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인터뷰집 『함께 살 수 있을까』 편집자 후기
안녕하세요. 북드라망에서 프리랜서+인턴=프리인턴(?)으로 활동하고 있는 박단비입니다. 북드라망과 저와의 인연은 작년 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당시 북드라망의 신간 『니체 사용설명서』(안상헌 지음) 발간을 축하하기 위한 북토크에서 친구와 한 코너를 진행했었는데요, 북드라망 대표님이 그때 저의 존재를 알게 되셨고, 이후 편집 일을 배워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주셨습니다. 평생 책 만드는 일을 하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고, 편집자라는 직업에 대해 ‘다른 사람의 글을 봐야 한다니, 엄청 똑똑한 사람만 할 수 있는 것 아냐?’ 하는 오해도 있었답니다. 이렇게 편집자라는 직업에 대해 아는 것도 거의 없고, 잘 해나갈 수 있을지도 더욱 알 수 없는 상태였으나, 어렸을 때부터 해온 유일한 저의 취미가 책읽기라는 확신 하나만으로(응?) 편집자의 세계에 발을 들였답니다.
제가 첫 편집으로 참여한 책은 김고은 선생님의 『함께 살 수 있을까』입니다. 『함께 살 수 있을까』는 타인과 함께 사는 법을 고민하는 청년 인터뷰집입니다. 저자는 인문학공동체 문탁네트워크/길드다에서 오랫동안 공부를 하셨는데요(무려 10년!), 새로운 일을 시작하며 낯설고 위협적인 타자들을 만나며 나와 다른 존재들과 ‘함께 살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이 드셨다고 해요. 그런데 함께 살아가는 지혜는 멀리 있지 않았답니다. 저자의 주위에 이질적인 타자들과 성실하고 묵묵하게 대면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인식하게 되었고, 그들에게 함께 살 수 있는 지혜를 묻기 시작했어요. 평소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해 나간 것이 하나 둘 쌓여 가며 발자취를 만들고, 그동안 걸어온 길에서 만났던 사람들에게서 삶에서 느낀 문제를 풀어갈 힌트를 길어낸 저자가 참으로 멋지지 않나요?
사실 현대 사회는 인간을 편하게 해 주는 각종 기술과 서비스가 엄청나게 발전이 되어 있지요. 요즘처럼 혼자 살기 좋은 세상이 또 없어 보입니다. 돈만 있으면 거의 모든 것을 즉각적으로 받아 볼 수 있고요, 빵빵한 인터넷 덕에 잠시라도 외로움을 느낄 새가 없는 것 같아요. 이러한 세태 안에서 사는 우리들이 보았을 때, 함께 사는 지혜라는 것은 어찌 보면 ‘그게 왜 필요한데’,‘굳이 필요한 것인가’라는 질문이 들 것 같아요. 이 책에 나오는 인터뷰이들과 저자의 대화를 읽어 가다 보면 이러한 질문 자체가 바뀔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어찌 바뀔 수 있냐고요? 『함께 살 수 있을까』 다섯 인터뷰이와 저자와의 대화에서 확인해 보시죠! 책은 서점에 있습니다~^^
편집자로서 일하면서 느꼈던 ‘일의 기쁨과 슬픔’도 궁금하실 것 같습니다. ‘책 발간일’이라는 목표가 있고, 거기에 맞춰서 뚝딱뚝딱 일을 해 나가는 과정에서 크고 작은 기쁨이 찾아옵니다. 편집자로 일할 때의 기쁨은 주로 ‘대기만성형’ 기쁨이랄까요. 초교에서 잡아 내지 못한 오류를 재교를 보며 잡아 낼 때, 초교를 보며 어렵고 까다롭게 느껴지는 문법이 재교에서는 조금 더 친숙하게 느껴질 때의 희열! 이렇게 초교/재교를 치열하게 거쳐 나가면 저자의 텍스트가 점점 더 매끄러운 한 권의 책이 되는데요, 마지막 교정지가 넘어가고 최종 파일과 표지를 볼 때의 기쁨은 이루 말 할 수 없지요. 머리를 싸매며 일하면 할수록 제 자신 또한 제가 보고 있는 교정지처럼 점점 다듬어지는 것 같은 느낌, 오늘도 하나 성장하고 배워간다는 성취감도 맛볼 수 있지요. 무엇보다 저자와 만나서 직접 대화할 수 있는 경험 또한 편집자라는 일을 하며 겪을 수 있는 놀라움이자 즐거움인 것 같아요.
일의 슬픔..이라기보다는 어려움 또한 있었답니다. 저에게는 ‘판단’이라는 것이 참으로 어려운 작업이었어요. 편집자는 어디까지가 편집의 영역인지 판단하고, 또 어떻게 편집을 할 것인지 판단해 나가는 직업입니다. 인문학 편집자를 위한 강좌 <북에디터스쿨>에서 배운 바로는 편집자 어떠한 경우에도 판단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실제로 일을 해보니 왜 편집자라는 직업의 특징에 이러한 말이 있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판단을 한다는 것은 저의 온 감각을 동원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지요. 초보 편집자이다 보니 교정을 보는 중간중간 북드라망 대표님께서 피드백을 주셨는데요, 피드백 자리에서 편집자로서 마땅히 개입했어야 할 부분을 개입하지 못했다거나, 혹은 또한 저만의 생각으로 과한 교정을 한 것을 알게 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한번씩 피드백을 마치고 나면 판단이라는 것의 어려움 그리고 막막함을 온몸으로 느끼곤 했지요.
또한 편집을 하기 전에는 맞춤법, 문법 잘 모르는데 하면서 어쩌지 걱정했지만, 편집을 시작해보니 정말 필요한 것은 맞춤법을 알고 있는 것보다 ‘상식’을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함을 느꼈습니다. 편집자라 하면 왠지 박학다식할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요, 그 느낌이 맞았습니다! 사람들과 관계 맺고 사회를 이루며 살아가는 데 일종의 기본 지식이라 할 수 있는 상식을 키워 가는 것은 편집자가 계속 노력해야 할 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편집자는 저자와 독자를 연결하는 ‘책’이라는 소통의 도구를 만들어나가는 사람이니만큼, 사회의 상식들을 알면 알수록 좋은 것 같습니다. 저는 사회 돌아가는 문제에 별로 관심을 가지지 않고 살아왔던 터라 특히 이 부분이 어려웠습니다. 제가 궁금한 것들이 사실은 저만 궁금한 것들이였기에 결국 교정이 필요 없는 부분을 교정한 일도 꽤 있었지요. (이름하야 무지에서 겪는 어려움!) 사실 이러한 무지에는 쉽고 빠른 해결 방법은 딱히 없는 것 같습니다. 많이 읽고 찾아보는 수밖에요. 판단을 조금 더 확신 있게 해나갈 수 있으려면 결국 평소에 공부를 열심히 하고, 계속해서 상식을 쌓아가는 것 위에서 가능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무엇보다 편집자라는 명분(?)으로 한 책을 오랫동안 만날 수 있었던 것이 저에게 특별한 사건이었습니다. 병아리 편집자인 덕분에 한 책에 오래 머무를 수 있었고, 그래서 책을 편집하는 동안 텍스트를 계속 다르게, 조금은 더 깊게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같은 책을 읽고 또 읽으면서 이전에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문장이나 장면이 눈에 들어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책이란 고정된 텍스트가 아니며 매번 새롭게 읽어갈 수 있다는 말을 몸소 느낄 수 있었답니다. 첫 편집이다 보니 누렸던 행운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를 『함께 살 수 있을까』의 첫 독자로 받아 주신(?) 김고은 선생님께 무한한 응원을 보냅니다. 그리고 편집자라는 일을 통해 한 책에 푹 빠질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선물해 주신 북드라망 김현경 대표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며 긴 후기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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