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낭송 옛이야기 풀어읽은이 인터뷰 ① - 경기도에서 제주까지!

오늘(3.20.월), 수요일(3.22.수), 두번에 걸쳐 낭송Q 시리즈 민담·설화편 풀어읽은 이 인터뷰를 올립니다. 오늘은 그 첫번째, 『낭송 경기도의 옛이야기』의 박효숙 님, 『낭송 제주도의 옛이야기』의 박정복 님 인터뷰입니다. 


[낭송Q 민담·설화편 출간!]

풀어 읽은이 인터뷰 ① - 경기에서 제주까지!



▶ 『낭송 경기도의 옛이야기』 풀어 읽은이 인터뷰



1. 옛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것이라 ‘낭송’과 더욱 가까운 것 같습니다. 이번 낭송Q시리즈 민담·설화편은 각 지역별로 옛이야기들이 모아져 있는 것이 특징인데요. 선생님께서 어떤 인연으로 경기도의 옛날이야기들을 풀어 읽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경기도 용인은 저에게 제2의 고향과 같은 곳입니다. 여느 도시인들이 흔히 그러하듯 처음부터 이곳에 정착해서 살아야겠다는 계획에 의해서라기보다는 직장을 따라 떠돌다 머물게 된 곳이지요. 그래서인지 20년을 살았어도 이곳에 정착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이곳이 우리 아이들에게는 고향이고 제게는 인생에서 가장 오래 머물러 산 마을이 되어 있었어요. 기왕에 옛이야기를 풀어 엮는 일을 하게 되었으니 내가 사는 용인의 이야기를 해보자는 생각에 경기도 지역을 맡게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풀어 엮는 중에 이야기의 완성도가 떨어져 책에 싣지는 못했지만 용인 석성산의 유래나 메주고개니 어정이니 하는 지금 살고 있는 주변 동네의 이름과 자주 다니던 곳의 지명과 유래가 나올 때는 반갑기도 했습니다. 제가 살고 있는 이곳이 아주 두텁고 오랜 시간들이 그리고 이야기를 이어온 많은 사람들의 삶이 쌓여 있는 곳임을 새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2. 대개 옛이야기라고 하면 어린이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요. 이 책은 어린이만을 대상으로 하고 있진 않습니다. 왜 어른들도 옛이야기를 낭송해야 할까요? 

옛이야기라고 하면 어린이를 위한 것이라는 생각은 듣는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낭송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학교가 없던 때에 이야기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지혜를 가르치는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어른들의 역할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물론 그 자리를 각종 미디어가 메우게 되면서 교육의 대상인 어린이만이 남게 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옛이야기는 어른들의 오락이었습니다. 마을 정자나무 아래에서 혹은 장터에서 혹은 힘든 농사일을 하는 중간에 즐기는 놀이였고 또한 공동체를 지키는 지혜가 되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 내용 또한 어른들이 사는 세상의 이야기가 대부분이며 간혹 아이들이 읽기에 부적절한 내용들까지 섞여 있습니다. 그럼에도 또한 판타지나 해학적 요소 그리고 도덕적이고 교훈적인 내용만을 간추려 아이들이 읽는 전래동화로 엮은 것이 옛이야기라는 인식은 잘못된 것입니다. 물론 『낭송 경기도의 옛이야기』는 어린이와 어른들이 함께 읽을 수 있도록 엮었습니다. 그러므로 소리로 만나는 옛이야기 낭송은 세대를 이어주는 매개로서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3. 『낭송 경기도의 옛이야기』를 풀어 읽으시면서 느끼신 여타의 지역과 다른 경기도 옛이야기만의 특징을 한 가지만 꼽아 주세요. 

경기도는 도읍지 주변에 있는 도시들입니다. 그렇기에 여러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심지어 중국의 사신들과 상인들까지도 드나들던 곳이지요. 그래서 오래된 토박이들이 모여 사는 촌락공동체의 특징이나 관습보다는 양반과 벼슬에 관련된 그리고 다소 삭막한 도시 주변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들이 많다는 점이 특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양반을 골탕 먹이는 하인이나, 벼슬을 빙자해서 사기를 치거나 사기를 당하는 사람들, 벼슬을 구하고자 하는 몰락한 양반들과 양반이 되고 싶은 사람들의 간절한 바람 등이 이 지역 이야기 속에 깊게 깔려 있습니다. 운 좋게 암행하는 임금을 만나 행운을 얻는 이들의 이야기도 간혹 끼어 있는데, 이것 역시 긴 시간 조선의 도읍지였던 한양 주변 지역이기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일 것입니다. 그중 서울 가서 3년을 구르면 벼슬을 한다는 허황한 이야기를 믿고 상경하여 3년을 하루같이 구르기를 하다가 암행하던 임금에게 그 노력과 끈기를 인정받아 고을의 사또가 되어 금의환향하는 해학적 이야기는 시골사람들의 한양에 대한 생각이 어떠했는지를 풍자하고 있습니다. 


서울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던 70년대 도시 변두리 지역 소시민들의 거칠고 열악한 삶들이 연상되기도 합니다. 타 지역의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지역적 특징은 여러 이야기들이 섞여서 하나가 되는 변형된 이야기를 만들어진 이야기들이 많다는 점입니다. 작게는 2개에서부터 많게는 원 이야기를 구별하기 어려운 것들까지 다양한 버전들이 있었습니다. 또한 중국의 이인들이나 사신들의 이야기는 해학적으로 풍자하기도 하고 중국 사람의 어리석음을 드러내는 이야기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그들이 내는 허황된 문제를 지혜롭게 해결하거나 겨루기에서 이기는 이야기들은 옛 사람들이 중국인들에 대한 감정이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상어 말씀 무슨 말씀, 명태 말씀 무슨 말씀" _ 경기도 안성군 삼죽면 '숙맥 신랑'이야기



4. 선생님께서 풀어 읽으신 이야기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옛이야기를 소개해 주시고, 이유는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경기도 수원과 화성시의 이야기입니다. 수원은 융·건릉과 수원화성이 있는 곳입니다. 이들을 건설할 당시 정조임금은 많게는 한 달에 29번을 다녀갈 정도로 행차가 잦았다고 합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수원 사람들이 겪게 되는 이런저런 이야기가 인상적입니다. 수원과 화성이라는 지역에서 정조임금이라는 한 인물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모아 엮은 부분으로 왕의 효행에 얽힌 이야기와 수원 사람들이 받은 혜택에서 고충까지 특별한 사연이 담긴 이야기입니다. 임금의 행차는 집안에서조차 맘 편히 쉴 수가 없게 된 사람들의 집 구조를 바꾸어 버리기도 하고 혹은 새로운 마을 하나를 만들게도 합니다. 한양에 과거를 보러 오는 길목이 된 병점에서는 그들을 대상으로 한 상인들의 온갖 상술이 판치고, 임금의 지나친 수원사랑은 사람들에게 수원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만들기도 합니다. 이렇듯 수원이라는 지역의 숨겨진 이야기는 제게 새로운 발견이었습니다. 


한편, 전체적으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옛사람들의 낯선 사람에 대한 환대였습니다. 집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공간인 듯 했습니다. 과객이 문을 두드리면 사정 불문하고 재워 줘야 하는 것은 불문율과 같습니다. 궁핍한 살림이지만 풀죽이라도 나눠 먹으며 양이 부족할 때는 자신이 굶더라도 손님에게는 내어 줍니다. 하물며 어느 집은 손님이 들지 않을까 걱정하여 환대한다는 뜻을 표시해 두기도 합니다. 그리고 입장이 바뀌어 내가 과객이 되었을 때는 어떤 집이든 재워 주길 당당하게 요구합니다. 옛이야기 속 그곳은 현재의 우리와는 너무나 다른 진정한 강자들이 살고 있는 환대의 공간이었습니다. 누군가 문 두드리는 소리에 두려워하고 경계하는 마음이 앞서는 현실에서 그곳은 참 낯설기도 하고 인간에 대한 믿음이 아직 존재하고 있는 곳이기에 따뜻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이 책을 함께 낭송하면서 이러한 환대의 삶이 조금이라도 회복되기를 바라봅니다. 


5. 마지막으로, 이 책을 독자들이 어떻게 활용했으면 좋겠는지 말씀해 주세요. 

낭송은 이야기만 있으면 어느 곳에서든 소통의 장을 만들 수 있습니다. 또 옛이야기는 세대를 이어주는 매개가 되기도 하고 살면서 부딪히는 문제들에 지혜를 구할 수 있습니다. 이 둘이 만난 것이 『낭송 경기도의 옛이야기』입니다. 몸을 통해 전해지는 목소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전하기에 더없이 좋은 도구가 됩니다. 함께 소리 내어 읽고 암송하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기도 하는 가운데 서로의 마음이 통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이처럼 이 책이 함께 즐기는 책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책 읽는 소리를 잃어버린 어른들도 노래처럼 연극처럼 읽을 수 있고 친구에게 아이들에게 들려줄 수도 있는 이야기가 되길 바랍니다. 또한 낭송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고 함께하는 것이기에 마을이든 학교든 집이든 어느 곳이든 따뜻한 이야기를 풀어 놓고 한바탕 웃을 수 있는 장소로 만들어 줍니다. 이 책이 경기도뿐 아니라 사람이 모인 곳이면 어디서든 풀어 헤칠 수 있는 이야기보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낭송 제주도의 옛이야기』 풀어 읽은이 인터뷰



1. 옛이야기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것이라 ‘낭송’과 더욱 가까운 것 같습니다. 이번 낭송Q시리즈 민담·설화편은 각 지역별로 옛이야기들이 모아져 있는 것이 특징인데요. 선생님께서 어떤 인연으로 제주도의 옛날이야기들을 풀어 읽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작년 1월쯤인 것 같다. 우응순 선생님께서 제주도 설화를 풀어 보는 작업을 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으셨다. 제주도 토박이니까 사투리를 당연히 알 것이라 생각해서 권하시는 것 같았다. 사투리라면 알아듣는 데 문제없다고 생각했기에 그 자리에서 선뜻 응낙했다. 하지만 꼭 사투리에 자신이 있기 때문이었을까? 설화 자체가 나에겐 낯설지 않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제주대학 국문과에서 제주신화나 설화를 연구하고 발표하고 행사를 집행하는 것을 보면서 나도 제주대에 갔으면 이런 걸 공부했을지도 모른다고 막연히 생각했던 적이 있다. 설화라면 나도 친근했기 때문이다. 어릴 때 어머니에게 자주 옛날이야기를 들었다. 어머니는 밤에 잠잘 때면 나를 꼭 안고 여기저기를 만지면서 설문대 할망이야기와 수수께끼를 참 많이 말씀하셨다. 알고 보면 수수께끼의 답이 너무 시시한 것이라서 어머니도 히익하고 어린애처럼 웃으셨다. 나는 어머니가 마흔셋에 낳은 막내이고 할머니와도 살았으니까 오리지널 사투리를 많이 듣고 쓰며 자란 셈이다.


전기가 들어오기 전인 어린 시절, 밤이면 멀리서 들려오는 우상우상 굿소리를 종종 들었고 또 우리 집은 오빠가 10년 이상 병을 앓았기 때문 큰 굿을 서너 번 치렀던 기억이 있다. 교회와 순경이 와서 굿판을 엎었던 적도 있다. 내가 어릴 때까지만 해도 냇가에 있는 큰 나무에 오색 천을 걸어 놓고 무당이 굿을 하는 걸 본 적이 있다. 그것을 ‘당’이라고 하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딸이 세 살이었을 때 홍역을 앓았는데 목숨이 위험했었다. 병원에서도 어쩌지 못했다. 친정어머니는 옆집 삼촌을 데려왔고 이를 본 삼촌은 이 지경이 되도록 병원만 믿었느냐며 당장 심방(무당)을 불러왔다. 교회를 믿는 남편이 직장에 간 틈을 타서 뜨거운 밥을 해 놓고 무조건 빌고 또 빌었다. 신기하게도 그날 애기는 쏘근쏘근 잠을 자고 서서히 말끔히 낳았다. 그로부터 그 심방할머니는 우리 아이들의 주치의가 되었다. 


그러고 보니 내가 설화를 푼 것은 이처럼 오랜 세월과 어머니, 할머니, 옆집 삼촌, 심방할머니 등 많은 사람들과의 인연이 우응순 선생님에게 연결되지 않았는가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본다. 또 내가 제주대를 가지 않았는데도 먼 서울에서 이런 작업을 하게 된 것은 또 무슨 인연인지 신기하기만 하다.


2. 낭송Q시리즈 민담·설화편이 더욱 생생하게 느껴지는 것은 각 지역의 사투리가 이야기 속에 그대로 살아 있다는 점일 텐데요. 사투리로 옛이야기들을 낭송할 때 어떤 장점이 있을까요? 또 사투리를 통해 독자들에게 어떤 것을 보여 주고 싶으셨나요?

표준어를 쓸 때 지방 사람들은 언어의 빈곤을 느낄 때가 있다. 사투리에는 대상을 표현함에 생생함과 딱 들어맞는 절묘함이 있다. 예를 들어서 백일을 지나 이제 막 젖살이 올라 통통해지고 방긋방긋 웃는 아가를 제주인들은 애기가 ‘아깝다’고 한다. 하지만 서울 사람들은 이 말을 어색해 한다. ‘예쁘다’고 해야 맞다고 한다. 나는 ‘예쁘다’는 말로는 아가의 예쁨을 다 표현할 수 없어 안타깝다. ‘아이, 예뻐’ 보다는 ‘아이고, 아깝다’ 해야 성에 찬다.


또한 사투리는 개인에 따라서도 독특하게 쓰는 경우가 있다. ‘아방’은 보통 비속어로 쓰이지만 상황에 따라서는 친근한 말이기도 하다. 또 개인에 따라서도 쓰임이 다르다. 우리 딸은 아빠가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아빠’라고 부르지만 기분이 좋은 것 같으면 독특한 뉘앙스를 섞어 ‘아방’이라고 한다. 그러면 훨씬 친근감이 있다. 이처럼 사투리에는 개인 간, 지역 간의 짙은 감정이 배어 있어 소통이 잘 되고 유대감을 강화할 수 있다.


그렇다고 타지방에 대해 배타적이 될 우려는 없다. 자신들의 말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다른 지역 말들도 그렇다는 걸 인정하게 되기 때문이다. 사투리는 일부러 쓰려고 한 것이 아니고 태어나 보니 쓰고 있는 말이라 자연스럽게 몸에 익혀진 것이므로 좋고 나쁨이나 우열로 평가할 우려가 없다. 오히려 그 지역 말의 매력을 실감하며 존중하고 재미있어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차이와 공존을 가능케 하는 풍요로운 문화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제주도 뿐 아니라, 온 우주를 만드신 '설문대 할망'



3. 『낭송 제주도의 옛이야기』를 풀어 읽으시면서 느끼신 여타의 지역과 다른 제주도 옛이야기만의 특징을 한 가지만 꼽아 주세요. 

창세 설화가 다른 지역에는 없고 제주에만 있다. 또 여신 창세 설화로도 유일하다. 설문대 할망이 제주만을 만든 게 아니고 우주까지 열었다는 창세 이야기가 육지부가 아닌 조그만 섬에 전해져 내려온다는 점이 특이하다.

요즘 들어 제주 섬은 작은 섬이 아니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 서울보다 크다. 섬 가운데 감히 올라갈 수 없을 만큼 높은 한라산이 버티어서 온갖 신비로운 형상으로 시시각각 변하고 사방으로 수많은 깊은 골짜기를 거느리고 있으며 그 밑으로 초원이 펼쳐지면서 군데군데 우뚝 우뚝 솟아 있는 오름을 보노라면 제주가 우주의 전부라고 느껴지지 않았을까? 더구나 육지가 있다는 걸 상상하기도 힘들만큼 제주는 망망대해에 홀로 있고 해안가는 절벽과 기암괴석이 많고 바다는 거칠어 배를 띄우기도 힘들었으니 말이다. 전기가 없어 밤에는 섬의 신비가 더 엄습했을 거라는 생각도 해본다. 자연에 대한 경외감이 창세설화를 만들어 냈음 직하다.


제주는 12세기 고려 숙종 무렵에야 고려로 편입되어서 현재에 이른다. 그전까지는 국가를 이루지 않고 살아서 중앙정부의 통제를 받지 않은 역사가 훨씬 길다. 유교 문화가 비교적 늦게 들어왔기 때문 오랜 모계사회의 흔적이 설문대 할망의 창세설화로 지금까지 남아 있지 않나 생각해 본다. 그래서 주몽신화나 박혁거세 설화 같은 남성중심의 건국설화가 없는 게 아닌가 한다.  


4. 선생님께서 풀어 읽으신 이야기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옛이야기를 소개해 주시고, 이유는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제주인들이 명주 1필이 부족해서 설문대 할망의 속옷을 만들어 주지 못했기 때문에 할망이 육지로 가는 다리를 놓지 않았다는 대목이 가장 인상 깊었다. 섬이라는 지리적 여건을 이런 멋진 문학적 서사로 표현했다는 점에서 제주인들의 문학적 소양을 느낄 수 있었다. 


신과 인간이 거래한다는 점도 흥미롭고 다리를 못 놓은 것이 아니라 놓지 않았다는 점이 의미심장하다. 설문대 할망은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처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듯하다. 우리가 태어나는 곳도 그중 하나이다. 그곳이 척박한 환경이라 하더라도 아니 그럴수록 인간은 더 인간답게 살 수 있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걸 말해 주는 건 아닐까? 제주도민 모두가 힘을 합쳐 명주를 짜는 공동체 문화를 형성할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므로 명주 1필의 부족이 오히려 하나를 더 생산할 수 있는 동력으로 작용한 건 아닐까? 마치 아라비안나이트에서 죽지 않기 위해 셰헤라자데가 하나씩 재미있는 이야기를 지어낸 것처럼 제주인도 삶이 절박했기에 길고 극적인 이야기를 하나씩 만들어 내지 않았을까? 


삶이 절박해야 말도 글쓰기도 풍성해지고 재미있게 다듬어진다는 아이러니를 느끼게 된다. 제주설화가 풍요로운 것은 이 때문이다. 부족한 명주 한 필은 결핍이 아니요, 100필을 채우기 위해 완성시켜야 할 것이 아니라 생산과 창조의 원동력이 되는 무형의 유산이다.


5. 마지막으로, 이 책을 독자들이 어떻게 활용했으면 좋겠는지 말씀해 주세요. 

유네스코는 2010년 12월 제주어를 소멸위기의 언어로 등록했다. 소멸위기 4단계인 ‘아주 심각하게 위기에 처한 언어’로 분류했다는 것을 요즘에야 알았다. 이에 제주어를 보존하기 위해 제주도정의 후원 아래 제주 전역에서 제주어를 채록하고 기록한 보고서들이 나오고 있다. 작년 8월 ’제주어연구소‘가 발족하기도 했다. 


제주어가 사라진다는 것은 제주 문화가 사라진다는 말이다. 독특한 삶의 방식 하나가 사라짐으로써 삶의 다양성이 점점 줄어드는 것이다. 제주어 혹은 제주문화는 설화로 기억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것 같다. 이야기는 재미가 있어서 기억하기 쉽고 다른 사람에게 전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특히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말해 주면 좋겠다.


제주도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여기에 짜여진 각 부에 따라 테마 여행을 해도 좋을 것이다. 가령 설문대 할망의 자취가 있는 곳만 가 본다든지, 제주신앙의 본거지인 당만을 골라서 가보든지, 물이 나왔던 샘을 찾아 가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그 현장에서 읽어보고 이야기를 나눠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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