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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뉴욕 : 도시와 지성

‘노바디’의 블루스 : 제임스 볼드윈과 뉴욕

by 북드라망 2017. 4. 28.

‘노바디’의 블루스 : 제임스 볼드윈과 뉴욕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이 익숙한 문구는 원래 괴테에게 특허권이 있다. 민족국가(nation-state)끼리의 전면전이 시작되던 19세기 유럽에서 괴테는 다양성을 긍정해야 한다는 의미로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는 말을 남겼는데, 한 세기 후에 후발주자 민족국가로 등장한 대한민국이 이를 냉큼 카피한 것이다. 정말 그런 것인지 아니면 그냥 그렇다고 믿고 싶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괴테의 ‘세계적’이라는 단어를 ‘세계 상품’이라는 말로 오해하는 것 같지만…….


지아장커 <세계>


그런데 나는 오늘날 이 문구가 이상한 방식으로 실현되었다고 생각한다. 지아장커의 영화 <세계>를 본 적 있는가? 시골에서 북경으로 상경한 젊은 두 남녀는 전 세계 유명 건축물을 축소하여 전시해놓은 ‘세계 공원’에서 일한다. 주인공들은 오늘은 인도의 전통 춤을 추고 내일은 일본의 전통 춤을 추며 돈을 벌지만, 정작 그들의 일상에서 ‘중국 문화’는 어디서도 찾아볼 수가 없다. 오직 돈 걱정과 출구 없는 노동, 소통 부재만 있다. 그들이 매일 마주하는 세계의 모습은 아무 의미 없는 기호일 뿐이다. 이 영화는 중국만이 아니라 한국과 전 세계의 공통된 상황을 보여준다. 문화가 빠르게 변하고, 그 변화로 인해 갈등이 생기고, 부모 세대로부터 내 삶의 좌표를 찾을 수 없는 상황. 무엇보다도 내 옆 사람과의 관계가 단절된다는 절망. 큰 그림으로 보자면 한국의 세대 갈등도 지난 500년간 자의든 타의든 벌어진 세계화의 연장선상 아닌가.



뉴욕 출신의 ‘노바디(nobody)


뉴욕은 영화 <세계>의 생생한 실사판이다. 뉴욕 사람들은 차이나타운에서 딤섬을 먹고, 남미 살사 축제를 즐기며, K-Pop 음악을 듣고, 집에 돌아와서 아메리칸 TV쇼를 본다. 그러나 이런 세계성은 지극히 피상적이다. 일상에서 사람들은 아무 의미 없는 기호에 불과한 ‘인종,’ ‘성별,’ ‘국적’에 고스란히 포획된다. 뉴욕에서 조금이라도 살면서 인간관계를 맺어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게 세워진 장벽과 그로 인한 좌절을.


내가 뉴욕에 처음 왔을 때는 미국인 친구를 잔뜩 만들리라 기대했었다. 환상은 환상일 뿐이었다. 돌아갈 날을 받아놓은 지금까지 미국인 친구가 없다. (우스갯소리로 뉴욕에서 미국인 빼고 모두와 친구가 되었다고 말하기도 한다.) 역시 인종과 국적의 장벽은 무시할 수 없는 걸까? 뉴욕을 두고 차별 없는 자유로운 도시라고 하는데, 사실 뉴욕의 자유란 다양성과 무신경을 기묘하게 조합해놓은 것이다. 윤리를 공유하지 못한 각양각색의 사람들을 끊임없이 받아들이고 또 통제하기 위해서, 개인과 개인 사이에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그은 것이다. 이 선을 따라 더 이상 나눌 수 없다는 의미의 ‘개인(individual)’이라는 단위가 생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누가 무엇을 입든, 무슨 말을 하든, 무슨 행동을 하든 신경 쓰지 말자는 사회적 합의도 생긴다. 이 단위는 사회적 불상사를 최소화시키는 방어막일 뿐, 편견 자체를 없애지는 않는다. (이 단위의 평등이 진심으로 실현되는 때는 돈 쓸 때뿐이다. 네가 어떤 인간이든 간에 소비자라면 오케이.)


뉴욕, 다양성과 무신경함의 미묘한 조합



이 뉴욕식 ‘개인의 자유’는 개인의 내면을 자유롭게 하지 못한다. 이 자유가 한계에 부딪힐 때는 바로 사랑할 때다. 살과 살이 맞닿는 관계에서는 더 이상 ‘네 멋대로 해, 나도 멋대로 할 테니’ 라는 쿨한 태도가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뉴욕 가정에서는 한국의 세대 갈등에 못지않은 격렬한 갈등과 드라마가 집집마다 터져 나온다. 나는 이민자 첫 세대인 학교 친구들이 부모님이 강요하는 ‘옛 문화’에 괴로움을 토로하거나, 다인종 커플의 연애가 인종의 편견을 극복하지 못하면서 큰 상처를 받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상대방의 세계관을 이해할 수 없을 때면 의절(義絶)을 각오하고 한바탕 전쟁을 치르거나, 어색하게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번번이 불통(不通)의 좌절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역설 아닌가. 관계는 개인의 자유를 구속하지만, 관계가 없는 개인은 또 무의미하다.


뉴욕에서 살아가는 내 친구들은 다들 자기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한 보따리씩 안고 있다. 그러나 고민의 핵심은 개인이 아니라 관계다. 나는 왜 나를 황인으로 보는 시선에 상처받는가? 황인이 백인보다 열등하게 대접받기 때문이 아니다. ‘황색’이라는 피부가 내 존재에 아무 의미가 없기 때문이며, 이런 무의미한 카테고리를 통하지 않고서는 인간관계를 맺을 수 없기 때문이다. 자유가 넘쳐난다는 뉴욕에서 언제나 자유를 위한 전쟁이 벌어지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뉴욕 한인 타운에서 한국인들끼리 술잔을 기울이며 뉴욕 사회에 속하지 못한 것에 한탄하는 것, 백인의 인종차별을 욕하면서도 흑인을 껄끄러워하는 것, 한국인으로서 자격지심을 부리는 것의 기저에는 살과 살을 맞대고 진솔한 관계를 나눌 사람을 잃어버렸다는 야릇한 상실감이 깔려 있다. 누구도 나의 진솔한 내면을 봐주지 않는다면 나는 진정한 나로서 존재할 기회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나는 남을 통해서만 자신을 만날 수 있으므로. 이렇게, 사람들은 순간순간 뉴욕에서 ‘노바디’로 미끄러진다. 어떤 카테고리(인종, 성별, 국적)에 분류되어도 스스로를 온전히 표현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그러나 이런 왜곡된 카테고리를 통하지 않고는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의미에서.


이 소외를 가장 적극적으로 부추기는 것이 바로 인종이라는 개념이다. 인종은 개인을 ‘노바디’로 전락시키는 오래된 블랙홀이다. 피부 색깔이 옅을수록 자연스럽게 관계를 맺을 수 있고, 반대로 어두울수록 자신을 내보이기 위해 더 많은 장애물과 편견을 넘어야 한다. 그러나 이 블랙홀의 본질을 응시하면서 그 어떤 카테고리에도 속하지 않는 자기만의 내면을 쌓아올렸던 사람이 있다. 이 사람의 목표는 단 하나, 남을 사랑함으로써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인종차별을 극복하는 방법은 “인생에, 그리고 사랑의 ‘지린내’에 예스(yes)라고 말할 의지”[각주:1]를 갖는 것뿐이라고 답했던 자. 그는 소설가 제임스 볼드윈(James Baldwin)이다. 



뉴욕의 사생아


“서양의 사생아(Baster in the West).”[각주:2] 제임스 볼드윈은 아버지를 이렇게 묘사한다. 너무 격한 표현인가? 하지만 이보다 미국 흑인이 자의식을 더 적절하게 표현하는 문장은 없을 것이다. 서양 문명이 개척한 식민지에 노예로 끌려온 자들의 후손. 아프리카로 돌아가기에는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으나, 서양에 완전히 흡수되기에는 여전히 피부색이 다른 존재들. 까만 피부색은 마치 카인의 표식처럼 흑인이 어디를 가든 ‘이방인’이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볼드윈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통째로 출생의 비적통성(illegitimacy)과 연관시킨다. 볼드윈은 1922년 할렘에서 태어났다. 그는 실제로도 사생아였다. 친부는 볼드윈이 태어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홀연히 사라졌고, 어머니는 어린 볼드윈을 자식처럼 길러줄 남자와 만나서 재혼했다. 볼드윈은 이 사실을 17세가 되어서야 알았다. 이 출생의 비밀이 충격적이기는 했지만, 이는 볼드윈이 그 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뿌리 없는 존재’라는 느낌에 마지막 쐐기를 박았을 뿐이었다. 볼드윈의 부모는 남부 출신이었고, 조부모는 노예였다. 고작 한 세대 전에 노예해방을 경험했고, 이제 막 뉴욕 이민자로 정착하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이었다. 이런 집안에서 ‘자유 흑인’의 삶이 과연 어떠해야 하는지 모범을 보여줄 어른이 있을 리 만무했다.


맥도날드 할렘점(?)



이 예민한 영혼의 소년을 교육시킨 것은 할렘이었다. 1930년대 대공황과 1940년대 세계 2차 대전을 거치면서 할렘은 거대한 게토로 변했고, 빈부격차와 인종갈등의 긴장도는 갈수록 심해졌다. 여기서 볼드윈은 자신처럼 못생기고 가난한 흑인은 이 사회에서 ‘노바디’에 불과하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자각했다. 


사실 아버지도 볼드윈 못지않게 예민한 영혼의 소유자였다. 단지 그는 이 예민함을 깨달음으로 승화시킬 기회를 얻지 못했다. 제대로 교육받지도 못하고 스스로를 돌아볼 시간도 없었던 이 남자는 흑인으로서 겪는 절망과 백인을 향한 분노를 모두 교회에서 풀었다. 교회의 목사가 된 아버지는 모든 백인은 악마라고 비난했고, ‘검은 신(神)’이 훗날 이들을 지옥으로 보내며 흑인을 구제할 것이라고 설교했다. 볼드윈도 사춘기 시절에는 아버지 교회에 푹 빠져서 평생을 바치겠다고 맹세하지만,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작가의 길을 걷기로 하면서 교회와 영원히 결별하게 된다. 결별의 이유에는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로 볼드윈은 동성애자였다. 하나님의 법을 따르기에는 몸의 욕망이 너무 솔직했다. 둘째로 아버지의 인종주의적 분노는 양날의 칼이었다. 한(恨)을 푸는 데는 최적화되었지만, 그 아래에는 백인사회를 향한 이룰 수 없는 짝사랑이 깔려 있었다. 이 극도의 애증은 한 사람의 삶을 통째로 망가뜨릴 수도 있었다.


한 번 이 병에 걸리면 결코 근치될 수 없는데, 왜냐하면 이 열병은 즉각적인 경고도 없이 언제든지 다시 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인종 관계보다 더 중요한 것을 망가뜨린다. 살아있는 검둥이(Negro) 중에 이 분노가 핏속을 타고 흐르지 않는 사람은 없다. 단지 그들은 의식적으로 이 분노와 함께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여기에 저항할 것인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할 수 있을 뿐이다.[각주:3]


하지만 어떻게 해야 “의식적으로 이 분노와 함께 살아갈” 수 있을까? 스스로가 “흑인을 이해하지 못하고 내 모든 시간을 그 사실을 잊기 위해 할애하는데, 도대체 어떻게 흑인으로 살아간다는 느낌을 설명할 수 있을까?”[각주:4] 뉴욕은 그에게 ‘흑인’이라는 멍에를 씌우고 수없이 모욕했지만, 볼드윈은 결코 이 카테고리를 자신의 내면과 연결시켜서 이해할 수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리니치빌리지에서 예술가들과 어울리며 작가생활을 시작한 후에도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지독하게 외로웠다. 그곳에서 사귀었던 연인들조차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흑인 섹슈얼리티의 미신”[각주:5]을 볼드윈에게 투영시켰다. 뉴욕에서 머무르면 머무를수록 볼드윈은 ‘사생아’가 되는 기분이었다. 



파리 부랑아의 깨달음


1948년에 볼드윈은 뉴욕을 탈출하기로 결심한다. 탈출 장소는 파리였다. 때는 세계 2차 대전이 끝난 시기였고, 볼드윈의 재능을 높이 샀던 흑인 작가의 거장 리처드 라잇(Ricard Wright)도 이미 파리에 가 있었다. 처음 일 년 간 파리 생활은 환상적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미국인들도 미국 본토보다 인종에 대해 훨씬 느슨한 태도를 보였고, 볼드윈은 수많은 친구들과 그룹을 결성해서 보헤미안 생활을 즐겼다.


그러나 파리가 그의 문제를 몽땅 해결해줄 것이라는 판타지는 금세 깨졌다. 하루는 한 친구가 호텔을 옮기면서 볼드윈을 위해 침대 시트를 벗겨서 가져다주었는데, 파리경찰이 이를 절도라고 선언하고 둘을 감옥에 집어넣은 것이다! 여기서 볼드윈은 뉴욕보다 훨씬 절망적으로 ‘노바디’가 되는 경험을 한다. 당연했다. 그는 뉴욕에서는 최소한 미국인이었지만, 이곳 파리에서는 외국인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볼드윈의 까만 피부는 사진을 찍으면서 놀림거리가 되었다. 파리 경찰이 보기에 볼드윈의 까만 피부는 단지 신체적 특징에 불과했을 뿐, 볼드윈 개인의 인생사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곳에서 볼드윈은 역설적으로 그토록 염원했던 ‘인종과 상관없는 평등한 처우’를 받게 되었다!


모던의 중심에서 이 지하세계는 “흰머리의 늙은 남자가 카망베르 한 조각을 먹으며” 근처에 “서 있는 커다란 구멍 (…….) 공중화장실”이었다. (…….) “내가 내 인생에서 상상했던 것보다 더 낮은 지점에, 내가 그토록 증오하고 또 사랑했던 (…….) 할렘에서 본 어떤 것보다 낮고 먼 지점에” 내려와 있었다.[각주:6]



지하 감옥에서 나온 후 볼드윈은 자살을 시도한다. 미국 바깥의 세상이 ‘흑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미국보다도 더 무심하고 잔인하다는 사실에 너무나 절망했던 것이다.

그러나 자살 기도가 실패로 돌아간 후, 볼드윈은 거꾸로 미국 흑인의 정체성과 그 의미를 깨닫는다. 미국의 흑인은 단순히 모욕당하는 노예의 후손이 아니었다. 미국 흑인의 정체성은 흑인 노예와 백인 노예주가 끊임없이 싸워 온 관계 속에서 형성되었으며, 그 결과로서 미국에서 흑인은 최소한 존재감을 획득했다. 최소한 미국 백인은 프랑스 백인처럼 흑인을 무시할 수는 없게 되었다. “미국 역사에서 쌓아온 비극적이고 집착적인 관계 때문에, 마침내 미국 흑인과 백인은 서로를 부정할 수 없게 되었다.”[각주:7] 마치 싸우다가 정 드는 커플처럼. 몇 세기에 걸친 싸움에서 차마 입에 담을 수 없을 만큼 많은 피가 흘렀지만, 이것도 일종의 고약한 애증이었다. 그렇다면? 인종 문제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 미국이라면, 그것이 해결되는 것도 미국일 터였다. 이 깨달음을 얻은 후에 볼드윈은 정말로 인종과 성별을 넘어서 ‘사랑하는 법’을 개발하기 시작한다.



인종주의는 실패한 사랑이다


볼드윈은 자신을 흑인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작가라고 생각했다. 그의 목표는 ‘흑인’을 위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더 넓은 세계와 연결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만약 시대가 개인의 역할을 선택한다고 본다면 볼드윈의 소명은 단연 인종주의 철폐였다. 그는 관계와 사랑이라는 참신한 방식으로 인종 문제에 접근했고, 그의 작품은 1960년대에 들불처럼 일어난 민권운동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오늘날 인종은 철저하게 사회학적 미신인 것으로 밝혀졌다. 과학자들이 인류의 DNA를 추적해보니 모든 인종은 동아프리카의 한 여성의 자궁에서 시작되었다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백인종, 황인종, 흑인종이라는 단위는 100% 허구다. 황인과 백인의 겉모습 차이는 기껏해야 황구와 백구의 차이에 불과하다. (검은 개를 검은 인간보다 더 너그럽게 여기는 우리의 우스꽝스러운 위선을 생각해보자.) 그러나 ‘인종’이라는 개념이 존재한다면, 그건 인간들이 서로의 피부색에 감정을 투영하기 때문이다. 백인은 흑인의 까만 피부에서 자신의 비인간성을 발견하고, 흑인은 백인의 하얀 피부에 두려움과 모욕감과 비춰본다. 따라서, 인종 문제의 해결은 게토(Ghetto)가 되어버린 감정의 골을 무너뜨리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 다시 말하면 증오를 ‘사랑’으로 전환해야 한다.


미국 흑인은 미국 백인에게 사랑을 가르쳐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이 땅에 도착했을 때부터 그[백인]는 당신[흑인]을 견뎌야 했고, 때로는 당신과 함께 피 흘리며 죽어야 했기 때문이다. (…….) 이것은 결혼이다.” 결혼은 사랑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볼드윈에게 있어서 진정한 사랑—신의 진정한 사랑—은 그가 인생의 재판을 통해 배운 힘이다. “사랑은 전투고, 전쟁이며, 성장이다.”[각주:8]


아, 그러나 오해하지 말자. 볼드윈은 여기서 다시 교회로 돌아가려는 것이 아니다. 볼드윈이 말하는 사랑은 아름답지 않다. 백인을 쥐어 패는 한이 있더라도 흑인의 존재감을 각인시키고, 흑인이 백인 옆에서 자살충동과 살인충동을 이겨내는 것까지 다 사랑으로 친다. 볼드윈은 이것이 리얼리티 속 ‘사랑의 지린내(love of stink)’라고 친절히 설명해준다. 그가 이 ‘지린내’를 어떻게 작품 속에서 정의하고 그려냈을지는 다음 편에서 계속 탐구해보자.


글_김해완

  1. David Leeming, , Arcade Publishing, 1994, loc.2775 [본문으로]
  2. David Leeming, , Arcade Publishing, 1994, loc.672 [본문으로]
  3. 재인용, David Leeming, , Arcade Publishing, 1994, loc.1302 [본문으로]
  4. 재인용, David Leeming, , Arcade Publishing, 1994, loc.1082 [본문으로]
  5. David Leeming, , Arcade Publishing, 1994, loc.910 [본문으로]
  6. David Leeming, , Arcade Publishing, 1994, loc.1403 [본문으로]
  7. David Leeming, , Arcade Publishing, 1994, loc.1217 [본문으로]
  8. David Leeming, , Arcade Publishing, 1994, loc.3198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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