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루쉰 길없는 대지』 저자 인터뷰 2탄 - 나는 루쉰주의자인가?!

※ 『루쉰, 길없는 대지 - 길 위에서 마주친 루쉰의 삶, 루쉰의 글쓰기』 저자 인터뷰를 두 번에 걸쳐 포스팅 합니다. 5가지 질문에 여섯분의 필자 선생님들이 답해 주셨는데요, 내용 및 분량에 따라 나누어서 올립니다. 책도 훌륭하지만, 인터뷰도 의미로 가득 차 있습니다! 부디, 독서에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 인터뷰 1탄을 보시려면 클릭!


『루쉰 길없는 대지』 저자 인터뷰 2탄 

- 나는 루쉰주의자인가?!

1. 글로 루쉰을 만났을 때와 루쉰이 살았고 공부했고 글을 썼던 장소를 직접 찾아가 만났을 때 차이가 있으셨나요? 어떤 차이를 느끼셨나요? 


(길진숙) 루쉰의 소설과 잡문을 읽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상하이로 여행을 간 적이 있습니다. 루쉰의 흔적을 찾아 떠난 여행은 아니었는데, 의도치 않게 상하이의 루쉰 공원에 가게 된 겁니다. 저는 그곳에 루쉰의 무덤이 있는 줄 몰랐는데 어쩌다 루쉰의 무덤과 그의 동상 앞에 발길이 닿았던 거예요, 아주 우연히. 그의 무덤에 묵념하며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루쉰의 소설집 『외침』이 너무 강렬했던 터라, 역사 저 너머로 사라져 ‘침묵하는’ 루쉰이 실감나지 않았다고 할까요? 상하이에서 동상으로 마주한 루쉰은 너무나 차분했습니다. 이상하게도 그 모습에서 인간 루쉰이 새삼 궁금해졌습니다.   


루쉰의 글에서는 늘상 빈틈없고 완벽한 혁명 작가의 모습만 봤던 것 같습니다. 사실 루쉰의 필치는 강인하고 예리해서 허투루 생각할 틈새를 주지 않습니다. 눈을 똑바로 뜨고 지켜보면서, 자기를 해부하고 중국을 해부하며, 조금의 비겁도 용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루쉰의 글은 읽을 때마다 팽팽하게 긴장하게 되고, 어떨 때는 버겁기도 합니다. 그래서 솔직히 루쉰의 책은 읽기 전, 심호흡을 하고 펼치게 돼요. 독사처럼 칭칭 감고서 자신의 비겁도 물어뜯고 중국 사회의 비겁도 물어뜯는 루쉰의 모습은… 무한 신뢰를 보내면서도 왠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스승님, 선지자 같다고 할까요? 루쉰의 흔적을 찾아 헤매던 길 위에서 문득 루쉰을 위대한 전승자 보듯 너무 기념비적으로만 바라보는 저를 보았습니다. 살아 있는 루쉰이라면, 스승님 혹은 혁명가로 우러르는 저를 무척 싫어했을 겁니다. 


기차를 타고 사오싱과 항저우와 난징과 베이징 등 루쉰의 이동경로를 따라가면서, 루쉰의 집과 일하던 곳을 걸으면서, 꼼꼼하고 치열하게 교정한 원고나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을 다한 글씨를 보며 비로소 루쉰이 고민하고 방황하며 절차탁마했던 긴 시간이 떠올랐습니다. 루쉰이 이동했던 그 여러 도주로를 땀 흘리며 좇다 보니, 글로 읽을 때는 소각된 그 긴 시간과 그 먼 공간들을 발끝으로 실감했던 것이지요. 예교와 식인의 굴레로부터의 탈주와 인간해방을 향한 싸움은 상상 이상으로 길고 지루하며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이었음을, 그 멀고 먼 도주의 길을 따라가며 비로소 느꼈던 것입니다. “희망도 허망하고, 절망도 허망하다”는 말이 참으로 멋있지만 실감은 되지 않았는데, 숱한 희망의 아침과 절망의 밤을 보낸 사람이 아니라면 결코 나올 수 없는 말임도 처음으로 알았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 도주로를 따라가다 보니, 가볍고 날쌔지 않으면 불가능하겠다는 생각도 일어나더군요. 루쉰이 비장하지 않을 수 있었던 비법을 알게 되었다고 할까요? 끊임없이 고민하고 뒤척이지만 계속 앞으로 전진하는 루쉰을 좇다 보니, 가볍게 라이트 레프트 잽을 날리다 강하면서 날쌘 한방의 펀치로 마무리하는 루쉰 글의 그 짜릿함이 어디에서 온 것인지 아주 조금은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채운) 아무래도 차이가 있지요. 원래 공간이라는 게 직접 걷고 그곳의 공기를 호흡해 보기 전에는 관념에 불과한 거니까요. 제가 간 센다이는 좀 특별했어요. 너무 특별하지 않아서 특별했달까요. 뭐 대단한 조형물이나 기념관을 기대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생각보다 무척 단출하고 한산했습니다. 하긴, 100년 전의 중국유학생 하나가 의학전문대학을 다니다 중퇴했다는 게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그걸 기념하겠습니까. 더군다나 지금은 루쉰을 읽는 시대도 아니고요. 본문의 제 글에서도 썼지만, 아무튼 썰렁하고 적막한 것이 딱 루쉰에게 어울리는 장소였죠. 이 먼 곳에 있는 의과대학까지, 대체 루쉰은 무슨 생각을 하고 온 걸까, 정말 의학을 공부해야겠다는 ‘꿈’이 있긴 있었을까… 모르겠어요. 근데 센다이를 걷는 내내 드는 생각은, 루쉰은 어쩌면 ‘근대’ 도쿄와, 그곳의 중국 유학생들과, 거리를 두고 싶었던 게 아닐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의학은 핑계였을지 모른다, 정치든 입신출세든 혁명이든, 명분 하나씩을 붙들고 들떠 잘난 척하는 유학생들이 꼴 보기 싫었던 것일 테다… 뭐 그런 생각. 그런데 센다이에서도 별반 다를 게 없었던 거죠. 루쉰은 방황 중이었을 거예요. 


센다이의전이 있던 크지 않은 건물 앞에서, 후지노의 ‘빨간펜 노트’가 진열된 아카이브에서, 거미줄이 쳐진 루쉰의 흉상 앞에서, 그리고 기적처럼 버려져 있던 루쉰의 하숙집 앞에서, 센다이-환등기-후지노… 등으로 이어지는, 제가 익히 알고 있던 기존의 논리적 스토리가 얽혀 버렸어요. 어떤 장소가 주는 특별한 진동 때문인가 싶기도 하고… 가을 같은 루쉰의 청춘을, 애매하고 불확실한 한 인간의 20대를 만나고 온 듯한 느낌입니다. 이 또한 뿌옇고 불확실한 것이지만요. 


(신근영) 글로 루쉰을 만나는 것과 루쉰이 살았던 곳을 직접 가보는 것의 차이는 아마도 ‘머리’와 ‘마음’의 차이가 아닐까 해요. 물론 책을 읽을 때도 최대한 루쉰의 마음자리에 서보려고 노력하지만, 그게 한계가 있어요. 책상에 앉아 글을 읽을 때, 머리로만 이해한다든지, 혹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냥 지나치는 부분들이 생기는 것이죠. 사실 이런 한계라는 것 자체가 여행을 하면서 느껴지게 되요. 예를 들어 제 글에 ‘호랑이꼬리’라 불리던 루쉰의 집 얘기를 썼는데요, 전 그 집의 구조를 루쉰과 그의 아내인 주안, 그리고 어머니의 관계 위에서 풀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그 호랑이꼬리를 가보고서야 알게 된 거에요. 그 전에는 그냥 루쉰이 직접 설계한 집이라는 정도였는데, 막상 가보니 루쉰의 마음이 느껴지는 것이죠. 어떤 마음으로 그렇게 집을 설계했는지가 몸으로 다가오는 거예요. 

그렇지만 이런 차이들에 앞서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루쉰과 ‘직접’ 만난다는 것이었죠. 그냥 좋더라구요. 책을 통해 먼발치에서만 보던 사람을 직접 대면한 기분이었죠. 뭐랄까요… 요새로 치면 선망하던 연예인을 직접 만난 팬의 기분이랄까요.(^^*) 글이라는 게 일상 위에서 나오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 글을 통해서 만나게 되는 건 일상의 어떤 한 단면, 도드라진 한 부분인 거잖아요. 그런데 루쉰이 살았던 곳을 이리저리 돌아다니다 보니, 루쉰의 그 일상을 함께 나누는 느낌이 들었어요. 출근을 하러 걸어가고, 학교에 들어가고, 책상에 앉아서 글들을 쓰고, 마당에 나와 담배 한 대를 피우고, 찾아온 학생들과 이러저런 수다를 떨고, 멍하니 창밖을 보기도 하고, 이런 일상들이 루쉰과 제가 사는 이 시간의 간극을 넘어 느껴진다는 게 신기하고, 기쁘고, 좋았어요. 


2. 이 독특한 루쉰 평전에서 각 선생님들께서 맡으신 시기가 다른데요, 맡으신 시기와 그 시기의 루쉰의 삶과 사상의 특징이랄까, 독자들이 살펴봤으면 하는 점에 대해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고미숙) 저는 사오싱(紹興)에서 보낸 유년기랑 마지막 죽기 1년 전 상하이 시절을 맡았으니까 시작과 끝을 담당한 셈이죠. 저장성(浙江省) 사오싱의 명문가에서 태어나 중국 최고의 지성인으로 죽음을 맞게 된 건데, 그 사이의 진폭이 아주 다이내믹하죠. 그의 유년기는 한마디로 몰락의 파노라마라고 할 수 있는데, 그 스케일이 장난이 아니에요. 가문과 중국, 동양문명의 몰락을 한꺼번에 다 경험했으니까, ‘바닥의 바닥’을 친 셈이죠. 모든 자산을 다 잃어버린, 그래서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세대답게 청년 루쉰은 모든 것을 다 버렸죠. 전통과 역사에 대한 미련과 전제, 그 모든 것을 다 버렸기에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간 셈인데, 바로 그 몰락과 비움의 과정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지막 시기엔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중국 최고의 작가가 되었지만 그 ‘빛나는’ 시절에도 그는 자신을 해체하는 행위를 멈추지 않죠. 그것이 바로 전후좌우의 적들과 쉼 없이 싸울 수 있었던 동력이 아닐까 싶어요. 아무것도 기대하는 것도, 바라는 것도 없는 자와 싸우기란 실로 어려운 법이니까요. 그야말로 전투의 원리를 제대로 터득한 전사였던 셈이죠. 유년기의 몰락과 말년의 해체! 이 점을 주목해서 보면 두 시기가 아주 흥미로울 겁니다.  


(신근영) 제가 맡았던 시공간은 루쉰이 베이징 생활을 정리하고 샤먼으로 내려가게 된 1924년부터 1926년까지입니다. 이 시기는 루쉰의 전 생애에 있어서 하나의 전환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혼란의 시기인 거죠. 루쉰은 갈림길에 서 있었습니다. 글로만 보자면, 문학의 궁전을 떠나 길 위의 전사로서 잡문을 쓰며 시대와의 싸움을 벌이기 시작했죠. 전투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거칠 것 없어 보이는 그런 글들과 달리 당시 루쉰은 몹시 힘들었습니다. 언제나 제자리만 맴맴 도는 듯한 시대상황 속에서 루쉰은 지쳐 있었습니다. 피로했고, 회의적인 생각조차 들었습니다. 거기에 경제적인 어려움도 심각했고, 또 가정생활에도 어려움이 생겼죠. 쉬광핑과의 만남이 있었으니까요. 당시 루쉰이 가졌던 번뇌는 상당했던 것 같습니다. 『들풀』이나, 쉬광핑 사이에 오갔던 편지들을 보면 그때의 복잡한 심경이 고스란히 전달됩니다. 전 『아침 꽃 저녁에 줍다』 역시 이런 혼란 속에 나온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시기의 루쉰을 만나는 분들은 루쉰이 가졌던 그 혼란 위에 서야 할 것 같습니다. 사방이 막힌 듯한 그 자리에서 루쉰이 느낀 그 고통을 함께 나누어야 할 것 같습니다. 혁명이라는 크나큰 대의 이전에 산다는 것은 언제나 그런 번뇌와 고통을 품고 걸어가는 일이니까요. 그리고 이 번뇌와 고통을 이해해야, 루쉰이 냈던 그 길들이 왜 그리도 좁고 구불구불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희경) 제가 맡은 시기는 대략 1926년부터 1933년까지입니다. 중국 현대사의 측면에서 보면 위안스카이 이후 10년간 지속된 군벌 지배에 맞서 국민당이 공산당과 함께 2차 혁명, 즉 국민혁명(1926년)을 일으켰던 때이고, 곧바로 장제스가 백색쿠데타(1927)를 통해 공산당을 배신하고 국민당의 패권을 강화해 나갔던 시기이죠. 루쉰의 생애사라는 측면에서 보면 약 14년간의 베이징 생활을 끝내고 샤먼으로 남하했다가(1926) 다시 광저우로(1927), 또 다시 상하이로(1927) 숨 가쁘게 이동(도주)하던 때이고, 동시에 심각해져 가는 좌우대립 속에서 국민당과 공산당의 실제를 점점 분명히 파악해 나갔던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 시기는 중국근대사에서도 매우 역동적인 시절이고, 루쉰의 생애에서도 중대한 변곡점이 된 시절이었죠.

많은 사람들이 이때를 기점으로 루쉰을 전기와 후기로 나눕니다. 핵심은 마르크스주의자로의 전회! 마오쩌둥 이래 중국 공산당의 공식적인 해석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 시기를 전후로 루쉰의 삶(글)을 나누는 것은 무리라고, 마르크스주의자라는 표상에 루쉰을 묶어두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여, 이 시기를 어떻게 읽어야 할 것인지는 여전히 독자의 몫입니다. 혁명의 시대에 혁명의 판타지에 빠지지 않고 혁명을 수행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루쉰의 처절한 질문! 루쉰의 필사적인 분투! 우리는 이 시기의 루쉰을 통해 역설적으로 지금 여기―혁명이 끝났다고 말해지고, 이제 혁명이 불가능하다는 절망에 빠져 있는―에서 혁명의 가능성을 다시 발견할 수 있을까요? 이 시기 루쉰이 우리에게 발신한 메시지, 그것은 오래된 미래, 바로 ‘혁명’입니다. 



3. 루쉰의 글들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시는 글(혹은 문집)은 어떤 것인지 이유와 함께 말씀해 주세요. 


(이희경) 난 루쉰주의자일까? 오해를 무릅쓰고 감히 말하자면, 제 대답은 “그렇다”입니다. 그런 저는 루쉰의 글 중 어느 것 하나 좋아하지 않는 게 없습니다. 학습자였던 청년기의 긴 논문, 계몽적 색깔이 뚝뚝 묻어나는 초기 에세이, 충분히 평가되고 칭송되었던 그의 소설, 사실 그렇게 많이 읽히지 않는 후기 잡문. 그 모든 것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가장 사랑하는 것은 역시 『들풀』의 글들입니다. 어쩌다 보니 ‘작가’라는 명함이 생겼어도 “여전히 사막 가운데서 배회”하곤 했던 1924,5년 무렵에 써 내려간 짧은 ‘산문시’!(『들풀』 ‘제목에 부쳐’) 그것들은 한 존재가 시대의 심연 속으로 어떻게 곤두박질치는지, 그 속에서 결코 볼 수 없는 자기 자신의 심연을 어떻게 들여다보고 있는지를 드러냅니다.


“(……) 심장을 후벼 스스로 먹다. 본디 맛을 알고자. 아픔이 혹심하니, 본디 맛을 어찌 알랴?(……)아픔이 가라앉자 천천히 먹다. 이미 성하지 않으니 본디 맛을 또 어찌 알랴?(……)대답하라. 않겠거든, 떠나라!(……)” (「빗돌문」, 『들풀』) 


이다지도 지독한 자기해부가 또 있을까요? 그리하여 존재가 티끌로 사라질 때만 생성되는 위대한 미소! (“내가 티끌로 될 때에, 그대는 나의 미소를 볼 것이다!”) 이렇게 우주적인 미소를, 저는 이제껏 만난 적이 없습니다. 

제가 사랑하는 글이 『들풀』이라면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집은 『화개집』입니다. 『화개집』은 루쉰 스스로 글이 아니라 “욕에 가깝다”고 말할 정도로 격렬했던 현대평론파와의 논전이 기록되어 있는 글들이 실려 있습니다. 루쉰이 적과 동지를 막론하고 평생 전 방위적인 논쟁과 논전의 고투 속에서 자신의 사유와 스타일을 형성시켜 나갔다고 볼 때, 『화개집』은 그 출발점이 됩니다. (고유명사) 루쉰은 『화개집』을 통해 (보통명사) 루쉰이 되어 갔다고나 할까요.

 

(문성환) 개인적으로 저는 루쉰의 서정적인 산문집 『조화석습』(아침 꽃 저녁에 줍다)와 최후의 작품집 『고사신편』(새로 쓴 옛날이야기)을 어려워하면서도 좋아합니다. 물론 이번에 루쉰 프로젝트에서 제가 맡게 된 소설집 『외침』을 빼고 말씀드린다면 말입니다. 『조화석습』은 소설가=루쉰에서 잡문=루쉰으로 나아가는 중간에 걸쳐 있는 산문집입니다. 그리고 여기 실린 산문들은 드물게도 루쉰이 과거를 회상하며 쓴 글들입니다. 이 책 2부에서 제가 『조화석습』을 다루기도 했습니다만, 루쉰은 이 별 것 아닌 산문집에서도 지나간 시절을 대하는 하나의 품격을 보여 줍니다. 감상에 젖거나 현재의 알리바이로서가 아닌 과거 지나온 그 시절 그때 그 사건을 만나는 하나의 태도 같은 것이랄까요. 그리고 『고사신편』은 중국 고대신화전설 등을 모티프로 하고 있는 일종의 루쉰표 ‘리라이팅’을 만날 수 있는 작품집입니다. 여기에 보면 백이(+숙제)라든가 장자, 노자 등등 쟁쟁한 중국 고대문화의 스타플레이어들이 등장합니다. 하지만 루쉰의 해석은 상당히 독특하고 또 파격적입니다. 그리고 저는 그가 다르게 쓰기 위해 소재와 내용을 비튼 결과 이런 파격으로 귀결된 건 아니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 작품집을 이해한다는 것은 루쉰이 쓴 구절들의 의미를 찾아내 확정하는 것이 아닐 겁니다. 늘 지금 다르게 읽힌다는 것. 최소한 그러는 한에서 루쉰은 여전히 현재적인 물음으로 남아 있게 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신근영) 두 권 정도가 있는 것 같네요. 제가 맡았던 시기에 쓴 글들인데, 『화개집』과 『아침 꽃 저녁에 줍다』입니다. 『화개집』을 처음 읽었을 때의 충격이 떠오릅니다. 제가 삶에 대해, 혁명에 대해 가졌던 모든 환상이 완전히 부서져 나가는 기분이었습니다. 제가 얼마나 추상적이고 관념적이게 삶을, 혁명을 바라보고 있었는지를 절실히 느낀 것이죠. 루쉰은 이념이나 이상 따위로 삶을 덕지덕지 색칠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색들이 사라진 삶의 현장은 참으로 많은 선분들이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이를테면, 루쉰은 그냥 ‘젊은이’라는 식으로 일반화시키지 않습니다. 젊은이라고 다 똑같겠냐며, 깨어 있는 젊은이, 잠자는 젊은이, 놀고 있는 젊은이, 전진하는 젊은이가 있다고 얘기하지요. 저는 이런 감각이 놀랍습니다. 루쉰의 글이 뭔가 어렵게 느껴지는 것도 이 때문인 듯합니다. 이거다, 저거다 딱 잘라서 이야기하지 않는 부분이 많은 것이죠. 그냥 젊은이가 희망이다, 젊음이가 문제다 이러면 되는 데 그렇게 이야기하지 않는 겁니다. 삶이라는 게, 사람이라는 게 그렇게 하나로 딱 떨어지는 것이 아니니까요. 이것을 구체적으로 보고, 느낄 수 있는 책이 『아침 꽃 저녁에 줍다』인 것 같습니다. 거기에는 그가 만난 많은 인물들이 나옵니다. 혁명의 시기, 흔히 민중이라 부르는 그런 사람들이죠. 그런데 루쉰의 민중은, 혁명의 주체라거나, 혹은 어리석은 노예라는 식으로 재단되지 않습니다. 젊은이와 마찬가지로, 깨어 있는 민중이 있는가 하면, 잠자는 민중, 노예인 민중도 있는 것이죠. 민중이 아니라, 키다리 어멈, 연부인, 후지노 선생, 판아이눙 등등의 사람들이 있는 겁니다. 한 발 더 나아가, 예를 들어 키다리 어멈이라면, 거기에도 깨어 있는 키다리 어멈이 있는가 하면, 잠자는 키다리 어멈도 있는 것이죠. 아마도 이 모든 선분들을 하나로 묶으면 ‘아Q’가 나오지 않을까 싶네요. 



5. 지금 우리가 루쉰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희경) 하하. 루쉰이 까다롭고 어렵기 때문입니다. 결코 손에 쉬이 잡히지 않지요. 읽어도 읽어도 새로 해석되고 새로 발견되는 부분이 있고요. 루쉰을 또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로 이것보다 더 큰 게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말하자면 루쉰은 저에게 위대한 문학가, 치열한 사상가, 혁명적 전사라기보다는 늘 눈물겨운 한 인간입니다. 루쉰을 읽을 때마다 그의 욕도, 한숨도, 절망도, 사랑도 왠지 다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희한하게도 루쉰을 알 것 같은 기분을 자주 느꼈습니다. 그건 동시에 지금 여기에서의 나의 삶, 신산함, 울분과 좌절, 절망과 우울 등을 루쉰에게 이해받을 것 같다는 느낌이기도 했지요. 

삶이란 본디 “사막 위에 선 채 바람에 휘날리는 모래와 구르는 돌을 바라보면서, 기쁘면 크게 웃고, 슬프면 크게 울부짖고, 화가 나면 마구 욕하고, 설사 모래와 자갈에 온몸이 거칠어지고 머리가 깨져 피가 흐르며, 때로 자신의 엉킨 피를 어루만지면서 꽃무늬인 양 여기”며 사는 것 아닌가.(『화개집』 ‘제기’) 비록 영혼의 황량함과 거칢밖에 남지 않았다 하더라도 겁낼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없는 법. 차라리 그 황량함과 거칢을 껴안고 아끼고 사랑하면 되지 않을까? 어쩌면 시공간을 뛰어넘는 거대한 공명! (감히 말하자면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루쉰을 통해 매번 다시 살아났습니다. 루쉰은 제게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신근영) 지금 우리가 루쉰을 읽어야 하는 이유라니, 솔직히 좀 어렵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제가 루쉰에게 배운 지점일 것 같네요. 루쉰을 통해 제 마음에 들어온 것은 ‘산다’는 문제였습니다. 삶에 뭔가 대단한 의미가 있을 것 같아 그걸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 시절이 있었습니다. 아니, 제 삶이 뭔가 대단한 의미가 있는 것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거죠. 삶의 의미랄까, 뭐 그런 거죠. 그런데 루쉰은 산다는 것 그 자체 말고 다른 것이 없음을 말합니다. 제가 루쉰에게 놀란 부분은 이런 것입니다. 루쉰은 돈 문제에 철저해서 함부로 돈을 쓰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인색하지도 않았습니다. 써야 할 곳에 썼고, 쓰지 말아야 할 곳에 안 썼습니다. 수많은 글들을 쓰고, 또 수많은 글들을 편집하면서 루쉰이 가장 신경을 쓴 것은 오탈자가 없도록 교정교열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전 이런 루쉰에 감동했습니다. 좀 이상한 거에 꽂힌 걸까요^^;; 루쉰이 말한 대로 삶의 목표가 있다면, 생존하는 겁니다. 구차한 삶이 아니게.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는 겁니다. 사치하지 않게. 발전하는 겁니다. 그러나 방종은 아니게. 그러니까 절망하지도 않고, 희망하지도 않고 살아가는 겁니다. 그냥 사는 겁니다. 살아 있으니 공부하고, 살아 있으니 쓰는 겁니다. 싸우는 겁니다. 살아가기 위해 공부하고, 쓰고, 싸우고, 그렇게 오롯이 온 마음을 다해 살아가는 겁니다. 이처럼 정성스레 자기 삶을 돌보는 것, 그게 루쉰이 말하는 삶의 주인이 되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아직까지도 전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루쉰이 제게 그 입구가 된 것만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루쉰을 만난 이상, 그 입구 너머의 길을 가볼 수밖에 없겠죠.^^ 


(채운) 나이를 먹고 이러저러한 일들을 겪으면서 많이 하게 되는 생각이, 어떻게 나 자신에게 당당해질 것인가, 하는 거예요. 생각해보면, 어떤 행위를 하거나 글을 쓸 때 ‘어떻게 하면 내 생각을 정당화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떨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 내가 말할 수 없이 역겹게 느껴집니다. 비굴하고 비겁하고 구차하지요. 루쉰을 읽으면서 제가 가장 크게 배우는 건, 그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예요. 루쉰은 자신의 모순을 숨기지 않습니다. 잔혹할 정도로 자신에게 솔직하지요. 그게 루쉰이 그 암흑 속에서도 계속 살아남아 글을 쓸 수 있었던 원동력이 아니었겠는가 싶어요. 타인을 향해 휘두른 검을 그는 어김없이 자신을 향해서도 휘두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편파성’은 늘 공평했지요. 자신에게 솔직하지 않고서는 공부고 글이고 다 허위입니다. 이것으로 루쉰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설명이 됐는지 모르겠지만, 그래서(!) 공부를 하려거든, 글을 쓰려거든, 꼭 루쉰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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