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신체, 국가를 그리다 - (2)

신체, 국가를 그리다 - (2)


상하의 혈맥이 일철(一徹)함이 이 일신동체도와 같다.

가이에다 노부요시, <인체배당도>(1889)

 

 

 

 


서양 중세의 유기체론과 동양 전통의 신체은유

12세기경 들어 많은 정치이론서에서 국가를 유기적 질서를 가진 것으로 유비하는 언급들이 출현한다. 존 솔즈베리(John of Salisbury), 크리스틴 드 피장(Christine De Pizan), 마르실리우스(Marsilius) 등이 대표적이다. 인문주의자 겸 정치이론가 존 솔즈베리는 이 신체 비유를 사회조직에 적용하여 구체적인 정치이론으로 발전시킨 최초의 인물이었다. 정치가의 책이라 번역되는 『폴리크라티쿠스』는 독자들로 하여금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성서, 고전, 우화 등 다양한 원천으로부터 예화를 적극 활용했다. 당시의 정치서들이 군주의 행동을 위한 군주의 거울론적 성격을 강하게 띄었다면, 솔즈베리는 앞서 등장한 이솝의 ‘배의 우화’를 비롯해 국가를 하나의 신체로서 유비해 어떤 국가-신체를 구성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다. 그에게 국가라는 신체는 영혼, 머리, 심장, 갈비뼈, 눈, 귀 및 혀, 위장, 손과 발로 구성되며, 이는 성직자, 군주와 원로원의 심의기관, 재판관과 주지사 등 집행기관과 농민으로 대변된다. 국가란 자연의 질서를 모방한 일종의 유기체로, 이 속에서 각자는 직책과 기능은 다르지만 공공의 이익을 위해 상호의존과 호혜의 관계에 놓인다. 인문주의자 겸 정치이론가 존 솔즈베리는 이 신체 비유를 사회조직에 적용하여 구체적인 정치이론으로 발전시킨 최초의 인물이었다.

 

몸의 지배자인 영혼은 모든 것에 대한 지배권을 가진다. 그리하여 우리의 저자(플루타르크)가 종교의 총책임자로 부른 사람(성직자)들이 몸 전반을 주관한다. .. 공화국이라는 몸에서 머리의 지위는.. 군주가 차지한다. 심장의 지위는 선한 일과 악한 일을 시작하는 원로원이 차지한다. 눈, 귀 및 혀의 직무는 주의 재판관과 주지사가 담당한다. 손은 관리와 군인에 해당된다. 군주를 항상 보필하는 사람은 갈비뼈와 흡사하다. 재정 관리와 재정 관리자는 위장에 비유된다. .. 농민은 항상 대지에 붙어있는 발에 유비되며, 머리의 매우 각별한 보호와 통찰을 필요로 한다.

─John of Salisbury, Policraticus, Ⅴ,ⅱ, p. 67.


​성직자는 영혼처럼 몸에 대한 모든 지배권을 가지지만 이는 종교적 차원으로, 세속적인 일은 머리인 군주가 담당한다. 그리고 중세 의학자들이 심장을 지혜의 상징으로 간주했듯이 삶의 지혜를 바탕으로 한 원로들이 심장의 역할을 담당한다. 그리고 갈비뼈는 군주의 측근으로 군주를 보필하는 지식인들이다. 인체의 감각기관인 눈,코,혀 등은 정책집행기관으로 눈은 재판관, 귀와 혀는 주지사에 해당한다. 위장은 소화기관으로 재무관리를 맡으며, 손은 무장한 군인과 비무장한 관리들로 외부로부터 적을 방어하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한다. 마지막으로 생산에 종사하는 농민과 수공업자는 발이다. 이 때문에 그의 사상은 기존의 위계적 정치 질서를 고착화시키고, 신분간 이동을 차단하는 보수적 이론으로 평가되기도 하지만 여기서 발은 단순히 몸을 지탱하는 도구적 차원만은 아니다. 생산계층은 국가 유기체에 걸쳐 가장 유용하고 유익한 존재로서, 사회를 유지시키는 구성원이다.


이러한 기능적 측면의 강조는 목적론적(teleological) 신체론의 영향 하에 있다. 중세를 지배한 갈레노스의 의학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갈레노스는 신체의 다양한 부분의 크기가 다른 것은 자연이 그들의 기능들의 유용성에 맞게 크기를 정해주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어떤 부분들이 신경을 거의 갖고 있지 않은 것은 그것들이 그런 민감성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갈레노스에게서 기능들은 목적론적 세계관 속에서 배열되어 있으며 사회적 정의라는 개념 속에서 위계적으로 할당되어 있다. 그리고 이제 이러한 각각의 기능을 조정하고 관리할 머리로서 군주라는 모습이 등장한다. 주지하듯이 솔즈베리의 이러한 기관학적(organologial) 정치체 발상은 유기체적 사고의 고전이 되었다. 그가 정치체(body politic)에 관한 새로운 유비를 가지고 온 것은 아니지만, 기존의 은유들을 섞어 새로운 정치적 함의를 탄생시켰던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확실히 가이에다의 신체유비는 확실히 서양 중세 시기의 솔즈베리의 그것과 유사한 점이 많다. 각 기관들을 신체에 비유한 것이나 인민을 다리에 놓고 인민의 강조점을 둔 것 역시 그렇다. 그러나 이것이 가이에다가 서양의 중세 유기체설에 영향을 받았다고 단언할 논거가 될 수는 없다. 이러한 기관학적 비유는 서양 중세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동양 전통 사상에서도 서양의 중세 유기체설과 유사하게 신체의 각 장부나 부위가 국가를 비유하는 논리가 있었다. 즉 임금은 우리 몸의 심장이고, 이 심장을 돕는 기관들인 간신비폐는 백관이라거나, 신(神)을 임금으로, 혈(血)은 신하로, 기(氣)는 백성으로 비유하고 가슴과 배는 궁궐로 관절은 백관으로 비유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는 어떤 논리적 배경에서 나온 것일까? 기존연구들은 이것이 지배체제를 정당화하는 논리, 즉 위계적 상하 질서를 상정한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국가유비를 정치적인 상황과 연결해 본다면 이 말은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한대 중앙집권화된 정치상황하에서 왜 ‘오행(五行)’체계가 체계화되었는지를 설명해 줄 수 있는 그럴듯한 가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몸에 대한 비유를 상하질서로 유추하는 것은 서구적 관념으로 그것을 덧씌운 것이기도 하다. 앞서 『춘추번로』에서 이어지는 대목은 다음과 같다.

성인을 닮으려고 하고 현인을 가까이 하려고 하는데 이것은 신명(정신)이 모두 심에 집중되어 있는 것과 같다. 위와 아래가 서로 일을 주고받는데 이것은 팔다리와 몸이 도와가서 움직이는 것과 같다[上下相承順 若肢體相為使也]. 은혜를 두루 베푸는데 이것은 원기(元氣)가 피부, 털, 살결에까지 골고루 퍼지는 것과 같다. 백성들이 모두 제자리를 잡아가는데 이것은 혈기(血氣)가 순조롭고 숨소리가 골라서 몸이 아픈 곳이 없는 것과 같다. 의도적으로 정책을 펼치지 않으나 공동체가 태평해지는데 이것은 신기(神氣)가 저절로 기의 바다와 소통하는 것과 같다.

─『春秋繁露』, 「天地之行」


​동중서는 위와 아래가 서로 승순(承順)하는 것은 팔다리와 몸이 서로 사역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이때 원기와 혈기, 신기가 통하는 것이 정치체가 태평해지는 방법으로 제시된다. 그는 군주가 명민하면 신하가 군주의 은공을 입게 되는데 이것은 심이 신령하면 몸이 온존하게 유지되는 것과 같고, 신하가 출중하면 군주가 그 혜택을 보게 되는데 이것은 몸이 편안해지면 심이 안정되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또한 윗사람이 아둔하면 아랫사람이 고통을 당하게 되는데 이는 귀가 밝지 않고 눈이 정확하지 않으면 손발이 다치게 되는 것과 같다. 그리고 신하가 충직하지 않으면 군주가 멸망을 당하게 되는데 이것은 몸을 함부로 제멋대로 놀리게 되면 심이 그것으로 인해 다치게 되는 것과 같다. 이렇기 때문에 군주와 신하 사이의 예는 심(心)과 몸[體]의 사이와 같다고 그는 말한다. 그렇다면 이때 심과 몸 사이의 관계를 단순히 상하의 지배-복종관계로만 한정할 수는 없다.

이는 국가와 신체사이의 유비관계라기보다 그것은 둘 다 대우주의 조그만 버전이라는 점에서 공통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불위의 『여씨춘추(呂氏春秋)』는 이러한 지배의 논리가 어떻게 대우주의 논리와 연결되는지를 보여준다.

하늘의 원리는 둥글고 땅의 원리는 모나거니와 성왕(聖王)은 이를 본받아 위아래의 구별을 정하였다. 무엇 때문에 하늘의 원리가 둥글다고 말하는가. 정기(精氣)는 올라갔다 내려왔다 하며 순환하면서 반복해 뒤섞여 한 군데 머무르는 법이 없다. 그러므로 하늘의 원리는 둥글다고 말한 것이다. 무엇 때문에 땅의 원리는 모나다고 말하는가. 만물은 각기 종류를 달리하고 형태도 다르지만 모두들 맡은 바 직분이 있어서 서로 바꿀 수 없다. 그러므로 땅의 원리는 모나다고 말한 것이다. 군주는 둥근 [하늘의 원리] 관장하고 신하는 모난 [땅의 원리를] 지켜 군주의 원리와 신하의 원리가 서로 뒤바뀌지 않으므로 그 나라가 번창하게 된다.

─『呂氏春秋』


​군주는 둥근 하늘의 도를, 신하는 모난 땅의 원리를 지켜 각자의 원리를 다한다. 따라서 “제왕에게 정해진 거처가 없다. 거처가 있다면 거처를 포기하였다는 것이나 다름없다(帝無常處也 有處者乃無處也)”는 황제의 말은 항시 움직여서 멈추지 않는 것을 의미하니 이것이 둥근 순환의 원리이며, 사람의 몸에 아홉 개의 구멍이 있는데 하나라도 막히게 되면 다른 여덟 개의 구멍이 부실해져 몸이 무너지게 되는 것처럼 제왕은 정체가 계속되어 패망에 이르지 않도록 둥근 순환의 도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기가 인체를 도는 것처럼 군주의 명령이 국가를 돌게 하는 것이 원의 원리이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국가와 인체 사이의 기능적 유사성이 아니라 정치적 영역과 신체적 영역, 이 둘은 모두 대우주를 구성하는 논리의 체화된 것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순환의 논리가 치국(治國)과 치신(治身)의 핵심적인 내용이 된다.

인체제일도와 인체제이도

다시 가이에다의 그림으로 돌아가보자. 앞서 보았듯이 가이에다의 논의가 독일의 유기체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거나 혹은 의도적으로 왜곡해서 받아들였다고 평가된다. 즉 근대 일본에서 슈타인의 국가학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국가의 인격화에 대한 이해가 부재했던 상황에서 이를 ‘인격’이 아니라 단순한 ‘인체’로 사유했다는 점에 기인한다고 지적된다. 근대 정치체에서 인격이 ‘의제적 신체’라면 이것이 ‘천황의 신체’로 동일시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입헌군주제를 통해 군주를 견제하고자 했던 독일식의 유기체론을 천황 중심의 수직적인, 흡사 서양 중세식의 유기체의 비유와 유사한 방식으로 이해하고 유통시켜버렸는데, 이는 그들의 착각 내지 의도적 곡해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서 유기체가 신체로서 인식된 것은 단순히 신체와 인격의 구별에 관한 지식의 결여만으로 돌릴 수만은 없다. 애당초 독일에서 유기체에 관한 논의가 단일한 정신의 그릇으로서 국가를 요청한 은유였던 점을 감안한다면, 메이지 헌법의 기초자나 해석자들은 이러한 논의를 보면서 정신의 영도자로서 천황을 위치지어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다. 따라서 이는 국가가 천황을 머리로 하는 신체이지 않으면 안 될 필요성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또 하나 이를 인격에 대한 이해의 부족이라고 해도 이러한 이해에 도달하게 된 원인을 살펴보아야 한다. 따라서 우리는 가이에다가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슈타인의 논의를 자기 식으로 해석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이는 가이에다의 다른 글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그가 메이지헌법의 시행, 제국의회의 개설을 목적에 둔 1890년 5월에 의회대책으로서 제언을 정부에 하고 있는데 여기서 또 다른 신체 유비도가 등장함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제언의 요점은 국가유기체설에 기초해, 천황과 국민이 ‘동일체(同一體)’로 단일의 정신을 형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주장이었다. 이 글에서 역시 두 가지의 신체도가 등장한다. 하나는 다리가 삐쩍마른 모습이고, 다른 하나는 다리가 튼튼해 균형잡힌 모습이다.

 

 

인체제일도



인체제일도는 신체가 잔약(孱弱)하고 지려(志慮)가 천박한 인체이다. 이는 머리[頭]와 배[腹] 양부가 비대하여 언뜻 보기에는 꼭 건전한 신체로 보인다. 머리[頭部]가 활대(濶大)함은 지려의 여유가 있는 것처럼 보이고, 복부(腹部)의 비대함은 생력(生力)이 강건한 것처럼 보이고, 팔[手腕]의 영대(逞大)함은 역량이 발군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한 번 옷을 벗겨 명찰(明察)한 의사의 진단을 받아보면 머리의 활대함은 뇌장(腦漿)이 충만한 것이 아니라 뇌충혈(腦充血)의 증상이며, 복부의 비대함은 위장장애[膓胃不具]이자 소화장애[食物不消化]의 증상이며, 팔의 영대함은 동작[座臥]이 적당함을 얻지 못해서 수종(水腫)이 발생한 증상이며, 족부의 여윔[痩小]은 전체의 영양이 순환되지 않음으로 해서 혈맥의 운행이 좋지 않아 혈액이 위로 올라[上騰] 점차 다리[足脚]가 여위고 마르고 쇠약[痩枯衰弱]해진 것으로, 한번 양생[加養]을 잘못하면 끝내 일어나지 못하는 증상을 갖게 된다. 즉 평소의 거동을 듣자니, 음식을 먹는 양은 과다하지만 기력이 쇠약해서 지려가 극도로 망망(茫茫)해지고 걷고자 해도 다리에 힘이 없어서 전체를 받칠 수 없다.

─海江田信義, 『私議考案』(1890), 84쪽

인체제이도

 두 번째 그림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인체제이도는 신체가 무병하고 건전해 지려(志慮)가 심원한 인체이다. 즉 머리보다 복부, 족부에 이르러 비육이 만만(滿滿)하고, 근골이 강견해 불구의 결처(缺處) 없이 항상 동작이 민첩해 신체의 영양이 적응해 지려가 따라 증장함으로써 진취의 기력이 두루 왕성해진다.

─海江田信義, 『私議考案』(1890), 85쪽


​이 두 그림에서 비교되는 것은 저자도 밝히고 있듯이 인민의 중요성이다. 앞서 슈타인의 강의를 들으면서 그렸던 가이에다의 그림과 인민이 다리를 차지하고 있는 점은 동일하다. 하지만 이 인체도에서는 보다 직접적으로 다리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따라서 가이에다의 그림에서 인민을 다리에 위치시켰다는 것만으로 인민을 단순히 포섭의 대상으로만 여겼다고 평가하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다. 가이에다의 논리가 정부와 인민의 관계를 단순히 수직적이거나 동원 내지 포섭의 대상으로서만 본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오히려 그의 신체정치를 보았을 때 다리에 대한 강조는 머리나 팔다리, 복부의 중요성에 비해 동등하게 혹은 상대적으로 더 많이 강조되고 있다. 물론 인민이 다리가 신체를 지탱하듯이 국가를 지탱한다거나 인민이 있어야 정부가 있다는 말은 슈타인의 견해와는 크게 다름을 알 수 있다. 오히려 이는 명백히 슈타인의 논의와는 정반대에 서있음을 알 수 있다.

가이에다는 전통적인 방식과 유사한 논리구조 속에서 인민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이를 인민의 중요성을 강조한 전통적 위민사상의 영향으로 해석할 수 있을지 모른다. 이처럼 전통적인 논리에 기반한 그의 사상은 국가라는 정치체의 흥망성쇠에 대해서 다루고 있는 부분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는 국가라는 정치체의 질병의 원인은 바깥이라기보다 안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신체가 감기가 걸릴 때 외사, 즉 바깥의 나쁜 기운에 의해 질병에 걸린다 하더라도 이것은 결국 나에게 틈새가 있어 걸린다는 발상이 그것이다.

즉 안과 바깥의 구도에서 몸 내부의 문제에 초점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국가의 안녕과 인민의 번영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안을 정비하고 밖을 방어하는 것인데, 이때 중요한 것은 안을 정비하는 데 있다. 이처럼 가이에다는 국가의 쇠망이 밖으로부터 온다 해도 이는 결국 자신에게 틈새가 있어 이를 틈타는 것이라고 보는 전통적인 관점을 취한다. 이는 외폭을 방어하지 못할 때 역시 그 원인을 깊이 탐색하면 모두 내부의 불쾌함 때문에 외기로부터 쉽게 침입당하는 것이라는 발상에서 비롯된다.  

 

글_김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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