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인간으로서의 주권 - (上)
자연은 하느님이 세계를 창조하여 다스리는 기예(Art)이다.
다른 많은 일들에서 그렇게 하듯이 이 자연을 인간의 기예로 모방하면,
여기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하나의 ‘인공동물(Artificial Animal)’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기예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연의 가장 합리적이고 가장 탁월한 작품인
인간을 모방하기에까지 이른다.
즉, 기예에 의해 코먼웰스(Commonwealth) 혹은 국가,
라틴어로는 키비타스(civitas)라고 불리는 저 위대한 리바이어던이 창조되는데,
이것이 바로 ‘인공인간(Artificial Man)’이다.
─토마스 홉스, 『리바이어던』
괴물, 리바이어던의 탄생
흔히 홉스는 절대적 왕권의 강화를 시도한 사상가로 그려지지만 최근의 연구들은 홉스에게 보이는 이중성을 강조한다. 즉 전체주의자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홉스라는 모습 말고도 개인주의자이자 자유주의자인 홉스의 모습 역시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호 모순되는 평가는 당대에도 홉스가 왕당파와 의회파 양쪽으로부터 공격을 받은 것을 통해서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이중성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리고 이것이 근대 일본에서 주권을 사유하는 데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우선 홉스에게 신체 은유의 중요성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그의 저작 『리바이어던』의 표지 그림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설명 가능할 것이다.
표지에 묘사되는 리바이어던은 머리에는 왕관을 쓰고 그리고 왼손에는 칼을, 오른손에는 주교가 종교 행사 때 드는 지팡이인 목장(牧杖)을 들고 있는 거인의 모습으로 어느 한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다. 그리고 칼과 목장 양 끝 위로 문장 하나가 보인다. “지상에 더 힘센 사람이 없으니 누가 그와 겨루랴(Non est potestas Super Terram quae Comparetus ei). 욥기 41장 24절.” 즉, 리바이어던이 세속적인 권력과 교회 권력을 양손에 쥔 무소불위의 주권자임을 보여준다. 그 아래에는 다섯 개의 그림들이 쌍을 지어 나란히 있다. 위에서부터 성과 교회, 왕관과 교황모자, 왕권을 의미하는 대포와 교황권을 의미하는 파면권이다. 그 아래에는 전쟁터에 쓰이는 총칼과 종교재판에서 쓰이는 논리라는 무기이고, 마지막 그림은 전쟁터와 종교재판을 의미한다. 그 사이에 휘장처럼 책의 제목이 내려져 있다. ‘리바이어던, 교회국가 및 시민국가의 재료와 형태 및 권력(LEVIATHAN or the Matter, Forme and Power of A Commonwealth Ecclesiasticall and Civil)’.
그러나 리바이어던의 표지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몸을 이루고 있는 것이 리바이어던을 구성하는 백성들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들의 시선은 모두 리바이어던의 얼굴을 향해 있는데 마치 자신의 안전을 위해 머리인 리바이어던의 처분만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더욱이 그들의 표정은 무언가 두려워하면서 한편으로는 안도감을 느끼고 있는 듯하다. 이는 분명 홉스의 의도였다. 리바이어던의 표지 그림은 단순히 책표지를 꾸미기 위한 것만이 아니라 홉스의 사상을 핵심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이는 ‘경외(awe)’라는 정념을 독자에게 심어줌으로써 책의 내용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군주라는 머리와 복종하는 신민들의 모습 정도로만 읽는 것으로 그칠 수 없다. 그는 서문에서 국가를 인공인간으로 비유하는데 이 인공인간은 기계적 성격을 갖는다.
자연은 하느님이 세계를 창조하여 다스리는 기예(Art)이다. 다른 많은 일들에서 그렇게 하듯이 이 자연을 인간의 기예로 모방하면, 여기에서 보는 바와 같이 하나의 ‘인공동물(Artificial Animal)’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생명은 신체나 사지의 운동을 말하고, 이 운동은 내부의 ‘중심부분’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안다면, 모든 자동장치들(Automata)(시계처럼 태엽이나 톱니바퀴로 움직이는 기계장치들)은 하나의 인공적 생명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 ‘심장’(Heart)에 해당하는 것이 태엽(Spring)이요, ‘신경’(Nerves)에 해당하는 것이 여러 가닥의 줄(Strings)이요, ‘관절’(Joynts)에 해당하는 것이 톱니바퀴(Wheels)이니, 이것들이 곧 제작자가 의도한 바대로 전신에 운동(motion)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기예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연의 가장 합리적이고 가장 탁월한 작품인 인간을 모방하기에까지 이른다. 즉, 기예에 의해 코먼웰스(Commonwealth) 혹은 국가, 라틴어로는 키비타스(civitas)라고 불리는 저 위대한 리바이어던이 창조되는데, 이것이 바로 ‘인공인간(Artificial Man)’이다.
─Hobbes, Leviathan, p.9
우선 주목해서 보아야 할 점은 표지에서 묘사된 리바이어던이라는 괴물은 ‘자연적’ 신체와 대비해 ‘인공적’ 신체라는 점다. 이 인공 인간은 자연인을 보호하고 방어할 목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자연인보다 몸집이 더 크고 힘이 세다. 그는 ‘자동장치’로서의 신체를 국가에 유비하고 있다. 주권이란 인공 ‘혼’(soul)으로서 전신에 생명과 운동을 부여하며, 각 부 장관들과 사법 및 행정 관리들은 인공 ‘관절’에 해당하며, 상벌은 모든 관절과 사지를 주권자와 연결시켜 그 의무의 수행을 위해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므로 ‘신경’에 비유된다. 또한 구성원 개개인 모두의 부와 재산은 그의 ‘체력’에, 조언자들은 그가 알고 있어야 할 내용들을 제안하기 때문에 그의 ‘기억’에, 공평과 법은 인공 ‘이성’과 ‘의지’에 비유한다. 그리고 이러한 인공신체의 화합이 ‘건강’이며, 소요는 신체의 ‘질병’이고, 내란은 신체의 ‘죽음’이다.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결국 이 인공인간의 ‘재료’는 무엇이며, ‘제조자’는 누구인가, 이 인공인간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그리고 인공 인간의 건강을 ‘유지’하고 ‘해체’를 피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인가를 말하기 위해 쓴 책이었다.
그의 신체유비는 본문에서도 이어진다. 가령 코먼웰스의 하부체계를 분석하며 단체를 ‘근육’으로 유비한다. 합법적 단체는 인체의 근육에 해당하고, 비합법적 단체는 인체의 종기, 담즙, 농양에 해당하는데, 이런 것들은 악한 체액이 부자연스럽게 합류할 때 생긴다. 공적 대행자는 자연적 육체에 비유하자면 수족을 움직이는 신경이나 힘줄에 해당하며, 타국의 비밀계획이나 병력을 탐지하기 위해 비밀리 파견된 사람은 인체의 눈에 해당한다. 또한 인민의 청원 및 기타 정보를 처리하도록 임명된 자는 이른바 공공의 귀로서, 공적 대행자이며, 그 직무에 관하여 주권을 대표한다는 식이다. 또한 질병 역시 국가를 약화시키거나 해체를 촉진시키는 요인으로 비유되는데 간질, 학질, 늑막염, 다식증, 기면증 등의 질병들과 국가를 파괴하는 정치적 상황들이 대응되어 설명된다.
문부성 번역본 <주권론>
그렇다면 이러한 홉스의 신체 유비가 어떻게 근대 동아시아에 전파, 수용되었는가. 『리바이어던』은 문부성에서 불파사(拂波士) 저 『주권론』이라는 이름으로 1883년 출판되었다. 이 책은 원서의 초역(抄譯)으로, 인간론을 다루고 있는 1부와 신학과 정치의 관계를 다루는 2권은 빼고 국가론인 「커먼웰스에 관하여(Of Commonwealth)」부분만을 번역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몇 개의 챕터는 생략하고 있다.
다카하시 신지(高橋真司)는 이 번역본의 특징으로 다섯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 영국학사라는 점 말고는 저자 불파사에 대한 어떠한 설명도 없다는 점, 둘째 원저, 전거가 된 저작이 불분명하다는 점, 셋째 완역인지 부분역인지 여부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는 점, 넷째 역자에 대해서도 설명이 없으며, 다섯째 본문 앞에 수록된 주권론 변언(辯言)은 해제적 성격이 없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는 당시 번역된 다른 저작들과 비교해보면 체재 상의 미완성이라기보다 문부성의 의도 하에 그 자체로 완결된 저작인 것처럼 보이도록 위장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즉 당시 국권론자들을 중심으로 한 문부성은 천황의 권한을 강화하고자 한 의도 속에서 홉스의 책을 번역, 출판했다. 그런데 홉스 사상의 수용을 단순히 국권론 대 민권론의 대결 구도 속에서만 해석하는 것으로 그칠 수 없다. 왜냐하면 홉스 사상의 이중성을 고려하면 어떻게 그의 논리가 천황에게 무소불위의 주권을 부여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는가가 설명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홉스에게서 보이는 리바이어던이라는 집합적 신체가 문부성 번역본에서 어떻게 이해되고 있는지 살펴보자. 리바이어던의 핵심적인 부분이라 할 수 있는, 코먼웰스가 성립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이다.
이와 같이 하나로 합체(合體)한 취합체(聚合體)를 일컬어 이를 일사회(一社會, 코먼웰스)라 한다. 이는 리바이어던에 의거해 일어나는 바로, 리바이어던이란 상제(上帝)의 아래에서 오인의 치평(治平)을 유지하고 안녕을 보호하는 신이라는 뜻이다. 대개 중인(衆人)의 바람[志望]에 따라 안으로는 평화를 유지하고 밖으로는 외적[寇敵]을 방어함은 이 총사회(總社會)의 각인이 위임한 대권력(大權力)으로서 능히 사람을 외복(畏服)시키기 족하기 때문이다. 이 사람이야말로 실로 사회의 정기(精氣)라 말할 수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 사람의 행동[所為]은 인민상호의 계약을 통해 각자의 뜻에서 나온 것이다. 무릇 천하의 치평과 사회의 안녕에 대해 이 사람이 좋은 경략(經略)이라 생각하는 바를 그 권력으로 이뤄내도록 정한 것이다. 이와 같은 인물(人物)을 일컬어 주권자라는, 사회의 권력을 장악한 자로 하였다. 그리고 이외 각인을 이름하여 신민이라 하였다.
─拂波士, 『主權論』, p. 240
홉스의 리바이어던은 앞서 책표지에서 보았듯이 리바이어던의 모습으로 국가를 재현(represent)하는 것이었다. 이는 단순히 왕권으로서의 괴물을 상징하는 비유는 아니었다. 하나의 인격으로 결합한 민중들을 묘사하는 것 역시 중요한 지점이기 때문이다. 번역본에서도 다자가 일자가 되기 위해서 신체의 이미지가 동원된다. 문부성의 번역본에는 표지가 없기 때문에 확인할 수 없지만 리바이어던이라는 합체된 신체의 이미지를 상상케 한다. 원문에는 ‘다중(multitude)’이 ‘하나의 인격(one person)’으로 결합될 때 이를 ‘코먼웰스(COMMONWEALTH)’, 라틴어로 ‘키위타스(CIVITAS)’라 부르고, 이것을 위대한 리바이어던의 탄생이라고 말한다. 이를 번역본 『주권론』에서는 ‘하나로 합체(合體)한 취합체(聚合體)’, 즉 일사회(一社會)로 번역하고, 가타카나로 코먼웰스를 병기하고 있다.
그러나 홉스의 리바이어던이 직접적으로 인공인간의 탄생을 묘사하는 것과 달리 번역본에서는 이러한 홉스의 의도가 명시적으로 전달되고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이는 아직까지 전통적인 논리 하에서 바디폴리틱을 이해한 것으로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역자는 공리(公利), 공권력(公權力)이라는 말로 리바이어던을 설명한다. 이때 공권력은 ‘공리를 제공’하기 위한 것으로 ‘밖으로는 침구(侵寇)를 방어하고, 안으로는 국안(國安)을 지켜 사람들이 편안히 생업을 영위하고, 생을 자양해 행복을 얻을 수 있게 한다. 이 힘을 제정하는 길은 다름 아니라 일반인민의 힘을 모아 일인 혹은 일 집회(集會)에 주어 중설(衆說)에 의해 그 지망(志望)을 모아 하나로 하는 것 뿐’이라고 설명한다.
즉 일인 혹은 일 집회를 인민각자의 대표자(代表者)로 하고 만기(萬機)를 위임해 인민은 그 대표자가 천하의 치평과 인민의 안녕에 대해 시행하는 일은 모두 자신의 발의로서 이를 부담한다. 인민각자의 지망은 이 일인 혹은 일 집회의 지망에 따르고, 각자의 결단은 이 일인 혹은 일집회의 결단에 맡겨야 한다. 이는 실로 인민의 총체(總體)가 이 일인에 합체한 것으로, 이 합체는 바로 총체 중 어떤 일인일개(一人一個)가 다른 일인일개와 계약해 이루어진 것이다.
─拂波士(1967), pp. 239∼240
'인격'과 '인물’
홉스의 논의와 크게 차이가 드러나지 않아 보이는 이 번역은 그 안에 감추어진 논리적 차이를 내포하고 있다. 만인의 만인에 대한 계약이 일인일개가 다른 일인일개와 계약이라고 번역되고 있으며, 이때 일인 혹은 일 집회를 ‘대표자’로 삼아 이에 만기를 ‘위임’한다는 발상이다. 이 위임과정을 통해 한 사람 혹은 집회의 결단에 맡기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번역본에서도 위임이라는 발상이 들어 있으나 이는 홉스적 사고와 다르다. 홉스에게 보이는 권력의 양도, 대리개념과 번역본의 차이는 홉스가 이것이 “동의 혹은 화합 이상의 것”이라고 강조하는 부분이 번역본에서는 사라진 것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홉스에게 동의 혹은 화합으로서 신체와 달리 새로운 인공적 신체는 단일의지를 통해 구성된다. 이처럼 하나의 ‘인격(person)’이라는 의미를 가진다는 점은 쉽게 간과하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리바이어던이라는 표사의 핵심은 '인공적 인격(artificial person)'이라는 데 있기 때문이다.
메이지덴노, 또는 인민의 총체
따라서 『주권론』에서 만인이 만인과 상호 신의계약을 체결함으로써 모든 인간이 단 하나의 동일 인격으로 결합된다는 논리를 번역하고 있지만, 번역본이 ‘인민의 총체가 이 한 사람[一人]에 합체한 것’이라 표현하고 있는 것은 중요한 차이이다. 왜냐하면 ‘인격(person)’ 개념을 ‘한 사람[一人]’으로 번역한 것은 틀린 번역이라 할 수 없지만 여기에는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앞서 본 리바이어던의 탄생을 설명하는 예문에서 홉스가 말하는 “이 인격을 지닌 자가 주권자라 불리며, ‘주권적 권력’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다(And he that carrieth this person, is called SOVEREIGN, and said to have sovereign power)”는 대목이 “이와 같은 인물(人物)을 일컬어 주권자라는, 사회의 권력을 장악한 자”로 번역된 것에서도 볼 수 있다. 즉 번역본에서는 ‘인격’이 ‘인물’과 동일시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격이 갖는 법적, 정치적 의미는 단순히 현존하는 인물에 권력을 넘겨준다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법적, 정치적 ‘주체’를 탄생시킨다는 점에서 둘 사이에는 간과할 수 없는 차이가 존재한다. 번역본에서는 이처럼 리바이어던을 한 사람으로 표현함으로써 일인에 합체한다는 의미를 ‘동일 인격으로서 결합하는 과정’이 아니라 기존의 군주에게 ‘만기(萬機)를 위임’하는 행위로밖에 보이지 않게 만든 것이다. 홉스가 이렇게 만들어진 주권은 '한 사람 혹은 집회(man or assembly)'에 양도한다고 하면서 항상 '한 사람 혹은 집회'를 강조한 것은 단순히 기존에 존재하는 군주 한 사람에게 권리를 위임하는 차원이 아니라, 새롭게 만들어진 인격을 담당할 사람 내지 집회를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글_김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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