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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인문의역학! ▽/24절기 이야기

곡우 - 각설하고 정신줄부터 붙잡자!

by 북드라망 2012. 4. 20.
곡우, 존재의 씨앗을 틔우다

김동철(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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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우, 간절함의 다른 말

촉촉한 봄비가 내려 곡식을 윤택하게 하는 곡우의 이미지는 허상이다. 이때는 오히려 가뭄이 심하기 그지없다. 한 해 농사를 좌우하는 봄 가뭄의 엄습은 농부들을 근심하게 한다. 입춘부터 청명에 이르는 동안 정성스레 마련한 씨앗이 한순간에 말라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곡우는 이 절기 동안 비가 와서 붙여졌다기보다, 비를 바라는 농부들의 간절한 소망이 담긴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이 마음이 얼마나 지극했는지 모든 일상이 기우(祈雨)를 중심으로 재구성되었다. 곡우는 볍씨를 담그는 때이다. 볍씨는 농부에게 희망의 씨앗과 진배없다. 어떻게든 잘 돌봐 싹을 틔워 무럭무럭 자라게 해야 한다. 그것은 생존의 문제였다. 흔히 실없는 소리를 할 때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라는 정체불명의 말을 쓰곤 한다. ‘씨나락’은 ‘씻나락’으로도 쓰이는데 둘 다 볍씨의 사투리다. 이토록 애지중지하는 씨나락을 귀신이 감히 까먹는다고!?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곡우 무렵, 볍씨를 담그는 때에는 부정 타는 일을 몹시 경계했다. 실없는 언행을 삼갔으며, 상을 당하면 조문을 가지 않고 혹시 가더라도 집 앞에 불을 질러 죽음의 기운을 사르는 의식을 치렀다. 물론 그런다고 하늘이 비를 내려주는 것은 아니다. 인간은 그저 자신이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최대한 성실하게 임할 뿐이다.

입춘부터 청명까지 비교적 사뿐히 걸어왔다면, 곡우의 분위기는 사뭇 절박하고 비장하기까지 하다. 특히나 바로 앞 절기인 청명의 파릇하고 경쾌함과 대조되어 더욱 뻑뻑하게 느껴진다. 왜 그럴까? 무엇이 곡우를 이렇게 간절하게 만드는가? 곡우는 봄의 여섯 절기 중 마지막이다. 동시에 입하(立夏), 여름으로 들어서는 문턱이다. 절기는 마디로서 사람의 몸으로 비유하면 관절과 같다. 15일마다 바뀌는 절기는 인체의 모든 관절에 해당하는데, 그 중에서도 같은 계절 내의 절기끼리는 비교적 작은 관절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팔을 하나의 계절로 보고 봄이라 칭해 보자. 그 안의 손가락, 손목, 팔꿈치 관절은 계절에 속해 있는 절기로, 각각 입춘 우수 경칩 춘분 청명에 해당할 것이다. 그럼 어깨는? 어깨 관절은 팔에 속하면서도 몸통을 잇는 부위다. 봄이면서 여름을 잇는 문턱인 곡우가 바로 어깨 관절에 속한다고 비유할 수 있다. 모든 관절이 다 중요하지만, 서로 다른 성질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는 좀더 주의할 필요가 있다. 더욱 혹사당하고 그렇기에 쉽게 망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봄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과정은 만만치 않다. 관절은 강하면서도 유연해야 한다. 강하기만 하면 부러지고, 유연하기만 하면 힘을 쓸 수 없다. 상반되어 보이는 두 요건을 충족할 수 있는 비밀은 바로 밀도의 응집성에 있다.

착! 달라붙어라

봄은 한 해의 아우트라인, 골격을 형성하는 시기이다. 집을 지을 때 먼저 뼈대를 튼튼히 하는 것과 같다. 만화 『슬램덩크』에서 주인공 강백호는 화려한 덩크만 하려고 벼른다. 그런 그에게 주어진 첫 훈련은 제자리에서 드리블 500회! 기본기라는 골격에서 화려한 기술이 나온다. 결국 화려한 기술은 새로운 그 무엇이 아니라, 수많은 기본기의 다양한 조합일 뿐이다. 봄의 다섯 절기에서 우리는 삶의 기본기를 다양한 방식으로 배우고 실천했다. 화려하게 불타오르는 여름을 앞두고 지금껏 익힌 기본기를 한 점으로 응축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여름은 어느 때보다 격렬하고 활발히 움직이며, 생명의 에너지가 폭발하는 시절이다. 태양은 대지에 사정없이 작렬하고, 초목은 시퍼런 본색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인간은? 인간의 화려한 여름은 봄 내내 잉태하고 있던 작은 볍씨에 예정되어있다. 옹골진 볍씨는 생명 에너지의 정수다. 그 안에 우주가 담겨 있다. 무한한 생명의 가능성을 지닌 ‘포텐셜 덩어리’로써의 볍씨는 곡우에 비로소 완성된다. 골 밀도가 높은 골격이 튼튼하듯, 속이 꽉 찬 볍씨가 뜨거운 여름에 살아남아 싹을 틔워 자랄 수 있다. 곡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지금껏 해 왔던 것을 하나로 응축하는 일이다. 입춘에 뜻을 세우고, 우수에 응어리진 마음을 풀고, 경칩에 과감해지고, 춘분에 갱신하고, 청명에 미혹되지 않았다면, 곡우에는 그 모든 것을 한 점에 모으자. 바로 ‘삶의 현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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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백호의 제자리 드리블 500회 훈련은 농구공이 손가락과 손바닥, 나아가 온몸 신경 구석구석에 익숙해지기 위한 과정이었다. 몸과 공이 하나가 되어 착 달라붙는 물아일체의 경지라 할까? 강백호에게 삶의 현장은 바로 농구공이었다. 일상에서 흘려보내는 순간은 그저 스쳐 지나가는 장면일 뿐 진정한 현장이 아니다. 스스로 마주하고 지속해야 비로소 나의 현장이 만들어진다. 그때 농구공은 내 손끝에서 자유자재로 춤춘다. 삶의 현장은 내가 투입한 집중력과 꾸준함에 비례한다. 한꺼번에 몰아서 초치기 하는 것이 아닌, 천천히 깊게 물들이는 일과 비슷하다. 글을 쓸 때는 오직 글쓰기 자체에 몰두해 한 문장을 쓰더라도 씨름하며 전진할 뿐이고, 일상에서 피하고 싶은 순간을 만나도 꿋꿋이 감수하는 기백이 필요하다. 그러다 보면 낯설고 어려워 보이는 상황도 차츰 익숙해지고 감당할 수 있는 배짱이 생긴다. 강백호 얘기를 했으니 농구로 비유하면 게임 종료를 앞둔 긴박한 ‘클러치’ 상황에서, 평정을 잃지 않고 마지막 슛을 던지며 ‘왼손은 거들 뿐!’이라고 내뱉을 수 있다고 할까. 그때 그는 이미 자신의 현장, 즉 ‘게임을 지배하고’ 있다. 자, 이제 곡우의 절박함으로 여름의 입구인 입하로 들어섰다!

곡우의 우(雨)는 정(精)이다

옹골찬 뼈대 혹은 볍씨로 자신을 단련하려면 현장에 달라붙어야 한다. 그런데 집중하고 싶고, 꾸준히 하고 싶어도 잘 안 되는 것이 현실이다. 현장에 달라붙는 방법은 무턱대고 밀어붙이는 것보다 정(精)의 슬기로운 보존에 달려 있다. 왜냐하면 집중력과 지속력의 원천이 바로 정(精)이기 때문이다. 정(精)이 소모되면 기운이 빠져 정신줄을 놓게 된다. 정신줄을 놓으면 맛이 간다. 그런데 청명 곡우 즈음에 사람의 정신줄을 놓게 하는 환경이 무수히 조성된다. 요맘때 세상은 화려하기 그지없다. 개나리, 진달래, 벚꽃 등 아름다운 꽃들이 만발해 사람들은 취한다. 바깥으로 나들이가 잦아지고 가만히 앉아있기가 아깝게 느껴진다. 자꾸 일을 벌이고 시쳇말로 ‘뻘짓’ 하는 일이 많아진다. 이렇게 시선이 외부로 급속히 쏠리면, 기혈이 신체의 상부로 몰려 현기증에 시달리거나 눈이 깔깔하고 쉽게 피로한 증세가 나타난다. 현장을 지키는 힘의 근원이 고갈되어, 머리는 어지럽고 눈은 시리고 몸은 노곤하니 어떻게 하랴? 현장과 달라붙기는커녕 더욱 멀어지는 지름길이 아닐 수 없다. 난국을 헤쳐 나갈 길은 따로 없다. 어쨌든 다시 현장에서 출발할 수밖에. 우리가 땅속으로 숨으랴 하늘로 날아오르랴? 직면하지 않을수록 밀린 일상의 숙제는 먼지마냥 켜켜이 쌓인다. 그저 눈앞에 놓인 현장을 피하지 않고 최대한 성실하게 의지를 갖고 임할 뿐이다. 어라, 이 말은 어디서 한번 들어 본 것 같은데?

그렇다. 앞서 말했듯 곡우는 농부의 비를 바라는 간절함이 담겨있는 절기다. 설령 비가 오지 않더라도 부정 타는 일을 삼가고, 성실하게 자신의 일상을 돌보았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농부는 비가 오지 않는 하늘을 짐짓 원망하더라도, 자기의 현장을 내팽개치지 않는다. 그는 여전히 볍씨를 고르고, 논둑을 다지고, 못자리를 만든다. 언젠가 내릴 단비를 절대적으로 확신하며! 우리는 우리가 처한 현장에서 도망칠 수 없다. 현장의 문제는 바로 그곳에서 풀어야 한다. 딴생각이 들수록 그 생각과 맞서 싸우는 방법밖에 없다. 어쩌면 농부가 바라 마지않는 곡우의 우(雨)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아닌, 어떠한 외부 조건이 닥치더라도 흔들리지 않는 자기 자신의 존재성이 아닐까. 그것이 바로 정신줄을 붙들어 매는 힘의 원천으로써의 정(精)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사수하자, 정신줄! 놓지말자, 정신줄! 정신줄은 우리 몸의 물질적 토대가 되는 정(精)과 무형적 벡터인 신(神)을 연결시킨다. 이걸 놓치면 정과 신이 따로 분리수거 되고 만다. 이후에 펼쳐지는 상황은 이미 경험해 보셨을 거다. 맞다. 우리는 자주 놓친다.^^ 곡우엔 이 정신줄이 튼튼한지 다시 한 번 점검해야 한다. 그래야 여름의 열기 속에서 정과 신을 보존할 수 있다.


한의학에서는 정(精)을 수(水)기운에 속하는 신장(腎臟)에서 생성한다고 말한다. 또한 신주골(腎主骨), 즉 신장은 정(精)을 생성하며 정(精)은 골격의 성장과 발육을 촉진한다고 본다. 정(精)이 충만하면 뼈대가 튼튼해지는 것이다. 인생의 바탕이 되는 골격과 기본기가 바로 정(精)의 밀도에서 비롯한다. 마침 곡우 즈음은 나무에 물이 가장 많이 오르는 시기이다. 특히 이때 채취한 고로쇠나무의 수액은 뼈에 좋다고 해서 골리수(骨利水)라 부르기도 한다. 곡우와 뼈대는 이래저래 관련이 깊다.

존재는 현장에서 피어난다

정신줄을 놓아 나타나는 여러 증상은 신장의 정(이하 신정腎精)이 부족해서 발생한다. 이를 신음허(腎陰虛)라 이르고, 대개 과로와 과도한 성생활, 집착과 같은 스트레스가 주요 원인이다. 신정은 골수·뇌수와 척수의 생장을 돕는 작용이 있다. 척수(脊髓)는 뇌로 통하고 뇌는 수(髓)가 모여서 이뤄지므로 『영추靈樞』「해론海論」에서는 “뇌는 골수의 바다와 같다”고 했으며, “수해(髓海)가 부족하면 머리가 어지럽고 눈이 흐릿하고, 몸을 움직이기 싫어하며 항상 누우려고만 한다”고 말한다. 이처럼 신정은 인체의 생장발육과 정신 사유 활동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정이 뼈요 정이 마음이다. 밀도 있는 뼈는 몸통을 땅바닥에 우뚝 설 수 있게끔 하고, 충만한 마음은 잡념에 흔들리지 않는다. 그럴 때 우리는 현장을 비켜서지 않고 정면에서 있는 그대로 맞설 수 있다. 하늘이 가물어도 시련이 눈앞에 펼쳐져도, 미련해 보일 정도로 우직하게 대응하는 모습이야말로 인간의 고귀한 점이라 생각한다. 한때 동물은 위험한 조짐을 본능적으로 느껴 달아나는 지혜를 발휘하지만, 인간은 그렇지 못한 점을 어리석게 여긴 적이 있다. 그러나 어찌 그렇게만 생각할 수 있을까?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은 어리석더라도 그 자리를 꿋꿋이 지킬 때 빛나는 면이 있다는 것을!

온갖 생물은 훈풍 속에서 고무하고 / 群生鼓舞條風裏
만물은 곡우 뒤에 소생했도다 / 萬品昭蘇穀雨餘

─『청장관전서』, 제12권 아정유고 4(雅亭遺稿四) 시 4내각(內閣) 춘첩(春帖)

인간의 존재성은 현장에서 발아한다. 자신만의 삶의 현장을 구성하는 능력을 기르지 않으면 존재감이 없다. 그것은 일상에서 어떠한 일도 스스로의 힘으로 할 수 없는 무기력함을 의미한다. 남의 의도대로 조종당하며 세상의 부조리에 한탄만 할 뿐이다. 나는 이제부터 태도를 바꾸리라. 스스로 일어서기 위해 뼈의 밀도를 강화하고, 정신줄을 콱 움켜쥘 것이다. 뜨거운 여름에 생존하려면 그 수밖에 없다. 삶의 현장은 곡우의 다른 이름인 간절함에서 생성된다. 만물이 곡우 뒤에 소생함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여름이 목전에 도달했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사용자 삽입 이미지비가 내린다. 누구 마음의 간절함이 하늘에 닿은 것인가. 무엇이 자랄 것인가. 비 내린다.


※ 임진년 곡우의 절입시각은 4월 20일 01시 18분 입니다.
※ 계사년 곡우의 절입시각은 4월 20일 07시 03분 입니다.
※ 갑오년 곡우의 절입시각은 4월 20일 12시 55분 입니다.
※ 을미년 곡우의 절입시각은 4월 20일 18시 42분 입니다.
※ 병신년 곡우의 절입시각은 4월 20일 00시 29분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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