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닌하오 공자, 짜이찌엔 논어』 - 적합하게, 더 적합하게

『닌하오 공자, 짜이찌엔 논어』 - 적합하게, 더 적합하게



『논어』 열한번째 편인 「선진」(先進)편에는 이런 대목이 있습니다. 공자님이 자로(子路), 염구(冉求), 공서화(公西華)라는 제자들과 같이 있는데, 자로라는 제자가 불쑥 선생님께 이렇게 묻습니다.

“선생님! 어떤 말을 들었다면 실행에 옮겨야 하겠죠?”

그러자 공자 선생님께서 이렇게 대답합니다.

“아니다. 부모 형제가 계신데 그렇게 듣는 대로 바로 행동에 옮겨서야 되겠는가. 심사숙고 해야지.”

그러자 곁에 있던 염구가 묻습니다.

“선생님! 어떤 말을 들었다면 실행에 옮겨야 하겠죠?”

그러자 공자 선생님께서 대답합니다.

“콜! 당연하지. 들으면 실행해야지!”

그러자 공서화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묻습니다.

“선생님! 방금 전에 자로 형님이 ‘들었으니 실천해야죠?’라고 여쭈니까 ‘부형이 계시다’고 말씀하시고선, 지금 다시 염구가 ‘들면 실천해야죠?’라고 물으니 ‘실천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아니, 1분도 안 지났는데, 한 입으로 두 말을 하시면 어떡합니까?”

문성환 지음, 『닌하오 공자, 짜이찌엔 논어』, 북드라망, 2017, 53쪽.




공서화의 물음에 대해 공자님은 무어라 답하셨을까? 익히 아는 바와 같이, 자로는 너무 활발, 거칠어서 기운을 눌러주고, 염구는 지나치게 차분하고 신중해서 북돋아 준 것이라 답한다. 여기서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일관성’이다. 말하자면 그것은 어떤 경우에나 달라지지 않는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지, 똑같은 어구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일관성 그 자체가 어떤 ‘진리’는 아니다. 오히려 ‘진리’는 일관성을 가능하게끔 하는 저변이 아닐까? 들은 것을 바로 행하지 말고 심사숙고 하라는 말이나, 들은 것을 바로 행하라는 말이나 사실 가리키는 바는 한가지다. ‘적절하게 하라’.


“자로는 동네 왈인(건달) 출신이고, 나이는 많고, 거칩니다. 이런 자로가 ”들었으면 곧 실행해야죠?“라고 했던 말과 평소 얌전하고, 아직 나이도 어린 염구가 ”들었으면 곧 실행해야죠?“라고 하는 말이 과연 같은 질문일까요? 어떤 말이 자로와 계열화되면 그것은 이미 자로의 질문인 것입니다. 염구와 계열화되면 이미 염구의 질문인 것이고요. 그러니 당연히 다른 질문에 다른 대답인 것이지 않을까요?” - 같은 책, 54쪽.


그렇다. ‘적절함’이란 결국 다른 질문에 다른 대답을 하는 것, 같은 질문에는 같은 답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질문’이 묻는 바를 가려내는 것이야말로 적절하게 행하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질문’은 언제나 그렇듯, ‘말’이나 ‘글’로만 다가오지 않는다. 그것은 언어와 무관하게, 어떤 사태 속에서 갑자기 훅 닥쳐온다. 하루에도 몇 번씩 말이다. 인간의 삶이 독특하다면 인생이 바로 그런식의 ‘질문’과 ‘답’의 연쇄 속에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 맥락을 지워 버리거나 괄호 쳐버리고 읽는 것은 『논어』를 그저 도덕교과서로 만들고 마는 것입니다.” - 같은 책, 54~55쪽.


그렇다면, 『논어』가 ‘도덕교과서’가 아니라면 그것은 어떤 책일까? 

일단, 『논어』는 ‘대화’로 가득찬 책이다. 제자들이 묻고, 스승이 답한다. 이때 제자들의 질문은 구체적이고, 항상 ‘질문’의 상황과 분리불가능하게 엮여 있다. 자로, 염구, 공서화의 질문들처럼 말이다. 말인즉, 『논어』의 제자들은 공자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묻기 위해 있는, 『논어』의 필수불가결한 존재인 셈이다. 그리하여 이 책은 어떤 집단의 기록이면서, 동시에 다양한 맥락과 상황에서 끌어올 수 있는 도구상자, 사례집과 같은 책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이 책에는 ‘끝’이 없다. 어떤 구원의 약속도, 돌아올 메시아도 여기에는 없다. 다만, 부단한 정진만이 있을 뿐이다. 무엇을 향해서? ‘적합함’이 아닐까? 그때 그때의 상황이 요구하는 가장 적절한 것, 유교적인 의미 구원이란 아무 거스름 없이 그러한 적합성을 몸에 익히는 것이다. 옛날 사람들이 『논어』를 읽고 또 읽고 반복해서 읽어온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이리라. 다시 말해 여기에서 ‘도덕’은 하나의 요소일 뿐이지 진리의 전체가 될 수는 없다. 무겁지도, 어렵지도 않은 책, 『논어』를 읽자. 『닌하오 공자, 짜이찌엔 논어』와 함께. 더욱 가볍게, 가뿐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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