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겨울의 제왕, 동지

동지, 발바닥 주무르는 시절

 


김동철(감이당 대중지성)



Holy Night, Silent Night


동지(冬至)에 밤은 가장 깊어진다. 바닥을 쳐야 다시 올라올 수 있다고 했던가? 암흑의 터널 끝에서 비로소 빛 한 줄기는 솟아난다. 하지만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숨어있는 빛은 보이지 않는다. 여전히 춥다, 그리고 앞으로도 더욱 추울 것 같다. 빛은 어디에 있는가? 뜨거운 동지팥죽을 떠먹어야겠다. 팥죽은 귀신을 쫓는다고 했다. 21세기에 무슨 귀신이 있으랴? 귀신은 다름 아닌 빛이란 없다고 지레 짐작하고 포기하려는 내 마음이다. 체념하는 자는 그 순간 영혼 없는 존재와 다름없다. 언제나 그랬듯이, 귀가 떨어지고 마음이 얼어붙을 정도로 추운 겨울도 반드시 따뜻해질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 출발점은 바로 동지이다.


팥죽을 보니 동지에 새알을 빚던 생각이 난다. 아니 먹고 싶다.^^ 동지엔 뭐니뭐니 해도 팥죽 한 사발이 그립다.


동지와 나란히 자리한 성탄절을 떠올려보라. 이날 밤은 ‘거룩한 밤, 고요한 밤’ 그리고.. ‘어둠에 묻힌 밤’이다. Dark night! 그런데 역설적으로 가장 칠흑 같은 밤에 ‘왕이 나셨도다’. 그 왕은 어둠 속의 한 줄기 빛이요, 어떻게든 혹독한 겨울을 견디라는 격려 혹은 명령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믿음을 굳건히 지키며 살아남는 것이다. 동짓날은 아세(亞歲) 즉 ‘작은 설날’이며 태양탄생일이다. 이날을 기점으로 태양이 하루하루 올라와 부활한다고 하여 축제로 삼았다고 한다. 부활한 태양은 어디 있는가? 태양은 아직 미약하다. 그래서 12월 24일에는 촛불을 밝힌다. 이는 어둠과 빛이 팽팽히 대립하는 동지에 빛을 지키는 상징적 행위이다. 동지에 일양래복(一陽來復), 즉 하나의 양기가 다시 돌아온다고 했는데, 그것이 바로 촛불인가보다.


동지책력과 다이어리

동지는 하지와 더불어 이지(二至)로써, 지일(至日)은 곧 하늘과 땅이 회전을 시작하고 음(陰)과 양(陽)이 처음으로 변하는 날이다. 하지에는 양이 최고조에 올랐다 음으로 향해가고, 동지에는 음이 절정에 도달했다 양으로 치닫는다. 한마디로 이때를 분수령으로 낮과 밤, 추위와 더위가 뒤바뀐다. 태양계의 기운은 이렇게 급속도로 바뀌고 있는데, 지구별 어딘가에 살고 있는 나 자신은 그것도 모르고 축 처져 있으면 되겠는가? 스마트한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정작 이런 천지의 변화를 알아채지 못하면, 그것은 스마트라 하기 우습다. 하지만 천지의 변화를 느끼더라도 정작 나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할지는 애매하다. 중요한 것은 여전히 춥기만 한 이 시절을 어떻게 구체적으로 견뎌낼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옛 선인들은 하선동력(夏扇冬曆)이라 하여, 여름에는 더우니까 부채를 나눠주고 겨울 이맘때는 달력을 주고받았다고 한다. 동지에 배포하는 동지책력에는 앞으로 펼쳐질 1년 동안 일상생활에서 해도 좋은 일, 좋지 않은 일이 빼곡히 적혀있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동지책력을 길잡이 잡아 새해를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실천 로드맵을 구상했을 게 분명하다. 요즘도 연말이면 다이어리가 꽤나 팔린다. 스마트 유저가 늘어나 예년만큼만 못할지라도, 이들 또한 앱app 일정관리를 사용하니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 다이어리는 패션 아이템이 아니다. 지저분하게 120% 사용해야 그 몫을 다한다. 그럼 구체적으로 어떤 계획을 짜야 하는가? 그건 나도 모를 수밖에! 사람마다 상황이 다르기에 그건 무리고, 다만 동지에는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어 계획을 짜는 일 자체가 중요하다. 사실 계획을 짠다고 얼마나 실천하겠느냐 마는, 정작 초점은 다른 데 있다. 앞에서 촛불 얘기도 했는데, 방안에서 촛불이든 뭐든 고요한 밤 거룩한 밤 같은 분위기를 만들고 차분한 마음가짐을 만드는 게 핵심이다. 왜냐하면 동지 즈음에 고요한 몸가짐을 유지하는 것이 보통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루의 계획이 이대로만 될 수 있다면야 얼마나 좋으랴.^^ 근데 무지 피곤할 것 같은 예감이 드는 것이 뭘까?


크리스마스다 연말이다 해서 몸은 근질근질, 들썩이며 어디 모임 건수 없나 이리저리 둘러보기 쉽다. 그렇게 연말연시 분위기에 휩쓸려 흥청망청 거리며 부산하게 보내다 어느 날 문득 달력을 보니 어영부영 새해를 맞이한 이들도 적지 않으리라. 아이쿠! 이때 새해 첫날부터 뭔가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시작하려 했던 사람들은, 이미 버린 몸(?)이라 여기고 ‘그래 구정 설날부터 시작하자!’ 요런 얼토당토않은 꼼수를 쓰게 마련이다. 여보시오, 동지인 지금 저 멀리서부터 태양 버스가 천천히 운행해 곧 도착 예정인데 지나간 버스는 다시 못 잡는다우~ 2013년 구정 설날이면 이미 입춘에 들어서고 나서도 꽤 지난 후인데, 겨울에 로드맵을 세워놔야 봄에 뭔가 씨앗을 뿌릴 것 아닌가? 씨앗을 뿌려야 할 때, 다이어리를 뒤적이며 계획을 허둥지둥 짜면 이는 곧 때를 모르는 ‘철부지 어린 소년소녀’라. ^^


간신(肝腎)을 다스려 간신히 살다

봄에 뿌릴 씨앗은 겨울에 품는 것인데, 동지에 새해계획을 짜는 것은 곧 씨앗을 잉태시키는 행위와 같다. 계획의 내용도 중요하겠으나, 그걸 하려면 주변 분위기를 정돈해야 한다. 산만하고 떠들썩한 상태에서 집중이 될 리 없다. 집중하는 것이 곧 동지의 문턱을 넘는 방법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다음과 같다. 연말에 송년회다 망년회다 해서 음주가무 친목행위에 지나치게 몰두하면 정(精)이 급격히 고갈된다. 요즘 지하철만 타면 세 남자가 ‘간(肝) 때문이야~!’를 목 놓아 외치는데 하도 들어서 이명(耳鳴)이 생길 정도다. 아무튼 여러 모임활동을 하다 보면 자연스레 술을 많이 마시게 되고 이는 간에 무리가 된다. 즉, 이 즈음에는 오장(五臟)으로 보면 해독작용을 하는 간과 정(精)을 응축하는 신(腎)이 손상될 우려가 있다. 


너희들 그렇게 마셔대다가는 간신이 나빠져서 오래 못가~~ 만화캐릭터들이라고 하지만 너네들도 늙고 지친다~~ 조심해~~


혹시 ‘간신히’ 라는 말을 들어보았는가? ‘간신히 살았다’라고 쓰는데, 자료를 뒤적이다 이 말과 동지와의 관련성을 언급하는 내용을 발견했다. ‘간신히’는 간신(艱辛)으로 즉 ‘어렵고 매운’이란 뜻이다. 그런데 민간요법에서 동지 즈음에 활력이 떨어진 간과 신의 기능을 보양하기 위해 팥죽을 먹는다는 얘기가 있다. 그래서 ‘간신히 살았다’라는 말은 간장과 신장을 잘 다스렸기에 이 시기를 무사히 보낼 수 있었다는 게다. 사실 이는 크게 무리가 없는 말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계절상으로도 겨울에는 수(水) 기운이 왕성하기에, 여기에 속한 신장에 사기(邪氣)가 침투하기 쉽다. 게다가 신장은 수 기운이요, 간장은 목(木)에 속하기에 수생목(水生木)의 관계이다. 신장에 문제가 생기면 이와 밀접히 이어져 있는 간장에도 영향을 끼치게 마련이다. 어쨌든 ‘간신히’라는 말의 유래는 정확히 확인할 수 없지만, 연말 분위기는 딱 간과 신을 손상하기 쉬운 환경이다. 살아남으려면 간과 신을 구해야 한다! 그래야 차분히 앉아 로드맵을 수립하는 시간을 보낼 것 아닌가? 요컨대 동지에 신년 계획을 차분히 생각함으로써, 주변 분위기에 휩쓸릴 것을 경계하라는 이야기이다. 그래야 간신(肝腎)을 온전히 보전하지 않겠는가? 동지에 ‘간신히’를 기억하자. 간신히 살아남으면 선물이 기다리고 있다.


풍요의 원천




크리스마스 트리에 달린 양말 속 선물을 기다리는 마음은 설렌다. 그런데 이 양말 풍속이 동양에서는 버선으로 했다는 사실을 아는가? 이를 옛 선인들은 동지헌말(冬至獻襪)이라 불렀다. 헌말은 곧 ‘버선을 바치다’라는 뜻이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동지는 양기 기운이 움트는 상서로운 날이다. 그 양기는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눈으로 볼 수도 없고 만질 수도 없다. 그런데 밟을 수는 있다. 이건 논리적으로도 맞아떨어진다. 양기는 땅속 깊은 곳으로부터 솟아난다.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흙을 퐁 뚫고 나오는 새싹이다. 그러나 그 훨씬 전부터 양기는 물밑 작업(?)을 열나게 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에서? 바로 우리가 밟고 있는 땅바닥에서 말이다.



그런 원리를 간파한 조상님들은 동지에 땅에서 마구마구 샘솟는 양기를 받아들이려고 궁리했다. 하지만 여전히 차가운 바닥을 맨발로 거닐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그래서 동지에는 신발과 버선을 만들어 신고 땅에서 올라오는 양기를 오랫동안 밟고 있으라는 풍속이 생긴 것이다. 그게 바로 동지헌말이다. 발바닥으로부터 양기를 흡수한다고 하니 문득 스쳐 지나가는 것이 있다. 발바닥하면 경혈(經穴)로 보면 용천혈(湧泉穴)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다. 양기가 울뚝불뚝 용솟음쳐 결혼을 앞둔 새신랑에게 꼭 필요하고, 남자에게 참 좋은데 뭐라 말하지 못하는 바로 그 용천혈! 용천혈은 인체의 12경맥 중 족소음신경(足少陰腎經)의 출발점이다. 족소음신경! 앞에서 ‘간신히 살았다’고 해서 간장과 신장이 중요하다고 말했는데, 족소음신경의 신경(腎經)이 바로 신장의 경맥을 가리킨다. 요컨대 동지에 한 줄기 빛이 샘솟고, 발바닥으로 그 기운을 흡수하여 신장을 보양하니 간신히 살아날 수 있다.


앞에서 남자에게 참 좋다고 했는데, 남녀노소 다 좋으니 오해는 마시길. 정기가 발바닥인 용천혈로 들어오니, 이는 곧 생명력의 원천이다. 용천혈을 자극해 몸 안에 감도는 양기는 동지가 주는 선물이다. 연말에 들뜨고 분주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방안에서 차분하게 발바닥을 주무르고, 주물러주자. 돈도 한 푼 안 들고 서로의 몸 터치 또한 오랜만에 하며 온기를 나누는 경험, 이만한 크리스마스 선물이 또 있으랴? 뭐, 다른 선물도 주고받고 싶다면 그것도 굳이 말리지는 않는다.^^ 양말과 버선은 화수분처럼 풍요의 상징이다. 동서양이 약속이나 한 듯, 비슷한 상징물을 동짓날 사용했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서로의 거친 발을 어루만지며 풍요로움과 사랑스러움을 퐁퐁 만들어보자. 그것이 동지에 느낄 수 있는 한 줄기 빛이다.



※ 임진년 동지의 절입시각은 12월 21일 오후 8시 11분입니다.

※ 갑오년 동지의 절입시각은 12월 22일 오전 8시 03분입니다.

※ 을미년 동지의 절입시각은 12월 21일 오후 1시 48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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