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방어하기, 소과(小過)식 다이어트
雷山小過(뇌산소과)
小過, 亨,利貞, 可小事, 不可大事, 飛鳥遺之音, 不宜上, 宜下, 大吉
소과괘는 형통하니 올바름을 굳게 지키는 것이 이롭다. 작은 일은 할 수 있지만 큰일은 할 수 없다. 날아가는 새가 소리를 남기는 것이니 위로 올라가면 마땅치 않고 아래로 향하면 마땅하니 크게 길하다.
初六, 飛鳥以凶.
초육효, 날아가는 새이니 흉하다.
六二, 過其祖, 遇其妣, 不及其君, 遇其臣, 无咎.
육이효, 할아버지를 지나치고 할머니를 만나는 것이니, 군주의 권위에 도전하지 않고 신하의 도리에 합당하다면 허물이 없으리라.
九三, 弗過防之, 從或戕之, 凶.
구삼효, 지나칠 정도로 방비하지 않으면 이어서 해칠 수 있으므로 흉하다.
九四, 无咎, 弗過 遇之, 往厲必戒, 勿用永貞.
구사효, 허물이 없으니 과도하지 않아 적당한 것이다. 그대로 나아가면 위태로우니 반드시 경계해야 하며, 오래도록 고집하지 말아야 한다.
六五, 密雲不雨, 自我西郊, 公弋取彼在穴
육오효, 구름이 빽빽하지만 비가 내리지 않는 것은 내가 서쪽 교외로부터 왔기 때문이니, 육오의 군주가 저 구멍에 있는 육이를 쏘아서 잡는다.
上六, 弗遇 過之, 飛鳥離之, 凶, 是謂災眚
상육효, 적합하지 않아 과도하니, 날아가는 새가 빨리 떠나가는 것이라 흉하다. 이것을 일러 하늘이 내린 재앙과 인간이 자초한 화라고 한다.
요요가 왔다. 솔직히 좀 억울하다. 지금 몸을 보고 있자니 차근차근 13키로를 감량했었던 1년 전이 마치 신기루처럼 아득하게 느껴진다. 감량과 요요의 루트를 한없이 반복하는 다이어트 중생의 전철을 나 또한 고대로 밟은 셈이다. 내게는 달콤한 첫 성공에 뒤이은 허탈한 첫 실패였다. 집안 대대로 당뇨 내력이 있는데다 각종 유전 질환이 잠재된 나로서는 항상 몸을 관리하며 일정 몸무게를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중요한 과제다. 이제 다시금 울며 겨자 먹기로 나의 두 번째 다이어트를 선언하며 주역 글을 써 내려 간다. 앞으로의 다이어트에는 감량과 더불어 또 다른 과제가 얹어졌다. 어떻게 하면 이 몸의 윤회를 벗어날 수 있을까? 스스로에 대한 한심함과 무력감으로 입안이 쓰디쓴 와중에 뇌산소과 괘가 주어졌고, 작금의 내 상황과 연결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뇌산소과와 다이어트라?!
뇌산소과 괘의 소과(小過)란 ‘작은 것이 지나치다’라는 뜻이다. 지나침은 부족함보다 못하다는 게 기본 상식이건만, 놀랍게도 주역은 과함 또한 필요한 때가 있다고 한다. 게다가 과함의 범주를 나눠놓기까지 했다. 하나는 양으로 가득 차서 강한 기운으로 대들보를 꺾는 큰 지나침, 택풍대과(澤風大過) 괘다. 다른 하나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 ‘사소한 일들의 과도함’을 뜻하는 뇌산소과(雷山小過) 괘다. 여기서 과함은 그리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고, 오히려 잘못을 바로잡는 동력이 된다. 역시 이 ‘시時’, 즉 ‘때’라고 하는 것이 참으로 오묘하다. 과도할 때에는 과도하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올바름을 추구하기가 어렵다. 다시 생각해보면 과도함이 필요해지는 때는 쉽게 해결되기가 어려운, 아주 관성적이고 뿌리 깊으며 본질적인 문제에 부닥쳤을 때가 아닐까 싶다. 특히 몸에 관한 문제에서는 살짝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과한 개입이 적절하다. 조금만 느슨해져도 바로 균형을 잃고 요요를 되풀이하는 것이 바로 몸이기 때문이다. 참 어렵다.
돌이켜보건대, 처음으로 성공했던 다이어트를 요약해보면 한마디로 ‘대과식 다이어트’였다. 그때 크로스핏이라는 운동에 처음 도전하며 살을 뺐다. 바벨의 중량을 계속 늘리고 온갖 동작을 수행하고 기상천외한 기구들로 운동하면서 손바닥에는 물집이 잡히고 피부가 쓸려 피가 났지만 개의치 않았다. ‘어떤 일이 일상적인 일보다 크게 과도한 것이 모두 이런 것(대과大過)에 해당한다.’(<주역>, 정이천, 글항아리, 575쪽) 대과 괘에 대한 이 설명이 내가 시도했던 다이어트와 딱 맞아떨어진다. 이렇게 일상적인 활동량을 넘어서는 운동을 즐기며 감량을 밀어붙이던 와중에 느닷없이 코로나가 들이닥쳤다. 체육센터가 문을 닫았고, 나는 계속 재개관만을 기다렸다. 격렬한 운동을 다시 하게 된다면 얼마든지 살이 빠질 거라는 생각을 놓지 못하면서. 그러나 선천적으로 열이 심하게 오르는 내 체질과 과격한 운동이 맞지 않는다는 진단을 얼마 전 받았고, 그 이후로 첫 다이어트의 성공을 안겨다 줬던 크로스핏을 머릿속에서 지워야 했다. 이제 변화한 국면은 하나같이 대과식 다이어트는 더 이상 어렵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코로나 시국에도, 내 타고난 체질로도 꾸준히 계속해 나갈 수 있는 다이어트 방법을 찾아야 했다.
여기서 내게 필요한 것이 바로 소과식 다이어트의 전략이 아닐까? 소과의 괘상을 보면, 삼사효의 양효를 중심으로 초효와 이효, 오효와 상효가 모두 음으로 감싸고 있는 형국이다. 이것을 일러 중간 부분을 새의 몸통으로, 아래쪽과 위쪽의 음효 두 쌍을 새의 좌우 날개로 본다. 아직은 몸통도 작고 날개도 빈약해 덜 자란 이 작은 새가 욕심을 내서 높이 날아가려고 한다면 흉하다. 괘사의 말마따나, 소과의 때는 큰일을 도모하기보다는 작은 일들을 시도(可小事, 不可大事)하되, 약간 과하게 하는 것이다. 소와 대를 구분하는 차이는 일상적인 과도함인가 아닌가다. 그런데 뭘 어떻게 지나치게 하라는 것인가? 여기서 구삼효의 방법을 꼽아보고 싶은데, 독특한 단어가 나온다. 바로 ‘방어’의 지나침이다. “불과방지(弗過防之), 종혹장지(從或戕之), 흉(凶)! 과도하게 방비하지 않으면, (소인들이) 따라와서 해칠 수 있으니 흉하다.” 그러니 과도한 방어야말로 구삼의 핵심이다. 좀 의아한 것이, 아래 초육효와 육이효를 지나 삼효인 양의 자리를 양효가 차지한 것이 구삼효다. 강건한 기운이 올바른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으니 그야말로 힘을 발휘해서 쓸어버릴(?) 역량이 있지 않나? 적극적으로 전투에 임하고, 스멀스멀 올라오는 아래의 음효들과 맞붙어 치열하게 싸우고! 그러나 여기서는 소과의 시대다. 작은 것, 음한 것이 과도한 때이기도 하다. 그래서 양한 힘을 발휘하며 전면적으로 나서는 것은 때에 맞지 않는다. 강한 기운을 경계하는 데 쓰는 것. 그것이 구삼효에게 적절한 전략이다.
그렇다고 이 방어가 몸을 웅크리고 성벽을 높이 쌓고 가만히 있는 식의, 마냥 수동적인 자세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더 깊게는 태도와 관련되어 있는데, 자신을 올바르게 하는 것이 방어 전략에서 가장 우선시되어야 한다(<주역>, 정이천, 글항아리, 1205쪽). 여기까지 적고 보니 상대와의 물리적 싸움이 아니라 스스로의 내면적 투쟁으로 틀이 바뀌는 것만 같다. 남을 경계하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계속 성찰하면서 바르게 가고 있나 아닌가를 약간 지나칠 정도로 늘 살펴라! 이것이 구삼효가 말하는 소과식 방어다. 그래야 흉하지 않다. 아, 쉬운 듯하지만 이건 정말 훨씬 더 어려운 차원이다. 차라리 외부에 명확한 공격 대상이 있는 게 낫다. 내가 그토록 과격한 운동에 목을 맸던 이유와 비슷하다. 다이어트를 맘먹었다면 할 일 목록에 ‘운동’을 하나 추가하고, 한두 시간 정도 한 방에 싹 몰아치고 끝내버리면 된다. 마치 적을 소탕하는 것처럼! 일명 치고 빠지기다. 그렇지만 ‘일상적인 범주’ 안에서 매번 나 자신의 행동을 주의 깊게 따지고 날카로운 경계 태세를 세운다?
소과의 전략은 참으로 까다로워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나의 평소 패턴과 활동 방식은 늘 빠른 한 방을 추구하는 것이었으니까. 당연히 몸을 바꾸는 방법론 또한 일상의 테두리 밖에서, 과도하고 빠르게 몰아붙이면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게 가장 어려운 것은 소과식 다이어트를 실행하는 것에 앞서서 이런 전략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다. 정말 미세한 차원을 경계하는 과도함을 실천하라니,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도대체 뭘 해야 할지부터 불분명하고 혼란스럽다. 그러나 그동안 꾸준히 지적받아온 내 태도가 분명 있지 않던가? 엄청난 속도로 튀어나오는 말, 조급한 행동, 잠시의 여백도 견디지 못하는 초조함에 더해, 얼른 결론을 내리고 상대를 밀어붙이는 과격함까지. 어휴, 이렇게 적기만 했는데도 벌써부터 숨이 훅훅 들어찬다. 이 모두가 이미 나를 장악하고 있는 지배적인 습성들이며 가장 경계해야 할 소인들일 터다.
최근에 한 도반이 내게 해준 말이 생각난다. “왜 그렇게 줌 화상회의에서 빨리 나가는 거야?” 그녀는 내가 화상회의에서 화면을 빨리 끄고 얼른 퇴장해버리는 내 모습을 눈여겨본 것이었다. 물론 대단하게 잘못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 몇 초의 작은 행동들이 나의 패턴을 명징하게 증명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소과가 말하는 일상에서 과도하게 방어해야 할 작은 일(小事)인 것이다. 내 속도는 하나같이 너무 빠르고, 또 빠른 만큼 과격하다. 당연히 다이어트 또한 이렇게 빠르게, 강하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 전제와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나는 소과식으로 올바름을 추구하는 태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자꾸만 일상을 벗어난 한 방으로 눈이 쏠리게 될 것이다. 그러면 지속 가능한 다이어트는 영영 요원한 일이 되고 만다. 소과는 이렇게 근본적인 내 몸의 패턴까지 들여다보는 방어 전략을 권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작은 것들이 아름답다고 했건만, 글쎄, 과연 그럴까? 소과 괘를 공부한 다이어터로서 이렇게 외치고 싶다. 일상 속의 작은 것들은 세다, 너무나 세다! 정말 당연하고 사소해 보이는 내 몸의 행동 패턴은 수십 년 동안의 강력한 시간의 누적을 품고 있다. 구삼효를 끝끝내 따라와서 급습하는 소인들(從或戕之)마냥 끈질기게 따라붙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내 몸의 관성 자체가 언제든 내 뒤를 바싹 붙어 쫓아다니는 가장 큰 적이요, 장애물인 셈이다. 역시 적은 내부에 있다. 그래서 약간 지나친 듯 바름을 추구하는 소과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이 은밀하고 위협적인 무리로부터 어떻게 벗어날 수 있겠는가? 원래 습관대로 대과 스타일에 눈이 쏠리는 이 마음을 돌아본다. 차근차근 지금 할 수 있는 일들을 다시 시작했다. 세 끼 식사를 꼼꼼히 기록하는 식단 일기를 쓰고, 수시로 물을 마시고, 만보기 앱을 깔고 걷는다. 거기에 더해 화상회의가 끝나기 전에 남들보다 더 오래 남아보려고 멍하니 기다리는 몇 초를 끼워 넣어본다. 스스로 ‘이렇게까지 별거 아닌 것들도 고쳐야 하는 돼?’싶은 것들을 찾아내서 꼼꼼히 방어하기. 거기에 나를 바꿀 힌트가 있다. 올바름을 세워나가는 소과적 방어 활동이 이 글을 쓰며 시작된 셈이다. 새롭게 배운 이 ‘과도한 방어’는 과연 성공할 것인가?
글_ 오찬영(감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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