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나의 글이 나의 저항이다! -『글쓰기와 반시대성, 이옥을 읽는다』


『글쓰기와 반시대성, 이옥을 읽는다』 출간!




연암과 다산이라는 큰 별에 비하면 이옥은 작고 초라한 별이다. 연암-정조-다산을 중심으로 한 18세기의 찬란한 성좌 언저리 어딘가에서 겨우 희미한 빛을 낼 뿐, 이 작은 별이 18세기의 시공간에 미치는 영향력은 미미하다. 하지만 이 미미한 별을 빼놓고 문체반정이라는 사건에 접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옥이야말로 전통적 글쓰기 담론에 심각한 균열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리는 하나의 징후요, 낡은 글쓰기의 영토를 가로지르는 하나의 도주선이기 때문이다. 도주선, 극미하지만 빠르게 영토를 횡단하는 그 사건이야말로 지층의 평형상태를 교란시키는 힘이다. 


… 나는 이옥의 미미한 존재감을 커다랗게 과장함으로써 그를 '위대한 문인 리스트'에 기입하려는 게 아니다. 이 글은 18세기 시공간에서 그의 글쓰기가 어떤 식으로 시공간의 굴곡을 형성했는지를 기술함으로써 '글쓰기와 저항'의 문제를 지금 이 자리에서 재고하려는 시도다. 


─채운, 『글쓰기와 반시대성, 이옥을 읽는다』, 「프롤로그_이옥과 우리」중



전근대의 독서와 글쓰기가 근대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이 인간의 신체를 소외시킨 '정신적 활동'만으로 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어떤 글을 암송하고 쓰는 행위는 머리가 아니라 전신에 그 글을 새기는 일이다. 앎이 신체에 각인되어 자동적으로 행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 그게 배움의 최종목표다. 그런데 이옥은 여기서 더 나아간다. 그에게 읽고 쓰는 것은 일종의 불가항력이다. 글을 몸에 배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글이 나를 지배하는 상태까지 가는 것이 독서요, 그 상태에서 어쩔 수 없이 나를 뚫고 터져 나오는 것이 글쓰기다. 이옥에게서 중요한 것은 바로 이 '어쩔 수 없음'이다. 가히 디오니소스적이라 할 만한 망아(忘我)의 상태! '나'라고 할 만한 것을 완전하게 망각한 후에야 거기서 비로소 시작되는 무엇, 그것이 글쓰기다.


─채운, 『글쓰기와 반시대성, 이옥을 읽는다』, 1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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