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루쉰 길없는 대지』 저자 인터뷰 1탄 - 아! 루쉰도 우리와 같은……


『루쉰, 길없는 대지 - 길 위에서 마주친 루쉰의 삶, 루쉰의 글쓰기』 저자 인터뷰를 두 번에 걸쳐 포스팅 합니다. 5가지 질문에 여섯분의 필자 선생님들이 답해 주셨는데요, 내용 및 분량에 따라 나누어서 올립니다. 책도 훌륭하지만, 인터뷰도 의미로 가득 차 있습니다! 부디, 독서에 도움이 되시길 바랍니다. ^^

『루쉰 길없는 대지』 저자 인터뷰 1탄 

- 아! 루쉰도 우리와 같은……


1. 루쉰이 생애를 보낸 장소에 직접 찾아가 그의 삶과 사상을 추적하는 ‘루쉰프로젝트’는 어떻게 기획되었나요?


(고미숙) 2015년 가을쯤인가, 『홍루몽』 로드세미나가 있어서 세미나 멤버들과 『홍루몽』과 관련된 코스를 여행하다가 상하이에 도착했는데, 거기서 루쉰 무덤에 가게 됐죠. 별 생각이 없었는데, 무덤 앞에 서는 순간, 느낌이 아주 이상했어요. 아, 루쉰의 몸이 여기 누워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몸이 크게 감응을 했던 거 같아요. 이후 버스를 타고 이동하는데, 문득 ‘루쉰 평전’을 그가 간 자취를 따라 이렇게 여행을 하면서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어요. 섬광… 정도는 아니고, ‘쓰윽’ 하고 떠올랐는데, 버스를 타고 오는 내내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거예요. 루쉰이 평생 이동했던 장소들(사오싱에서 난징, 도쿄와 센다이, 항저우, 베이징, 샤먼과 광저우, 그리고 상하이)이 머리에 주욱 그려지면서 그와 동시에 이 여행을 공동체 멤버들과 같이 하면 진짜 재밌겠다는 구체적인 컨셉까지 다 떠올랐죠. 여행을 마치고 귀국해서 북드라망 대표한테 먼저 알렸더니, 와우, 반응이 어찌나 뜨겁던지! 그때 확신을 했죠. “이건 꼭 해야 해”라고. 그 다음에 남산강학원, 문탁네트워크, 규문 등 이 책의 필자들이 속한 공동체에 다 알렸는데 역시나 모두가 꼭 참여하고 싶다는 반응이었죠(평전 자체보다는 여행에 더 끌린 것 같긴 하지만^^). 지금까지 공동체 활동을 하면서 여러 가지 제안을 해왔는데, 이런 호응은 처음이 아니었나 싶네요. 다른 제안들에는 “그게 뭥미? 그걸 꼭 해야 돼?” 하는 시큰둥한 반응이 대부분이었는데…. 흑! 근데 약간의 삑사리가 있긴 했어요. 문탁네트워크의 문탁(이희경)의 경우, 열렬히 맞장구를 쳐놓고는 얼마 있다가 다른 일정과 겹쳐서 도저히 참여할 수 없다며 주저리주저리 긴 문자를 보내서 저를 열받게(?) 하더니, 중간에 은근슬쩍 여행에 합류하면서 결국 이 책의 가장 ‘빛나는’ 필자가 되었답니다. 다 마치고 나서야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지 않았으면 크게 후회할 뻔했다, 고 참회성 고백을 했죠. 흥!  


2. 글로 루쉰을 만났을 때와 루쉰이 살았고 공부했고 글을 썼던 장소를 직접 찾아가 만났을 때 차이가 있으셨나요? 어떤 차이를 느끼셨나요? 


(고미숙) 당연히 차이가 많죠. 글로 읽으면 개념과 의미에 집착하게 되지만, 일단 그 장소에 가서 그의 자취를 되짚어 보면 그의 인생이건 그가 남긴 텍스트건 아주 생동감 있게 다가와요. 예를 들면 루쉰을 책으로 읽을 땐 온통 암흑과 적막, 항일과 혁명, 이런 단어들로 가득 차 보이지만, 막상 살았던 집에 가보면 응접실도 있고, 침실도 아늑하게 꾸며져 있고, 또 바로 옆집에 친구들도 살고 있었고… 이런 장면을 보면, 아, 이 사람도 우리와 같은 일상을 살았구나! 늘 전투만 하고 있었던 건 아니네, 뭐 이런 생각이 들죠. 텍스트를 아주 입체적으로 읽을 수 있다는 뜻이죠. 거꾸로 이런 평범한 일상 속에서 그런 ‘강도 높은’ 텍스트가 나왔다고 생각하면 왠지 가슴이 뻐근해지면서 루쉰과 우리 사이에 강렬한 공감의 영역이 열리기도 합니다. 그리고 솔직히 제일 좋은 건 공항에서, 기차 안에서, 또 산과 바다를 보면서, 계속 루쉰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는 사실이에요. 말하자면, 우리의 몸이 움직이니까 루쉰도 그의 텍스트도 같이 움직이는 거죠. 그런 식의 마주침 자체가 너무 행복했어요. 

또 사오싱이건 상하이건 일단 그 장소에 가보면 루쉰이 살았던 시대와 우리 시대 사이의 간극을 적나라하게 확인할 수 있다는 것, 그 점도 중요한 것 같아요. 역사가 이토록 무상하구나! 하는 것을 온몸으로 실감하게 되죠. 그러면서 수많은 질문들이 엄습합니다. 혁명과 구도에 대하여. 삶과 죽음에 대하여. 


(문성환) 일단 책이나 글로 만나면서 감탄하고 밑줄 그어가며 배우던 누군가를 그가 살았던 곳으로 직접 찾아가서 그 흔적을 찾아본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흥분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직접 찾아가 보고 느낀 차이라면, 단순히 책이나 글로 읽으면서 상상하던 것보다 작품과 관련된 생각이 구체적이고 물질적인 것으로 다가오는 것 같은 경험을 하게 되었달까요. 그러니까 어떤 의미에선 일종의 감각적인 변화 같은 것인데요. 예를 들면 공간에 대해서만 보더라도 그 지역 거리 풍경, 사람들 표정, 말씨, 바람에 섞여 불어오는 냄새, 음식 등등에 대한 실감이 많이 달라졌던 것 같아요. 아, 이 계절 이런 날씨에 그도 이 거리 어디쯤에서 이러이러한 냄새를 맡으며, 이러이러한 것들을 보며 지나다니고, 이러이러 저러저러 했겠구나 하는 그런 거. 그리고 또 일단 신기하잖아요. 공부하고 그 공부를 인연 삼아 작가와 작품 속의 어떤 장소를 찾아가 본다는 것. 그냥 그런 모든 것들이 그냥 여행을 다니던 때와도 또 달랐던 점이었고요.


(이희경) 저 같은 경우는 무상함 혹은 어긋남을 느꼈습니다. 루쉰이 살던 곳과 머물렀던 곳 대부분이 거대한 박물관으로 변해 있었기 때문이었죠. 그곳에서 루쉰을 실감하는 것이 저에게는 쉽지 않았어요. 이런 느낌은 지금은 베이징 루쉰중학교로 바뀐 베이징여자사범대학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3.18 기념탑은 의연하고, 루쉰기념관은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져 있었고, 방학 중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안내하러 일부러 출근하신 선생님의 수고가 감사했지만, 선생님이 진심으로 존경한다는 루쉰이 제가 사랑하는 루쉰인지는 확신이 서지 않았어요.

한편 루쉰이 사오싱에서 베이징으로 올라와 몇 년간 머물렀던 숙소, 너무나 적막하여 고서를 모으거나 불경을 읽거나 옛 비문을 베끼던 ‘S회관(’사오싱회관)은 박물관이나 기념관이 아니라 지금도 베이징 시민의 주거지로 사용되고 있었는데요. 근데 그곳은 전통적인 주거구조인 사합원(四合院)이 아니라 빈 마당에 쪽방들을 억지로 증축하여(이렇게 변형된 사합원을 중국에서는 잡원雜院이라고 한다네요) 사람들을 빼곡하게 수납하고 있는 일종의 쪽방촌 같은 모습이었습니다. 

루쉰은 어디에 있을까요? 박물관에? 기념관에? 아니면 쪽방촌에? 솔직히 잘 모르겠다는 심정이었습니다. 글로 만난 루쉰을 발로 만나러 가는 길은 어쩌면 도처에 있으나 실은 부재하는 루쉰을 찾아 헤매는 과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치 환한 대낮에 등불을 들고 돌아다녔던 디오게네스 같았달까요?!^^


3. 이 독특한 루쉰 평전에서 각 선생님들께서 맡으신 시기가 다른데요, 맡으신 시기와 그 시기의 루쉰의 삶과 사상의 특징이랄까, 독자들이 살펴봤으면 하는 점에 대해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채운) 제가 맡은 부분은 일본 유학 시절의 루쉰입니다. 1902년에 도쿄로 가서 1909년에 귀국했으니까, 20대의 대부분을 일본에서 보낸 셈이죠. 생각해보면, 일본 시절은 루쉰의 청춘 그 자체였어요. 말 그대로, 청춘다웠죠. 계획대로 된 게 정말 하나도 없었으니까요.^^ 완벽하게 예측불허한 시간이었죠. 계획대로 되었다면 루쉰은 지금 우리가 만나는 그 루쉰일 수 없었겠죠. 센다이도 가지 않았을 거고, 후지노 선생도 만나지 못했을 거고, 어쩌면 글을 쓰지 않았을지도 모르죠. 그러나 그 예측불가능성이 루쉰을 만들었습니다. 실패하고 좌절하고 적막에 휩싸이고 회의했지만, 거기서 장타이옌을 만나 고전을 공부했고, 니체를 만났고, 바이런을 읽었죠. 여러 유럽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했구요. 한마디로, 그 모든 것들이 루쉰을 이룬 자양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루쉰이 일본 유학 시절에 쓴 글들(『무덤』에 실린 1907~1908년의 글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예리한 문제의식 속에서 서양문명과 사상을 자기화했는지를 알 수 있는데, 정말 읽을수록 놀라게 됩니다. 그토록 균질한 계몽의 시대에, 계몽주의로는 결코 환원될 수 없는 이질적 계몽성을 띠고 있거든요. 이후 루쉰이 견지하게 될 삶의 태도, 글쓰기의 자세가 어디에서 출발하고 있는지를 알려면, 꼭 유학시절에 쓴 글들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문성환) 제가 맡았던 부분은 루쉰의 베이징 시절 전반기였는데요. 루쉰의 전체 글쓰기 이력에서 보면 소설집 『외침』과 『방황』이 이 시기에 해당됩니다. 그중에서도 저는 『외침』을 맡았는데요, 사실 루쉰의 『외침』에 실린 작품들은 베이징 생활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 별로 없습니다. 실제 현장으로는 고향 사오싱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하지만 루쉰에게 베이징은 소설의 배경으로서가 아니라 소설가 루쉰, 문인 루쉰이 탄생한 곳이라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루쉰’이라는 필명이 첫번째 소설 「광인일기」를 쓸 때 처음 사용한 것이니까요. 그런데 제가 베이징으로 루쉰의 흔적을 쫓아다니면서 꼭 직접 보고 싶었던 것이 있었습니다. 저는 루쉰이 실제로 어디서 어떻게 베이징으로 왔고, 베이징에서 어디에서 살았으며, 어떤 길을 어떻게 걸어서 누구와 만났는지 등등이 정말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그가 난징에서 혁명정부의 관리로 처음 철도를 통해 베이징역에 도착했을 때부터 그의 첫 숙소이자 작품을 쓰기 시작했던 사오싱회관, 그리고 그가 근무했던 교육부 건물, 베이징여자사범대학, 베이징대학, 그리고 그가 이사 다녔던 집들 등등을 정말이지 열심히 걸어서 다녔습니다. 한여름이었는데 요즘 대기오염도 심각한 베이징 시내 한복판을 정말이지 최대한 걸어 다녀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루쉰이 그랬을 테니까요. 좀 전에 말씀드렸다시피 베이징 시절의 루쉰은 소설가로 처음 그 이름을 알리기 시작합니다만, 저는 루쉰의 베이징 시절을 계몽지식인으로서의 루쉰이 ‘문학(소설)’을 매개로 특별한 계몽=혁명을 주창하던 시기였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루쉰의 계몽사상에서 매우 큰 감명을 받는데요, 루쉰이 단지 계몽이냐 혁명이냐에 대한 고민을 넘어 계몽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 즉 ‘계몽의 혁명’을 주장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외침』의 서문에서부터 루쉰은 비슷한 시기 계몽문학가들의 문제의식과 차이를 분명하게 보여 주거든요. 이런 점을 주의해서 『외침』을 읽어 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길진숙) 저는 루쉰의 베이징 시절 후반부를 맡았습니다. 5·4신문화운동의 기수였던 『신청년』의 천두슈와 후스가 갈라선 무렵부터 1926년 3·18참사가 일어나기 직전까지의 시기입니다. 루쉰은 이때 또 다시 적막을 느낍니다. 이 이전 신해혁명을 통해 청나라가 중화민국이 되는 변혁을 겪었지만 명실이 부합하지 않는 현실에 루쉰은 적막의 한가운데서 침묵했던 적이 있습니다. 『신청년』의 기수들이 중국인의 정신개조 즉 의식혁명을 위한 깃발을 들었을 때 루쉰은 비로소 응원의 함성을 외쳤습니다. 그런데 이 『신청년』이 분열된 것입니다. 전우들은 흩어지고, 루쉰이 추구하는바 혁명은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식인과 노예의 역사는 윤회될 뿐 혁신적 파괴는 일어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철저한 파괴가 없었기에 인간해방을 위한 건설 또한 요원했습니다.     루쉰은 방황하며 무엇을 해야 할지 고심했습니다. 루쉰은 혁명적이었던 지식인들에 주목했습니다. 어떤 이는 국민당으로 활약하거나 어떤 이는 공산당으로 활약했으며, 어떤 이는 국수를 외치거나 어떤 이는 혁신을 외쳤으며, 어떤 이들은 사회의 냉담한 경멸 속에 시들어 가거나 어떤 이들은 변절했습니다. 루쉰은 지식인들의 고통과 좌절과 고민을 소설로 그려냈고, 한편으로는 산문시와 잡문으로 온갖 비겁과 위선, 권위와 억압을 낱낱이 해부하여 세상에 드러냈습니다. 『방황』, 『무덤』, 『열풍』, 『화개집』, 『들풀』, 『아침 꽃 저녁에 줍다』 등의 저작들이 이 시기의 루쉰을 보여 줍니다.   

이 시기 루쉰은 자기만의 길을 찾아냅니다. 루쉰은 맹목적인 믿음과 희망을 버립니다. 물론 절망의 심연에서 좌초하지도 않았습니다. 희망도 허망하지만, 절망 또한 허망하다는 인식에 도달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함께 싸웠던 전사들이 사라져 버린 그 전장에 홀로 남아 투창을 높이 들었던 것입니다. 싸워야 할 적은 도처에 있지만, 그 적들은 ‘공리’(公理)로 치장하고 자신의 실체를 감춘 채 가식적으로 웃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루쉰은 이 기묘한 상황을 직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루쉰은 이 시기 고독한 전사였습니다. 혁명가, 영웅, 지식인, 민중, 심지어 동지도 의지하지 않고, 어떤 주의, 사상도 맹신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조차 믿지 않았습니다. 존재 자체가 단독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루쉰을 하나의 주의, 사상, 이름으로 규정하기 어렵습니다. 좌절하고 막히고 넘어지고 깨지더라도 다시 일어나서 뚜벅뚜벅 전진할 뿐입니다. 또한 혁명이 불가능하다고 본 게 아니라, 혁명이 한 번에 완성되리라는 환상도 버렸습니다. 자유와 평등을 막는 모든 것을 파헤치고 그것에 저항했습니다. 혁명 사상일지라도 그것에 도사린 환영이나 노예적 의존을 과감하게 폭로했습니다. 여기에는 자신도 예외일 수 없었습니다. 내 안의 혹은 바깥의 보이지 않는 적들을 향해 투창과 같은 펜을 겨누는 것, 그것을 끈질기게 지속하는 것이 혁명하는 길이었습니다. 


혁명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도 않을뿐더러 제도나 체제의 혁신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루쉰은 혁명을 새롭게 사유했습니다. 그래서 혁명가들이 놓칠 수 있는 ‘생활’과 ‘습속’의 힘을 말했습니다. 매일 먹고 입고 살아야 하는 ‘생활’, 내 몸을 길들이고 있는 ‘습속’을 소홀히 하면 안 됩니다. 생계를 유지하고 습속을 바꾸지 않으면 우리는 끈질기게 싸울 수 없습니다. 이 시기 루쉰이 주목한 것은 고독한 전사로서 포기하지도 않고 의지하지도 않으면서 싸울 수 있는 힘이었던 것 같습니다. 자칫 혁명이라는 관념에 매달려 쉽게 기대하고 쉽게 좌절하는 우리들에게 혁명은 현실 위에서 일어나는 미세하고도 길고 긴 싸움임을 보여줍니다. 여러분도 루쉰의 글에서 생활과 습속, 이로 인해 빚어지는 우스꽝스런 모습 등을 주시하기 바랍니다. 생활의 현장을 지키고 바꾸는 것, 이 시기 루쉰이 찾아내고 지켜낸 ‘혁명’의 길입니다.



 4. 루쉰의 글들 중에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시는 글(혹은 문집)은 어떤 것인지 이유와 함께 말씀해 주세요. 



(고미숙) 물론 『고사신편』(새로 쓴 옛날이야기)! 첫번째 이유는 지금 제가 하고 있는 ‘고전 리라이팅’의 원조라는 점^^(물론 스타일이나 차원은 아주 다르지만), 그리고 다른 작품과는 달리 완전 웃긴다는 점 때문입니다. 좀 더 덧붙이면, 루쉰이 고전을 얼마나 깊고, 넓게 탐구했는지를 보여 준다는 점에서, 아울러 그의 미학적 장기인 풍자와 해학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는 점에서 최고의 작품이라 할 수 있죠. 예전에 ‘죽음에서 살아난 이야기(장자)’를 연극으로 한 적이 있었는데, 정말 배꼽 빠져 죽는 줄 알았죠.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인데, 이 ‘지독한 웃음’이 가능한 건 그가 던지는 질문이 그야말로 급진적이고 또 근원적이기 때문이에요. 독설로 치면 이런 독설이 없는 셈이죠. 고전을 가지고 이렇게 독설을 날릴 수 있다니! 부럽기 짝이 없습니다!         


(길진숙) 제가 루쉰의 글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던 작품은 『방황』의 「고독자」와 「죽음을 슬퍼하며」입니다. 작품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비극이고 암흑인 데다 가볍지 않은 주제였는데 비장하지 않으면서 심지어 웃음까지 나는 아주 오묘한 경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 두 작품을 계기로 루쉰의 전작을 읽게 되었습니다. 이 두 작품은 생활에 대해서는 턱없이 치졸하고 무력하면서, 이념에 대해서는 턱없이 거대하고 무모한 우리들의 모습을 너무나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환상 위에 구축된 이념이 생활의 현장에서 얼마나 나약하게 흔들리는지를 이토록 세밀하고 냉정하게 그려내다니, 흥미진진했습니다. 한 작품은 위악과 변절의 문제를, 또 한 작품은 자유연애와 결혼을 다루고 있기에 더욱 관심을 모읍니다. 루쉰만큼 인간의 속물적 근성을 아주 디테일하게 드러내며, 가리지 않고 꼬집을 수 있는 작가가 또 있을까요? 그 자잘하지만 전부일 수 있는 속성이 확대되면, 우리는 숨을 데가 없습니다. 하찮지만 목숨까지 거는 그런 ‘생활’의 발견, 여기서 루쉰의 필력을 확인하게 됩니다. 


(채운) 루쉰의 문집들은 각각 그 시대의 첨예한 문제들을 품고 있기 때문에, 다 다른 식으로, 다른 느낌으로 접속했던 것 같아요. 모든 문집들마다 잊을 수 없는 구절들이 몇 개씩 있구요. 그러나 역시 한 권을 꼽으라면 『들풀』입니다. 그냥 좋습니다.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더없이 어둡고 스산하면서도 언뜻언뜻 햇빛이 드는 듯한 느낌도 들고, 뭣보다, 단호하면서도 여백으로 충만한 문장들을 읽으면 숨이 멎을 것 같거든요. 『들풀』 서문과 「가을밤」, 마지막에 실린 「일각」의 구절들이 특히 좋습니다. 『아침 꽃 저녁에 줍다』도 못지않게 좋습니다. 이 문집에서는 루쉰이 보입니다. 이런 사람이구나, 그냥 알아집니다. 구절로는 『양지서』(먼 곳에서 온 편지)에 나오는 길에 대한 이야기를 너무 좋아해서 제가 여러 책에 인용하기도 했어요. 막다른 길과 갈림길에 대한 이야기요.



5. 지금 우리가 루쉰을 읽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고미숙) 루쉰은 격동의 시기를 온몸으로 거치면서 자기 자신을 끊임없이 혁명한 존재예요. 자기로부터의 혁명! 이것은 보통 영적 테마라고 생각하는데, 그는 그것을 격동기의 현장, 한복판에서 구현한 겁니다. 역사적 투쟁과 자기해방, 혁명과 영성, 이 둘을 격렬하게 융합시킨 작가는 참으로 드뭅니다. 더 중요한건 어떤 이념에도 기대지 않은 혁명, 어떤 종교에도 의존하지 않는 해방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21세기, 아니 인류가 구현해야 할 유일한 비전이 아닐까 싶어요. 더 중요한 건 그런 혁명을 글쓰기로 수행했다는 사실입니다. 글쓰기는 가장 보편적인 활동일뿐더러 앞으로 인공지능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직업입니다. 글쓰기가 무엇인지, 그것이 어떻게 세상을 연결하는지, 그것이 어떻게 삶의 방향을 결정짓는지 등을 배우는 데 루쉰만큼 좋은 가이드는 없습니다.


(길진숙) “무엇을 할 것인지 묻지 말고, 내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라.” 루쉰이 의존적이고 나태한 우리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늘상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미래를 묻는 경우가 많습니다. 무엇을 해야 하냐고 말이지요. 루쉰은 용납하지 않습니다.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고, 그 즉시 하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건, 내 안에 좌우로 그늘져 있는 무능, 무지, 무책임, 비겁, 안주, 아첨, 노예적 근성이 그럴듯한 핑계를 대며 우리를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루쉰은 이것을 직시하는 글을 썼습니다. 진짜 인간의 모습은 추악하고 쪼잔하고 우스꽝스럽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삽니다. 루쉰은 이 포장을 거둬내고 저 심연에 자리한 진짜 모습을 파헤쳐서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가 되기를 바라며 글을 썼던 것입니다. 분명 루쉰 시대와 우리의 시대는 다릅니다. 그러나 루쉰이 용서하지도 화해하지 않으려 했던 ‘삶’은 우리들에게도 예외 없이 흘러갑니다. 삶에 대해 합리화도 포장도 하지 말아야 해방이 오겠지요? 이 때문에 여전히, 루쉰은 하나의 ‘방법’입니다.     


(문성환) 앞에서 대답한 질문과 같은 대답이 될 것 같은데요. 루쉰을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는 어떤 의미에선 루쉰에게 있는 게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우리에게 있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여전히 루쉰을 읽으면서 루쉰에게 질문을 던지고 싶고, 던질 수 있기 때문에 루쉰을 읽게 되는 것일 테니까요. 그런데 루쉰은 어째서, 왜 우리로 하여금 질문을 던지고 싶어지게 만드는 걸까요. 아마도 그것은 그가 일생을 다해 대단히 쫀쫀하게 그리고 끝까지 따져 물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제 식으로 말해보면, 루쉰은 대의 뒤에 숨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봐주는 법이 없습니다. 그렇기에 루쉰의 글은 매우 현재성(현장성)이 강하고, 때론 감정적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만 또한 바로 그런 이유로 여전히 현재적이고 여전히 전염력이 높습니다. 특별한 이유를 굳이 대지 않더라도 글 자체가 매력이 많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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