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루쉰 사진展 - 사진으로 보는 루쉰의 길

루쉰 사진展



기념비가 된 선생님


"루쉰은 사진찍기를 좋아했다. 아니, 정말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여하튼 수많은 사진을 남긴 것만은 분명하다. ‘사진 1’이 그 스타트다. 변발을 자르기 전의 사진은 없으니까. 이 사진을 찍은 이후 그는 도처에서, 갖가지 포즈로, 다양한 사람들과 사진을 찍었다."

- 17~18쪽

루쉰, 50세 생일 기념 사진, 1930년. 상하이

현 루쉰중학교(옛 베이징여자사범대학) 내 중정에 있는 루쉰 기념상

상하이 루쉰 기념공원


"기분이 참 묘했다. 사후에 이렇게 영광을 보는 작가가 또 있을까. 더구나 자신은 결코 선구자가 아니고 단지 “중간물”에 불과하다고 했고, 자신의 작품이 속히 잊혀지기를 열망했는데 말이다. 그래서 참 궁금하다. 중국 인민들은 정말로 루쉰을 사랑하는 걸까. 루쉰이 무엇을 고뇌하고 모색했는지를 짐작이나 하고 있을까. 프롤로그에서 밝혔듯이 루쉰의 글은 은산철벽이다. 암흑과 무지(無地), 어둠과 적막의 메아리다. 더구나 아Q건 쿵이지(孔乙己)건 천스청(陳土成)이건 그의 작품에 나오는 캐릭터는 하나같이 비호감, 아니 요즘 유행하는 말로 ‘극혐’이다. 이런 면모를 안다면 대부분은 뒷걸음질을 치리라."

- 40쪽

"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 그의 흔적을 이토록 세밀하게 접할 수 있는 것은 행운이지만, 그가 명성을 넘어 우상이 되어 버린 것은 불행까지는아니더라도 분명 슬픈 일임에 틀림없다. 우리에게 있어 루쉰은 우상이 아닌 ‘사우’(師友) — 스승이면서 벗인 존재 — 이기 때문이다."
- 40~42쪽



루쉰의 길, 사람들


"신체의 해부보다 중요한 건 정신의 해부다. 중국인은 지금 정신의 고질병을 앓고 있는 것이다. 이런 중국인에게 시급한 것은 이 비참과 비겁에 대한 자각이다. 혁명은 다수를 만족시키는 공리(公利)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의 통절한 자각에서 비롯된다는 것. 그 자각을 촉구할 수 있는 무기는 ‘글’밖에 없다는 것. 글은 한 사람 한 사람의 독자에게 비수와도 같은 질문을 내리꽂는다. 너 또한 아Q가 아니냐? 네가 바로 그 구경꾼이 아니냐? 더 이상 센다이에서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문예’라는 또 다른 도주로가 열렸기 때문이다."

- 69~70쪽

루쉰, 도쿄 유학시절, 변발을 자르다

숨은 루쉰 찾기, 센다이 의전 시절


센다이 의전 시절 일본인 동급생들과 송별회 후 찍은 사진, 뒷줄 맨 왼쪽이 루쉰

센다이박물관 내 루쉰의 흉상


"이 세상에 ‘순결한 창조’ 같은 건 없다. 태어나는 모든 것들은 태내의 오물을 뒤집어쓴 채 세상으로 나온다. 오물로 가득한 폐허를 만나지 못한 자들, 자신이 있는 곳을 폐허로 경험하지 못한 자들은 어떤 것도 창조할 수 없다. 그러하니 창조하려거든 몰락하라, 태어나려거든 흔쾌히 죽어라!"

- 73쪽


루쉰 "길 없는 대지"


"그렇다. 다시, 갈 뿐이다. 인생에 ‘되돌아감’이란 없다. 루쉰 말대로, “되돌아가 봤자 거기에는, 명분이 없는 곳이 없고, 지주가 없는 곳이 없으며, 추방과 감옥이 없는 곳이 없고, 겉에 바른 웃음이 없는 곳이 없고, 눈시울에 눈물 없는 곳이” 없는 것을.루쉰, 「길손」, 『들풀』(루쉰문고 05), 한병곤 옮김, 그린비, 2011, 49쪽 하여, 끝까지 가리라는 보장도 없고 우리를 기다리는 것이 죽음뿐이라 해도, 그저 가 보는 것, 걷고 또 걷는 것. 그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전부다."

96쪽


루쉰 1935년

사오싱(紹興)의 루쉰이 자란 집


상하이 루쉰의 첫번째 거처

상하이 루쉰의 두번째 거처

상하이 루쉰의 세번째 거처

베이징에 온 루쉰이 머물렀던 사오싱회관


"황푸강 이쪽에는 옛날 영국조계지의 흔적인 영국식 건축물들이 고풍스럽게 서 있었다. 건물마다 빨간 깃발이 꽂혀 있었는데 한결같이 은행 아니면 증권 건물이었다. 갑자기 며칠간의 강행군이 아득하게 느껴졌다. 이곳이 혁명을 치른 나라가 맞을까? 혁명은 어디에 있고, 또 루쉰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다시 원점. 여행은 그렇게 끝나고 있었다."

- 195쪽



"베이징에서 샤먼으로, 광저우로, 홍콩으로, 상하이로. 어딜 가든 세상은 지옥이었다. 그러나 루쉰은 그 지옥의 삶을 온몸으로 끌어안는다.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지옥에서의 고통을 기꺼이 짊어지고자 했던 지장보살처럼, 루쉰은 천국을 꿈꾸는 대신 사람들과 함께 지옥을 살았다333. 희망을 의심하고 절망에 저항하면서. 타인을 해부하는 그 칼로 자기 자신을 해부하면서."

- 2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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