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1921년에 태어난 '최대봉'이라는 한 사람의 역사


민중구술사열전, 『최대봉 崔大奉 1921년 12월 20일생』

- 어떤 '역사'에 관하여



참 낯선 제목이다. 인터넷 서점에서 검색을 하기도 쉽지가 않다. 책의 제목 안에는 '키워드'라고 부를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 심지어 '구술사'라고 검색을 해도 걸리지 않는다. '최대봉', '1921년 12월 20일생' 모두 어느 개인에게 딸려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역사'는 이런 개인들을 지운다. 아니 개인들을 추상화하여 특정한 '집단'으로 다루거나, 그 개인의 일상에 영향을 미친 특정한 사건을 중심으로 기술되거나 하는 식이다. 그 와중에 한 사람, 한 사람이 살아온 이야기들은 지워지고 마는 것이다.



사실 나는 커다란 '역사'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다. 있었는데, 없어졌다. 말하자면, 일부러 없애고 싶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던가. 차라리 나는 '민족의 미래'가 없는 미래에서 살고 싶다. 그저 '민족'의 이름으로 싸움박질 하고, '민족'의 이름으로 군대에 불려가고, '민족'의 이름으로 뭘 배우라고 강요하는 그런 미래가 오는 것이 싫을 뿐이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서 같은 말을 쓰고, 같은 동네에 살고, 매일 쌀밥을 먹는 동포에 대해 아무런 애정이 없는 것은 또 아니다. 나는 우리 부모님과 그 분의 부모님들, 통칭해서 '조상님'들 각자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궁금하다. 지금 내가 누리고 사는 것들에 관해 막연하게 감사하는 마음이 있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그 분들이, 그 세대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타자'로 느껴질 때도 있다.(이것은 사실 동세대인들에게도 마찬가지로 느끼는 감정이기는 하다.) 어쨌든, 이것은 사실 '애증'에 가까운 감정이다. 나는 우리 조국의 역사가 자랑스럽지도 부끄럽지도 않다.


그래서 어쨌든, 나는 차라리 '개인들의 일상사'를 더 자세하게 알고 싶었다. 도대체 어떤 느낌으로 그 시절을 살았을까, 또 어떻게 살아냈을까 궁금했다. 그 마음들의 심층을 본 적이 없었다. 어떤 식으로든 지금의 내 마음과 관련을 맺고 있는 마음들일 텐데 말이다. 그래서 나는 취사선택되고, 기술자의 특정한 관점이 반영된 '역사'가 아니라, 최대한 덜 다듬어진 20세기인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읽고 난 후에 조금 시원해졌다. 여전히 그 대단한 '역사'의 진실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몇 권을 더 구해서 또 한 권, 또 한 사람, 또 한 권, 또 한 사람의 이야기를 읽어가고 있다. '역사'에는 없는 '이야기'가 여기에는 있었다.


결혼은 어떻게 하셨을까?


글때 나는 회사에 있시면서 여러 군데 중매가 들어왔어요. [그래서] 사진도 받아 놓고 결정을 못 지우고 있는데 하루는 넷째 형님이 오셨어요. "우째 오셨는고?" 물으니까 "아이고 오늘 머~어 사는기 궁금하고, 니(너)한테 할 이야기가 있어서 왔다" 그래. "무슨 이야기가 있느냐고?" [물으니] "니 혼사 됐다" 이래 말하는 거라. 깜짝 놀랬지요. 그래 가만 생각해 보니까 나는 마음이 싫은 거라요.

- 47쪽


해방되던 해에는 어떠했을까?


해방되던 해에 흉년이 졌어요. 그런 흉년을 적(겪)어 본 거는 일생에 처음이라요. 하마(이미) 십이월 전에 양식이 떨어져 가지고 봄에 식량이 곤란해져 가지고, 산에 나무껍질도 베끼고(벗기고), 송구(소나무 껍질)떡도 하고, 강원도는 칡이 많아 가지고 칡을 캐 가루를 해(만들어) 가지고 먹었지. 떡 해 먹을 여지는 없고 국수 해 먹었다. 참 사는 게 말할 수 없었어.

- 73쪽


전쟁 때는 괜찮았을까?


내중에 [치안]질서가 잡혀 버리니까 이 사람들은 산으로 갔어. 혹시 지방 사람들이 산에 가서 그런 사람을 만났다고 신고를 할 것 같으면 또 [좌익으로부터] 봉변을 당하는 거라. 일정 시대 한가지라. 일본 [편들면] 의병한테 혼나고, 의병한테 밥해주면 일본(일본 경찰 혹은 헌병)한테 혼나고, 산골에 있는 사람이 제일 곤란하지.

- 74쪽


이런 이야기들이다. 이렇게 전해져 오는 말들을 나의 말로 바꾸어서 전하고 싶지가 않다. 아마 절반도, 아니 10%도 전하지 못할 것 같다. 마침 이런, 가까운, 옛날 이야기를 읽기에 좋은 때가 마련되었으니, 관심이 가시거든 한번씩 읽어보기를 권한다. 어디에도 없는 '올바름', '진실'과 같은 것들이 거기에 있을지도 모르겠다.

최대봉 1921년 12월 20일생 - 10점
20세기민중생활사연구단 엮음/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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