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왕을 정하는 하늘의 뜻? 공자가 말하는 천명이란


귀신① - 제사의 정치성




주변의 누군가가 귀신을 본적이 있다고 하면 여러분은 뭐라고 하실 텐가? 아마도 헛것을 보았다고 하실 분이 많을 것이다. 귀신을 보았다는 사람은 귀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이고, 헛것을 본 것이라고 타박하는 사람은 귀신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상통하는 점이 있으니, ‘보인다’는 것을 근거로 삼고 있다는 점이다. 한 사람은 보았기 때문에 존재한다고 말하고, 또 다른 사람은 귀신은 존재하지 않기에 볼 수 없는 것이라 주장한다. 유가(儒家)에서는 귀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을까? 중용(中庸)에는 귀신에 대해 말한 장(章)이 있다. 일명 귀신장이라고 하는 16장인데, 이로부터 2가지의 서로 다른 주제를 이야기 해 보고 싶다. 하나는 제사의 정치적인 의미에 대해서이고 다른 하나는 귀신과 과학에 대해서이다. 이번 연재에서는 제사의 정치성에 대해 생각해 보자. 




『논어』 술이편에는 “공자는 괴이한 것과 용력(勇力)을 쓰는 것과 어지러운 것과 신(神)을 말씀하시지 않았다 [子 不語 怪力亂神]”라는 구절이 있다. 공자는 제자들에게 귀신을 말하는데 신중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 공자는 번지(樊遲)라는 제자가 앎(知)에 대해 묻자,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한다면[敬鬼神而遠知](知)이라 할 만 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는 귀신은 그 존재를 부정할 수 없으나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는 말로 읽힌다. 이 두 이야기에서 모두 공자는 귀신에 대해 말을 아끼며 조심스런 태도를 취한다. 그런데 중용에서 인용되는 공자의 말은 좀 다르다. 공자는 작심하고 귀신을 이야기 하고 있다.


공자가 말씀하셨다.

子曰 (자왈)

귀신의 덕됨이 성대(盛大)하도다

鬼神之爲德(귀신지위덕) 其盛矣乎 (기성의호)

보려하여도 보이지 않고, 들으려 하여도 들리지 않으나, 만물에 깃들지 않은 곳이 없다.

視之而弗見(시지이불견) 聽之而弗聞(청지이불문) 體物而不可遺(체물이불가유)


중용 16장의 첫 부분이다. 공자가 귀신의 존재를 말하는 기준은 지금의 우리처럼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이 아니다.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지만 귀신은 만물에 깃들어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문장이 좀 뜬금없다는 느낌이 든다. 공자는 기원전 500년 사람이고, 그 당시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이 귀신이 있다고 믿고 있었을 것이다. 특히 고대 중국에서는 군주가 제사장을 겸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새삼스럽게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지만 귀신은 만물에 깃들어 있다는, 그 당시로는 당연했을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


천하의 사람들로 하여금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옷을 갖춰 입고 제사를 받들게 하니,

使天下之人 齊明盛服 以承祭祀 (사천하지인 제명성복 이승제사)

크고 넓은 기운이 가득하여 위에 계시는 듯, 좌우에 계시는 듯하다.

洋洋乎如在其上 如在其左右 (양양호여재기상 여재기좌우)

시에 이르기를

詩曰 (시왈)

신이 이르는 때는 알 수 없으니 어찌 게을리 하여 공경치 않을 수 있으리요

神之格思 不可度思 矧可射思 (신지격사 불가탁사 신가역사)

은미함이 드러나니 진실함이 가려질 수 없는 것이 이와 같다.

夫微之顯 誠之不可揜 如此夫 (부미지현 성지불가엄 여차부)



이 구절은 마치 체험에서 우러나온 듯, 제사가 엄숙히 거행되는 가운데 귀신이 강림하는 모습을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공자는 제사의 실질은 귀신을 공경하고 섬기는 것이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역시 그 당시로는 당연한 말일 것이다. 당연한 말을 새삼스레 꺼내는 공자의 기획은 무엇일까?


나는 여기서 공자의 정치학을 읽어보려고 한다. 당시 천자의 나라는 주나라다. 원래 은(殷)의 제후국이었던 주(周)나라는 무왕 때에 이르러 은나라를 멸망시키고 새로운 왕조를 세우면서 그 명분으로 천명(天命)을 들고 나왔다. 미셀 푸코가 분석했듯이, 군주제의 주권 권력은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절대적 권력이지만 또한 쉽게 바뀔 수 있는 권력이기에 언제나 권력의 표식을 찾는다. 서구에서는 대개 신권이나, 정복전쟁, 혹은  신하들의 충성맹세가 그 표식이다. 그런데 주나라는 정복전쟁을 벌였으되, 힘을 권력의 표식으로 삼은 것이 아니라 천명(天命)을 그 표식으로 삼았다. 그래서 천자는 해마다 하늘과 땅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고, 덕업을 쌓아 왕권의 기틀을 마련한 조상들을 추존하여 제사를 배향한다. 이것은 오직 천자만이 올릴 수 있는 제사의 예이고, 권력의 위계에 따라 제사의 예절이 엄격히 구분되어 있었다. 따라서 제사의 엄격한 예절은 그 자체로 권력관계에 대한 표식으로 기능했다. 


하지만 제사는 단지 권력의 표식으로만 기능하는 것이 아니다. 제사의례는 화려하고 장엄한 스펙터클이다. 그래서 의례의 거행은 그 자체로 권력을 현시하는 효과를 가진다. 말하자면 권력자의 입장에서 제사는 권력의 표식이자, 권력의 현시라는 정치적인 의미를 가진다. 그는 제사의 엄격한 예절과 장엄하고 화려한 스펙터클을 통해 권력이 절대적으로 자신에게 있음을 드러낸다. 하지만 공자의 시대는 절대적 주권권력을 정당화해주는 표식은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주나라는 쇠퇴하여 유명무실하고 강성한 제후국들이 제사의 예(禮)를 위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공자의 나라인 노나라에서는 대부 계손씨가 자신의 집 정원에서 천자만 할 수 있는 팔일무(八佾舞)를 추게 해서 권력을 과시했고, 노나라 제후는 천자의 예(禮)로서 태산에서 제사를 지냈다.(『논어』, 「팔일편」) 위계에 따른 엄격한 예가 지켜지지 않는 것은 주권 권력의 정당성을 말해주는 표식이 퇴색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그러면 남은 것은 권력의 현시로서의 의례뿐이다. 당시의 대부들과 제후들은 저마다 가장 높은 등급의 의례로서 자신의 권력을 과시했다. 


그렇다면 공자는 제사에 귀신이 강림한다는 것을 말함으로써 쇠퇴일로에 있던 주왕조의 권력의 정당성을 회복시키려 했던 것일까? 죽간을 묶은 가죽 끈이 세 번이나 닳아 끊어지도록 주역(周易)을 공부한 공자가 주(周)왕조가 영원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주역에 따르면 오직 변치 않는 것은 변한다는 사실 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공자가 귀신의 강림을 말하면서 다시 제사의 실질을 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사가 귀신을 모시는 것이라는 것은 당시에는 동리의 코흘리개도 아는 사실 아니었던가?


공자는 주왕조의 권력의 정당성을 회복시키려 했던 것일까?


주권권력이 권력의 표식을 만들고, 화려한 스펙터클로 자신의 권력을 과시하고자 하는 것은 그 권력이 절대적으로 보이지만 쉽게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권권력은 쟁취한 권력을 보전하기 위해 정당성의 표식을 만들고, 권력을 현시하는데 몰두한다. 위태로운 권력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인 셈이다. 하지만 그런다고 권력이 지켜질까? 공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권력은 안간힘을 써서 붙잡는다고 붙잡아지는 것이 아니다. 공자는 주나라가 설정한 천명(天命)이라는 표식을 그 이상적인 경지로까지 밀고나간다. 하늘이 왜 주(周)왕조에게 천명을 주었는가? 무왕의 조상들이 복을 쌓았고, 마침 은나라의 주(紂)왕이 민심을 잃었기 때문이다. 천명은 주(周)나라의 조상들이 복을 지은 것에 대한 일종의 보답이지만, 민심을 잃지 않은 한에서만 유효한 것이다.


시에서 말하기를

詩云(시운)

은나라가 민심을 잃지 않았을 때에는 

殷之未喪師(은지미상사)

상제와 짝할 수 있었다.

克配上帝(극배상제)

마땅히 은나라를 거울로 삼을지니,

儀監于殷(의감우은)

천명을 보존하기는 쉽지 않다 하였으니,

峻命不易(준명불이)

백성을 얻으면 나라를 얻고

道得衆則得國(도득중즉득국)

백성을 잃으면 나라를 잃음을 말한 것이다.

失衆則失國(실중즉실국)  

- 『대학』


이 문장은 『대학』에 실려 있는 구절로, 주나라 왕실에서 조상신들에게 제사를 드릴 때 항상 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시는 말한다. ‘멸망한 은(殷)왕조도 한때는 상제와 파트너가 되어 천하를 다스렸다. 그러나 민심을 잃은 까닭에 나라도 잃었다. 후손들은 은나라를 똑똑히 보아라. 너희도 까딱 잘못하면 은나라 꼴 당할지니.’  공자가 제사에서 귀신의 강림을 강조하는 이유는 권력의 현시라는 당대 제사의 정치적인 의미를 바꾸기 위해서이다. 제사에 정말 귀신이 강림하다면 제사의 주인공은 권력자가 아니라 귀신이다. 강림한 귀신은 권력자에게 권력을 줄 수도 있고, 회수해 버릴 수도 있다. 귀신이 권력자에게 말한다. ‘권력의 표식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백성을 얻으면 나라를 얻고 백성을 잃으면 나라를 잃는다.’ 민심을 얻는 한에서만 천명은 주어지는 것이고, 조상신들은 그 후손들을 보우할 수 있다. 공자가 제사의 귀신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권력은 권력자의 힘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백성에게서 나온다는 사실이다. 주(周)의 힘이 아무리 강성했어도 은나라 주(紂)왕이 민심을 잃지 않았으면, 천하를 얻을 수는 없었다. 주(周)가 강성할 때에는 이 이치를 잘 알았지만, 이제 힘만 난무하는 어지러운 시대가 되었다. 잠시 동안은 힘으로 천하를 장악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민심을 얻지 않는다면 그것을 보존하기는 쉽지 않다. 절대 권력인 군주조차도 백성이 지지하지 않는다면 그 권력은 보장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사는 권력자에게 권력의 주인은 민심이라는 것을 세상에 공표하게 하는 정치적 의례다. 이것이 공자가 작심하고 귀신에 대해 말한 이유일 것이다.



글_최유미



설정

트랙백

댓글

  • 명자바라기 2016.10.02 12:37 답글 | 수정/삭제 | ADDR

    제사장이 권력의 주인이라고 세상에 공표하지만그 권력은 백성이 준다는 말씀이구먼요..예나 지금이나 국민주권을 외치는데 주인인지는 심히 모르겠으니 씁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