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용도
아기의 신체는 눈에 띄게 성장한다. 한참 클 때는 불과 1, 2주 만에 쑥 크기도 한다. 그에 비해 의식의 발달은 꽤 미묘한 구석이 있어서 주의 깊게 관찰하지 않으면 변화를 알아차리기 어려울 때가 있다. 무엇보다 언어적인 소통이 안 되기 때문이다. 아기의 여러 행동들, 눈빛, 입으로 내는 소리들을 모아서 이전까지의 데이터와 비교를 해 보아야 한다. 아기와 매일매일, 하루 종일 같이 있지 않고선 알기 힘든 변화다. ‘부모’가 아기와 특별한 유대관계를 맺는 건 바로 그 때문이다. 매일매일, 하루 종일 지켜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엄마는 더욱 그렇다. 이미 한 몸으로 열 달을 함께 보낸 사이이니 오죽하랴.
그런 점에서 나는 꽤 운이 좋은 아빠다. 우리 집의 경우, 바깥에서의 경제활동은 엄마가 가정 내 활동은 아빠가 주로 하는 구조다. 물론 어느 한쪽이 한 부분을 전적으로 하지는 않는다. ‘주로’ 한다. 그렇다 보니 나는 우리 딸이, 태어나 지금까지 가장 오래 함께 시간을 보낸 사람이 되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이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싶다. 아빠와 가장 오래 시간을 보냄에도 불구하고 우리 딸은 엄마가 퇴근해서 돌아오면 찹쌀떡처럼 엄마에게 달라붙는다. 물론 그런 상황이 아빠가 가장 힘들어 하는 순간이기도 하다. 어쨌거나 엄마, 아빠가 다 있어도 아빠 혼자 아기를 보아야 하는 상황이 생기게 마련인데, 그런 순간에도 딸은 무자비하게 엄마를 향해 가기 때문이다. 아빠와 딸만 있을 때보다 두 배, 아니 서너 배는 힘들다. 아빠와 오랜 시간 함께 지내면서 나름의 유대를 쌓았음에도 이러는데, 만약 아빠와 엄마의 역할이 반대였다면....... 이 아빠는 그런 상황, 생각하기도 싫다.
여하간, 우리 딸은 여전히 놀고 싶으면 아빠, 쉬고 싶으면 엄마 또는 흥분하고 싶으면 아빠, 차분해지고 싶으면 엄마 쪽으로 간다. 음, 그러니까 아빠는 딸을 안아 올려서 돌리고, 올라갔다가 내려갔다가, 서로 잡았다가 잡혔다가 하면서 노는 데, 엄마는 주로 책을 읽어주거나 장난감을 흔들어 주거나 한다. 딸의 입장에선 입맛대로 고르면 되는 셈이다. 말하자면, 아빠도 분명한 용도가 있는 셈이다.
요즘 들어 우리 딸은 제 욕망을 인지하기 시작한 것 같다. 그렇다보니 ‘요구’가 꽤 구체적이다. 예전 같았으면 그냥 ‘놀고 싶다’만 있었는데, 요즘은 ‘00로 놀고 싶다’ 쯤 된 것이다. 술래잡기(비슷한 것)을 할 때면 아빠가 숨으면서 놀이가 시작되곤 했는데, 요즘은 딸도 (타조처럼 얼굴만 숨기기는 하지만) 숨곤 한다. 그러니까 ‘술래잡기(비슷한 것)’을 하자는 뜻이다. 또는 놀고 싶은 인형이나 장난감을 가져와서 아빠의 턱밑에 들이밀기도 한다.
놀이뿐이 아니다. 엄마를 찾는 행동도 몹시 구체적이 되었다. 엄마가 출근한 어느 날 오전이었다. 아침도 먹었고, 한 시간쯤 구르면서 놀았으니 이제 오전 낮잠을 자면 딱 좋을 시간이었다. 원래 아침잠이 많은 아빠는 그 틈에 아기와 함께 자곤 했다. 그런데 그날따라 딸이 잠들지 않았다. 아빠는 기다리다, 기다리다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잠에 몸을 내주고 말았다. 잠깐 잠이 들었을까, 번쩍, 눈앞에 섬광이 튀었다. 그렇다. 우리 딸이 자는 아빠를 때린 것이다. 아빠의 스마트 폰으로. 그러면서 ‘엄마, 엄마’ 한다. 말인 즉 그만자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달라는 의사표시였다.
아빠는 화가 나기도 했지만, 너무 당황스러워서 약 2, 3초간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둥대다가, 정신을 차리고는 준엄하게 딸을 꾸짖었다. "너 이놈 아빠를 때리면 안 돼!" 하고 말이다. 그리고 우리 집의 훈육 매뉴얼에 근거해 베란다 창문 앞에 마련된 징벌 구역에 1분간 격리조치(?) 하였다. 물론 아빠가 그렇게 해도 딸의 반응은 엄마에게 훈육받을 때와는 사뭇 달랐다. 울지도 않고, 떼도 안 쓰고 이게 무슨 징벌이냐는 듯 웃으며 그 구역을 벗어나 버렸으니 말이다. 물론 아빠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정해진 시간 동안 졸졸 쫓아다니는 딸과 눈도 마주치지 않았고, 말도 건네지 않았다. 그러는 순간에도 아빠는 딸이 불쌍하고, 가엽고, 막 그래서, 흑 몹시 어쩔 줄을 몰라 했지만, 우리 딸이 훌륭한 인격체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에 겉으로 티는 내지 않았다(고 믿고 있다).
그런 시간들이 매일매일 쌓이다 보니 요즘 들어 부쩍 (말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딸과 인간 같은 관계가 된 듯하다. 아빠가 잠깐 나가면 아빠를 찾는다고도 하고, 밥하고 똥 치우다 지친 아빠가 거실 바닥에 널브러져 있으면 불현듯 다가와 뽀뽀를 하기도 하고 그런다. 물론 아빠는 그런 순간마다 녹아 흘러 버릴 것 같다.
7월10일 우리 가족은 일명 쿠바 이모(『뉴욕과 지성』의 저자 김해완 선생님의 별칭)의 북콘서트에 다녀왔는데, 가는 길에 딸의 짐을 싸면서 묘한 자신감 같은 게 마음속에서 일었다. 요약하자면 이런 거다. ‘장난감 같은 걸 굳이 가져가야 하나, 아빠가 있는데?’ 그러니까 아빠는 우리 딸의 장난감이자, 요리사이며, 동시에 선생님도 되고 운전기사도 되는 뭐 그런 다양한 용도를 가지고 있다. 아빠는 지난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우리 딸에게 이런 존재가 된 것이 뿌듯하고 만족스럽다. 덕분에 인생이 몹시 충만해진 느낌이다. 아마 딸이 커가면서 계속 변화해 갈텐데, 아빠가 기꺼이 그 과정들도 가뿐히 넘어가길 바란다. 그러자면 매 국면마다 변신을 거듭해야지 않을까 싶다. 용도의 다변화와 존재의 변신이 하나의 능력이라면, 아빠는 딸 덕분에 꽤 유능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고맙다.
_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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