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모여사는 신체

모여사는 신체

 

 

사회라는 우산 아래 ‘모인다는 것(assembled)’이 무엇인지 철저히 검사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사회학, 즉 ‘함께 사는 것의 과학’의 오랜 의무에 충실한 유일한 길처럼 보인다.

 

─Bruno Latour, 2007, Reassembling the Social, p.2 

 


이문회우(以文會友)


이처럼 상생하는 관계로서의 사회적인 것을 파악한 것은 일본에서만이 아니었다. 그 일례로서 중국에서 society를 번역한 용어로서 ‘군(群)’이라는 역어 역시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군’은 전통적으로 사람의 집단이나 사물의 집단을 가리킬 때 쓰이던 말이었다. 그러던 것이 근대에 들어 ‘사회’라는 말이 번역어로 정착되기 전까지 society를 번역하기 위한 말로 쓰였다. 그렇다면 이들은 ‘군’이라는 말 속에서 무엇을 전달하려 했던 것일까?

먼저 군 말고도 사회를 가리키기 위해 사용된 말이 하나 더 있었다. ‘회(會)’라는 말이 그것이다. 서양을 경험한 중국의 지식인들이 1870년대 이후 구미의 사회조직을 가리키는 말이 필요했고, 이를 ‘회’로 번역한 것이다. 이후 학회, 상회, 농회와 같은 단어들로 지식인, 상인, 농민이 스스로 조직한 단체를 가리키기 시작했다. 이 때 공자가 말한 ‘이문회우(以文會友)’, ‘이우보인(以友輔仁)’이라는 경전이 회라는 말을 가져온 근거가 되었다. 즉 군자가 학문으로써 벗을 모으고[會], 이 벗들로써 인(仁)을 돕는다[輔]는 말이 사회를 가리키는 뜻으로 쓰인 것이었다.

캉유웨이(康有爲)가 『일본서목지(日本書目志)』 (1898)에서 일본의 사회학 책 21종을 소개하며, ‘사회’라는 일본의 번역어를 채용하면서도 이를 ‘회’의 논리로 설명한 것 역시 이 때문이었다. 그는 “대지 위에 하나의 커다란 회가 있을 뿐으로, 이 회가 크게 모이면 이를 국가라 하고, 회가 적게 모이면 이를 공사(公司), 사회(社會)라 이른다.”고 설명한다. 이는 공자가 말한 것처럼 서로 돕기 위한 것이라고 보충 설명한다. 이처럼 회는 강학적 전통과 맞물려 서양의 협회(society, association)와 같이 자조적 단체를 의미하는 말로 쓰였다.




군(群)이라는 번역어


그러나 회라는 말로는 society가 갖고 있는 정치적 의미를 담아내기 힘들다고 생각했다. 군이 society의 역어로 쓰이기 시작한 것이다. 옌푸(嚴復)는 「강함에 대하여(原强)」(1895)라는 글에서 군(群)으로 society를 번역한다. 

소위 군이라는 것은 사람이 모여 이루어진 것이다. 부분에 정밀하지 못하면 전체를 볼 수 없다. 또한 일군(一群) , 일국(一國)의 성립 역시 체용공능이 생물의 일체(一體)와 다름이 없이 크기의 차이는 있어도 기관의 기능[官治]은 서로 준한다.

이처럼 군을 사람이 모여 이루어진 것은 전통적인 군에 대한 설명과 유사하다. 그러나 부분에 정밀하지 못하면 전체를 볼 수 없다는, 즉 집합적인 방식으로 군을 이해한 것은 전통적인 논의와는 구별되는 것이었다. 이때 군이라는 말은 옌푸가 스펜서의 society라는 말을 번역한 것이었다. 

스펜서[錫彭塞]라는 사람이 있는데 역시 영국 출신이다. (다윈의) 이치를 종지로 삼아 인륜의 일을 크게 밝혀 그 학문을 일러 ‘군학(羣學)’이라 하였다. 군학이란 무엇인가? 순자는 “사람이 금수와 다른 것은 능히 무리[群]를 이룰 수 있음(人之所以異於禽獸者 以其能羣也)”이라고 말한다. 무릇 민이 ‘상생상양(相生相養)’하고 ‘역사통공(易事通功)’하여 형정예악의 위대함을 이룰 수 있는 것은 모두 스스로 무리를 지을 수 있는 성[自能群之性]에서 생기는 것이다. 고로 스펜서씨가 그 뜻을 따라 학문을 이름을 지은 것이다.

옌푸는 사회를 생물과 같은 유기체로서 파악하는 스펜서의 관점을 가지고 와서 사회를 설명하며, 이를 ‘군’이라 칭한다. 군학(羣學)이란 말도 사회학을 번역한 말이었다. 앞서 니시 아마네가 사회의 역어로서 ‘상생양의 도’를 선택해 이를 ‘역공통사(易功通事)’의 논리 속에서 이야기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옌푸 역시 ‘상생상양(相生相養)’과 ‘역사통공(易事通功)’으로 군(群)의 논리를 뒷받침하고 있음은 대단히 흥미롭다. 사람들이 모이는 성질의 바탕이 상생상양하고 역사통공하는 사람의 성질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어 그는 이것이 『대학』에서 이야기하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논리와 유사하다고 말한다. 오히려 『대학』에서 이를 언급하면서도 상세히 이야기하지 않았던 것이 스펜서의 책에 의해 논리가 정치해지고, 뜻이 풍부해졌다고 상찬한다.

옌푸는 스펜서의 『사회학 연구(A Study of Sociology)』를 번역한 『군학이언(群學肄言)』(1903)에서도 “민이 합해 군(羣)을 이룬다. 그 유닛에 차이가 있고, 군(君)과 민 사이에 세가 나뉘어진 후에야 상생양하는 체를 이룬다”라고 하여 ‘social aggregation’에 해당하는 부분을 ‘상생양(相生養)’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옌푸가 니시처럼 적극적으로 ‘상생양’을 번역어로 채택한 것은 아니지만 군이라는 전통적 어휘 속에 이 뜻을 포함시킴으로써 사회적인 것을 설명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옌푸가 니시의 저작들을 읽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니시와 옌푸 모두 전통 유학적 소양이 풍부한 인물이었던 점,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서양의 개념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했던 점을 고려하면 전통적인 개념들로 society를 파악하는 점은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니시와 옌푸의 차이점 역시 존재한다. 앞서 보았듯이 니시가 사회적인 것의 자율성, 상보성을 강조한다면 옌푸는 군의 논리를 치국평천하의 가치와 연결시킨다. 순자가 도를 이루는데 왕의 역할을 상정한 것처럼 옌푸 역시 스스로 군을 이룰 수 있는 성질을 강조하면서도 그것이 치국의 논리와 연결됨을 말한다. 요컨대 옌푸에게 사회적인 것이 곧 국가적인 것 속에서 이해된다. 옌푸는 『군학이언』의 역자의 말에서도 순자를 인용하고 있다.

 


순자가 말하길 ‘민생유군(民生有群)’이라 했다. 군(群)이라는 것은 인도(人道)로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군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사회는 법이 있는 군이다. 사회는 상공정학(商工政學)이 있는데 이 중 가장 중요한 의의는 최종으로 나라가 된다는 것이다. 육서(六書)의 뜻을 생각해보면 이는 고인의 설과 서학(西學)이 합치함을 알 수 있다. 어째서 그러한가. 서학에서는 백성이 모여 부륵(部勒)(일본[東學]에서는 조직이라 칭한다)이 있어 기향(祈嚮)하는 것을 사회라 한다. 자서(字書)에서 읍(邑)이란 사람이 모인 회(會)를 칭한다. 口는 구역이 있음을, 卪은 법도가 있다는 것이다. 서학에서는 토지의 구역이 있고 그 백성이 싸움에 임해 지키는 것을 나라(國)라 한다. 자서에 이르길 나라는 고문에서 或이라고 쓰였는데, 一은 땅이고, 口을 창(戈)으로 지킨다는 것이다. 이를 보면 중학과 서학의 뜻이 그윽히 합치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옌푸가 읍(邑)이나 국(國)을 서양의 사회나 나라의 역어로 쓰면서 이것이 전통 사상과 합치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부회론으로 볼 수 있는 여지가 없지 않다. 그러나 이는 당시의 금문경학 운동과 관련지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금문경학은 여러 고전 속에 숨겨진 대의를 새롭게 해석해 현실 개혁을 위한 이론적 근거로 삼으려는 청말의 학풍이었다. 이 때 사회와 관련되어, 군을 이야기할 때 자주 등장하던 논의가 순자였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옌푸는 역사의 각종 형태의 사회를 총칭하는 개념으로서 ‘군’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옌푸의 군 개념의 창출은 중국의 천하관으로부터 서양의 국가관으로 세계상이 전환되었다고 평가된다. 이처럼 서양의 개념들을 전통 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는 옌푸의 논법은 전통을 강조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오히려 둘 사이 학문에서 공통점을 찾은 결과였다.


합군의 논리


그런데 사회를 이야기하고자 했던 목적 역시 니시와 크게 다르다. 당시 중국의 지식인에게 군이 논의된 이유는 개인과 사회와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의 문제 때문이었다. 단순히 사회를 묘사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현실을 변혁하기 위한 처방전이 필요했다. 옌푸는 밀의 『자유론(On Liberty)』을 『군기권계론(群己權界論)』(1903)이라는 제목으로 번역한다. 이는 제목에서도 보이듯이 ‘군(群)’과 ‘기(己)’, 즉 사회와 개인 사이의 권한의 경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가의 문제였다. 하지만 원래 밀의 논의가 개인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사회의 한계를 설정한 것이었다면, 옌푸의 번역본은 자유의 과잉을 방지하기 위한 수단적 성격이 강했다.

이러한 성격의 군에 대한 논의는 량치차오(梁啓超)에게서 보다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그는 「설군서(說群序)」(1897)에서 ‘합군(合群)’에 대해 논하고 있다. ‘군술(群術)’로서 군을 다스리면 군은 이루어지지만, ‘독술(獨術)’로서 군을 다스리면 군은 붕괴한다. 량치차오는 서양에서도 이러한 군술이 나온 지 백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군이란 천하의 공리(公理)이자 만물의 공성(公性)이라 주장한다. 그런데 만물은 군을 이뤄 서로 경쟁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며, 나의 군의 붕괴는 다른 군의 이익이 된다. 이런 경쟁 상황에서 군력이 부족하면 마침내 그 종은 끊어지는데 이는 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이처럼 합군론은 국가의 존(存)과 망(亡), 망국의 위기의식과 연관 속에서 제시된다. 이러한 위기의식과 군이 연관된 사유는 망명 후인 1900년 이후에도 이어져 중국의 쇠약의 근원으로 군을 이루지 못하는 국민성을 들고 있는 데서도 볼 수 있다. 이를 보아도 알 수 있듯 중국에서 사회, 즉 군(群)에 대한 논의는 출발부터 이미 망국이라는 위기의식 속에서 이야기되고 있었다. 사회적인 것이 필요했던 것은 천하의 공리이기도 하지만, 이를 통해 서로 경쟁하는 힘을 갖춰 멸종의 위기에서 벗어나고자 함이었다. 따라서 군을 이루지 못하는 개인주의적 성격이 비판된다. 

내 몸을 안으로 타인을 밖으로 하는 것이 일신(一身)의 아(我)이다. 우리 군을 안으로 다른 군을 밖으로 하는 것이 일군(一群)의 아이다. 마찬가지로 아(我)에게도 대아와 소아의 구별이 있다. 군의 경쟁의 승패는 군의 결합력의 강약에 의해 결정된다. 결합력을 강대히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일군의 사람이 항상 나아가 몸을 굽혀 군에 따라, 소아를 버리고 대아를 지킨다. 타를 사랑하고 타를 이롭게 한다는 의가 가장 중요하다. 중국인은 군이란 무엇인가 어떤 의가 있는지 알지 못해 사람들의 마음속에 단지 일신의 아만 있을 뿐 일군의 아가 없다. 이로써 사억의 사람에게 사억의 나라가 된다.

─량치차오,「중국이 허약해진 근원을 논함(中國積弱遡源論)」(1901)


량치차오는 나라가 망해도 자기에게 손해가 없으면 손을 놓고 망하는 것에도 상관 안 하는 국민들을 비판한다. 더 심한 것은 나라가 망해도 자기에게 이익이 있으면 힘써 망하는 것을 돕는데 전혀 부끄러움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의해야 할 점은 량치차오의 합군론이 개인의 가치를 무시하고 집단만을 강조한 것처럼 보이지만 개인의 독립을 전제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량치차오는 ‘독립의 덕’과 ‘합군의 덕’을 ‘상반(相反)’하면서도 ‘상성(相成)’하는 덕성이라고 제시한다. 그는 중국의 독립을 말하려면 우선 중국 개인의 독립을 말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도덕상의 독립이 있어야 형세상의 독립이 있다고 강조한다.

량치차오



이를 량치차오는 합군은 ‘화광동진(和光同塵)’도 아니고 ‘유아독존(唯我獨尊)’도 아니라고 표현한다. 전자라면 합군은 독립의 적이고, 후자라면 독립이 합군의 적이 된다. 그는 ‘독립’의 반대는 ‘의존’이지 ‘합군’이 아니며, ‘합군’의 반대는 ‘사영[營私]’이지 ‘독립’이 아니라고 말한다. 즉 량치차오는 합군의 논리를 개인주의와도, 집단주의와도 구별하며, 이를 통해 바깥과의 생존경쟁에서 살아나기 위한 의식적, 주체적 행위로서 파악한다.

 

그러나 량치차오의 이러한 설명이 기능적으로는 집단을 통합시키는 원리에 방점이 찍혀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밀이 사회와 개인의 관계에 대해서 말하며 이 둘 간의 긴장관계에 주목한 것은 옌푸는 물론 량치차오에게 그대로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량치차오가 밀의 자유론을 번역한 논문인 『신민총보』에 실린 「정부와 인민의 권한을 논한다」(1902)에서 ‘사회적 포학(暴虐)’이란 부분이 사라진 이유였다. 사회적 포학론이 사라진 것은 합군론이 유지되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 밀이 보기에 사회와 개인과의 관계는 서로 적대적이거나 적어도 서로 권한을 뺏고 빼앗기는 제로섬적인 측면을 갖고 있지만 합군론에서 개인은 군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는 량치차오가 합군론을 사회진화론의 생존경쟁, 우승열패의 시대인식하에서 구국을 위한 대항원리로 삼았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량치차오는 “사람은 군이 없으면 내계를 발달시킬 수 없고, 외계와 경쟁도 불가하다”고 말한다. 그에게 군의 성립은 안을 발달시켜 바깥과 경쟁하기 위한 도구였다.

이렇게 보자면 량치차오에게 개체의 독립과 사회를 형성할 필요성은 국가적인 경쟁이라는 목표점을 분명하게 띄고 있다. 그는 『신민설』 「논국가사상」(1902)편에서 국가의 기원으로서 군을 이야기한다. 이때도 앞서 보았던 ‘역사통공’과 ‘분업상조’의 논리가 등장한다.

사람이 다른 생물에 비해 귀한 이유는 무리(群)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일 뿐이다. 만약 자기 한 몸이 혈혈단신 대지에 고립되어 있었다면, 나는 것은 날짐승보다 못하고 뛰는 것은 뭍짐승보다 못하니 인류는 이미 오래 전에 절멸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적으로 보면, 평화로운 시기에는 일을 나눠 하고 공을 바꿔 쓰며[通功易事] 분업하고 서로 도우니[分業相助] 혼자서 온갖 기술을 갖추기는 분명 어렵기 때문이다. 외적으로 보면, 급한 전쟁 때에는 무리의 방책과 무리의 힘으로 성을 지키고 적을 막으니, 혼자서는 더욱 한 몸조차도 보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국가가 일어난다. 국가는 성립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에 성립했다. 즉, 개개인은 자기 한 몸에만 의지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너와 내가 단결하여 서로 보완하고 서로 막아 주며 서로를 이롭게 하는 방법을 별도로 구하게 되었다. 그 단결이 영원히 흩어지지 않고, 그 상부상조가 영원히 어그러지지 않고, 도와주는 것이 오래도록 이지러지지 않게, 그 막아 주는 것이 오래도록 잘못되지 않게, 서로에게 주는 이익이 오래도록 끝이 없게 하고자 한다면, 반드시 사람마다 자기 한 몸보다 더 크고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때 량치차오가 군의 논리를 설명한 것은 일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강조하기 위함이었다. 역사통공하고 분업상조하는 이유는 혼자서는 자신을 지킬 수 없기 때문이다. 즉 개인은 자기 한 몸에만 의지할 수 없어 단결해 서로 도와야 하는데 이것이 자기 한 몸보다 더 큰 국가라는 단위였다. 결국 군의 논리는 합군의 도달점인 국가를 설명하기 위한 과정으로 그려진다. 앞서 본 바대로 상생양과 통공역사의 논리가 경제적, 상호적, 원리적인 것으로서 사회적인 것을 상상해왔던 근대 일본의 경우와는 달랐다. 이때 집단적인 것으로서 사회는 국가의 전단계로서의 역할 밖에 부여받지 못했던 것이다.

사회란 무엇인가


근대 동아시아라는 시공간은 개념이나 이념이 시대를 이끌어간 것이 아닐 뿐더러 그들에게는  이를 표현할 적절한 언어조차 손에 없었다. 그들이 말할 수 있는 방법은 어떤 이미지화된, 구체화된 심상으로밖에 표현 불가능한 것이었다. 아니 이마저도 표현하기에는 부족한, 현실과 괴리되는 것일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사회적인 것을 번역하면서 무언가를 그려내려 했던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이러한 상상 속에서 전통적인 어휘 속에서 새로운 개념들을 받아들이며 이의 변형을 통해 새로운 현실을 추동해냈다. 

그런 점에서 society를 상상하는데 전통적인 개념들을 가지고 사유하는 것은 한계라기보다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 모른다. 근대 동아시아의 지식인들은 society라는 번역불가능한 개념을 사유하면서 ‘인’, ‘상생’, ‘도’ ‘역사통공’ ‘군’ 등의 전통적 개념들을 동원했다. 기존에 없던 새로운 society라는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전혀 새로운 말들을 만들어야 했다. 새로운 말이 등장하기 이전에 기존의 전통적인 개념들로 이를 설명하려 했었던 노력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다. 그들에게 사용할 수 있는 언어는 고전 텍스트에 나오는 것들이었다. 이 과정에서 상생하는 집합적 신체로서의 사회적인 것의 이미지가 구축된다.

그러나 고전의 전거들이 원용이 되지만, 이것이 전통적 개념들을 그대로 가지고 온 것도 아니었다. ‘의필고아’ ‘역사통공’ 등의 사용례에서 보이듯이 전통적 용어들을 새롭게 전유하고 있다. 그들은 전통적 개념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전유하면서 번역의 불가능성을 해결하려고 했다. 즉 사회에 대한 인식이 구체적이지는 않지만 그것은 수평적 인간관계를 바탕으로 한 자율성을 띤다. 사회의 번역어로서 주목했던 ‘상생양(相生養)의 도’라는 단어 속에서도 개인들이 ‘상호주체적’ 혹은 ‘상보적’으로 서로 계약을 맺어 ‘자율적’으로 상생하는 모델로 사회를 상상했다. 이는 질서를 만들어내는 주체로서의 군주의 자리를 대체하고, 직접 무매개적으로 접속하는 수평적인 공간이었다. 이는 전통적으로 군주의 덕성이라고 여겨졌던 특성을 모든 인민들의 덕성으로 확대시키며 새로운 공간에 대한 이미지를 환기시켰다. 이때 사회적인 것은 일종의 수평적, 자율적, 상보적 관계 내지 장으로서 제시된다.

그런 점에서 근대에서 ‘사회적인 것’을 상상할 때 이것은 퇴니스 식의 공동사회(Gemeinschaft)와 이익사회(Gesellschaft)의 모습 어느 것 하나로 정리될 수 없다. ‘인(仁)’, ‘군(群)’, ‘상생양(相生養)’이라 할 때 이것들이 전통적인 게마인샤프트적 요소를 갖고 있지만, ‘인’을 ‘의필고아’로서 의욕의 문제로 이를 보충하면서 설명하고, ‘군’을 ‘역사통공’의 경제적 분업의 논리로 설명할 때, ‘상생양’을 시계와 같은 모델로 설명할 때 이는 전통적인 게마인샤프트적 요소를 뛰어넘는다. 그러나 그렇다고 이것이 게젤샤프트적 요소로서만 한정되는 것도 아니다. 추상적인 society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 어떻게든 특수, 구체적인 공동체적 관계를 통해서만 이해 가능했다. 이는 사회적인 것이 상상될 때 공동사회냐 이익사회냐라는 두 유형틀로는 설명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테일러가 지적하듯이 우리가 쉽게 빠지는 오류 중 하나가 전통적인 ‘공동체’의 소멸과 이를 대가로 한 ‘개인주의’의 부상으로 읽어내는 경향이다. 그러나 공동체가 해체되면서 개인이 등장하는 것이라기보다 기존의 공동체에 대한 상에서 새로운 공동체나 사회에 대한 상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이에 대한 상상이 어떻게 변화했는가가 더 중요할지 모른다. 



근대 동아시아에서 society에 해당하는 ‘사회’라는 공간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새로운 개념어로 만들어내야 하는 장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말로 새로운 개념을 전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기존의 개념들을 변형시켜 이 부재하는 개념을 담아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society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이들은 원래 전통적 개념어들이 갖고 있던 용법을 변화시키고, 의미를 전환시켜 버림으로서 기존의 개념들을 탈맥락화해 새로운 용법으로 사용한다. 이는 society라는 가상의 공간을 만들어 내기 위한 과정에서 나타나는 ‘언어적 전회(linguistic turn)’의 순간이기도 했다. 물론 그것은 전통적인 공동체적 관계나 국가라는 개념틀과 혼동되기도 했지만 사회적인 것이란 무엇인가를 상상, 재현하면서 등장하는 새로운 ‘장(field)’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주지하다시피 이후 society의 번역어로는 ‘사회’라는 말이 정착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서 인이나 상생, 군과 같은 개념으로 society를 번역한 것을 추상명사로서의 society로 파악하지 못한 전단계로서 이해하는 것으로 결론 내리고 그쳐서는 안 된다. 그것은 ‘사회란 무엇인가’라는 보다 본질적인 질문과도 관련된다. 라투르가 지적하듯이 사회란 단순히 하나의 영역으로서 실체(domain of reality)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모인다고 할 때의 ‘사회적’인 의미, 즉 연결의 원리(principle of connections)와 관련된 개념이다. 따라서 사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관계맺음의 원리 자체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보자면 추상적인 ‘사회’ 개념이 등장하는 것은 근대적 네이션이 상상된 이후에나 역으로 가능하게 되는, 즉 통계화 할 수 있는 하나의 양적 집합으로서 과학의 대상으로서 사회가 파악된 이후에나 가능하게 된 것일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전통적인 관계성 개념으로서 society를 번역했던 이들은 우리에게 사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다시 되돌려주고 있다.


글_김태진

(이 글은 한림대학교 한림과학원, 『개념과 소통』 2017년 여름 19호에 「근대 일본과 중국의 ‘society’ 번역: 전통적 개념 속에서의 ‘사회적인 것’의 상상」 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글입니다. 자세한 각주나 참고문헌은 생략했습니다. 각주나 참고문헌은 『개념과 소통』을 참고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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