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을 알차게 보내고 싶어만 하는 나에게
한 하급 관리가 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양명 선생의 학문을 청강했다. 하루는 그가 양명 선생을 찾아와 하소연했다. 자신은 양명 선생의 학문을 매우 좋아하는데, 평소 공무와 송사 관리 문제 등으로 일이 번잡하여 제대로 학문에 매진할 수 없어 괴롭다는 말이었다. 그의 말을 듣고 양명 선생이 말했다.
양명 : 그대는 나의 학문을 오해하고 있다. 내가 언제 그대에게 공무와 송사 업무 같은 평상시의 일을 때려치우고 강의하고 학문하는 일에 뛰어들라 말하던가? 그대에게는 이미 그대에게 주어진 관아의 업무가 있으니, 공무와 송사 처리 같은 관아의 일을 수행하는 가운데서 학문을 이루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격물 공부인 것이다.
왕양명, 『낭송 전습록』, 북드라망, 2014, 25~26쪽
이 하급관리는 내내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이 송사가 없었으면 가만히 앉아서 양명 선생의 가르침을 곱씹고 되뇌어도 보았을 것을. 괴롭구나!’ 약간 억울한 마음이 들었을 것도 같다. 하찮아 보이는 송사에는 시간을 뺏기는 것 같아 몸이 달고, 일이 너무 많아서 해도 해도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이런 자신의 처지가 처량하고 딱하게 여겨졌을 수도 있겠다. 그때마다 관리는 오롯이 학문에 매진하는 삶을 꿈을 꿨을지도 모르겠다. 평소에 공무와 송사 관리 문제 등으로 번잡하지 않았다면 내 제대로 학문에 매진할 수 있었을 텐데, 라며 말이다.
학문에만 매진할 수 있다면 얼마나 기쁠까!
내심 관리는 하소연을 하면서 양명 선생이 “일을 관두고 함께 학문에 정진해 봅시다!”라고 말하기를 바랐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양명은 딱 잘라서 일을 관두지 말라고 한다. 평상시처럼 관아의 업무들을 처리하면서 수행하고 학문을 이루어야 한다고. 그리고 그것이 진정한 격물 공부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말이다.
왕양명의 이 말은 나에게 학문을 이루는 것을 어떤 특별한 것으로 여기지 말라는 말로도 들렸지만, 한편으로는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면 나의 현실을 직시하고 정확하게 파악하라는 말로도 들렸다. 관리는 어찌되었든 업무가 너무 많아 학문을 이룰 수 없어 괴로워했음에도 일을 관두지는 못했다. 부양가족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가업이라서 그랬을 수도 있다. 어쩌면 실은 관리의 의지가 부족했을 수도 있다. 이유가 무엇이든 관리는 업무라는 현실과 이룰 수 없는 학문의 이상 속에서 단지 괴로워했을 뿐이었다. 이상과 현실을 저울질하며 괴로워하는 동안에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데도 말이다.
그대의 업무가 바쁘고 많다고 해서 적당히 판결해도 안 되고, 주위 사람들이 비방한다고 해서 그들을 좇아 처리해서도 안 된다. 이런 여러 가지 생각들은 모두 사사로운 것들이다. 그리고 단지 그대만이 자기 자신을 알 수 있다. 정밀하고 세밀하게 성찰하여 매 순간 자기 자신을 극복해 나감으로써 자신을 다스려야 한다. 오직 지금 이 마음에 한 올의 치우침이라도 생겨날까 봐 두려워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격물치지의 공부이니, 공무와 송사 등이 처리되는 동안에도 진실된 배움은 없을 수 없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실제 일들을 떠나 배움을 얻고자 한다면, 그거야말로 허공에다 헛수고를 하는 일일 뿐이다.
같은책, 26쪽
10월 초 내내 나는 좀 괴로워했다. 지나 버린 추석 연휴가 너무 아까웠기 때문이다. 추석 당일은 일요일이었지만 대체 휴일까지 따지면 짧지 않은 연휴였다. 나는 이 시간을 기꺼이 누리기 위해 책도 몇 권 사두고, 집도 열심히 어질러 놓았다. 허나 지나고 보니 연휴의 반절 이상은 가족 행사(?)에 참여하느라 써 버렸고, 밀린 빨래와 설거지, 받아온 반찬들을 넣기 위한 냉장고 청소까지 하고 났더니 그나마 남은 하루도 그냥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간신히 집안일은 했지만 책은 손도 대지 못했다. 그 다음 주 휴일까지 가족 행사에 시간을 보내느라 시간을 모두 내야 했다. 마음이 고된 가족 행사를 끝내고 돌아와 손도 못 댄 책들을 보고 울적해진 나는 기분을 달랜답시고 남은 시간에는 TV를 보았다. 추석 때 놓친 예능 프로그램들까지 싹 구해다 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10월 초 내내 괴로워했다. 피로도 제대로 풀지 못해서 컨디션도 별로였다. 나는 두 가지 현실을 직시했어야 했다. 하나는 나는 TV를 좋아하고 게으르다는 것이고, 둘은 명절 연휴라는 것은 가족들을 위한 시간을 생각보다 길게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휴일을 대하는 이상 속의 나(▲)와 현실의 나(▼)
이렇게 쓰고 보니 이 하급 관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정말 바빴을 수도 있는데, 정말 시간이 나지 않아서 괴로웠을 수도 있는데, 나는 놀고 자고 TV 보느라 책을 못 읽었다고 그의 괴로움에 나의 괴로움을 빗대다니... 지금이라도 할 수 있는 정확한 현실 판단은 나는 게으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오는 휴일들에는 밀린 책을 읽을 수 있는 방법들을 강구하자는 것이다. 알차고 성취감 있게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것이 스스로를 착취하는 일일 수 있다든가, 휴일에 충분히 쉬어 줘야 평일을 더 충실하게 보낼 수 있다든가 하는 말이 중요하다는 것을 나도 안다. 그렇지만 그런 말을 하기에는 나는 생각보다 너무 많이 논다. 그러니 나는 마음을 좀 다잡아도 된다. 이게 실제 내가 배움을 얻고 학문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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