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사회라는 몸

사회라는 몸


이때 곤란했던 역어로, 예를 들면 (미국)헌법 서두에

​‘정부의 임무는 justice와 society에 있다’라는 원어가 있다.

이에 맞는 한자를 할당하면 의(義)와 인(仁)이라는 두 글자면 끝나는데,

 이는 너무 단촐하기 때문에 justice는 정의(正義)로, 

society는 회사(會社)라든지 사회(社會)라든지 사교(社交) 등 여러 번역어를 찾았다.

 모리 아리노리는 ‘그냥 임시로 소사이어티라고 하면 된다’고 주장했는데

 그래 가지고는 번역이 아니라는 비난이 일어나 고심참담했다.

─ 久米邦武, 『久米博士九十年回顧録』下, 256쪽

 

 

‘사회적인 것’의 번역불가능성


​우리는 society를 보면 바로 ‘사회’라는 번역어가 생각나지만, 이 번역어가 곧바로 정착된 것은 아니었다. society의 번역어로서 사회라는 말은 여러 가지 번역어 중에서 선택된 것이었다. 물론 사회(社會)라는 말은 이전에도 있었던 단어였다. 고대 중국에서 뿐만 아니라 일본 에도 시대에도 동업사 단체와 지역적인 지연 소집단 혹은 종교적인 교단조직을 나타내는 말로 자주 사용되었다. 이 때 사회란 말은 지금의 용법처럼 쓰인 것은 아니었다. 고대 중국에서 사회란 토지 신인 ‘사(社)’의 제례일의 의미였고, 송대에는 지역적인 지역공동체의 자치조직을 ‘사(社)’라고 하며 그 회합을 ‘사회’라 했다.

그러나 ‘사회’라는 단어가 언제 등장했는가 단발적인 용례들을 확인하는 것이나, 사회가 지금의 말과 어떻게 달랐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society’를 어떻게 상상 했는가 일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사회(society)’와 ‘사회적인 것(the social)’을 구별할 필요가 있다. 즉 사회라는 말이 전통적으로 어떻게 쓰였는가, 새로운 번역어로 언제 등장하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사회적인 것으로 상상, 파악, 이미지화 하는가가 중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 대신에 무엇을 사회적인 것으로 파악하느냐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사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사회를 어떤 본질적인 고유성을 가진 것으로 파악하게 함으로써 질문하는 대상을 실체화해 버리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것을 ‘사회적인 것’이라 파악하고 상상하는가라고 우회적으로 묻는 편이 낫다. 이때 ‘–적인 것’이란 어떻게 이를 인식하느냐의 문제이며, 어떤 특정한 방식으로 사유하는 조건과 배치를 보고자 하는 것이다. 즉 명사로서 그것들의 실체를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형용사로서 그것들의 ‘특성’을 찾을 때 고정된 본질이 아닌 상황과 조건의 변이를 고려하는 역사적 접근이 가능할 것이다. 따라서 근대 동아시아라는 시공간 하에서 무엇을 사회적이라 인식하는가라고 바꿔 질문할 필요가 있다.

 

이는 특히 근대 동아시아 지식인들이 사회를 번역불가능한 개념이라 생각했다는 점과도 관련된다. 따라서 사회라는 말이 어떻게 쓰이고 유통되었는지 역시 중요하지만, society라는 개념을 어떤 형태로 이미지화했는가를 보아야 한다. 근대 일본의 지식인들이 보기에 society란 서양인들의 삶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이를 어떻게 이해할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전통적인 개념들, 가령 인(仁)이나 군(群) 같은 개념을 가지고 사회를 설명하기도 하지만 society가 이런 전통적 개념들과 차이가 있다는 점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전통적 어휘들로 설명하면서도 이들과 차이를 밝히는 방식이 동원되었다. 이 속에서 새로운 집합적 형태로서 사회적인 것을 구성하려는 노력이 등장한다. 이는 본격적으로 ‘society=사회’라는 의미에서 사회라는 말이 사용된 1870년대 후반 이전의 번역어들 속에서 찾아볼 수 있다.

​‘society’란 무엇인가


society라는 개념을 동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받아들인 것은 일본이었다. society라는 말과 일본어의 최초의 만남은 난학에서 시작된 근대어 학습과 사전 번역의 과정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사전 속에 고립된 한 단어로서, 컨텍스트가 단절된 상태에서 이 개념을 만나게 되었다. 가령 처음 난불사전이 일본어로 번역된 1770년부터 1870년대 이르기까지 100년 사이에 네덜란드어, 프랑스어, 영어 번역사전 중에 society 개념에 대응되는 번역어군으로는 ‘交る, 集る, 朋友, 会衆, 侶伴, ソウバン(相伴), 交り, 一致, 寄合, 集会, 仲間, つき合い, 組合, 懇’ 등이 쓰였다. 이들 용어는 지금 우리가 사회를 상상하는 것보다 전체적으로 추상도가 낮고,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인간관계를 상기시키는 말이라는 점에 특징이 있다.

그러나 이는 society에 대한 이해부족에서 기인한 것이라기보다 당시 society라는 단어의 사용법에서 기인했다고 보아야 한다. 이 시기 유럽에서도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같은 society 개념은 확립되지 않았었다. 즉 18-19세기 서양에서도 society 개념은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인간관계를 가리키는 의미로 쓰였으며, 이로부터 추상성과 일반성이 높은 근대적 사회라는 의미로 변해가는 과정에 있었다. 일본에서 번역된 사전들이 출판되었던 시기는 서양에서도 사회 개념이 변화하는 과정 중에 있었던 시기였던 것이다.

 

하지만 서양을 직접 체험한 이들이 늘어나면서 society라는 개념을 직접 관찰, 체험한 후 기존의 일본어 혹은 한어로 치환하는 것은 불충분하며 거의 번역 불가능한 개념이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된다. 대표적으로 1871년에서 1872년까지의 이와쿠라 사절단의 일원으로 미국을 경험한 구메 구니타케(久米邦武)의 기록을 볼 수 있다.

 

이때 곤란했던 역어로, 예를 들면 (미국)헌법 서두에 ‘정부의 임무는 justice와 society에 있다’라는 원어가 있다. 이에 맞는 한자를 할당하면 의(義)와 인(仁)이라는 두 글자면 끝나는데, 이는 너무 단촐하기 때문에 justice는 정의(正義)로, society는 회사(會社)라든지 사회(社會)라든지 사교(社交) 등 여러 번역어를 찾았다. 모리 아리노리는 ‘그냥 임시로 소사이어티라고 하면 된다’고 주장했는데 그래 가지고는 번역이 아니라는 비난이 일어나 고심참담했다.

​─ 久米邦武, 『久米博士九十年回顧録』下, 256쪽

 

모리 아리노리는 미국 헌법의 justice와 society를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의 문제를 둘러싸고 당시 사절단 내에서 많은 논의가 있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결국 ‘회사’, ‘사회’, ‘사교’ 그 무엇으로도 적절한 society 개념을 전달할 수 없어 ‘소사이어티(ソサイチー)’로 음차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는 번역이 아니라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어쩌면 이는 아직 society라는 말의 번역어가 확립되지 않았던 상황에서의 고민일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주목할 것은 어떤 번역어를 쓸 것인가 고르는 문제가 아니라 society라는 단어를 번역 불가능하다고 인식한 데 있다.

번역이란 단순히 이국의 언어를 자국의 언어로 일대일로 옮기는 과정이 아니다. 번역 이론에서 자주 이야기되는 번역의 불가능성(impossibility)은 번역어로 어떤 말을 선택해야 할지 어렵다는 차원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번역은 등가적인 것들 사이의 교환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교환관계가 있고나서 둘 사이의 등가관계가 성립된다. 따라서 번역은 “등가라서 교환되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교환된 것이 등가가 된다.”

따라서 교환 관계가 성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모리가 느꼈던 ‘고심참담’은 어떤 번역어를 선택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라, 이것이 동양 전통에서는 없는 개념이라는 점을 인식한 데 있다. 주지하듯이 근대 동아시아의 지식인들은 하나의 번역어를 만들어내기 위해 수많은 노고를 아끼지 않았다. 이는 번역이 단순히 일대일의 단어 대 단어의 문제가 아니라 전혀 알 수 없는 외국어의 다발들로 이뤄진, 전혀 다른 가치체계를 수용하는 차원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한도는 그들의 지식과 가치체계를 넘어섰다. 구메가 느꼈던 번역의 불가능성 역시 그런 고민의 결과였을 것이다. 따라서 이를 원어와 번역어 사이의 자동적인 치환 과정으로 생각하면 보이지 않는 부분들이 있다. 번역을 어떤 단어가 원어를 가장 그럴듯하게 번역했는가의 문제만으로 살펴 볼 수 없는 이유이다. 그렇다면 society라는 개념을 이해, 상상, 재현하면서 근대 동아시아에서 어떤 방식으로 ‘사회적인 것’을 사유했는가를 살펴보자.

​society의 번역으로서 ‘인(仁)’


​이처럼 번역의 불가능성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면 번역 과정에서 보아야 할 것은 번역자들의 상상 혹은 은유 속에서 그것들이 어떤 방식으로 이해되는가이다. 번역에는 언제나 필연적으로 양자 사이에 어쩔 수 없는 불일치와 균열점들이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나 개념과 그에 따른 실천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이를 일대일의 관계로 번역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따라서 기존의 언어들을 사용하면서도 양자가 가질 수밖에 없는 차이를 해명, 보충하는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유럽에서 정치의 요점을 논할 때면 반드시 ‘저스티스(justice)’와 ‘소사이어티(society)’에 있다고 말한다. ‘저스티스’란 권리와 의무[權義]를 명확하게 하는 것을 말하며, ‘소사이어티’는 사회의 친목을 말한다. 궁극적으로는 ‘의(義)’와 ‘인(仁)’ 두 글자로 귀결될 터이지만, 인의(仁義)는 도덕적인 관점에서 나온 말이고, ‘소사이어티’와 ‘저스티스’는 재산보존의 입장에서 나온 말이다. 따라서 그 의미는 정반대라고 말할 수 있다. 유럽의 정치 풍속을 관찰할 때에는 언제나 이 요점을 놓치지 않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

​─ 구메 구니타케, 정선태 역, 『특명전권대사 미구회람실기』5권, 201쪽

앞서 회고장면에서 등장했던 society의 번역어에 대한 고심은 『미구회람실기』에 위와 같이 표현되고 있다. ‘저스티스(​just​ice)’와 ‘소사이어티(society)’는 유럽 정치의 핵심으로 정치 풍속을 관찰할 때 놓치지 말아야 할 요점이라고 강조된다. 근대 일본의 지식인들이 society가 유럽의 핵심이라고 파악했던 점은 분명해 보인다. 그들이 서양에서 받은 충격 중에 커다란 것 하나가 서양에서는 인프라 정비, 정치, 경제로부터 의료, 복지나 학술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역에 걸쳐 다양한 단체, 결사 즉 어소시에이션(association)이 공적인 활동을 담당하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근세의 일본에서도 사교나 학술 등을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결속은 활발히 전개되고 있었지만 사람들의 결합이 공적인 활동력이 되는 것은 엄하게 금지되고 있었던 것에 비해 이러한 모든 부문에서 민간 어소시에이션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는 서양의 사정은 경탄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society를 사회의 친목으로, 이를 의(義)와 인(仁)으로 설명하는 점은 특이하다. 의가 ‘수오지심(羞惡之心)’, 인이 ‘측은지심(惻隱之心)’을 가리킨다고 할 때 이러한 이해방식은 정의의 문제와 관계되는 justice와 사람과의 관계, 사교를 의미하는 society의 원뜻과 정확히 일치하지는 않더라도 어느 정도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구메가 이 둘을 완전히 동일한 것으로 파악한 것은 아니었다. 즉 ‘인의’는 도덕적 관점이고, ‘소사이어티’와 ‘저스티스’는 재산보존의 입장에서 나온 말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이때 society란 사람들이 재산의 보존을 위해 모인 것이라는 인식이 뒷받침 되고 있다.



이는 위 인용문의 바로 앞에 나오는 ‘의필고아(意必固我)’라는 말과 관련된다. 구메는 유럽인들의 목적은 오직 이 ‘의필고아’를 성취함에 있다며 이것이 동양의 풍습과는 반대라고 말한다. 이때 ‘의필고아’란 서양 사람들이 말하는 ‘이욕(利慾)’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것이 서로 경쟁하면서 생활하는 원동력으로 표현된다. ‘의필고아’라는 말은 원래 『논어』 「자한」 (子罕)편에 나오는 말이다. “공자는 4가지가 없었는데, 사사로운 뜻[意]이 없고, 반드시 그렇다는 단정[必]이 없고, 고집[固]이 없고, 아집[我]이 없었다(子絶四. 毋意, 毋必, 毋固, 毋我)”는 구절에서 의(意), 필(必), 고(固), 아(我)를 가지고 온 것이다. 그러나 구메에게 논어에서의 부정적 뉘앙스는 전이되어 ‘자주’의 원리로 긍정적으로 전용됨은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구메는 서양에서는 이 뜻을 고집하는 자일수록 훌륭한 인물로 간주되어 의회를 설립하든, 기업을 조직하든, 국가를 세워 다스리든 그 목적이 모두 이 ‘의필고아’를 성취하는데 있다고 말한다.

이를 보아도 알 수 있듯 구메가 인식한 society란 상부상조의 모델이라기보다 자신의 재산 혹은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결과로서 이루어진 ‘친목’이라고 인식하고 있다. society를 설명하기에 앞서 ‘유럽의 정치와 법률의 본질은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데 있다’고 명시적으로 밝히고 있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 ‘이욕’을 기반으로 재산을 지키기 위한 것으로서 society를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 간의 전통적 관계를 규정하던 인(仁) 개념으로 society를 번역하기에는 무언가 안 맞는 부분이 있다고 역자들도 생각했다. 이를 ‘의필고아’라는 전통적인 논의를 한 번 비틀어 가지고 온 것이다. 사회적인 것이란 단순히 기존의 공동체적 관계와 달리, 개인들을 단위로 해서 설정된다. 이것이야말로 동양에는 근본적으로 부재하는 것으로 따라서 society를 서양의 독특한 관계성을 보여주는 개념임을 인식한 것이었다.

이처럼 society는 당시 지식인들에게 번역하기 난해한 개념이었다. 이는 개념과 실천이 부재한 상황 속에서 전통적인 개념들을 가지고 와서 서구의 개념들과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통해 설명하려는 노력들로 나타났다. 이 속에서 society는 도덕이나 존재론적인 관점이 아니라 이익적인 관점에서 해석되고 있었으며, 의필고아, 즉 이욕에 기반한 ‘자주’의 원리로 구성된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인’이라는 전통적 관계를 나타내는 말로 society를 설명한다. 하지만 이것으로 society란 무엇인가를 말하기에 부족하다고 느꼈다. ‘인’이라는 말을 쓰면서도 ‘의필고아’를 강조하는 논의 속에서 이제 전통적인 공동체 관계를 넘어 사회적인 것을 경제와 관련된 것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시도들이 등장한다.

​※ 덧: 이 글은 키무라 나오에(木村直恵)의 논의를 기본으로 합니다.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개념과 소통』 2017년 여름 19호에 실렸으니 각주나 참고문헌은 그 글을 참고해 주세요.

글_김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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