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좀, 나의 삶 나의 글
한 청년백수의 『천 개의 고원 사용법』
한 청년백수가 『천 개의 고원』을 만났습니다. 들뢰즈와 가타리는 자신들의 책을
'대중철학서'라고 했다고 합니다. 쉬운 철학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철학적 베이스가 없는 누구라도 책을 써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죠. 『리좀, 나의 삶 나의 글』은 그 책에 대한 한 청년백수의 사용법입니다.
『천 개의 고원』과 처음 만났을 당시, 나는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남산강학원에서 인문학 공부를 시작한 지 2년차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때 나는 내가 가족과 학교의 울타리 바깥에서 과연 새 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전혀 자신할 수 없던 상태였다. 일상을 함께해야 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는 경직되었는데, 일상을 지탱하는 일들 하나하나는 힘에 부치기만 했다. 그런데 『천 개의 고원』은 그런 나에게 벼락처럼 떨어졌다. 그동안 나를 힘들게 만들었던 원천은 바로 '나' 자신이었다. 자기 비하와 자기 오만, 자의식과 눈칫밥 속에서 하루에도 천국과 지옥을 왔다갔다 했었다. 이 책은 이 고민의 전제를 다시 되묻게 했다. 나는 정말 나인가? 내 삶은 내가 사는 것일까? '삶'이라는 것을 완전히 다른 각도에서 느낄 수는 없을까? 그러자 정말로 내 삶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이 책과 만나면서 나는 철학과 삶이 아무런 매개 없이 만나는 것 같은 경험을 했다. 들뢰즈 가타리는 "잠들고, 깨어나고, 싸우고, 치고받고, 자리를 찾고, 우리의 놀라운 행복과 우리의 엄청난 전락을 인식"하는 '일상' 속에서 실제로 써먹을 만한 개념들을 나에게 선물해 주었던 것이다.
─김해완, 『리좀, 나의 삶 나의 글』, 4~5쪽
나는 이 책을 어떻게 사용했는가? … 나의 '화두'는 관계였다. 인간관계를 이뤄가는 것이 내개는 늘 어렵게 느껴졌고, 그 앞에서는 나 자신이 초보자 같았다. 그런데 이 책은 내 고민에 터닝 포인트를 만들어 주었다. 관계를 잘 맺고 싶다고 바랐지만, 나는 '관계'라는 어떤 실체를 따로 상정한 게 아니었을까? … 우리는 자신감이 떨어지거나 불안한 마음이 들면 매뉴얼에 의지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관계에는 정해진 매뉴얼이 없다. 오히려 항상 그 매뉴얼을 깨뜨리면서 움직인다. 결국 모든 사람들은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관계의 장에 서 있는 셈이다. 무엇에도 기댈 수 없을 것 같은 막막한 상태가 되어서야, 나는 내가 애쓰지 않아도 이미 관계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7쪽)
그순간 갑자기 『천 개의 고원』 속에서 새로운 명제, 새로운 도주선이 보였다. 쓰기는 살기고 살기는 쓰기다! 살기에 정공법이 없는 것처럼 쓰기에도 정공법이 없다. 딱 하나의 초식이 있다면, 그것은 뭔가를 쓰기 위해서는 반드시 현장 속에서 능동적으로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 아무것도 자신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 한발짝을 내딛기 위해서는 바로 이 '쓰기-살기'의 긍정이 필요했다. 그렇다. 책은 '기계'이고, 철학은 '사용하는' 것이고, 삶은 '쓰는' 것이다. 스스로 움직이고 있다면, 그 현장에서 능숙하거나 서툰 것은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 (7~8쪽)
저는 이 부분에 훅! 꽂혔습니다. 누구도 내 삶을 대신 살아주지 않죠. 늘 들어왔던 말이지만, 그 말의 무게가 다시 느껴집니다. 어떤 매뉴얼도 어떤 위로도 잠깐의 처방일 뿐입니다. 결국은 스스로의 힘으로 맺어가야 합니다. 하지만 '스스로의 힘'이 개인 혼자라는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몸이 수십만 개의 세포로 이루어져있듯 우리의 삶도 무수한 관계장 안에서 펼쳐지는 것이니까요. 일단, 직접 만나고 직접 부딪쳐보아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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