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시사철 몸에 좋은 보양식, 소고기
기분 좋다고 소고기 사묵겠지
“돈 많이 벌면 뭐하겠노? 기분 좋다고 소고기 사묵겠지” 한동안 유행했던 개그 멘트다. 그런데 “돈 많이 벌면 뭐하겠노? 기분 좋다고 닭고기(혹은 돼지고기) 사묵겠지”라는 말은 하지 않는다. 왜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른 고기에 비해 소고기를 특별한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을까?
농경사회에서 소는 염소나 돼지와 달리 단순한 가축이 아니라 농가의 많은 일을 담당하는 큰 일꾼이었다. 논밭에서 쟁기질을 하고 짐수레를 끄는 등 힘든 일을 도맡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소를 잡아 식용으로 쓰기도 했지만, 오직 잡아먹기 위한 소의 사육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소가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등 사고로 죽었거나 병들었을 경우에 관청의 허가를 받아서 도축하고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왕족이나 높은 벼슬아치 등 소수의 특권층이 아니면 일반 백성들은 소고기를 먹을 기회가 거의 없었던 것이다.
하기야 1970년대까지도 일반 서민들은 소고기를 명절이나 제사 등 특별한 때만 먹었다. 그래서 서민들에게 손님 대접을 위한 최고급 음식은 단연코 소불고기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소고기는 값이 비싸서 다른 고기들에 비해 자주 먹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배경을 고려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왜 소고기에 대한 욕망이 더 각별한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 그런데 이제 소고기는 옛날처럼 명절에나 먹을 수 있는 특별한 음식이 아니다. 지금은 소를 대량 사육하는데다가 수입산도 많아 소고기 값이 옛날만큼 비싸지 않으므로 자주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고기는 계절을 가리지 않고 사시사철 즐길 수 있다. 그럼 소고기가 어떤 성미를 가진 육류인지, 또 우리 몸에서 어떤 작용을 하는지 등을 알아보자 .
기력 보충에 좋은 소고기
요즘처럼 더위가 기승을 부리면 입맛은 없고 그저 시원한 것만 찾다가 몸이 축나기 십상이다. 이럴 때 사람들은 늘어진 몸을 추스르고 기운이 나게 해줄 음식으로 닭고기, 돼지고기, 소고기 등의 육류를 찾는 경우가 많다. 왜 식물이 아닌 동물을 찾게 될까? 당종해의 저서 『본초문답』에 따르면, 닭, 오리, 돼지, 소 등의 고기는 피와 살로 이루어져 있어서 사람의 몸과 별 차이가 없기 때문에 보익하기에 좋다고 한다. 즉 떨어진 기력을 보충하기 위해 사람의 몸과 비슷한 고기종류를 우리 몸이 원한다고 볼 수 있다.
본초서당의 '고기특집' 이번엔 소다!
『동의보감』에서는 소고기를 “성질은 평하고 맛은 달며, 독은 없다. 비위를 보하고 토하거나 설사하는 것을 멎게 하며, 소갈과 수종을 낫게 한다. 또한 힘줄과 뼈, 허리와 다리를 튼튼하게 한다” 라고 설명한다. ( 법인문화사,「탕액편」1871p ) 즉, 소고기는 성질이 평(平)하므로 춘하추동 어느 계절에나 먹어도 괜찮은 고기라는 뜻이다. 그리고 차거나 뜨거운 성질 중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기 때문에 사람마다 다른 체질의 영향도 크게 받지는 않는다.
한의학에서 소고기는 오미(五味) 중 단맛(甘味)에 해당하는 육류로서 비위(脾胃)에 작용한다. 단맛은 비위를 보(補)해주므로 비위의 기능을 향상시킨다. 비위가 튼튼하면 음식물을 잘 소화시키고 흡수하므로 기운이 절로 나게 된다. 그래서 “비위를 보하면 보해지지 않는 것이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다시 말해 소화기능이 약하거나 병을 앓고 난 후 온몸의 체력이 떨어졌을 때 소고기를 먹으면 좋다는 뜻이다. 양질의 단백질을 공급하여 보충해주고 비위 기능 향상으로 기혈의 순환이 원활해지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검정소나 얼룩소고기 보다는 누렁소고기(황우)가 더 좋다.
오장육부와 관련해서 황색은 비위에 작용하는 색깔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덧붙이면 한의학에서 청색은 간·담에, 적색은 심장·소장에, 백색은 폐·대장에, 흑색은 신장·방광에 작용하는 색으로 본다. 또한 기력(氣力)하면 보통 정력(精力)을 떠올리는데 이해를 돕기 위해서 간단한 설명을 첨가한다. 한의학에서 오장(五臟)에는 모두 정(精)이 있다고 본다. 그 중 신장(腎臟)은 오장육부의 정을 받아 저장하거나 관리하는 곳으로 생식과 관련이 있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다시 말해 기력은 신장에서 나오는 정력만을 말하는 게 아니다.
이를테면 신장의 정은 우리 몸의 근본을 이루는 것으로서 기(氣)를 만들기도 하므로 신장의 정이 부족하면 신기(神氣)가 줄어들어 정신이 맑지 못하다. 간(肝)의 정이 부족하면 눈이 어지럽고 눈에 광채가 없다. 비(脾)의 정이 부족하면 머리털이 빠지다가 기력이 떨어지면 병에 잘 걸리게 되고 심하면 죽음에 이르게 된다. 즉 기력이 떨어진다는 것은 일상적으로 활동하는 힘이 떨어진다는 것이므로 그 부족한 힘은 음식으로 보충해줘야 한다. 병 때문에 음식을 먹지 못하는 환자가 기운이 펄펄 넘치는 경우를 본 적이 있는가? 따라서 소고기를 섭취하여 비위기능을 회복시키는 것은 기력(일상적인 활동력)을 보충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곰탕과 도가니탕에 얽힌 오행관계
오랫동안 병을 앓아서 몸이 많이 쇠약해졌을 때는 소화가 잘 되고 기력을 빨리 보충하기에 좋은 음식을 찾게 된다. 그 대표적인 것으로 곰탕과 도가니탕을 들 수 있다. 이것들은 비위기능을 좋게 하는 소고기와 뼈를 넣어 푹 고아 만든 음식으로 소화에 부담이 없고 기력 회복을 빠르게 돕기 때문이다. 그럼 곰탕과 도가니탕은 어떻게 하여 소화하기 좋은 부드러운 음식이 되었을까? 이와 관련하여 최철한의 『본초기』에서는 “짐승이 살아 있을 때는 뼈에 근육, 살이 본드처럼 달라붙어 있다. 살코기를 썰어서 구워 먹으면 이빨이 아플 정도로 질기다. 하지만 살코기를 뼈와 함께 오래 달이면 뼈가 살을 녹인다. 水극土다” 라고 설명한다. 즉, 고기를 뼈와 함께 오래 끓였을 때 씹을 필요가 없을 정도로 부드러워지는 것은 뼈가 고기를 녹이는 작용을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어떻게 뼈가 살(고기)을 녹이는 작용을 한다는 거지?
톰을 우롱하는 제리, 토를 극하는 수. 이 오묘한 하극상!
먼저 오행의 상생상극(생극)관계로 접근해보자. 한의학에서 뼈는 수(水)에 해당하고 살은 토(土)에 해당한다. 즉 뼈인 수가 살인 토를 극(克)하는 관계이므로 수극토라는 말이 된다. 하지만 보통 생극관계에서는 수극토가 아니라 토극수가 맞다. 그런데 왜 수극토라고 썼을까? 오타가 아닐까 의심할 수도 있지만 또 다른 오행관계인 오행상모(五行相侮)로 보면 수극토인 까닭을 이해할 수 있다. 오행상모란 오행 간에 어느 한쪽이 지나치게 강해지면 원래 자신을 제압하던 것을 도리어 제압하는 경우를 말한다. 마치 궁지에 몰린 생쥐가 고양이에게 죽기 살기로 덤비면 고양이가 오히려 달아나는 형국이랄까? 평소의 정상적인 관계가 아닌 역전된 관계로 바뀌는 것이다.
이를테면 수에 해당하는 뼈가 토에 해당하는 고기보다 양적인 면에서 더 많다면 도리어 수가 토를 제압하여 수극토가 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수에 해당하는 뼈가 토에 해당하는 고기를 녹였다고 본 것이다. 다시 말해 도가니탕과 곰탕은 뼈를 고아낸 국물과 소고기가 함께 어우러진 음식임을 떠올리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곰탕과 도가니탕은 구수한 사골국물이 되기까지는 많은 양의 뼈를 넣어 장시간 끓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하지만 고기는 상대적으로 적은 양이 들어가는 음식이다. 우리가 무심코 먹는 음식 하나에도 이러한 우주적 원리를 적용시켜 음식이 곧 약이 되도록 한 조상들의 지혜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도가니탕이나 곰탕을 늘 먹으라는 뜻은 아니다. 일시적으로 필요할 때만 써야 약이 되지, 지나치면 아무리 좋은 음식도 오히려 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유불급(過猶不及)!
소, 버릴 게 하나도 없어
『동의보감』을 보면 소의 각종 부위는 버릴 것이 하나도 없다. 똥과 오줌까지도 모두 약으로 쓰이니 말이다. 따라서 각 부위는 그 효능에 따라서 쓰임이 달라진다. 예컨대 우리가 흔히 먹는 우유는 번갈(가슴이 답답하고 입이 마르는 증상)을 멎게 하고 피부를 윤택하게 하며 심폐를 보하고 열독을 풀어주는 음식이다. 우황은 소의 쓸개에 염증으로 생긴 결석 즉, 담석을 건조시킨 것이다. 병으로 생긴 돌멩이까지 약으로 쓰는 셈이다. 우황의 기운은 간으로 들어가 힘줄에 생긴 병을 낫게 하는데 많은 사람들에게는 우황청심환의 주재료로 더 유명하다. 사람들은 흔히 우황청심환을 일시적인 긴장감 해소용으로 사용하는데 이는 약물의 오남용을 초래할 수 있으니 잘 알고 써야 한다. 우황청심환은 본래 중풍으로 인해 인사불성이 되었거나 전광증(일종의 정신병)으로 인한 정신 착란 증세를 치료하는 약이기 때문이다. 참고로, 우황청심환을 웅담과 혼동하는 경우가 있는데 웅담은 곰의 쓸개를 말린 약재이니 혼동하지 마시라.^^
한의학에서 약물과 인체의 관계를 파악하여 치료에 응용한 원리 중에 ‘취상비류(取象比類)’라는 것이 있다. 이것은 식물과 동물 그리고 광물은 형상이나 색깔 등 서로 뭔가 공통된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래서 그 속성이 서로 통하므로 약재로 사용하면 상호 보완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우슬(牛膝)이라는 식물은 마디의 모양이 소의 무릎과 닮아서 사람의 무릎과 정강이를 부드럽게 해주는 약재로 쓰인다. 마찬가지 원리로 동물의 장기가 한약으로 많이 쓰이는데, 우리 몸의 어떤 장부가 허하면 동물의 해당 장기로써 그것을 보하는 것이다. 따라서 소의 각 장부는 우리 몸에 해당하는 부위를 튼튼하게 하거나 질병을 낫게 해준다고 본다. 이를 테면 간의 혈이 허해서 야맹증(밝은 곳에서 어두운 곳으로 들어갈 때 적응을 하지 못하거나, 희미한 불빛 아래 또는 어두운 곳에서 사물을 분간하기 어려운 증상)이 생긴 경우 소의 간으로 보해주면 좋다. 소의 위장(胃腸)인 양(䑋)은 오장과 비위의 기능을 보하고 소갈을 멎게 한다. 그리고 허리가 아프면 소의 허리뼈를 고아 먹고 다리가 아프면 소의 다리를 삶아 먹으면 효과가 있다.
무더위에 지친 여름, 오늘 저녁은 온가족이 둘러 앉아 소고기로 보양하세요~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소는 모든 부위가 음식과 약으로 쓰인다. 특히 소고기는 소화력이 떨어지고 힘이 달릴 때 먹으면 기력 회복에 도움이 된다. 다만,『동의보감』에서는 자기의 소화능력 이상으로 고기를 섭취하는 것은 오히려 몸에 해로우니 적절히 보충해줄 것을 권한다. 사람은 곡기를 위주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즉, 고기가 밥보다 우선할 수 없다는 뜻이다. 입맛을 잃기 쉬운 요즘 밥과 소고기의 조화로운 식단으로 비위를 튼튼하게 보하여 활기찬 여름을 보내시길.^^
안순희(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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