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 브라더스, 동안의 비결을 알려다오
김주란(감이당 대중지성)
허균, 동안 노인을 만나다
그동안도 본초서당은 솔솔찮게 옛날이야기를 들려 드렸다. 하지만 오늘의 이야기는 그간의 ‘~카더라’식 전설과는 좀 다르다. 이 이야기의 필자는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이다. 그는 명문사대부가 출신이면서도 당시 선비사회가 이단시하던 불교와 도교사상에 깊이 빠져 있었다. 이 이야기는 그가 남긴 당대 용사, 충신, 명사들에 관한 인물평 중 하나이다.
때는 선조 36년 계묘년이었다. 허균은 강원도에서 113세의 나이가 무색하게 50대 정도로 밖에 안 보이는 초절정 동안 어르신을 만난다. 한데 자신의 이 깜짝 놀랄만한 경험담이 그렇고 그런 민담으로 가벼이 여겨질까 걱정이 되었던 걸까? 허균은 유난스레 팩트를 강조하며 깨알 같은 인터뷰를 진행한다.
성명과 주소: 강릉부(江陵府) 태화현(太和縣)사는 임세적(任世績).
이력 사항: 갑사(甲士 군사)로 있다가, 가정(嘉靖, 명 세종[明世宗]의 연호) 신해년(명종 6, 1551)에 나이가 차서 낙적(落籍, 명부에서 빠짐)된 후 강릉 산골에서 살고 있음.
가족 관계: 40세에 처와 사별 후 줄곧 독신. 두 아들과 다섯 손자를 둠.
경제사정: 자손 덕에 끼니 걱정은 없음.
113살이라니, 옛날 수명이 지금보다 짧았다는 사실을 무색케할 숫자다!
113살이라니, 옛날 수명이 지금보다 짧았다는 사실을 무색케할 숫자다!
허균의 주 관심사는 양생법이었다. 대체 이 노인의 장수비결은 뭘까? 약인가, 아니면 방술(方術)? 꼬치꼬치 캐묻는 허균 앞에서 노인은 그저 “성낼 일도 없고 살림살이를 애타게 걱정하지도 않으며, 일없이 조용히 앉아서 주리면 먹고 피곤하면 잠자면서 살아온 지 지금 60여 년이 되었습니다. 집이 산골짜기에 있어서 날마다 삽주 뿌리와 황정(黃精)을 캐 먹었습니다. 이러한 세월이 오래되자 눈이 점점 밝아지고, 귀가 점점 잘 들리며, 빠졌던 이가 점점 나고, 다리 힘이 점점 강건하여졌습니다.”라며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다. 허균은 이런 라이프스타일이야말로 정기신(精氣神)을 보전하는 비결이라며 엄지를 치켜든다. 허균의 문집 <성소부부고>에 실려 있는 이 이야기의 제목은 <임노인 양생설>이다.
삽주, 알아야 보인다
허균이 찬탄해 마지않은 임노인의 장수비결은 우선 성욕과 식욕을 절제하는 가운데 화평한 마음가짐으로 심신을 보중한 데 있겠다. 그러나 본초를 공부하는 우리들은 삽주와 황정에 시선이 절로 꽂힌다. 황정은 둥굴레고, 삽주(삽주 출朮)는 그 약재 명을 백출, 창출이라 한다. 그러고 보니 산정(山精)이라는 애칭도 갖고 있다. 황정, 산정. 정말 몸에 좋을 것만 같은 이름이다.『신농약경』에서 이르기를 “반드시 오래 살고 싶거든 늘 산정을 먹어라”했다니, 임노인께서도 이를 알고 계셨음이 틀림없다. 그뿐이 아니다. 기근이 닥치면 삽주뿌리로 양식을 대신하기도 하고 습한 여름철엔 소독과 제습을 위해 이를 태워 연기를 쐬기도 했다. 이를 보면 삽주뿌리는 뛰어난 효능을 지닌 선약인 동시에 매우 친근한 약초였던 듯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금은 삽주를 찾아보기 어렵다. 조림사업을 하도 열심히 한 까닭에 나무만 빽빽하게 들어차다보니 볕바른 양지가 줄어든 탓이다. 삽주처럼 양지바른 곳을 좋아하는 풀들은 이래저래 점점 귀한 몸이 되어가는 형편이다. 토건국가에서는 강도 풀도 살기 참 팍팍하다.
이 좋고도 귀한 삽주를 만났는데도 몰라보면 되겠는가? 뭐든 아는 만큼 볼 수 있는 법. 몸에 좋은 약이라고 마구 무단채취하실 분들은 우리 본초서당 독자 중에 없다고 믿고 삽주에 대해 안내해 드리겠다. 삽주는 국화과에 속한다. 하지만 볕드는 산비탈에 가서 국화 닮은 풀을 찾으면 헛고생이다. 꽃은 차라리 엉겅퀴에 가까우니까. 잎 모양은 “잎을 그려 보세요”하면 다들 그리는 흔한 모양(전문용어로 도란형)인데 자세히 보면 잎 가장자리가 섬세한 가시처럼 뾰족뾰족한 것이 특징이다.
삽주의 어린잎은 쌉쌀한 맛이 나는 최고의 나물이 된다. 임노인이 즐겨 먹은 것은 삽주의 뿌리였다. 해마다 삽주의 묵은 뿌리 끝에 둥그스름한 햇뿌리가 달리는데 그 햇뿌리의 껍질을 벗겨 납작납작 썰어 말린 것이 백출(白朮)이다. 묵은 뿌리는 길쭉한 모양이다. 7,8년 이상 묵어서 햇뿌리가 달렸던 자리가 염주알처럼 볼록볼록 남아있는 것을 상등품으로 친다. 이것은 창출(蒼朮)이라 한다. 백출은 좀 하얗다고도 볼 수 있으나 창출은 푸른빛이 아니라 짙은 갈색이다. 옛 사람들의 작명 센스는 미스테리할 때가 있다. 혹시 갓 캐낸 삽주뿌리는 푸른빛이 도는 걸까? 아~ 궁금하다.
삽주 꽃.
인기 좋은 출(朮) 브라더스
당신, 혹여 경동시장에 가게 되신다면 백출을 한 줌 쥐고 냄새 맡아 보시길 권한다. 우리가 ‘한약’하면 떠올리는 그 냄새, 그게 바로 백출의 냄새이다. 많이 쓰이는 약재라는 얘기다. 『동의보감』색인을 찾아보면 약재들의 인용 횟수가 나와 있다. 이 횟수를 보면 약재들의 인기도(?)를 알 수 있는데 백출은 무려 808회, 창출은 433회 등장한다. 아마도 랭킹 1위는 약방의 ‘감초’일 텐데, 그 감초의 등판 회수는 1802회이다. 감초가 이 정도면 출 브라더스는 최소 랭킹 5위 안에는 너끈히 들 수 있겠다. 대체 왜 이렇게 인기가 많은 걸까? 『동의보감』의 본문을 찾아보자.
백출. 성질은 따뜻하고 맛은 쓰면서 달고, 독은 없다. 비위를 튼튼하게 하고 설사를 멎게 하고 습을 없애주며, 소화시키고 땀을 그치게 하며, 명치끝이 몹시 그득한 것과 곽란으로 토하고 설사하는 것이 멎지 않는 것을 치료하며 허리와 배꼽 사이의 혈을 잘 돌게 하며, 위가 허랭하여 생긴 이질을 낫게 한다. ...『신농본초경』에는 창출과 백출의 구분이 없었는데, 근래 와서 백출을 많이 쓰는 바, 이것으로 피부 속에 있는 풍(風)을 없애며...상부로는 피모, 중간으로는 심과 위, 하부로는 허리와 배꼽의 병을 치료한다.
ㅡ『동의보감』「탕액편」
그렇다. 백출의 제1기능은 비위(脾胃)를 튼튼하게 하는 일이다. 비위는 소화를 담당한다. 백출의 단 맛은 토(土)에 해당하므로 오장육부 중 토에 배속된 비위로 바로 들어간다. 창출은 백출과 기본 성질이 비슷하면서도 쓴 맛과 향이 더 강하다. 비위는 습(濕)의 조화가 중요한데 쓴 맛은 불필요한 습을 빼준다. 향은 위로 발산하는 성질을 가진다. 발산은 뻗어나가는 목(木)의 기운이기에 급히 막힌 것을 뻥 뚫어주는 힘이 백출보다 세다. 한의학에서는 약재의 이런 맛과 성질을 기미(氣味)라 하는데,『본초문답』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양기를 받고 태어난 사물은 그 性이 陽하고 음기를 받고 태어난 식물은 그 성이 음하다. (…) 사물은 반드시 생성과 소멸, 형, 색, 기, 미의 차이에 의거한 이후에야 그 성을 정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둥그스름하게 덩어리진 백출은 중초에 머무르면서 비위를 보하는 반면, 길쭉한 창출은 물 빼주는 작용이 더 크다. 또 삽주의 성질이 따뜻한 것은 양지를 좋아하는 성질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백출과 창출은 다른 거 안 한다, 그저 싸고 빼고 뚫어줄 뿐! (소화에는 최고-_-b)
백출과 창출은 다른 거 안 한다, 그저 싸고 빼고 뚫을 뿐! 한마디로, 소화에는 최고다(-_-b)
비결이 너무 평범해~
백출과 창출, 이 출 브라더스가 약방의 스테디셀러인 이유는 바로 이 약재들이 다름 아닌 ‘비위’를 튼튼하게 하고 불필요한 습을 없애 소화를 돕게 하는 작용을 한다는 데 있었다. 그렇다면... 동안과 장수의 비결이 고작 ‘소화’? 이건 평범해도 너~~무 평범하지 않느냐고? 그렇다. 매우 심히 평범하다. 하지만 탈모, 부종, 어지럼증, 설사, 구토, 만성피로 등 만병의 근원이 비위에 있는 걸 어쩌겠는가. 비위가 부실한 사람은 무엇보다 기운을 잘 쓸 수가 없다. 신선이 아닌 이상, 사람은 밥심으로 산다. 이걸 이 바닥에서는 후천지정(後天之精)이라고 한다. 후천의 정을 생산해내는 장부가 비위다. 비위야말로 사람 몸 가운데서 마치 만물을 품어 키워내는 대지처럼 온갖 음식물을 받아들여 영양분을 뽑아내고 그걸 다시 기혈로 전변시키는 거대 프로젝트의 담당자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재미있지 않은가. 하늘과 땅이 ‘미세한 기운을 빨아들여 형체를 가진 곡식으로 기르는 일’과 사람이 ‘곡식을 흡입(^^;)하여 미세한 기운으로 뽑아 쓰는 일’. 선후만 다를 뿐 사건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는 공통이다. 오호!
이런 관점에서 농경과 소화는 같은 사건이다. 그리고 농사가 그렇듯 소화도 사람에게 천하지대본(天下之大本)임은 두 말 할 것 없다. 똑같이 먹어도 누구는 호랑이 기운이 솟아나고 누구는 뻑하면 체해서 위로 아래로 내놓느라 고생하는걸 보라. 소화를 담당하는 비위의 능력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마는 비위의 기능차로 소양인과 소음인을 대별했고 금원 사대가의 한 사람인 이고는 아예 비위를 키워드 삼아 의학체계를 재정렬시켰다. 중원을 지배하는 자는 천하를 얻고, 비위를 다스리는 자는 후천지정을 득템할 것이다! 그리고 그 비위를 보하는 정약이 바로 오늘의 주인공 백출, 창출인 것이다.
건강하고 싶다면 기본부터 충실! 소화!
건강하고 싶다면 기본부터 충실하자! 소화를 챙기자!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최초의 신약도 소화제였다. 다 아실게다. 그 이름도 유명한 활명수. 목숨을 살리는 물이라는 뜻이다. 이런 거창한 네이밍을 감행한 것으로 미루어 짐작컨대 백 년 전 이 땅의 사람들은 소화의 중요성을 충분히 알고 있었던 것 같다. 허균은 이런 말도 했다. 요란한 이론과 신비로운 비법을 들먹이는 사람들이 만약 화내지 않고 걱정하지 않으며 배불리 먹지 않는 임노인을 본다면 식은땀을 흘리리라고. 당신의 일상은 안녕하신지? 나는 식은땀이 난다. 삐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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