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글을 쓰는가?
누구나 살아가지만, 누구나 다 잘 산다고 말하진 않는다. 바닷가 모래알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지금까지 살아왔고, 앞으로도 살아갈 것이고 보면, 세상사에 ‘산다는 것’만큼 자명한 일이 또 있을까 싶다. 그런데도 세상에 잘 산다고 단언할 자가 드문걸 보면, 산다는 것에 많은 곡절이 숨어 있는 듯하다. 그러나 대개 뒤늦게 찾아온 실패나 배신 같은 곤경을 만나고서야, 그런 곡절들을 대면하게 된다. 마치 입구만 있고 출구는 없는 쥐덫 같은 곳에, 탁, 걸려버린 느낌일 때에야 비로소 자신에게 묻는 것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나도 그런 시절에 남산을 찾아갔다. 내 주변의 동년배 남자들은 그런 상황에서 오로지 글을 읽기 위해서 어딘가를 가지는 않는다. 스스로 충분히 글을 읽어 왔으며, 앞으로도 읽을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사실 곤경 속에서 뭘 해야 한다면, 대개 운동이나 종교에 몰입하고, 새로운 어학이나 자격증을 준비하기 마련이다. 살아가는데 철학이 위력을 발휘하는 모습을 본 적 없으니 그것이 그리 이상한 것도 아니다. 사실 나 또한 남산을 찾아갈 때까지 소설 한 권을 제대로 읽어본 기억이 없었다. 지방 변두리 대학에도 들어가기 힘겨웠던 내 지력을 생각해보면, 그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대학 시절에도 자본 어쩌고저쩌고 하는 얘기에, 억지로 사회 과학책 몇 권 집었던 것 말고는, 인문서적이란 걸 구경한 적도 없었다. 더군다나 사회에 들어서자, 그런 것들이 나에겐 허영으로 생각되었다. 자기 밥벌이도 못하면서 그런 공부를 하는 게 제대로 된 정신인가 싶었다. 당시의 내 감각으로 본다면, 나는 가장 쓸모없고, 정신 나간 사람들이나 가는 곳을 찾아간 셈이었다.
글읽기, 새로운 대륙으로 이끌다
칸트는 “철학의 의무는 오해에 의해 생긴 환상을 제거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철학의 길을 걸으면 환상을 제거하고, 오해를 바로잡게 될 터였다. 나에게 그 시절은 살아남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혹시 뒤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이 삶을 온통 추동하던 시절이었다. 내가 전도유망한 사람이라고 볼 수는 없었다. 출신이나 역량, 모든 면에서 다른 사람들을 능가할 아무런 것도 갖고 있질 않았다. 그래서 더욱 ‘가치’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이른바 ‘조직’이란 이런 저런 수준들이 뒤섞여야 굴러갈 수 있는 곳이다. 그 속에서 나는 한편으로는 몸에 안 맞는 옷을 입고 불편해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여느 회사원들과 다름없이 폭음과 협잡으로 나날이 망가져 갔다. 하지만 그런 것들은 사회생활의 불가피한 것들이라고만 생각되었다. 갈수록 그런 생활에 깊이 몰입했다. 몰입이 깊을수록 불가피한 것들이 많아졌다.
그런데 철학은 이것들을 어떻게 제거하는가? 철학은 읽을수록 아주 엄밀한 개념들로 구성된, 아주 난해한 물건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가장 쓸모없고, 정신 나간 사람들이나 있을 법한 곳에서 이런 엄밀한 물건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아주 흥미로운 일이었다. 이 물건 자체를 다루기 위해서는 내 스스로도 엄밀하게 사고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 닥치는 대로 책들을 읽어내는 것은 당연하고, 중요한 어떤 단어, 어떤 문장, 어떤 단락이 나오면 철저하게 스스로 이해해서 넘어가도록 훈련해야 했다. 이를테면 ‘나는 생각한다.’라는 단순한 문장을 생각할 때도 그랬다. 아마도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를 발화하는 순간, ‘생각하는 나’가 전제되어야 하므로, 당연히 그 출발로서 ‘나는 존재한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멈추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나는 생각한다.’고 했을 때 다시 그 뒤에서 그것을 ‘생각하는 나’가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내고, 그 자체를 다시 물고 늘어졌다. ‘나는 생각한다.’고 발화(생각)할 때의 그 문장 속의 ‘나’와 ‘나는 생각한다.’고 생각하는 ‘나’는 다른 ‘나’인가? 그럼 후자의 ‘나’가 전자의 ‘나’를 보면서 그런 말을 하고 있을 텐데, 도대체 내 안에 두 개, 세 개, 네 개의 ‘나’가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나’를 생각하고, 그런 ‘나’를 또 다른 ‘내’가 생각하고...이 수많은 ‘나’가 내 속에서 출몰했다가 사라져가는 것을 끊임없이 놓치지 않으려고,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늦은 나이에 공부를 시작한 자로서, 더군다나 지력이 모자란 자로서 당연한 노력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이것이 나이 들어 시작한 철학 공부가 나에게 준 부정적인 효과인가 싶었다. 처음엔 철학공부가 이런 생각들과의 힘겨운 싸움이라는 것을 알고, 아주 많이 절망하게 된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철학은 그 절망과의 싸움, 그 훈련 자체를 생산하는데 의미가 있는 듯하다. 이런 싸움과 함께 나는 나를 거듭 훈련시켰다. 아침에 일어나서, 저녁에 잠이 들 때까지, 회사 업무 이외의 모든 틈을 이런 생각으로 채웠다. 훈련이 거듭 될수록, 책을 읽는 속도도 빨라지기 시작했다. 그만큼 생각할 수 있는 시간도 많아졌다. 아침에 달리기를 할 때, 지하철을 타기 위해서 걸어갈 때,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할 때, 점심 먹고 앉아 있을 때. 잠시 외근 나가는 버스 안에서. 찾아보면 시간은 너무 많았다. 나는 그 시간을 철학이라는 기묘한 물건을 다루는데 사용하였다. 하지만 그렇게 시간을 투여하고서도 책들을 이해하는 것이 용이한 것은 아니었다. 한 단락이 채 안 되는 니체 아포리즘 중 어떤 글은 도저히 이해되지 않아, 몇 페이지를 공책에 몽땅 써서, 주어, 동사, 목적어로 분해하고, 난립하고 있는 지시대명사들이 각각 어떤 것들을 지시하고 있는지를 따지고, 또 따지고 했던 기억이 난다. 이것은 수학문제와 같은 것이어서, 연습문제를 풀듯이 풀고, 또 풀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훈련이 거듭될수록, 어떤 기묘한 전회가 발생했다. 현실적인 층위 이외에 또 다른 층위가 잠재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믿게 된 것이다. 현실적인 층위 위에서 위력을 떨치고 있는 ‘쓸모 있음’과 ‘쓸모 없음’이라는 기준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게 되었다. 아니, ‘쓸모 있다, 없다’가 쓸모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다양한 개념들이 움직이면서, 엄밀한 구조가 만들어지는 ‘철학의 현장’은 현실적인 층위와 또 다른 층위들을 넘나들면서 생성되고 있었다.
철학의 현장에서 만난 많은 스승들. 이들을 통해, 이들과 함께 다양한 사유의 지층들을 탐험할 수 있었다는 것은 내게 큰 행운이라는 점~ *=_=*
그래서 경험이라는 말도 다르게 이해되었다. 경험은 현실적인 행위나 관계로만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잠재적 현장과 더불어 이루어지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오히려 그것은 현실적인 층위를 압도하고도 남을 하나의 거대한 대륙이었다. 현실적인 층위조차 이 거대한 대륙이 있고서야 가능한 것이었다. 사유는 오로지 그 대륙과 함께 했을 때에만 솟아올랐다. 이것은 나이 들어 시작한 철학 공부가 나에게 준 긍정적인 효과였다. 철학은 이 거대한 대륙을 보여줌으로써, 오해로부터 발생한 환상을 제거한다. 그것은 현실적인 층위에서 일어난 선택의 결과를 부끄러워하거나 두려워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뜻했다. 더불어 항상 현실적인 성취에 집착하여 아쉬워하거나, 조급해하지 않게 되었다. 사유가 일어나고 있는 그 거대한 대륙에서 보자면, 현실적인 층위에서의 성취란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삶은 어마어마하게 크고 긴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글쓰기, 사유의 집을 만들다
그러나 글읽기는 철학을 보여주고 생각하게 하지만, 그곳에 거주하게 하지는 않았다. 다시 말하면 글을 읽으면 그곳에 거주하는 철학들이 낸 길을 걸어갈 수는 있어도, 그곳에 거주하기 위한 집을 나를 위해 만들어 주지는 않았다. 우리는 기존의 철학들이 마당에 쌓아둔 개념들을 가져와서 사용할 수 있을 뿐이었다. 결국 자신의 집은 스스로 지어야만 했다.
그런데 사유의 집을 짓는 것은 글읽기와 다르다고 여겼다. 글읽기가 주어진 문제를 푸는 것이라면 글쓰기는 내가 스스로 문제를 내고, 그 문제에 답을 내야 하는 것이다. 문제를 제시하는 것에서부터 사유가 개입하기 시작한다. 질문이 없다면, 여전히 사유의 대륙에 착륙하지 않은 채 고공에서 관람하고만 있을 뿐인 거였다. 수차례 에세이를 쓰고 발표를 해도, 내 생각을 만들어내고 구축한다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많이 곤혹스러웠다.
그런데 불현듯 혹시 우리는 다른 사람의 생각을 그저 되풀이할 뿐이지 않은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내 생각’이라는 것, ‘독창성’이라는 것이 이상화된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오로지 다른 사람의 생각을 ‘변형’시키면서 되풀이될 뿐이지 않은가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생각이라는 것 자체가 형태 변환을 거쳐야만 가능한 아주 기묘한 되풀이인 셈이었다. 나는 바로 ‘언어’가 이 형태변환을 가능하게 해주는 각별한 사물인 것으로 여기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언어가 생각하게 한다는 것이다. 생각하니까 글을 쓰게 되는 것이 아니라, 글을 쓰니까 생각하게 된다는 전도가 일어났다. 그러자 글쓰기가 글읽기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읽으며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튼튼한 집들을 따라 만들어보는 것이야말로 사유의 작업으로 보였던 것이다. 이것은 중대한 돌파구였다.
그래서 나는 글을 베끼기 시작했다. 아주 단순했다. 책을 읽을 때마다 필요한 부분은 통째로 베꼈다. 그리고 몇 개의 베낀 문장을 여러 방식으로 고쳐 보았다. 그 일은 놀랍게도 아주 재미있는 작업이었다. 내 문체로 쓰는 것과는 또다른, 아주 예기치 않은 즐거움을 주었다. 나는 그 사실을 발견하고 이 작업에 깊이 빠져들었다. '내가 생각한다'고 생각하지 않고, '글이 생각한다'고 생각하면서 오로지 베낀 문장이 주는 리듬을 따라갔다. 그러면서 문장들을 이리 바꾸고, 저리 고치면서 수많은 조립품들을 만들어 냈다. 그러자 그러는 과정 자체가 생각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깨달았다. 글이 글을 썼다. 마치 마술같았다. 이 놀이를 하게 되면, 우리가 세련되고, 멋진 생각을 가져야 글을 쓸 수 있다, 라는 것에 얼마나 많이 현혹되어 있었는지 알게 해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세련됨이야말로 사유의 전진을 해치는 것 같다. 수사, 제스처, 치장, 명성에 휘둘리지 말고, 오로지 글로 하여금 사유를 추동시켜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사유는 그것들과는 무관하게, 글 속에 홀로 서 있었던 것이다.
끊임없이 생성되는 질문들은 내가 생각하고 탐구한 만큼, 딱 그만큼씩 글이 되고 답이 되었다.
그런 중에 나는 아주 특별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그것은 2년 전 에세이 발표 때의 체험이다. 그때 주제는 소설 『임꺽정』 중 한 인물에 대해 집중적으로 분석하는 것이었는데, 나에게 주어진 것은 ‘황천왕동이’였다. 나는 그전에 써왔던 에세이 방식과는 완전히 다르게, 소설을 실험해 보기로 하고, 루쉰의 「죽음을 슬퍼하며」를 기본 삼아 전체 바꿔 쓰기를 시도하였다. 일단 줄거리를 쓰고, 세밀하게 목차를 정리하고, 등장인물들과 사건들의 선후관계들을 따져보았다. 동시에 루쉰의 글을 한 문장씩 똑같이 베껴 썼다. 그리고 그 문장 하나하나를 내 줄거리에 맞게 고쳐 썼다. 한 문장에 최소 2~3개씩의 다른 문장이 나왔다. 그중에 가장 적합하다고 느끼는 문장을 선택했다. 그리곤 다음 문장으로 넘어갔다. 루쉰의 문장 하나에 여러 개의 조립품이 나왔다. 그러면서 루쉰의 문장 스타일을 하나씩 정밀하게 익혔다. 또 옥련이의 편지를 쓰기 위해 벽초의 문장들을 발췌해서 베끼고, 다시 그 문장들을 고쳐 썼다. 여기서도 여러 개의 조립 문장들이 나왔다. 그러면서 벽초의 스타일을 익혔다. 여기에다, 도서관에서 얻은 옛 서간문을 읽고 따라 썼다. 이런 과정은 완전히 몰입된 작업이었다. 아주 단순한 작업 속에서 나는 무한한 행복감을 느꼈다. 모든 것은 생성되면서 향유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이후에는 이런 방식으로 에세이를 쓰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에겐 이 방식이 글쓰기를 훈련하는 전형적인 방식이 되었다. 그런데 이런 훈련이 거듭될수록 에세이 자체를 산출하는 것보다, 그 훈련 자체가 일상이 되기 시작했다. 이것은 놀라운 변화였다. 책을 읽으면서 틈만 나면 읽은 부분을 생각하고 따지는 것과, 글을 쓰면서 틈만 나면 문장을 바꾸어 보는 것은 한 몸이 되었다. 마치 그것은 내 정신이 철학의 피부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누가 알 수 있을까? 글쓰기가 잘 쓰고 못 쓰고의 문제가 아니라, 이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느냐 아니냐의 문제라는 것을. 나에게 글쓰기는 되풀이인 셈이고, 그 되풀이가 내 사유의 집을 만들어 주고 있는 것이다.
또다른 생, 글은 홀로 살아간다
그런데 예기치 않은 사건은 그 에세이를 발표하면서 발생했다. 그렇게 즐겁게 글을 썼음에도, 발표시간이 가까워지자 굉장히 긴장되었다. 발표시간은 새벽 12시부터 1시까지 1시간. 20장이 넘는 에세이는 읽기에도 버거웠다. 다 읽고 나자 읽은 사람이나 들어준 학인들이나 모두 탈진상태가 되었다. 그런데 단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돌아가며 한 마디씩 지적했다. 또한 모든 사람들이 공격적이었다. ‘왜 이런 글을 썼느냐’, ‘소설의 기본도 모르는 글이다.’라는 지적까지, 온갖 악평들이 셀 수 없이 쏟아져 나왔다. 차츰 정신적으로 감내하기 힘들어졌다. 그 자리에서 일어나 문 밖으로 나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러는 와중에도 나는 그것을 하나도 빠지지 않고 받아 적고, 일일이 대답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 대답하고 있는 사람이 내가 아니라는 기묘한 생각이 드는 것이다. 동시에 그 뒤에서 또 다른 내가 갑자기 소설이란 무엇인지, 평론이란 또 무엇인지, 사람들이 왜 소설을 쓰고, 영화를 만들고, 또 평론을 해왔는지가 확 느껴지는 것이었다. 아주 기묘한 순간이었다. 그건 정말이지 어떤 행성이 떨어져 굴러와 때린 느낌이었다.
분명히 글을 쓴다는 것은 세계를 구성하는 것일 터이다. 그러나 이전에는 이것을 머리로만 그러려니 하고 말았던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사람들 앞에서 읽혀지면서, 글로 쓰인 세계가 보이고, 하나로 엮이는 것이었다. 그것은 현실적인 층위와 다른 층위에 있는 또 다른 세계였다. 내가 구축한 세계 어느 곳에서 균열이 생겼는지, 그 균열은 작업과정 중 어느 과정에서 발생했는지, 그 균열을 메우다 보면 또 어떤 균열이 발생하겠는지, 그 균열들을 다 메우려면, 현재의 구조를 어떻게 바꿔야 할지, 불가피하게 전체 구조를 바꾼다면, 원래 말하려던 내용에서 무엇을 잃게 될지..... 그럼 나는 무엇을 말하려고 했었나?...... 이런 생각이 총체적인 느낌으로 덮쳤다. 결국 글은 “내가 무엇을 말하려고 했는지를 근원적으로 다시 묻는 작업”이고, 동시에 “그 질문에 대해서 세계를 끊임없이 재구성함으로써 대답하는 작업”이라는 점을 깨달았다. 이런 규정이 결코 추상적이지 않다고 느꼈다. 그 이후에 이 규정은 여러 번 바뀌었지만 그 당시의 이런 느낌 자체는 아주 단단하고 견고한 것이었다.
마치 언어들이 모여서 단단한 기계가 된 듯하였다. 작업방식까지 생각해보면 언어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내 몸을 거쳐서 ‘글이라는 기계’의 모습이 되어, 다시 다른 사람들에게로 되돌아 나간 것 같았다. 사람들은 그 시간 동안 이 기계와 상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나와 무관하게 홀로 서서 사람들과 상대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대답하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라 그 기계였다. 그 순간 수사, 제스처, 치장, 명성 같은 것, 그리고 어떤 인정욕망 같은 것이 싹 사라졌다. 그것은 언어라는 것을 사용한다는 것의 막대한 힘에 대한 신체적 각성 같은 것이었다. 글은 그것 자체로 현실적인 층위의 ‘나’라는 개체와는 별개로 존재하는 아주 단단한 존재들이었다. 내 글은 기계로 우뚝 선 아주 낯선 타자였던 것이다.
글은 '나'로부터 탄생하지만, 다른 시공간에서 누구와 만나느냐에 따라 계속 새롭게 '생성'된다. 그렇기에, 글은 그자체로 살아있다.
사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우리)는 줄곧 이상한 경험을 해왔다. 나 혼자 보려고 컴퓨터에 보관해 뒀던 글을 꺼내 보기만 하면, 기존 생각이 바뀌고, 그 생각에 맞추어 문장을 수정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글이란 참으로 흥미로운 놈이다. 더 당혹스러운 것은 베껴 쓴 다른 사람의 글에서조차 그 저자의 뜻밖의 생각이나 오류(라고 추정되는 것)들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에세이를 다른 사람들에게 소리 내어 읽어 줄 때도 그랬던 것이다. 앞에 나가서 소리 내어 읽다 보면, 쓸 때와 다른 생각들이 예기치 않게 구성(생산)되면서 수정해야할 문장들이 눈에 확 띠게 된다. 그러니까 글은 생각을 구성하지만, 공적으로(인터넷이든, 심포지움이든, 책이든) 제출되면서 그 생각을 다시 구성(생산)하는, 참으로 기묘한 물건인 셈이다.
이런 점에서 글은 혼자 움직이는 기계였다. 그리고 그 자체가 세계이면서, 또 다른 세계를 구성하고 있는 기계이다. 그런데 이 기계는 그 기능을 매번 다르게 반복할 가능성을 품고 있는, 그래서 당초 생산한 의도(내장된 기능 혹은 용도)를 항상 초과하거나. 그 의도에 매번 모자라는 기묘한 기계이다. 그것은 저자로서의 ‘나’의 의도와는 매번 다르게, 스스로 작동하는 기계인 셈이다. 그래서 이 기계는 어떤 컨텍스트를 만날 때마다, 스스로 자유롭기라도 한 듯이,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낼 것이다. 매번 단 한 번뿐이라는 유일성을 띠기까지 하면서 말이다. '나'는 글이라는 기계를 생산하고, 그 글은 매번 다른 컨텍스트 속에서 작동(반복)하며, 그때마다 유일무이한 텍스트로 재생산되는 것이다.
마치 ‘나는 생각한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나’들(내 안의 ‘나’들)이 이제는 현실적인 ‘나’의 몸을 떠나서 ‘글’로 살아가는 것 같았다. 현실적인 층위에서 글은 유일무이한 것으로 작성되었지만, 기계로서의 글은 끊임없이 다양한 방식으로 작동하면서 사람들과 접속한다. 그 글들은 다양한 ‘나’로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그 글들은 현실적인 나와는 무관하게 홀로 스스로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은 그것 자체로 살아 있다. 아마도 읽는 이마다 내 글에서 내 생각의 변화를, 내 생각의 오류(라고 추정되는 것들)를 읽어낼 것이다. 따라서 글은 쓰고 나면, 나로부터 떠나서, 홀로 살아간다. 그것은 내 밖으로 걸어 나간 ‘내 안의 나들’, 하나의 또 다른 ‘생(生)’이다.
다시 앞으로 거슬러 올라가본다. 입구만 있고 출구가 없는 쥐덫 같은 곳에 갇혔다고 느꼈을 때, 나는 남산에 찾아왔다. 삶을 뭔가 돌파해야 할 벽으로만 여기고 있었다. 그때마다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은 삶의 굽이굽이에서 끊임없이 솟아났지만, 도대체 방도를 얻지 못하였다. 그러나 나는 아주 뜻밖에도, 이 쓸모없고, 정신 나간 곳에서 방도 아닌 방도, 쓸모없는 쓸모를 익히게 되었다. 글이라는 존재들을, 다시 말하면 ‘내안의 나들’을 현실적인 층위로 불러내는 유일한 힘으로서 ‘언어’를 만난 것이다. 그리고 그 글들은 나를 만나자 마자 떠나고 마는 존재들이란 것도 알게 되었다. 결국 나는 그 글들을 만나는 훈련, 내안의 나들을 만나는 훈련, 현재의 나를 해체하는 작업으로서의 훈련, 글 쓰는 과정 그 자체로서만 온전히 글을 쓰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어떻게 살 것인가?” 그 질문은 바뀌어야 할 것이다. “무엇이 되어 살 것인가?” 나는 글이 될 것이다. 나는 기계가 될 것이다. 아마 나는 사라지고, 글이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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