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고미숙,『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적절한 균형을 찾아서

고미숙,『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 적절한 균형을 찾아서


누구나 알고 있듯이, 생의 원동력은 에로스다. 그것은 타자를 향해 질주하는 힘이자 무언가를 낳고자 하는 열망이다. 이를테면 접속과 생성을 향한 생의 의지다. 하여, 누군가와 사랑에 빠질 때, 우리 몸은 질풍노도를 경험한다. 갑자기 무리 속에서 한 사람이 우뚝 솟아오르면서 격렬하게 그를 향해 달려가는 추동력이 생긴다. 어떤 장벽도 그것을 막을 수 없다.

그것은 일종의 카오스다. 방향도 목적도 없는 격정에 가깝다. 짜릿하지만 위태롭다. 그래서 그 방향과 힘에 리듬을 부여하는 또 다른 힘이 함께 작동한다. 앎의 욕망, 로고스가 그것이다. 알고 싶어지는 것이다. 나로 하여금 격정에 휩싸이게 한 존재에 대하여 무한한 호기심이 작동한다. 그의 외모, 몸짓, 걸음걸이, 말투 등 일거수일투족이 다 궁금하다. 나아가 그의 가족과 친구, 일, 그의 운명까지 낱낱이 다 알고 싶다. 그뿐인가, 처음으로 자기 자신이 너무 궁금해진다. 존재 전체를 휘감는 이 열정은 어디로부터 유래하는가? 이 열정은 왜 이토록 존재를 불안하게 하는가? 등등. 한마디로 앎의 본능이 폭발하는 순간이다.

- 고미숙,『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93~94쪽


나는 요즘 체중을 줄이려고 막 과격하게는 아니고, 조금씩 의식적으로 노력한다. 가령 이런 식이다. 평소 한공기 가득 밥을 퍼먹었다면 3/2만 떠서 먹고, 100g씩 삶던 파스타를 80, 90g만 삶거나 하는 식이다. 밤에 넷플릭스를 보면서 먹던 감자칩도 훠얼씬 적게 먹는다. 가끔 6시 이후로는 물만 마시는 날도 있다. 매일 하는 건 어렵지만, 일주일에 한두번쯤은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그런데 그러다보면 갑자기, 어떤 특정한 사건을 계기로 식욕이 폭발할 때가 있다. 엄마와 통화하다가 스트레스를 받는다거나, 그날따라 세 살짜리 딸내미가 특별히, 아주 특별히 말을 더 안 듣는다거나, 운전하다 Dog친구를 만났다거나, 뭐 어쨌든 아드레날린, 코르티졸이 뿜뿜 하는 그런 날 말이다. 그런 날이면 대용량 감자칩 한봉지에 아이스크림 한 통을 가뿐하게 거덜 낼수도 있다. 단, 한시간 만에. 이게 뭘까? 바로 타나토스다. 에로스가 12시간 공복상태로 일어난 아침에 느끼는 자연스러운 식욕이라면 타나토스는 목구멍까지 음식이 가득 찼는데도 먹을 걸 더 찾는 충동이다. 


가만히 보면 우리 생은 이 세가지가 함께 만들어내는 변주곡이다. 내가 체중을 줄이려고, 식습관에 약간의 제약을 가하는 이유는 지난 2년 반 사이 (육아로 인한) 급격한 생활패턴의 변화 때문에 생긴 보상회로를 끊기 위해서다. 낮 동안 받은 스트레스와 억눌린 갖가지 욕망들을 한밤의 야식섭취로 보상하는 그 회로 말이다. 살이 찌고, 안정시 심박수가 높아졌다는 건 몸이 망가지기 시작했다는 증거니까. 말하자면, 이 자연스럽지만 결코 좋을게 없는 보상회로에 질서를 부여하는 건 결국엔 ‘로고스’, 말하자면 절제와 질서다. 내가 뭘 먹었는지 생각해 보고, 지금 몸이 어떤 상태인지, 즉 무엇(먹는 것, 쉬는 것, 일하는 것)이 적절한 것인지 살펴보는 것 말이다. 




최근 들어, 다시 글을 조금씩 쓰기 시작했는데, 조금 놀라운 건 글을 쓰는 동안은 양손과 눈이 종이(또는 모니터)에 묶이는 관계로 고삐풀린 듯, 또는 감자칩이 나를 먹는 것인지 내가 감자칩을 먹는 것인지 모를 물아일체의 상태로까지는 절대 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머리를 많이 쓰니까 허기가 지기는 한다. 그렇지만 배를 가득 채우면 또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으니 적당히 가볍고 짧게 먹을 수밖에 없다. 일상에나, 내 몸에나 적정함이 찾아오는 순간이다.


그러다보면 에로스, 로고스, 타나토스라는 세가지 축이 어느 것 하나 나대지 않고, 각자의 자리에서 균형을 맞추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저것들 중에 ‘나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원래 인간이라면 어쩔 수 없이 가지고 살아야 하는 마음의 세 가지 모양이다. 이것들이 나름의 균형을 맞추고 있는 이 상태에 한 번 도달해 보았다는 게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혹여라도, 다시 균형이 깨지더라도 이 상태의 충만함을 이미 알고 있으니 말이다. 절제된 식습관, 적당히 격렬한 운동, 글쓰기, 이 세 가지만 있으면 된다. 균형이 깨져도 언제든 돌아갈 수 있다. 적당히 싱거워서 행복한 시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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