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울 땐 羊(양)이 최고!
털들아, 뭐 하러 났니?
다시 여름이다. 내겐 이 계절이 매우 부담스러운데, 특히 입추 전 열흘가량은 숨마저도 차분히 골라 쉬지 않으면 치고 오르는 열기를 감당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하지만 주변엔 겨울보다는 여름나기가 훨씬 수월하다는 사람들이 제법 있고, 심지어는 찌는 듯한 더위가 정말 좋다는 사람도 있는데 이런 사람들을 보면 공통점이 있다. 팔다리가 가늘고, 땀도 별로 없고, 피부색이 희다. 그리고 털이 거의 없어 피부가 매끈하다. 잔뿌리 송송 달린 무 같이, 굵고 털 많은 다리 때문에 여름에도 긴치마만 입는 나로서는 그녀들의 가늘고 매끈한 다리가 부러울 따름이다. 그래서 다리에 복슬복슬 난 털을 보면 이렇게 말하고 싶어진다. 팽팽하던 피부도 가고, 많던 머리숱도 줄어드는데 이제 그만 너희도 좀 사라지면 안 되겠니?
드디어 우리 차례가 온건가!!
각설하고, 오늘의 주인공 羊(양)에 대해 보도록 하자. 양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복슬복슬한 털이다. 양을 비롯한 길짐승에게는 털이 있는데, 이 털은 미세한 바람에는 물론 소리, 진동, 온도, 습도에도 잘 감응한다. 또 상황이 불안하게 느껴지거나 긴장될 땐 쭈뼛 일어서는 등 위험을 감지하는 안테나 같은 역할을 한다. 뿐만 아니라 체온 유지에도 큰 도움을 주기 때문에 털은 야생에서의 생존력을 높인다. 그래서 털이 많으면 야생성이 높다고 하는 것이다. 양털 역시 혹한을 견딜 수 있게 하는 비장의 무기다. 하지만 희고 복슬복슬 한 양 털에다 야생성 운운하는 것은 좀 거기시하다고 느껴지는데, 그건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그 양이 털과 고기를 얻기 위해 가축화된 개량종이기 때문이다. 가파른 돌산을 자유자재로 뛰어 다니는 산양은 면양과는 매우 다르다. 아찔할 만큼 높은 절벽위에 유유히 서 있는 야생의 산양을 보면 경외심마저 든다. 그래서인지 몽골인은 절벽위의 서 있는 산양을 보면 행운을 만났다고 믿었다고 한다.
비·위를 데워주는 羊(양)
나는 소, 닭, 돼지고기를 그다지 즐기지 않기 때문에 고깃집에 가는 일이 별로 없다. 하지만 어쩌다 집 근처 연변 아주머니가 하는 양 꼬치 집에서 양고기 맛을 들인 후엔 그 집 단골손님이 되었다. 덕분에 아주머니와 안면을 터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듣기도 하는데 요즘 들어 그녀가 가장 많이 하는 말은 장사가 정말 안 된다는 하소연이다. 나도 여름 들어 그 집에 가는 발길이 뜸해지긴 했다. 그녀는 더운 여름에 누가 뜨거운 숯불 앞에서 꼬치구이를 먹고 싶어 하겠냐면서 빨리 여름이 가길 바란다. 하지만 바로 옆에 위치한 돼지 숯불구이 집엔 발 디딜 틈이 없는 것을 보면 장사가 안 되는 것이 숯불 때문이라는 그녀의 말은 설득력이 약하다. 사실 사람들이 여름에 양고기를 멀리하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양을 많이 키우는 중앙아시아나 호주 초원의 기후는 연중 건조하고, 겨울에는 혹한이 지속되며, 한 여름이라도 밤에는 급격히 온도가 떨어져 춥다. 그런데 양은 이런 기후에서 살기에 여러모로 적합하다. 우선 짧은 다리와 구심력 강해보이는 오동통한 몸은 에너지와 수분발산을 최소화할 수 있는 형태이고, 복슬복슬한 털과 제 몸에 난 털처럼 옹기종기 모여 잠자는 습성은 체온유지에 유리하게 작용하기 때문이다. 또 양은 몸의 성질 자체가 매우 熱(열)하다. 『동의보감』에서는 양을 火(화)기가 강하다고 했으며, 당종해 역시 양고기의 氣味(기미)를 甘熱(감열)한 것으로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양은 혹한에서도 잘 견딜 수 있는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 양을 찾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은 당연하다.
화기가 많은 양고기는 겨울에 즐기세요~
한의학에서 단맛은 비·위, 신맛은 간·담, 매운 맛은 폐·대장 쓴맛은 심·소장, 짠맛은 신장·방광에 배속된 것으로 보는데 양은 甘味(감미)를 지녔기 때문에 비위 등 중초에 주로 작용한다. 게다가 성질이 熱(열)하여 중초를 따뜻하게 데울 수가 있다. 그리고 열한 성질은 신장의 命門火(명문화)에도 작용을 하여 陽氣(양기)를 돋우어 신장을 보한다. 그래서 신장의 陽氣(양기)가 부족해 허리가 아파서 움직일 수 없을 때에는 양의 척골 한 대를 망치로 부스러뜨려 푹 고아 갖은 양념(오미:五味)을 하여 먹은 후 술을 조금 마신다고 한다.(『동의보감』, 허준, 휴머니스트, 1327쪽) 羊(양)은 이렇듯 신장의 陽(양)을 보하는 데에 도움을 주기 때문에 정력에 좋다는 속설에는 근거가 있는 셈이다.
누린내 때문에 싫다고요?
양고기는 누린내 때문에 싫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사실 누린내는 양고기뿐만 아니라 소, 돼지, 개고기에서도 난다. 다시 말해 누린내는 양을 비롯한 길짐승의 특성인 것이다. 음양오행론에서 바람은 木(목)의 특성이고, 누린내는 木(목)을 대표하는 냄새로 분류된다. 그래서 바람에 휘날리는 털을 가진 길짐승도 木(목)의 성질을 지닌 것으로 본다. 때문에 길짐승에게서 누린내가 나는 것은 음양오행의 이치에도 맞다고 한다.(최철한, 『본초기』, 대성의학사, 20쪽) 이렇듯 길짐승인 羊(양)은 기본적으로 木(목)의 성질을 지니지만, 다른 길짐승보다 훨씬 더 熱(열)한 기운이 강하다. 『동의보감』에서는 양을 火(화)의 성질을 가진 것으로 분류한다.(문헌에 따라 동물의 오행분류는 조금씩 다른데 이 글에서는 『황제내경』의 분류체계를 따른다.)
정리하자면, 羊(양)은 단맛으로 인해 주로 비, 위에 작용하고, 열성을 지녀 비위를 따듯하게 補(보)하는 기능을 한다. 게다가 木(목)의 성질을 얻어 간에도 작용할 수가 있다. 그래서 비위를 튼튼하게 하고, 살이 빠지는 병을 치료하여 살찌게 하며, 위의 기를 잘 통하게 하기 때문에 삶아 먹거나 국을 끓여 먹으면 좋다.(『동의보감』, 허준, 휴머니스트, 1263쪽, 1487쪽) 또한 간을 따듯하게 할 수도 있다.(당종해, 『도표본초문답』, 대성의학사, 232쪽) 마지막으로 신장의 양기를 돋우기도 한다.
이렇듯 羊(양)은 추울 때 먹으면 몸을 데울 수 있을 만큼 뜨거운 본초이므로, 여름에 많이 먹으면 오히려 좋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름에 소개하게 된 것은 본초서당에서 지난 회부터 동물을 오행으로 분류하여 다루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난 시간에는 동물 중 木(목)에 해당하는 개를 다루었고, 이번 주엔 火(화)에 해당하는 양을 보았으며, 다음시간에는 土(토)에 해당하는 소를 볼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본초서당인데 왜 동물을 다루는지 궁금해 하시는 분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한의학에서 본초란 풀뿐만이 아니라 물, 광물, 공기, 동물 등 사람의 몸에 들어와 작용을 하는 것을 모두 이른다. 그래서 본초 서당에서는 이미, 물, 소금에 대해서도 다루었고, 앞으로 기회가 되면 광물에 대해서도 다룰 예정이다.
오선민(감이당 대중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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