으로, 이 세계 밖에서 무언가를 조종하는 존재가 아니다. 이 세계는 만물과 신이 분리되지 않고 상호인과로 작동하면서 연결되어 있으며, 이 세계 안에 끊임없이 변화하며 낳고 낳는 모든 것이 신이었다. 스피노자라는 천둥은 나 혼자만 잘 먹고, 잘 살면 되는 것이 아니라 나 또한 신의 일부로서 만물과 연결되어 있으며, 그 타자들과의 연결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것임을 알게 했다. 기도란 내 것을 채워달라고 비는 게 아니라 존재의 연결 속에서 나를 보고 내 욕심을 성찰하는 시간이었다. 이것이 진동을 통해 세운 나의 윤리다.(後有則也)
이 윤리를 통해, 힘든 일을 겪을 때, 나의 이익을 위해, 신에게 기도하는 게 아니라 관계성 속에서 힘든 일이 정말 힘든 일인지, 이익이 정말 좋은 것인지, 그 안에 어떤 욕심이 있는지를 묻게 되었다. 이러한 과정은 스스로 무언가를 뚫고 나가는 것이기에 더디고 어렵지만, 성찰의 기쁨과 웃음을 주었다. 나를 얽어맸던 초월신에 대한 전제에서 해방될수록 마음이 편안해졌다. 모태신앙인 남편과 신에 대해 내가 공부한 것을 나누면서 웃고 떠드는 것도 즐거웠다.(後笑言啞啞) 새해에도 『에티카』라는 천둥을 통해 두렵지만 웃게 되는 길을 계속 가보려고 한다.
글_이경아 (감이당 금요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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