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북드라망 신간, <고미숙의 근대성 3부작> 출간!


계몽, 연애, 위생! 각각의 주제로 '근대성'의 계보를 파헤치는 <근대성 3부작>이 드디어 출간되었습니다. 이제 곧 서점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그럼, 오늘은 책을 한 권씩 소개해드릴께요.



1권 『계몽의 시대』는 '근대적 시공간과 민족의 탄생'을 주제로 다룹니다. 기차가 도래하면서 기존과 다른 시공간이 구성되었다는 것!  속도, 문명의 빛 그리고 잠/꿈/종의 배치가 어떻게 사람들의 무의식에 새겨지게 되었는지 그 현장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근대적 시공간의 표상에는 정확하게 이런 특이성이 결락되었다. 인간은 더 이상 우주와 공명하지 못한다. 별의 운동과 위치를 정확히 꿰뚫고, 심지어 그것을 정복할 수는 있을지언정 우주와 소통할 수 있는 길은 모조리 차단되었다. 이젠 어떤 학자도, 심지어 천체 물리학자라 해도 우주와 공명하는 길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우주는 우주고, 나는 나일 뿐이다. 시간 표상 또한 지극히 협소해졌다. 천 년은 고사하고, 백 년의 시간조차 한 번에 조망하지 못한다.

‘사이성’이 사라진다는 건 이것과 저것 사이에 확연한 위계가 설정됨과 동시에 주인과 노예의 권력관계가 구성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이 관계 안에선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다. 노예는 물론 주인조차도. 인간과 우주의 관계 또한 그러하다. 소유할 수는 있되, 결코 그것과 공감할 수는 없는 것, 그것이 바로 근대인의 우주다.


─고미숙, 『계몽의 시대』, 본문 1장 「속도의 경이, 시공간의 재배치」 중에서



2권은 『연애의 시대』입니다. "얼마면 돼?", "이렇게 하면 널 가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 등등… 본 적도 없는 드라마의 대사를 외우게 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은 '사랑'을 열망합니다. 그런데…


사랑은 아무리 원해도 괜찮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는 어떤 욕망도 다 용납된다. 왜? 사랑은 순수하고 아름다우니까. 더 나아가 이런 사랑을 받아야 비로소 여성의 삶은 완성된다고 간주한다. 아무리 성공해도, 그 어떤 성취를 이룬다 해도 이런 지순한 사랑을 받지 못하면 여성의 존재감은 추락하고 만다. 결국 이 ‘후천개벽’의 시대에도 여성은 남성을 통한 인정욕망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뜻인가. 그렇다면 여성의 자유와 해방은 대체 언제나 가능하단 말인가. 아니 그 이전에 대체 이런 ‘여성’ 혹은 ‘여성성’은 어디로부터 유래한 것일까? 이 책은 그에 대한 계보학적 탐색이다. 20세기 초 서구의 도래와 함께 이 땅엔 전혀 다른 삶의 양식이 이식되었다. 연애도 그중 하나다. 청춘이 되면 자연스레 짝짓기를 하고 성혼을 하던 시대가 가고, 있는 대로 힘을 주고 온갖 꼼수를 다 동원하여 짝을 찾아야 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이른바 ‘자유연애’의 시대가. 이 자유는 참으로 부자유하다. 그도 그럴 것이 애국심과 신앙, 순결과 비극성 등의 표상이 그 위에 덧씌워졌기 때문이다. 자본이 모든 기호를 다 먹어치운 이 21세기에도 역시 마찬가지다. 이제는 무한증식과 불멸을 향해 달려가는 자본의 이미지와 오버랩되어 버렸다. 계보학이 필요한 지점이 바로 여기다. 우리가 자명하다고 믿는 것들이 결코 진리가 아니라는 것, 어느  날 문득 외계로부터 뚝 떨어져 진리로 군림하게 되었다는 것, 하여 결코 삶의 실상이 아니라 망상에 불과하다는 것, 그런 점에서 계보학은 망상을 깨부수는 망치다. 이 책도 그런 망치의 하나가 되기를 기대한다.


─고미숙, 『연애의 시대』, 「책머리에」 중에서


이 부분을 읽다 멈칫했습니다. 저 역시도 자신의 존재감을 늘 타인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으로 확인받곤 했으니까요. 그래서 궁금해졌습니다. 언제부터 우리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판타지'를 가슴 속에 심게 된 것일까요? 이 책을 통해 그때 그 현장으로 가 보시죠!



3권은 『위생의 시대』입니다. 저는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 갑신정변때 위생(청결)을 개혁의 주요한 이슈로 다루었다는 점이었습니다.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 이 말이 단지 개인의 차원이 아니라 국가의 차원에서 필요한 것이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병리학과 기독교가 함께 이 땅에 들어오고 자리잡는 과정을 당시의 신문과 잡지를 통해 만나실 수 있습니다.


병리학은 신체를 결핍과 질병의 온상으로 본다. 그래서 각종 의료기술로 늘 관리하고 보장해 주어야 한다. 이런 사유가 진화한 예가 바로 성형중독이다. 자신감을 위해서라지만 이거야말로 자신에 대한 부정의 극치다. 자신의 개성을 지우고 누군가를 닮아 가려는 몸부림에서 존중감이 생길 리 만무하다. 우리 몸은 온갖 이질적인 존재들이 득시글거리는 타자들의 공동체다. 이 가운데 내가 조율할 수 있는 영역이 얼마나 될까? 거의 없다! 결국 내 몸의 주인은 내가 아니다! 그래서 슬프냐고? 아니, 그 반대다! 그것은 앎에 대한 열정과 호기심을 무한히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자극에 이끌리다 보면 아주 놀라운 장면을 발견하게 된다.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현장이 능동적으로 교차하는! 이 다이내믹한 현장과 조우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병리학적 배치에서 탈주해야 한다. 그런데 그 이전에 이 배치의 기원과 원리를 좀더 세심하게 통찰할 필요가 있다. 즉, 계보학적 탐색이 필요한 지점이 여기다. 아는 만큼 길이 열릴 터이므로. 이 책이 그 길로 이어지는 징검다리가 되기를 희망한다.


─고미숙, 『위생의 시대』, 「책머리에」




인간중심주의, 민족, 그리고 계몽적 지식과 교육 등등. 이 항목들은 여전히 우리 삶을 지배하고 있다. 자본의 고도화와 더불어 조금씩 얼굴과 몸매를 바꿔 가면서. 이 지배를 수락하는 한 새로운 가치의 생성은 불가능하다. 계보학적 탐색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기원의 장’으로 돌아가 그 기호들이 탄생하는 현장을 포착하는 것, 하여 그 기호들이 결코 자명한 것이 아니라 우발적으로 돌출한 것임을 목격하는 것, 그것이 이 계보학이 겨냥하는 지점이다.
 
<설국열차>의 옆문을 열고 나오면 설원이 펼쳐진다. 생존자인 ‘꼬마’는 북극곰과 마주친다. 눈앞에 생명과 야생의 대지가 펼쳐진 것. 그렇다! 근대성 안에서는 근대를 벗어날 길이 없다. 옆문을 박차고 나올 때, 즉 그 중심에서 ‘외부’를 사유할 때 그때 비로소 출구가 열릴 것이다. 이 책 또한 ‘출구찾기’의 일환이 되기를 희망한다.


─고미숙, 『계몽의 시대』, 「책머리에」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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