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마무리를 위한 시간, 대한(大寒)

대한(大寒), 밀린 빚을 갚는 시절

 


김동철(감이당 대중지성)




병에 걸리다

대한(大寒)은 춥다고 집에 콕 박혀 음식을 축내는 시절이 아니다. 오히려 대한 즈음은 농한기이기에 겉으로 봐선 한산하나, 대한 다음 절기인 입춘맞이를 위해 바쁘다. 입춘은 원단(元旦), 즉 새해의 출발점이다. 그래서 이것저것 준비할 게 많다. 아무 상차림도 없이 새해를 맞을 수는 없지 않은가? 대한이 속한 섣달은 다른 말로 납월(臘月), 즉 사냥을 해서 조상님께 드릴 제물을 준비하는 시기이다. 사냥을 하려면 몸이 날래고 가벼워야지, 배둘레햄의 몸매로는 어림없다. 대한은 또한 빚을 청산하는 시기이다. 입춘이 되기 전까지 모든 재무 관련 문제를 처리해야 한다. 돈 뿐만 아니라, 이웃간에 빌리거나 빌려준 물건을 모두 찾고 서로에게 돌려준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듯이, 새해에는 이전의 묵은 빚을 깨끗이 털고 시작하기 위해서이다. 묵히고 막힌 것을 탈탈 털어 가벼워지는 시절, 대한이다.


겨울엔 가끔 요런 증상들이 벌어진다. 감기인줄 알았더니 사실은 그게 너무 먹어서 그렇게 되었다는 불편한 진실^^

며칠 전 속이 미식거리고 더부룩해 명치 부위가 탁 막힌 듯한 느낌이 들었다. 밥을 한 솥 가득 퍼먹은 후 자세를 바로 하지 않고,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한 탓으로 보였다. 증세는 더 심해져, 화장실에서 폭풍 구토를 서너 번 했다. 그러자마자 갑자기 온몸이 얼음물벼락을 맞은 것마냥 부들부들 떨렸다. 게다가 뼈마디는 장작불로 지져대는 것처럼 후끈 달아올랐다. 한 겨울에 집에만 주로 있었는데 이게 무슨 때아닌 감기몸살 증상이냐? 사건이 일단락된 후, 여기저기 뒤져보니 요즘 노로 바이러스(Norovirus infection)에 의한 유행성 장염이 극심하다고 한다. 흔히 ‘겨울 식중독’이라 불리는 이 증세는 겨울철에 더 활개를 치는 바이러스란다. 음, 얼마 전 먹은 생굴이 바이러스의 숙주였단 말인가? 그런데 단지 뭘 잘못 먹어서 생긴 식중독일지도 모르나, 이것이 혹시 평소 습관과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구토 후 약 2~3분 사이로 도도하게 밀려오는 오한의 느낌이 여전히 생생하기에, 왜 하필 구토 직후에 몸살 증세가 나타나는지 궁금했다.


그래서 좀더 찾아보니, 나의 경우는 한의학에서 식적(食積)이라 부르는 증후와 유사해 보였다. 식적이란 한마디로 먹은 음식물이 적체, 즉 소화되지 않고 쌓여있는 찌꺼기를 말한다. 뱃속에 집어넣은 음식이 여전히 그 안에 머물러 있으며, 각종 연관된 병증을 유발한다. 요컨대 어떤 검색어를 치면 다른 연관검색어가 줄줄이 따라오는 것처럼 말이다. 내가 오한에 떨었던 것은 바로 식적이 불러일으킨 상한(傷寒), 즉 감기몸살 증세로 추정된다. 그래서 그 이름도 식적류상한(食積類傷寒)이라 한다. 처음에는 의아했다. 소화 안 되는 것하고 감기몸살하고 무슨 상관? 더부룩하고 속이 메스꺼운 거랑 허리 통증이란 어떻게 연관돼? 그래서 저 식적류상한이라는 말은 낯설다. 그런데 한의학에선 식적으로 인한 식적류상한 혹은 식적요통(食積腰痛) 등을 다루고 있다. 감기몸살과 허리 통증 또한 증세에 따라 그 원인은 알고 보면 소화불량일지도 모른다는 것. 이러한 보이지 않는 인과관계를 볼 수 없으면 증세와 무관한 치료를 시도할 수 있다. 나는 아프던 그 날, 겨우 진통제 2알을 먹고 고통을 가라앉혔다. 하지만 이는 일시적인 해법에 불과했다. 근본적인 원인과 그에 대한 처방을 찾지 않으면 언제라도 반복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소화불량은 겨울을 좋아해

사실 한겨울에 때아닌 것처럼 보이는 ‘겨울 식중독’에 걸리고, 나처럼 소화장애가 발생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겨울이야말로 소화기관에 특히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소한(小寒)과 대한(大寒)이라는 한파를 지나며, 몸은 더욱 움츠러들고 따뜻한 집안에만 꼭꼭 머무르고 싶은 요즈음이다. 그럴수록 바깥에 나가기 싫어지는데다, 편안하게 방에서 온몸 비틀기를 하며 군것질거리가 간절하다. 이때 소화기관이 서서히 요동하기 시작된다. 추운 나머지 바깥 나들이는 꿈도 꾸지 않고, 그저 이불 속에 돌돌 말려 있어도 배는 어김없이 고파온다. 그렇게 먹고 먹는 것을 반복하며, 소화될 시간도 없이 음식물은 차곡차곡 뱃속에 쌓여간다. 이렇게 보면 겨울철에 소화기관과 관련된 장애가 다수 나타나는 것은 거의 필연에 가깝다. 운동도 안하고 먹기만 하니 속이 더부룩하고 미식거리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니들도 운동 안하고 먹기만 하면 이렇게 된다~~^^


그것이 앞에서 말한 식적을 불러일으킨다. 식적은 단지 눈에 보이는 유형의 음식물만이 아니다. 흔히 체했을 때 체기(滯氣)가 있다고 하는 것처럼, 유무형의 막히고 답답한 기운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러한 식적이 단순히 답답한 증세에 그치지 않고, 여러 갈래로 침투해 몸살과 요통, 두통 나아가 우울함까지 유발한다니 허투루 볼 수 없다. 뭐 나만해도 소화가 안돼 ‘꺼억 꺼억~’거릴 때마다 현기증이 나고, 잘근잘근 전신을 덮쳐오는 몸살과 요통으로 몸을 가눌 수 없으니 심적으로 약해지고 울적해지더라. 흔히 겨울에 동물들이 겨울잠을 잔다고 하여, 인간 역시 겨울에 바깥 출입을 삼가고 먹을 것을 든든히 먹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다. 물론 그 말 자체는 틀리지 않다. 그러나 이 말이 이불 속에 틀어박혀 뱃속에 음식물을 갈무리하라는 뜻은 아니다.



비위가 튼튼해야 정도 기를 수 있다!

소화기관은 인체 장부기관으로 비위(脾胃)에 해당하며, 이는 오행(五行)으로는 토(土)의 성질에 속한다. 비위가 좋아야 음식물을 소화시켜 영양분을 흡수해서 온몸으로 전송하고, 노폐물은 걸러내 대장과 방광으로 내려 보낸다. 비위로 대표되는 소화기관이 식적으로 인해 막히면 그것은 곧 토(土)의 기운이 과잉 되는 등 문제가 생겼다고 볼 수 있다. 오행의 배치로 토(土)는 토극수(土克水)하여 수(水)기운을 공격한다. 요컨대 소화기관에 문제가 생기면 수(水)기운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뜻이다. 수(水)기운은 정(精), 즉 인체 생명력의 원천을 의미하는데 정력(精力)이나 정액(精液), 정기(精氣) 등의 말이 이와 관련 있다. 한마디로 정(精)이 고밀도로 농축되어야 신체의 본바탕이 바로 서는데, 다름아닌 겨울이 정(精)을 보존하는 가장 좋은 시절이다. 왜냐하면 겨울 또한 오행 가운데 수(水)기운에 속하고, 겨울만큼 인간이 바깥 활동을 자제하고 조용히 몸가짐을 가지런히 할 수 있는 때도 없기 때문이다. 물론 계절이 그렇다는 것이지, 이렇게 정(精)을 기를 수 있는 호시절을 누리는 것도 모두 각자의 몫임에 틀림없다. 그런 까닭에 겨울철에 내가 이미 빠졌던 식적의 함정은 정(精)을 기르는 데 있어 최대의 난관이다. 



신용불량과 소화불량은 같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많이 먹고 착하게(!) 소화하지 않으면 인위적(?)으로 바깥으로 배출할 수밖에 없다. 그 특단의 조치 중 하나가 바로 구토다. 앞서 나는 구토 후 엄청난 한기(寒氣)를 느끼고 뼈가 저릴 정도의 통증에 떨었다고 말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이는 구토에 따른 전신의 지각변동에서 비롯된 것으로 여겨진다. 무슨 말인가 하면, 본래 음식물은 입으로 들어가서 항문으로 나와야 한다. 그런데 입으로 들어간 게 다시 입으로 나오니(웩!) 이는 곧 자연섭리의 법칙을 근본적으로 뒤엎는 행위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요컨대 구토는 몸을 억지로 뒤집어 까는 일이다. 그렇게 소화의 쿠데타를 감행하면 어떻겠는가? 총칼을 동원한 쿠데타가 민심의 저항에 직면하는 것은 당연하듯, 구토의 후유증 또한 만만치 않다. 내려가야 하는 것을 억지로 위로 끄집어 올리려고 하니, 온몸의 기운을 총동원해 바락바락 난리 부르스를 추지 않을 수 없다. 토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토하고 나면 속은 좀 시원할지 모르나 온몸의 기운이 쭉 빠진다. 


왜 그럴까? 그것은 바로 정(精)! 정(精)의 급격한 소모 때문이다. 한마디로 구토 한번에 정(精) 몇 리터는 쭈욱 빠져나가는 형국이다. 그러다 보면 금방 늙는다. 이것이 바로 소화장애로 드러난 토(土)의 과잉이 정(精)을 고갈시키는 ‘토극수(土克水)’의 작동방식이다. 아래로 싸건 위로 뿜건 간에, 가슴속에 쌓인 음식물은 겨울철에 고이 정제되어야 할 정(精)을 모조리 흩어버린다. 그렇게 입춘과 새해를 맞이하면 대략 낭패다. 봄이 오면 씨앗을 뿌려서 새싹을 틔우고 한 해 농사를 시작해야 하는데, 씨앗이 맥아리가 하나도 없어 비실비실하면 심는다 하더라도 어떻게 얼어붙은 땅을 뚫고 나올 수 있겠는가? 씨앗은 모름지기 튼실하고 정기가 뽀송뽀송 해야 쑥쑥 치고 올라오는 데, 거기에 써야 할 정(精)을 겨울철 과식한 거 억지로 내리고 혹은 올리는 데 쓰면 참으로 아까운 노릇이다. 한마디로 대한 즈음에 밥을 먹고 변(便)으로 제대로 만들지 못하면, 그것이야말로 정말 큰 변(變)이 아닐 수 없다.


황금똥을 누고 말테야!!^^ 그렇다. 뭐든 먹으면 싸는 것이 순리! 이게 틀어지면 문제가 좀 심각해진다.


식적류상한(食積類傷寒) 같은 치명적인 겨울철 소화 트러블을 겪지 않고, 입춘맞이를 차분히 준비하는 게 어떨까? 소화도 잘되고 살도 빠지고, 몸은 튼튼 마음은 생긋! 마무리를 잘해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그것이 참된 송구영신(送舊迎新)이다. 덕지덕지 뭔가 남아 있으면 운신하기 어렵다. 그것은 앞에서 말했듯이 식적의 경우에서 드러났다. 제대로 소화되지 않고 잔여물이 있으면 어쨌든 문제다. 식적은 몸이 갚지 않은 빚이라 할 수 있다. 그렇기에 식적으로 그득한 자의 육체는 신용불량, 아니 소화불량이라 부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뭐, 돈이든 음식물이든 제대로 갚고 소화시키지 않으면 다 불량이라는 점에선 매한가지! 나는 대한 절기가 오기 직전에 이런 사건을 겪었으니, 액땜을 했다고 할 수 있을까? 덕분에 대한 동안 육체를 사냥꾼처럼 날래게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에 하도 크게 혼나서 말이지. 어쨌든 그렇게 내 몸 안의 빚을 척결하기만 해도 제대로 송구영신했다고 할 수 있으리라. 그것이 바로 우리가 대한에 할 일이다.

※ 임진년 대한의 절입시각은 1월 20일 오전 6시 51분입니다.

※ 계사년 대한의 절입시각은 1월 20일 오후 12시 51분입니다.

※ 갑오년 대한의 절입시각은 1월 20일 오후 6시 43분입니다.

※ 을미년 대한의 절입시각은 1월 20일 오전 12시 27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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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능금 2013.01.21 12:03 신고 답글 | 수정/삭제 | ADDR

    아...제가 요즘 알고있던 병이(?) 식적이였군요... 열흘전부터 먹는데로 체한 것처럼 답답하고 배가 아프면서 바로 화장실로 가는 증상 때문에 밖에서는 음식 먹기가 두려웠거든요. 오늘 내일쯤 한의원을 가볼까 하는 생각했는데 우선 좀 많이 움직여 봐야 겠네요~~ 고맙습니다 ^^

    • 북드라망 2013.01.21 12:11 신고 수정/삭제

      비가 와서 산책하기엔 약간 거시기 하지만...걷는 게 도움이 많이 되더라구요.
      얼른 쾌차하시길 바라겠습니다!

    • 동철군 2013.01.21 13:40 신고 수정/삭제

      저를 비롯해 주변 사람 몇몇도 비슷한 증상인데, 적게 먹고 많이 움직이는 만고(?)의 진리가 해법인 듯 싶습니다. ^^ 능금님, 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