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물 좀 주소~!

물은 생명계의 최대 동력


 

풍미화(감이당 대중지성)

 

상선약수(上善若水): 최고의 선은 물과 같나니,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해주면서도 다투지 않으며 사람들이 싫어하는 곳에 머문다.

 

ㅡ『노자』

 

이런 좋은 글을 보면서 내 머리에 떠오르는 그림은 내 사주팔자의 생김새다. 아래로는 물이 가득한 가운데 생명력을 소진한 약간의 흙덩이가 깔려있고, 위로는 넓은 대지가 펼쳐지고 큰 산이 있고 그 산에는 작은 쇠붙이가 있다. 그리고 쇠붙이를 밝혀줄 작은 불빛 하나. 그림이 그려지는가?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라고는 풀 한포기 보이지 않는 망망 바다에 떠있는 무인도. 그게 내 사주의 지형도인 셈이다.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글자 아래에 무슨 뜬금없는 사주팔자 타령이냐고 하시겠지만, ‘물’이라는 말만 들어도 저절로 팔이 허우적거려질 만큼 내 사주엔 물이 많다. 그래서 새해를 맞이하여 물에 대한 고민을 좀 했다.


물 많은 사주. 불이 많은 사주인 나로서를 참 부러운 사주다. 헌데 극과 극은 통한다고 했는데 물 많은 사주들도 나와 같은 망상에 시달릴까^^ 그들도? 설마?


지금은 음력으로 임진(壬辰)년이고 임자(壬子)월이라 아직은 새해가 되었다고 할 수 없지만, 양력으론 새해 벽두다. 壬은 陽水요, 子는 陰水이다. 큰물과 작은 물이 모여있는 달이니, 이런 시기에 물에 대해서 정리해보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라 생각되었다. 게다가 본초에서 물의 존재란 뭔가? 물은 탕약을 만드는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 요소가 아니던가. 귀한 약재 한 가지 정도는 없어서 못쓰더라도 물 없이 약을 달일 수는 없다. 그리고 물의 의미를 찾다보면, 내 사주의 너무 많은 물에 대해서도 더불어 건져낼 생각이 있을 듯하여 입맛이 당기는 참이었다. 그런데, 水가 많은 사주는 생각을 지나치게 한다더니, 역시 물 생각이 넘쳐나서 두 번에 걸쳐 쓰게 되었다.


음양 운동으로 돌리고

사람의 몸이나 사람이 사는 지구나 물이 70퍼센트를 뒤덮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의 몸은 전체 구성 성분의 70퍼센트가 물이라는 것이고, 지구의 70퍼센트를 물이 뒤덮고 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지구의 표면적에 한해서 그렇다는 말이다.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왠지, 매번 다른 숫자가 나오면 실망하고 싶어진다.) 물이 운동하는 방식을 살펴보면 지구가 표면적뿐만 아니라 속알맹이까지도 70퍼센트는 물이라고 주장할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다. 대류 운동을 하면서 해양과 대륙의 판을 움직이고 있는 맨틀은 지구 전체 질량의 약 70퍼센트를 차지한다. 맨틀의 주성분은 고압형 광물질이다. 쉽게 말해서 암석이 높은 압력과 온도에 의해 녹아서 액체처럼 흘러 다닌다는 말이다. 그것의 성분이 수소와 산소의 결합으로 이루어진 물질이든, 마그네슘이나 철로 이루어진 물질이든 운동하는 성질이 유동적이라면 그것은 水의 성질을 가진 것이다. 그렇다면 水는 어떤 운동을 하는 걸까?

  

음양탕. 매일 아침 생각만 하고 먹지는 못하는 음양탕. 이 한잔이 보약이라니!!

누구나 잘 알다시피 물은 대류운동을 한다. 물은 따뜻해지면 가벼워서 위로 올라가고, 차가워지면 무거워서 아래로 내려온다. 어떤 물이든 이러한 순환 운동을 한다. 이 운동 속에는 생명을 재생하는 힘이 들어 있다. 물의 움직임은 정체된 에너지를 움직이도록 이끌어 생명이 지속적으로 활동하도록 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런 원리를 이용해서 하루를 경쾌하게 시작 할 수 있는 물로 음양탕을 추천한다. 음양탕은 물을 넣는 순서가 아주 중요하다. 순서를 바꾸면 말짱 허당이 되니 조심하도록 하자. 먼저 컵에 ‘끓는 물’ 반을 담고, 그 다음에 ‘찬 물’을 채워주면 그 유명한 음양탕이 된다. 너무나 심플한 방법이라 음양탕이라는 이름이 좀 거창하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이렇게 컵에 물을 채우면 뜨거운 물은 위로 올라가고 차가운 물은 아래로 내려오면서 자연스럽게 음양의 운동을 하게 된다. 투명한 컵으로 당장 시도해보면 눈에 보일 것이다. 음양의 운동이 이런 것이구나 하는 것을. 이렇게 자연스럽게 음양 운동하는 상태의 물을 마셔주면 우리의 몸도 음양의 시동이 걸린다. 자연~스럽게. 자기 몸을 돌보는데 게으른 사람들에게도 축복처럼 간단한 양생의 물이 바로 음양탕인 것이다. 어떤가? 음양탕을 마신다는 것은, 아침 공복에 위가 놀라지 않도록 온수와 냉수를 합친 미지근한 물을 마신다는 의미가 아니다. 음과 양이 서로 자리를 바꾸면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음양 운동의 기운을 마시는 것이다. 가까운 곳에서 음양 운동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것이 바로 물(水)이다.


주고받고 흘러가고

이렇게 음양의 기운을 마셔준 후에는 몸 전체에 어떤 운동이 일어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의 의식이 잠들어 쉬는 중에도 우리의 몸은 멈추지 않고 가동된다. 단 몇 분이라도 멈추면 몸 전체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장부가 심장과 폐장이다. 숨이 멈추어 목숨이 경각에 달린 위급 상황에서 행해지는 응급처치가 심폐소생술이다. 심장이 잠깐 움직이지 않는다고 심장만 살리면 될까? 그렇다면 심폐소생술이라고 하지 않았겠지. 폐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심장도 제 역할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심폐를 함께 소생시켜야 하는 것이다. 왜? 심장은 온몸에 폐가 보내준 산소, 혹은 천기(天氣)를 영양물질과 함께 전해줘야 하기 때문이다.


심폐는 우리가 잠든 동안에도 끝없이 움직이며 온몸을 살아있도록 해준다. 물론 모든 장부가 자기 역할을 잘 하고 있으니까 우리가 살아있는 것이지만, 가장 활동성이 강한 장부로는 역시 심장을 들지 않을 수 없다. 작은 상처로도 심장을 떠올리게 만드는 붉은 피! 피도 역시 물(水)이다. 피는 몸의 작은 구석구석까지 부지런히 돌아다니면서 영양물질을 전해주고 노폐물을 수거해서 폐로 가져간다. 심장은 몸의 펌프 역할을 하는 곳이지, 몸의 정화 작용을 하는 곳은 아니다. 심장은 몸의 높은 곳에서 물이 운동할 수 있도록 압력을 통해 분출시키고 다시 그 반작용으로 흡입하기는 반복한다. 흡입된 물은 폐로 가서 정화된다. 폐를 구성하는 수많은 폐포들은, 흐르는 냇물 주변에 자라는 수초와 모래와 진흙처럼, 사용 후의 더러워진 피를 맑게 재생시켜 운동의 출발점으로 내보낸다. 그러면 물은 다시 심장에서 온몸으로 기운차게  흘러가기 시작한다.  
  

흐르지 않는 물은 썩고 있는 물이다. 순수한 물이라고 하는 H2O는 실험실에서나 존재하는 것이지 실재로는 각종 미생물과 여러 광물질이 섞인 화합물이 물이다. 그래서 물속에서는 항상 어떤 일이 생기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세계가 활동하면서 노폐물들을 만들어내고 있는데, 그것을 사람 입장에서 썩어간다고 표현하는 것이다. 그러면  그릇에 담긴 물은 전부 썩는 물인가? 그럴 리가 있겠는가.(썩기 전에 얼른 마셔주면 되지~.) 고인 물에 수생 식물을 넣어주면 물과 식물 사이에 끊임없는 순환이 이루어져서 더 이상 고인물이 아니게 된다. 식물이 물을 흡수해서 성장에 필요한 영양분을 얻고 노폐물로 산소를 배출시키면, 물은 산소를 받아서 깨끗해진다. 물이 더럽다고 할 때는 물속의 산소량이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 몸속의 피가 더럽다고 하는 것도 피에 함유된 산소량이 필요 이상으로 적을 때 하는 말이다. 식물의 노폐물이 동물에게는 생명 유지에 필수 요소가 된다. 이처럼 자연계의 순환이라는 것은 물의 운동에 의지하는 바가 크다. 물은 적게는 생물들 사이에 상수 기능과 하수 기능을 함께 하는 전달자이면서, 크게는 지구 전체의 기후를 움직이게 만드는 생태계 최대의 관계자이다.


불의 도움이 필요해

전에는 집에서 직접 탕약을 달였다. 게다가 부모님이 아프실 때는, 종이에 ‘孝’자 삼천 장을 써서 그 종이를 태우면서 약을 달여야 효자 소리 한 번 들을 정도로 약 달이는 데 정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작은 종이 삼천 장에 글자를 한자씩 써서 그 종이를 한 장씩 태워가며 약물이 반으로 졸도록 기다려야 했으니 약 한 사발에 얼마나 많은 에너지가 들어갔던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종이 한 장이 타면서 생기는 불기운이 오죽이나 했으랴. 순식간에 호로록 타들어 가는 종이 위에 또 한 장을 올리면서 서서히 불기운을 쌓는 과정이 약을 달이는 과정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서서히 쌓아올려 화력이 약하면서 온화한 불기운을 문화(文火)라고 한다. 약탕기 속에 약재와 함께 들어있는 물을 文火로 오래 달이면 물이 증발했다가, 약탕기 뚜껑으로 덮어 놓은 한지에 부딪혀서 이슬이 되어 매달려 있다가, 이슬이 많아져서 무거워지면 다시 아래로 하강하여 떨어지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런 반복을 통해 약탕기 속의 물은 단이슬(甘露)과 같다는 감로정이 되고, 그 감로정은 약재의 성분이 아픈 사람의 몸속에 들어가 적절히 작용하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 작은 약탕기 속에서도 물은 불의 도움으로 자체 순환을 하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재생산된다.
  

물이 모여 바다를 이루고, 바닷물이 증발해서 구름이 되고, 흘러 다니던 구름이 부딪히면 천둥 번개가 치고, 구름이 만나 무거워지면 눈이나 비가 되어 내리는 전 과정을 끊임없이 계속하도록 만드는 힘은 어디서 생기나? 큰 불덩이에서 생긴다. 태양의 큰 불기운이 없이는 물이 움직이지 못하는 것이다. 물은 불이 없으면 아래로 아래로만 흐를 것이기 때문이다. “만물을 이롭게 해주면서도 다투지 않는” 물의 덕도 물이 순환하는 과정에 있을 때라야 가능한 이야기다. 음의 대표격인 물은 양의 대표격인 불의 도움으로 양의 기운을 받아 가벼워진다. 물은 하늘의 기운을 품고 땅으로 내려와서 땅에게 전해주고, ‘이곳’의 땅기운을 품고 하늘로 올라가서 ‘저곳’의 땅으로 다시 내려온다. 그렇게 땅에 발붙이고 살아가야 하는 생명들에게 땅의 기운뿐 아니라 하늘의 기운까지 전해주는 것이다.


물과 불이 만나는 자리. 이렇게 장엄할 줄이야^^


그래서 엉뚱한 얘기 같지만, 내 사주에 가득한 물을 제대로 순환시켜줄 큰 불이 있었으면 좋겠다.^^; 모든 생명은 물에서 나온다. 내 사주에 있는 주체할 수 없이 많은 물을 따뜻하게 데워준다면 망망 바다에 떠 있는 무인도에도 작은 식물 한 줄기는 생겨나지 않을까? 하지만, 내게 없는 것을 바라는 것은 욕심이다.ㅠㅠ 작은 불이나마 있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하면서, 그것이나마 꺼지지 않도록 조심할 일이다. 다들 아시나? 촛불로도 라면을 끓일 수 있다는 것을. 다음 편에는 욕심이, 생명의 물을 어떻게 죽음의 물로 만드는지 그 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줄 것이다. 기대하시라 개봉박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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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신금이 2013.01.12 10:49 신고 답글 | 수정/삭제 | ADDR

    제일 위에 있는 사진은 너무 이상적인 그림이네요? 원래는 나무 한 그루 없는 그런 섬이어야 하는데... 그런데 그런 섬을 찾기는 어렵겠지요? 물이 많고 땅이 넓으면 식물은 어떻게든 자랄테니까~ 토대만 된다면면 생명을 탄생시킬 수 있는 자연의 힘을 믿으면서 오늘도 풀 한포기 얻기 위해 열심히 달려야지요^^;

    • 북드라망 2013.01.14 16:25 신고 수정/삭제

      「캐리비안의 해적」낯선 조류 마지막 장면 쯤을 보니까 정말 저렇게 생긴 섬이 나오더라구요. ^^
      저런 바다는 어떤 느낌일지~ 그 모래사장의 모래를 밟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답니다.
      (하지만 카리브 해보다 완도에 있는 명사십리에 갈 가능성이 더 크다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