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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본초서당

무를 주세요!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2. 12. 6.

무, 약식동원의 대표 먹거리

 

안순희(감이당 대중지성)

 

자연소화제 무

 

입동이 지나면서부터 해마다 김장이 시작되는데, 주부들은 가족들이 겨우내 먹을 든든한 밑반찬이니만큼 좋은 배추와 무 고르기에 신경을 많이 쓰게 된다. 그 중 오늘의 주인공 무는 음식과 약의 경계 없이 우리 식생활에서 흔히 쓰이고 때로는 약효를 나타내기도 한다.(식동원藥食同源!) 어린 시절 추운 겨울날 양지바른 마루에 모여 앉아 먹었던 시원한 무동치미와 막 쪄낸 고구마의 환상적인 궁합을 잊을 수 없다. 그 달콤한 고구마와 사이다처럼 톡 쏘는 동치미국물의 어우러진 맛이 일품이라 점심대신 자주 먹곤 했다.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입안에 군침이 돈다. 예로부터 무동치미와 퍽퍽한 고구마를 함께 먹은 까닭은 우선 목이 메지 않고 별미기도 하지만 또한 무의 탁월한 소화력 때문이기도 하리라. 


겨울철 이보다 환상적인 궁합이 또 있을까. 갑자기 얼음 동동 동치미국물이 한 사발 들이키고 싶다. 사실 난 동치미에 들어가는 저 고추를 더 좋아했다. 알싸한 맛... 잊을 수가 없다.^^


그럼 『동의보감』에선 무(=내복箂菔)에 대해 어떻게 설명하고 있을까?


성질은 따뜻하고 맛은 매우면서 달고, 독은 없다. 음식을 소화시키고 담벽(痰癖)을 없애주며, 소갈(消渴)을 멎게 하고 뼈마디를 부드럽게 해준다. 그리고 오장(五臟)에 있는 나쁜 기운을 씻어내고, 폐위(肺痿)로 피를 토하는 것과 허로(虛勞)로  여윈 것. 기침하는 것을 치료한다.
 

어느 곳에나 심어서 늘 먹는 채소다. 무가 기를 내리는 데는 가장 빠르나 오랫동안 먹으면 영위기(榮衛氣)가 잘 돌지 못하게 되고, 수염과 머리털이 빨리 희어지게 만든다.


-『동의보감』,법인문화사, 「탕액편」 1935p


일단 낯선 전문용어가 눈에 띄어 조금 어렵다고요? 담벽은 수음(水飮:수 기운이 뭉친 일종의 담음)의 정체가 오래되어 담으로 화하여 이것이 협륵(옆구리)에 흘러들어가 때때로 옆구리에 통증을 야기하는 병증이다. 소갈(消渴)은 목이 말라서 물이 자꾸 먹히거나 소변이 자주 나오는 병증이며 폐위(肺痿)는 폐가 쪼그라드는 증세를 말한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소화, 기침 등 여러 가지 속병치료제로서의 무’라고 이해하면 될 듯하다.


무의 또다른 매력? 갈 수 있다는 거?^^

무가 담벽의 치료제가 되는 까닭을 의역학적으로 살펴보면 무의 매운맛(辛味-金)이 협륵의 통증(肝病-木)을 극함으로써 흩어지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소화와 관련해선 무의 성질을 좀 더 살펴보자. 일반적으로 땅 밑의 뿌리가 큰 식물은 양陽 기운이 강하고, 땅위로 솟은 줄기가  큰 식물은 음(陰) 기운이 강하다고 본다. 무와 배추를 그 예로 들 수 있다. 뿌리를 주로 먹는 무는 양 기운이 많고 잎사귀를 주로 먹는 배추는 음 기운이 많다는 얘기다. 무를 먹으면 트림을 하게 되는데 이것은 무의 양 기운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특히 무동치미는 양 기운이 많은 무를 발효시킨 음식이니 소화에 좋다는 걸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섬유질이 많아 소화가 더딘 고구마를 먹을 때 무동치미를 곁들여 먹는 까닭이 이해되는 대목이다. 반면 우리 밥상에 늘 오르는 배추김치는 맵고 양 기운이 강한 고춧가루로 버무려 배추의 음 기운을 완화시킨 음식이다. 밥상 위에 펼쳐진 우리 조상들의 숨은 지혜가 돋보인다.^^ 이어지는 무의 또 다른 마력은?


생 무즙, 편두통 단방약!

왼쪽 편두통으로 고생한 적이 있었다. 규칙적으로 머릿속을 헤집는 듯 심한 통증이 반복되었다. 며칠이 지나도 차도가 없어 병원에 가야하나 망설이다 퍼뜩『동의보감』이 떠올라 찾아보았다. 편두통에 관한 몇 가지 처방이 나와 있었는데 가장 간단해 보이는 무즙 처방을 시도해 보기로 했다. 


편두통일 때는 생 무즙을 가막조개껍질로 1개 정도 되게 하여 콧속에 부어 넣는데, 왼쪽이 아프면 왼쪽 콧구멍에, 오른쪽이 아프면 오른쪽 콧구멍에, 양쪽이 아프면 양쪽에 모두 넣는데, 신기한 효험이 있다. 수십 년 된 것도 한두 번만 넣으면 낫는다.

-『동의보감』,법인문화사,  587p


이렇게 간단한 처방으로 수십 년 된 편두통도 한두 번 만에  낫는다니 놀라웠다. 처음에 무즙을 코 속에 넣을 때는 줄줄 흘러내려 반 이상을 수건에 적셨지만 어느새 요령이 생겨 흘리지 않고 삼키고 있었다. 콧속을 통과한 시원하고 달콤한 엑기스를. 금세 낫지는 않았고 서서히 완화되더니 며칠이 지나자 언제 아팠냐는 듯 통증이 사라졌다. 그 순간 드는 의문은 ‘무가 소화에 좋다는 건 상식으로 알고 있지만 어떻게 두통치료제가 될 수 있을까’였다.


두통의 핵심에 火와 熱이 있다. 스트레스를 받거나 몸의 과부하가 걸릴 때 머리가 지끈지끈 아픈 것도 다 이 때문! 그러니 열 받지 말자?^^

『동의보감』에선 “두통은 흔히 담(痰)과 관련되지만 통증이 심한 것은 화(火)가 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토하게 할 것도 있고 설사시켜야 할 것도 있다. 여러 경맥의 기가 막혀도 두통을 일으킨다.”(577p) 라고 하는데 두통의 원인도 담과 관련되어 나타난다는 뜻이다. 나의 경우, 열대야로 며칠간 잠을 설친 결과 신경이 예민해진 상태에서 사소한 일에 버럭 화를 낸 게 갑작스러운 두통의 원인이었던 것 같다. 즉 화난 감정이 간을 상하게 하고 그 기운이 울체되었다가 머리 쪽으로 역상(逆上:기가 아래에서 위로 치밀어 오르는 것)하여 두통으로 나타난 것 같다.(화는 병을 자초한다!)


인용문대로 “무가 기를 내리는 데는 가장 빠르기에” 무즙이 막힌 경맥의 울체된 기를 풀어서 내려준 덕에 나를 괴롭혔던 편두통은 씻은 듯 사라진 것이리라. 몸이 아파 고통스러울 때, 무조건 병원에 의지하기보다는 발병의 원인을 잘 생각해보고 관련 내용을 책에서 찾아보면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길이 있음을 처음으로 경험했다. 물론 촌각을 다툴 정도의 응급상황이 아니라는 전제하에 말이다. 지금 혹시 편두통에 시달리고 있는 분이 계시다면 서슴지 말고 시도해 보시라. 반드시 낫는다는 신심(!)을 가진다면 더 빨리 통증이 사라질지도...  


무, 알고 보니 영양소 덩어리?

한약 먹을 때 생 무를 먹으면 안 된다? 이런 말 한번 쯤 들어봤을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상관없다. 옛날에는 먹을 것이 귀하고 별로 없어서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무밥을 해먹거나 또는 무나물, 간식으로 먹는 등 무를 먹는 양이 지금보다 훨씬 많았다. 그런데 무를 먹으면 소화가 잘 되니까 비싼 한약을 먹을 때 무가 약도 소화를 빨리시켜 마치 약효가 떨어질 것처럼 염려한 데서 나온 말일 거라고 추측한다. 간혹 처방된 약제가 무와 작용해서 약효가 떨어질 경우도 드물게 있기는 하나 이럴 경우엔 한의사의 지시에 따르면 된다. 또 한약 먹을 때 무를 먹으면 머리가 희어진다는 얘기도 들은 적이 있다. 이것은 앞에서 인용한 것처럼 무를 오랫동안 많이 먹으면 수염과 머리털이 빨리 희어지게 만든다는『동의보감』내용이 한약과 관련 있는 것처럼 와전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요즘처럼 먹을 것이 넘치는 세상에서 아무리 무를 즐겨 먹은들 이런 걱정을 할 정도로 무를 많이 먹을 일이 있겠는가? 이글을 쓰면서 무, 한약과 관련된 나의 궁금증이 많이 해소되었다. 내친김에 무에 관해 좀 더 알아보자.
 

땅속에서 자란 무의 뿌리와 껍질에는 비타민 C와 모세혈관을 강하게 하는 비타민 P가 함유되어 심혈관계 질환 예방에 좋다. 무의 속보다 껍질에 비타민 C가 더 많이 들어 있다니 무를 잘 씻어서 껍질까지 모두 활용한다면 영양만점에 쓰레기도 줄일 수 있다.(일석이조다!^^) 그리고 무는 어느 곳에나 심어서 늘 먹는 채소지만 가을에 나는 것이 가장 맛이 좋고, 봄이나 여름에 나는 무는 싱겁고 물러서 맛이 없다. 가을무가 특히 좋은 까닭은 의역학적으로 설명이 가능하다. 가을에 나는 흰색 무는 가을의 수렴기운(金-흰색)에 의해 신미辛味(매운맛)를 가득 품는다. 따라서 위풍당당한 제철 채소로서 동치미, 깍두기, 무말랭이 등 김장철의 주재료로 많이 쓰일 것이다.


군침이... 더 말해 무엇하리!


저장하기에 좋은 무말랭이는 무를 썰어 말리는 과정에서 햇빛의 작용을 받아 칼슘이 더 많아진다. 특히 무의 칼슘은 소변으로 배설되지 않고 그대로 몸에 흡수되어서 그 효과가 더욱 크다. 그리고 폐경기 여성에게 보이는 골다공증이나 퇴행성관절염에 좋은 건강식품이다. 돌이켜보면 학교급식은 감히 상상해본 적도 없고, 날마다 도시락을 싸 가지고 학교를 다녀야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 배추김치나 깍두기보다는 국물이 덜 흐른다는 이유로 도시락 반찬으로 자주 애용되었던 무말랭이가 양질의 천연칼슘 공급원이었던 셈이다. 인스턴트식품이 넘쳐나고 늘 종종걸음 치듯 바쁘게 사는 요즘 사람들은, 시간 들여 말리는 정성으로 쫄깃하고 달콤해진 그 자연의 맛을 보기 어려우니 좀 아쉽다. 긴 시간을 요하는 무말랭이와는 달리 짧은 시간에 간단하게 만들기 쉬운 깍두기는 사시사철 많은 사람들이 즐겨먹는다. 그 이름에 얽힌 일화를 혹시 아시나요?


깍두기- 궁중출신 김치?

조선에서는 시집간 공주나 사대부 부인들이 궁중에 모여 음식을 만들어 왕실 어른들을 대접하는 궁중 종친 회식자리가 열렸다고 한다. 정조 때 그런 자리가 열렸는데, 참여한 여인들이 한 가지씩 요리를 만들어 올리기로 하였다. 정조의 사위인 홍현주의 부인(정조의 둘째딸 숙선옹주)은 무김치를 만들어 올렸다. 모두들 먹어 보니 그 맛이 참 좋았다. 임금이 이 음식의 이름을 묻자, 이름은 없고, 평소에 무를 깍둑깍둑 썰어 버무려 먹었더니 맛이 있기에 이번에 정성껏 만들어 올린 것이라고 하였다. ‘깍둑깍둑’ 썬 모양에서 ‘깍두기’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당시 일반 백성들은 무를 통째로 소금물에 절였다가 짠지 먹듯이 그냥 썰어서 먹었다. 그에 비해 깍두기는 한 입 먹기에 적당한 육면체 크기의 반듯반듯한  모양이었으니 보기에도 좋고 높으신 분들의 품위에도 제격이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오늘날 우리가 즐겨먹는 깍두기가 궁중출신 김치인 셈이다. 깍두기는 처음보다는 알맞게 익었을 때가 내 입엔 훨씬 맛있는데, 막 담갔을 때 이 정도 호평을 받았다니 세월 따라 사람들 입맛도 변해온 때문일까? 하긴 요즈음에도 막 담근 깍두기를 더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말이다.
 
무는 옛날부터 동삼(겨울철 인삼)이라 불리어 왔다. 사람들이 많이 먹는 무가 겨울철 일상식품인 동시에 약효도 있는 식품임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이라 생각한다. 경상도에서는 섣달그믐날 산삼 같은 생 무를 먹으면 부스럼이 없어진다는 풍속까지 있었다. 올겨울 우리들도 생 무를 산삼이라 여기고 간식으로 즐겨보면 그 알 수 없는 묘약(?)의 힘으로 기침, 두통, 소화불량은 물론 추위도 거뜬히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


내가 이렇게 인기가 좋았나?^^ 아무튼 겨울무가 인삼이라는 말에 확 동한다! 먹고 싶다~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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