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가장 낮은 곳’부터 마비시키는 시대 (2) : 뉴욕과 이반 일리히

'가장 낮은 곳'부터 마비시키는 시대(2)

:뉴욕과 이반 일리히




동네 신부님의 잔소리


뉴욕에서 일리히는 동네 신부였다. 그 후 그는 뉴욕의 ‘낮은 곳’에서 세상의 ‘낮은 곳’으로 자리를 옮긴다. 1960년대, 일리히는 멕시코에서 <문화 교류 문헌 자료 센터CIDOC>를 운영하며 유럽 선교사의 계몽주의를 깨뜨리는 게릴라였다. 1970년대, 그는 개발 이데올로기를 사정없이 공격해서 좌파와 우파 모두가 두려워하는 비평가였다.


그런데 1980년대에 들어가자 일리히는 갑자기 뒷선(?)으로 물러난다. 역사학자가 된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주목하지 않는 주제에 하나씩 천착해 들어갔다. 문자, 생명, 성(性), 자연……. 각각 주제의 역사 속에는 어김없이 ‘경제학’의 흔적이 있었다.


“저는 경제학자가 아닙니다. 그보다는 역사학자에 가까운 사람입니다. 저는 미래에 대한 강박적 억측을 바로잡으려는 목적으로 역사를 공부합니다. 역사학자에게 현재는 미래의 과거로 나타납니다. (…….) 저는 역사를 이용하는 것도 아니고 역사 속으로 도망쳐 들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과거를 공부함으로써, 제가 글 쓰고 말할 때 대면하는 생각과 느낌의 정신 위상을 형성하는 논리적 공리를 과거의 시각에서 내다보고자 합니다. 그리고 과거에서 나와 현재로 돌아올 때, 저의 정신 공간을 생성하는 논리적 공리의 대부분이 경제학에 물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반 일리치, 권루시안 역,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느린 걸음, 27~8쪽, 2014년


이 구절을 읽고 풉, 하고 웃어버렸다. 일리히는 여전히 동네 신부님이다. 학교의 환상에 속지 말고 개발의 단맛에 중독되지 말라고 아무리 잔소리해도 사람들이 듣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오늘의 경제 개발이 얼마나 괴상망측한 것인지, 또 얼마나 ‘당연하지 않은’ 것인지 과거와 철두철미하게 비교해 주겠다고 나선 것이다. (잔소리의 강도가 업그레이드되었다!) 잔소리의 표적은? 지금은 옛날보다 좋고 나중은 지금보다 더 좋을 것이라는 ‘케세라세라(Que Será Será)’ 마인드다. 정신 차리고 살지 않으면 네 인생도 이 세상도 망할 거라는 신부님의 꼬장꼬장한 말투. 뉴욕의 밑바닥에서, 사람과 기계에 잔뜩 치인 채 집에 돌아와도, 일리히의 잔소리를 읽으면 사이를 들이킨 것처럼 머리가 시원해진다.



시간의 이민자가 되어라

 

일리히가 뉴욕에서 푸에르토리코 이민자와 어울렸던 것은 사명이 아니라 본능이었던 것 같다. 그는 원체 이민 생활에 익숙한 사람이다. 이십대에는 유럽에서 나치를 피해 한참 떠돌았고, 그 다음에는 뉴욕으로 건너왔다. 뉴욕을 떠난 다음에도 푸에르토리코, 멕시코, 동남아, 다시 미국과 유럽을 오고 다녔다. (이쯤 되면 역마살을 의심해봐야 한다.) 그런데 말년에는 역사학자가 되면서 스스로를 시간의 이민자라고 지칭하기 시작했다. “두 개의 시공간의 사이, 혹은 아이슈타인 말대로 하면 시간-공간(spimes) 사이에 있는 이민자가 되기 위해서 (…….) 라틴어 문서[사료]와 놀기 시작했지요.”[각주:1] 


일리히의 시간 여행은 이 믿음에서 시작된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상식에는 뚜렷한 역사적 시작점이 있었고 따라서 그 끝도 있으리라.” 아주 ‘센세이셔널’한 구절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통렬한 통찰이 숨어 있다. 첫 번째는 시대감각이다. 시간은 연속해서 흐르지만 그 와중에도 시대와 시대를 단절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고로, 어떤 시대도 동일하지 않다. 한 시대가 믿는 세계관, 도덕관, 심지어 과학적 객관까지도 다른 시대의 눈으로는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이처럼, 개인의 정신 공간은 시대의 특수성에 빚지고 있다. 


두 번째는 상식의 유통기한이다. 각 시대마다 특수한 전제를 공유한다면, 이 전제는 어떤 때에도 진리일 수가 없다. 평등, 인권, 민주주의, 자유, 경제 발전 등은 오늘날 누구도 쉬이 반박할 수 없는 성스러운 가치다. 우리는 믿는다. 이 진보적인 가치관이 미래를 더 좋게 만들 거라고. 하지만 일리히는 반박한다. 미래는 현재의 발전형이 아니다. 거꾸로 현재가 “미래의 과거”다. 미래와 과거 사이에는 단절만 있다. 중세 사람들이 상상했던 미래대로 우리는 지금 살아가고 있는가? 아니다. 그들은 죽었다 깨어나도 오늘날 지구의 모습을 생각해낼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 역시 중세 시대가 어떤 전제를 공유했는지 모른다. 관심도 없다. 미래의 입장에서 현재를 바라보면 똑같은 일이 벌어진다. 우리는 미래를 현재의 연장선에서 상상하지만, 실제 다가올 ‘새로운 시대’란 오늘날 당연시하는 가치관이 아주 낯설게 취급하게 될 시대다. 이 사실을 끝까지 받아들이면, 오늘날 우리의 정신공간이 항상 당연하게 여겨서 마비되어버린 전제에서 한 발짝 떨어져 거리를 확보할 수 있다.


일리히의 1978~1990년 사이의 연설집인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를 읽으며 생각했다. 일리히가 과거에 비추어 재조명하려고 애썼던 ‘현재’는, 내가 살고 있는 오늘날에 이미 과거가 되었다고. 일리히가 격하게 비판했던 세상은 나를 스쳐 지나갔다. 단 30년 만에 말이다. (스마트폰도 10년 만에 일상의 판도를 바꿔버리는 요즘이니, 당연한 일이다.) 물론 세상은 근대적인 인프라를 아직 버리지 않았고, 그의 비판도 여전히 유효하다. 하지만 그가 ‘개발’이라는 대상을 그토록 격렬하게 비판할 수 있었던 것은 시대의 단절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개발을 모르던 시대’와 ‘개발의 시대’ 사이의 단절을. “1949년 1월 10일에 어른이었던 사람은 개발이라는 틀을 더 쉽게 거부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이날 트루먼 대통령이 발표한 제4항 계획에서 지금과 같은 의미의 ‘개발’이라는 용어를 처음으로 접했습니다. (…….) 이제는 수집가의 호기심거리가 된 각종 개발 이론이 이때부터 범람해 들어왔습니다.”[각주:2] 그 범람이 한바탕 휩쓸고 지나간 후, 지금이 되었다. 나는 개발 시대의 끝자락에 살고 있다. 한 해 한 해가 갈수록 개발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해지고 있다.


그 대신, 오늘날의 시대는 새로운 단절을 겪었다. 일리히 시대의 경제학은 오늘날 컴퓨터공학이 되었다. 누구나 컴퓨터를 갖게 되었고, 어떤 작품이든 컴퓨터를 통과해야 하며, 급기야 컴퓨터 교육이 ‘인권’의 새로운 기준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컴퓨터 용어는 전공영역을 뛰어넘어서 시대의 개념어가 되었다. 이제 ‘미래’는 경제가 일궈주는 풍요로운 시대에서 컴퓨터가 프로그래밍 해주는 편리한 시대로 이행되었다. 일리히도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우리는 (…….) 분수령을 넘어가고 있습니다. 내 생애에 이런 진행을 관찰할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못했습니다.”[각주:3]


 여기서 일리히의 두 번째 통찰이 빛을 발한다. 새로운 상식과 함께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다. 이 말인즉, 사람들의 정신공간에 새로운 마비도 생겼다는 이야기다. ‘마비’를 바탕으로 앞으로 수많은 프로젝트가 진행될 것이다. 일리히가 중세 시대를 공부하면서 자기 시대의 단절을 더듬었듯이, 나 역시 일리히의 책을 보며 내 정신 공간의 단절과 마비를 더듬는다. 2000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컴퓨터를 사용했던 세대로서, 시간의 이민자가 되어보는 일은 몹시 충격적이다. 충격만큼 천천히 단어 하나씩 끊어서 말해야 겠다. 나는, 컴퓨터가,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상상할, 수가, 없다.



산업인에서 ‘시그널(Signal)인’으로


나만 유별나게 컴퓨터에 매인 것은 아니다. 한국만 그런 것도, 선진국만 그런 것도 아니다. 몇 십 년 사이에 세계 전체는 성공적으로(?) 컴퓨터를 시대의 전제로 받아들였다.


나는 이 감을 뉴욕에서 얻었다. 뉴욕에는 각양각색의 사람이 산다. 이곳에서 소통은 언제나 모험이다. 언어 자체가 안 통하는 경우도 많고, 언어가 통한다고 해서 이야기가 바로 통하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남녀노소 인종국적과 무관하게 항상 통하는 주제가 있다. 바로 신제품 이야기(!)다. 새로 나온 아이폰의 스펙이 어떤지, 어떤 제품을 사는 게 가격 대비 최고인지, 타블렛에 어떤 액세서리가 어울리는지……. 이런 이야기를 시작하면 즐거워한다. 심지어 스마트폰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까지도 열심히 귀 기울인다. 뭔가 알아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다. 이를 직접 경험해보면 기분이 정말 묘해진다. 결국, 테크놀로지는 이 시대에 그 어떤 문화나 정치보다 더 보편적인 언어가 되었다.


일리히는 문자와 정신공간의 역사를 들려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인쇄술이 퍼지면서부터, 문자를 모르는 사람까지도 ‘문자’라는 메타포를 통해 생각하게 되었다고. 똑같은 일이 지금 벌어지는 모양이다. 컴퓨터는 컴퓨터를 쓰지 않는 사람들까지도 ‘컴퓨터’라는 메타포로 세상을 이해하도록 만들었다. 컴퓨터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컴퓨터를 알아야 이 세상의 진실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결코 ‘자연스럽게’ 찾아오지 않는다. 경제개발이 한창 진행되었을 때로, 몇 십 년 전으로 시야를 돌려보자. 개발에 가장 필요한 것은 인간의 노동력이다. 인간이 새로운 정체성을 갖지 않는 이상, 노동력을 집단으로 빼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 정체성은 무엇이었을까? 산업 활동 없이는 필요를 충족시킬 수 없는 ‘산업인’이었다. “필요를 사용하여 인간의 조건을 정의하는 것이 공리가 된 것입니다. 인간을 곤궁에 빠진 동물처럼 인식합니다.”[각주:4] 이런 인식이 선재되어야 경제 개발이 ‘정말로’ 현실이 될 수 있다.


테크놀로지도 같은 원리로 움직인다. 테크놀로지가 실현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기술 발전이 아니다. 인간의 정신력이다. 그리하여, 인간은 신호에 반응하고 정보를 전달하는 ‘시그널인’으로 먼저 재탄생 되어야 한다. “낱말은 정보 단위입니다. (…….) 그는 추상 관념을 연산하고 자료의 용도를 프로그램 합니다. 그의 인식은 머릿속에 갇혀 있습니다.”[각주:5] 상품 광고가 나오면 반응하고, 카톡 알림이 오면 반응하고, 인터넷 기사가 뜨면 반응한다. 이 반응을 통해 테크놀로지는 사회의 구석구석으로 흘러 다닌다. 만약 스마트폰이 꺼지면 어떻게 될까? 어떤 생각도 그 몸을 관통하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 세상에서 정보를 모으고 붙여서 이해하는 법을 잊었기 때문이다. 산업인이 산업 제도에 기대지 않고 필요를 충족하는 법을 잊었듯이, 시그널인은 테크놀로지 없이 말하는 법을 잊었다.


  ‘나’는 그대로인 채 테크놀로지를 수단으로 활용한다? 그럴 일은 없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기 때문이다. 시대의 전제를 내면화하기 위해서는, 그에 따르는 존재의 변형을 감수해야만 한다. 인간에서 ‘산업인’으로, 인간에서 ‘시그널인’으로. 



학교, 매뉴얼을 입력하는 장소


이 존재의 이행을 신화화하는 곳은 다시, 학교다. 학교는 인간으로서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산업인으로서 혹은 시그널인으로서, 제대로 기능하는 법을 가르친다. 교육과 진보의 아우라를 앞세워서 이 기능을 익히면 ‘스마트한 인간’이 될 수 있다고, 그리고 스마트해야 ‘유의미한 인간’이 될 수 있다고 믿게 한다. 오늘날 학교는 계몽의 공간조차 되지 못한다. 이곳은 그저 매뉴얼을 위한 공간이다. 학생들은 정보에 반응하는 법을 배운다. 복잡한 테크놀로지 사회에서 얼마나 적절하고 빠르게 정보와 접속하는지를. 테크놀로지에게 이미 내줘버린 정신 공간 안에 어떻게 하면 더 고급스러운 정보를 채워넣을 수 있는지를. 이 중 몇 명은 운 좋게도 테크놀로지 개발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아, 혹시 모르겠다. 상위 5% 사람이 돈을 많이 내야 갈 수 있는 학교에서는 더 ‘의미 있는’ 교육이 시행되고 있을지도. 그러나 학교를 가야만 생존할 수 있다고 믿는 세상에서, 학교의 본래면목은 생계전선과 가장 가까운 곳에 놓인 ‘밑바닥 학교’에 있다. 경제 개발의 시대든 테크놀로지의 시대든, 시대의 전제는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부터 가장 무겁게 짓누른다. 그들부터 마비되기 시작한다. 


누구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시대에 맞게 사는 게 무슨 문제냐고. 테크놀로지가 활개를 치는 시대라면 테크놀로지를 공부하는 게 ‘잘 사는’ 법 아니냐고. 한편으로는 옳은 말이다. 누구든 먹고는 살아야 한다. 리얼리티를 완전히 부정하면서 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리히는 이 시대의 전제를 거부해야 한다고 꿋꿋이 말한다. 학생들은 뭔가를 얻어내기 위해 시대와 타협하고 있는 게 아니다. 스스로의 몸을 팔아, 결국 자급도 못 하고 보수도 못 받는 이중의 마비상태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림자 노동, 그림자 영혼


이 이중의 마비상태를 비유하자면 ‘그림자’다. 일리히의 개념 중에 부정가치라는 것이 있다. 영어로 번역하면 ‘disvalue,’ 즉 마이너스 가치다. 경제학에서는 돈이 되는 일에 가치(value)를 부여한다. 부정가치는 그 반대 개념이다. 돈이 되지 않고 노동만 잡아먹는 일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점은 경제가치가 아무리 부흥해도 부정가치는 줄어들기는커녕 점점 늘어난다는 것이다. 경제가치와 부정가치는 둘 다 자급노동에서 나왔다. 임금노동은 임금을 받지 않는 자급노동을 부정가치로 취급함으로써 ‘가치’를 얻는다. 그렇다고 해서 부정가치의 노동이 아예 사라질 수는 없다. 어쨌든 살아가는데 필요한 일이니까. 이 자급노동은 부정가치의 노동이 된 것도 모자라, 원래의 ‘자급’의 의미도 잃어버린다. 이것이 그림자 노동이다. 여성의 집안일이나 학생의 수능공부가 대표적인 예시다.


가치와 부정가치, 그리고 그 사이에서 사지가 양쪽으로 찢어진 자급 능력. 돈을 벌 기회도 없고 스스로 살아갈 능력도 없는 게 밑바닥 사람들이 처한 상황이다. 사람들이 그토록 열심히 돈에 매달리는 건 탐욕 때문이 아니다. “그 특권이 무엇보다도 모든 사람의 삶에 영향을 주는 부정가치에서 탈출하는” 유일한 “방편이기 때문”[각주:6] 이다. 존재해도 존재하는 게 아니고, ‘생존’이라는 상태를 쟁취하는데 온 힘을 쏟아야 겨우 살아갈 수 있는 시대다. 


똑같은 매커니즘이 테크놀로지에도 적용된다. 테크놀로지에서 효율적으로 유통되는 정보가 ‘가치’라면, 입력-출력 시스템 내에서 유통될 수 없는 정보, 관리되지 않는 정보, 한계를 뛰어넘어야만 이해되는 정보는 모두 ‘부정가치’가 된다. 여러 번 꼼꼼히 읽고 곱씹어야 하는 텍스트는 어떨까? 당연히 부정가치다.


뉴욕 시립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내가 목격한 것도 텍스트의 실종이었다. 언어는 정보화 되었고, 정보는 바이트(byte)화 되었다. 더 많은 바이트를 전달할수록 더 ‘생생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몇 기가바이트의 영상이 순식간에 전송되는 세상에서, 텍스트는 이제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바이트’로 전달되는 ‘비효율적인’ 정보로 전락했다. 학교에서는 무슨 수업을 듣던 파이널 에세이를 써야 한다. 그런데 파이널 에세이에서 중요한 것은 ‘정보 수집’이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가, 무엇을 감명 깊게 읽었는가보다는 내 의견을 뒷받침해줄 만만한 정보를 얼마나 빨리 모을 줄 아는가가 핵심이다. 정보를 모으는 과정에서 학생은 오히려 점점 주제와 멀어진다. 텍스트의 정보는 고작해야 10 바이트를 넘지 않는다. 이런 용량으로 어떻게 감히 ‘세상일’을 실감할 수 있겠는가? 이렇게 실감하지 못한 채 에세이가 써지고, 제출된다. 그야말로 정보의 총합이다.


“‘절망적인 굶주림’이라고 또박또박 표현할 때 수전은 뭔가를 느낍니다. ‘33’을 가지고 설명할 때에는 그런 느낌이 없습니다. 따라서 수전에게 문장을 이루는 낱말은 다른 사람의 감정으로 이어지는 다리를 이루는 널빤지나 같습니다. (…….) [반면 프랭크는] 컴퓨터에 접속되어 있고 가동형 사고라는 저인망에 갇혀 있습니다. 튜링의 공식에 따라 그는 인공두뇌적 꿈에 빠졌습니다. 그는 사하라 남부의 사헬 지역을 비행하며 메마른 지구와 죽어가는 낙타를 바라보고 절망과 적의가 퍼져나가는 것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각주:7] 


이 ‘그림자 영혼’이 그림자 노동과 다른 점이 있다. 그림자 노동은 자신의 몸이 마비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최소한 느낀다. 그림자 영혼에게는 이를 느낄 정신의 한 조각조차 남아있지 않다. 일리히가 묘사한 프랭크의 상태는 얼마 전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던 사람과 닮았다. 여자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슬픔을 견디지 못해 ‘우울제 치료제’를 복용하고 있었다. 일시적으로 기분이 행복해지는 약이다. 그런데 테크놀로지가 발전하면서, 우울한 감정과 기억을 직접적으로 지우는 뇌과학이 이제 곧 가능해진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여자는 더 이상 약을 먹지 않아도 된다고 좋아했다. 좋아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죽음을 ‘삭제’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 끔찍한 장면을 보며, 이런 테크놀로지가 아직 활성화되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 사이보그-인간은 미래에서 오는 게 아니라, 이미 내 시대에 존재하고 있었다. 프랭크 같은 아이에게서 말이다.


마침내 나는 시대의 단절을 느끼게 되었다. 몇 십 년 안에, 나는 사무치는 그리움이나 슬픔의 깊이를 아예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 버텨내는 삶의 자존감도, 무너지는 삶의 진실함도, 다 쓸모없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등장할 수 있다. 그런 것은 ‘부정 감정’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것이 이 시대가 목이 빠져라 바라보는 미래일까.



정주 없이는 유목도 없다


뉴욕에는 아주 강력한 ‘중력’이 있다. 이 중력은 곧 시대의 전제다. 뉴욕에 막 도착한 주변인들은 중심으로 순식간에 끌려간다. 뉴욕이 깔아놓은 삶의 패턴에 적응하기 위해 파닥거린다. 누군가는 중심에 가닿는데 성공하고, 누군가는 나가떨어지면서 실패한다. 그러나 뉴욕은 둘 다에게서 에너지를 얻는다. 뉴욕이 바라는 것은 이민자가 가져온 자급의 문화가 파괴되면서 생기는 속도다. 그 속도로 자본주의는 힘을 낸다.


반면, 젊은이들은 이속에서 이중의 마비에 걸린다. 한쪽 눈으로는 화려한 쇼핑몰과 아이폰에 홀리고, 다른 한쪽 눈으로는 1세대 부모님이 아직 간직하고 있는 자급의 문화를 바라보며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촌스럽기도 하고, 이해가 안 되기도 하며, 또 존경스러운 것이다. 그들 모두가 나의 초상화다. 여기서 나는 내 시대의 지도를 찾았다.


여기서 하나 깨달은 게 있다. 정주할 줄 모른다면 유목도 없다는 것이다. 정주한다는 것은 중력에 매이는 게 아니다. 길 어디에서 멈추든 텐트를 칠 줄 아는 능력이다. 텐트를 치려면? 고생해야 한다. 텐트를 짊어지고 다녀야 하고, 텐트를 칠 장소를 알아봐야 하며, 추운 잠자리를 견뎌내야 한다. 그리고도 부족하여, 누군가와 함께 다녀야 한다. 이렇게 사서 고생하는 게 삶이다. (원래 삶은 자급 노동으로 가득하다!) 이런 각오 없이 ‘유목을 하는’ 건 그냥 테크놀로지가 닦아놓은 판 위에서 산책하겠다는 것이다. 각오를 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밑바닥에서 살아갈 때에야,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다. 스마트폰은 주지 못하는 감각이다.


아, 이제 알 것 같다. 십대 때 여러 작가들의 묵직한 문장이 왜 그토록 내 마음을 파고 들었는지. 그들은 마비되지 않은 채 삶의 가장 밑바닥까지 내려간 자들이었다. 그들은 무너질 줄 알았고, 그렇게 자신이 살아있음을 알았다.


“지난날의 생명은 벌써 죽었다. 나는 이 죽음을 크게 기뻐한다. 이로써 일찍이 살아 있었음을 알기 때문이다. 죽은 생명은 벌써 썩었다. 나는 이 썩음을 크게 기뻐한다. 이로써 공허하지 않았음을 알기 때문이다.”[각주:8]


이상이, 내가 나의 신부님께 들은 잔소리다. 잔소리를 듣는 건 행복한 일이다. 이 세상에서 아직 따라갈 스승이 있다는 뜻이니까. 스승이 있다는 건 내 마음이 아직은 마비되지 않았다는 뜻이다.


글_김해완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 10점
이반 일리치 지음, 권루시안 옮김/느린걸음


  1. David Cayley, <Ivan Illich in Conversation>, Anansi, p.121, 2007 [본문으로]
  2. 이반 일리치, 권루시안 역,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느린 걸음, 117쪽, 2014년 [본문으로]
  3. David Cayley, <Ivan Illich in Conversation>, Anansi, p.37, 2007 [본문으로]
  4. 이반 일리치, 권루시안 역, <과거의 거울에 비추어>, 느린 걸음, 37쪽, 2014년 [본문으로]
  5. 같은 책, 288쪽 [본문으로]
  6. 같은 책, 105쪽 [본문으로]
  7. 같은 책, 228쪽 [본문으로]
  8. 루쉰, 루쉰전집번역위원회, <루쉰전집3권>, “야초,” 그린비, 2011, 23쪽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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