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추워야 산다, 소한(小寒)

소한, 추위가 여는 새로운 길

 


송혜경(감이당 대중지성)



춥다! 27년만의 강추위라는 요즘, 원초적인 이 소리만 무한반복하게 된다. 겨울철이면 남들보다 추위를 더 타는 터라, 나는 한(寒)에 한(限) 맺힌 사람이다.^^;; 눈이 아직 녹지 않은 길을 언 발 동동거리며 걷다가 문득 생각해본다. 도대체 왜 추워야 하는 거지? 추위는 무슨 쓸모가 있는 걸까? 추울 필요가 꼭 있을까? 추위에 대한 짜증에 가까운 이 질문이 어느 틈엔가는 진짜 궁금해져버렸다. 잔털부터 새끼발가락 끝까지 매콤하게 추운 이 절기에 치열하게 고민해볼 수 있는 절묘한 질문이다. 오늘은 이름부터 한(寒)이 서린 소한(小寒)이다.


꼭, 추워야 한다

24절기는 마지막 두 절기인 소한(小寒)과 대한(大寒)으로 긴 여정을 마친다. 맞다. 그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맹렬한 추위가 그 끝을 장식한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소한의 바로 앞 절기는 동지(冬至)였다. 동지를 기점으로 해가 점차 길어지기 때문에, 동지는 ‘하늘의 봄’이라 불리기도 한다. 음기가 기세등등하던 혹독한 겨울에, 미약하지만 저 멀리 양기가 움트는 이 절기를 축하하기 위해 시뻘건 팥죽을 먹었던 게 아니던가? 그러면 당연히 늘어난 일조량과 함께 날이 서서히 따뜻해질 거라고 기대하게 되는데……. 하지만 이런 자연스러운(?) 흐름과는 반대로, 뒤끝 사나운 사람처럼 날은 점점 추워지기만 한다. 허허, 대체 이 무슨 경우란 말인가?  


소한과 대한은 하늘의 봄과 땅의 봄 사이의 절기이다. 주지하듯 하늘의 봄은 동지를 일컫고, 땅의 봄은 입춘을 말한다. 그러나 두 절기 모두 우리가 느끼기엔 겨울이나 다름없다. 우리가 생각하는 봄은 4월에 가서야 느낄 수 있다. 처음엔 이 순서가 잘 이해가 안 갔다. 태양이 땅을 데우기 전, 땅 위에 사는 우리를 거쳐 가는 게 당연한 이치 같은데 어째서 우리에게 봄이 가장 늦게 도착하게 되는지 말이다. 연습장에 그림을 그려보다가 문득 내 생각이 어리석었음을 깨달았다. 하늘과 땅이 큰 의미에서의 양과 음이며, 천지간의 거대한 기 운행이 이루어지는 가운데 인간이 있음을 잊고 있었던 것이다.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겸손도 과잉된 감정이지만, 지나치게 확대해서 생각하는 것도 세계를 제대로 못 보고 있는 것이다.


차가운 동토를 뚫고 나오는 새싹은 집중력의 화신이다. 살 길을 찾으려면 한 점에 집중해야 하기 때문이다. 겨울은 그런 집중력의 계절이기도 하다.

다시 질문으로 돌아가서, 땅의 봄 즉 입춘을 앞두고 왜 추워져야만 하는 지 이유를 따져보자. 동지를 기점으로 ‘노루 꼬리만큼’씩 길어진 해는 소설(小雪)과 대설(大雪)때 쌓인 눈을 대지에 녹여 머금게 한다. 그리고 입춘 전 땅은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면서 단단히 굳은 흙을 부드럽게 만들어 싹이 뚫고 나오기 쉽도록 준비한다. 그러나 입춘에 냉이가 뿌리를 내리려면 흙의 질감뿐 아니라 따스한 온기도 필요하다. 그러려면 땅에 가득한 한기를 토해낼 수밖에 없을 터. 눈이 녹아 땅에 스미면서 한기도 함께 동반하게 되는데, 봄을 준비하는 땅에게 이는 불청객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한기는 이제 땅 밖으로 뛰쳐나온다. 흙 안의 물이 ‘얼음 땡’을 반복하는 가운데 한기는 밖으로 표출되어 세상을 호령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맹렬한 추위, 그것은 땅이 봄을 준비하고 있다는 신호탄인 셈이다. 이런 말도 있지 않은가? ‘소한 추위는 꾸어서라도 한다’고. 모든 것에는 차서가 있는 법. 당연한 이치지만 추위를 꼭 겪어내야 봄이 오기에, 달갑지 않은 추위도 반갑다.(야...약간^^;;;)


시작을 위한 충분한 휴식

그런데 봄을 위해 추위를 참는다고 한다면, 추위 자체가 갖는 의미가 무색해져버린다. 이런 정신승리법도 속옷까지 파고드는 추위 앞에선 금세 무력해지기 마련이다. 그렇다. 추위가 몰아치는 한복판에서 부들부들 떨며 봄이 오기만을 기다릴 순 없다. 추위를 온전히 겪을 마음을 가지려면 추위 그 자체에 대한 탐색이 필요하다. 특히 ‘소한이 대한 집에 가서 몸을 녹인다’거나 ‘대한이 소한 집에 가서 얼어 죽었다’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 소한 추위는 온 몸을 벌에 쏘인 듯 얼얼하게 만들지 않는가. 이제부터 추위와 한판 대결을 펼쳐보자!
 

우선 추위 앞에 선 몸에 눈을 돌려 볼까나. 몸은 솔직하게 반응해주니 몸에게 묻는 것이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냉랭한 기운이 돌면 세포 하나하가 위축되어 버린다. 그래서 몸은 일단 움츠러들기부터 한다. 동그랗게 몸을 말아 최대한 추위에 노출되는 면적을 줄인다. 또 추위를 잊고 싶기라도 하듯 잠도 많아진다. 이런 포즈로 활발한 움직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맞다. 본능적으로 우리는 한 점 바람이 들지 않는 곳을 찾아서, 한겨울 곰마냥 가만히 있고만 싶어진다. 혹한이 예고된 날, 친구에게 걸려온 약속 취소 전화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그렇다고 추위는 아무 때나 찾아오지 않는다. 추위도 때가 있는 법. 일 년의 끄트머리인 이 시기, 쉼에 대한 욕구가 생기는 이유는 비단 추위 때문만은 아니다. 이때에 이르면 일 년 빡쎄게 몸을 놀린 만큼 체력적으로도 많이 지쳐있게 된다. 떨어진 체력과 추위는 몸을 쉬고 싶도록 만든다. 그리하여 추위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그간 사느라 애썼다. 이제 고만 쉬래이~"  
 

나, 쉬고 싶다~~~~~~~~~~~~~~~~^^


하지만 휴식도 휴식 나름. 이 휴식은 개학을 앞두고 한 판 늘어지게 쉬자는 수동적인 의미보다, 다가올 입춘에 문을 박차고 내달릴 에너지를 몸의 한 점에 응축시킨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말이 다소 추상적인 말처럼 여겨질지 모른다. 몸에 점은 참 많은데, 콕 찝어 ‘한 점’이라니! 그게 대체 어딘가? 답부터 말하자면 ‘한 점’은 바로 신장(腎臟)을 일컫는다. 소한은 신장에 물이 샘물처럼 솟는 시기이기도 하다. 신장의 물! 즉 생명을 유지하고 활동의 에너지가 되는 귀중한 정(精)이다. 말하자면, 소한은 한해를 유지할, 일 년치 생활비를 차곡차곡 쌓아두는 때인 것이다. 오호라! 절기에선 때가 법이지 않은가? 추위의 명령에 절대 복종 아니 굴복하고만 싶다. 작정하고 신장에 물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큰일이니깐~~^^


정(精)의 축적, 휴식

오로지 신장에 샘물을 퐁퐁 솟아나게 하기 위하야, 그간 원고 독촉과 숙제에 시달렸던 일상과 결별하고 나만의 휴식을 마음껏 꿈꿔본다. 절절 끓는 방바닥에, 내가 좋아하는 달콤이들을 잔뜩 쌓아놓고, 만화책 몇 질을 한꺼번에 늘어놓은 후, 자다 깨다를 반복하는 꿈같은 휴식……! 그런데 의구심이 든다. 거참, 그러고 며칠이나 버틸 수 있을지. 너무 누워있어 없던 요통도 생길 거 같다. 지겨워서 공부하고 싶다고 나도 모르게 염원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신장에 촉촉하고 윤기 흐르는 물보다 고이고 썩는 물이 만들어질까 두렵다. 허! 이 무슨 ‘『구운몽』스러운’ 상황이던가. 진정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잘 쉰다는 게 대체 어떤 거지?
 

이쯤에서 무엇을 위한 휴식인가 되짚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소한이 든 달이 축(丑)월이라는 것도 힌트가 된다. ‘축(丑)’자는 손가락을 비트는 모양을 상형하여 만든 글자다. 딱! 소리를 내기 위해, 엄지와 중지를 힘주어 비비는 장면을 생각하면 좋다. 하지만 이 둘이 떨어져 소리가 나기 바로 직전의 상황이다. 또 축(丑)에 함축된 세 가지 의미는 이를 극적으로 잘 표현해 준다. 이를 지장간이라는 말로 표현하는데, 각각 기(己), 계(癸), 신(辛)이다. 기는 작은 텃밭을 가리키며 계는 씨앗을 의미하며 신(辛)은 과단성을 의미한다. 이는 마치 텃밭에 씨앗이 숨겨져 있고 나갈 기회만 엿보고 있는 상황과 그것을 단칼에 금지하고 있는 힘이 동시에 펼쳐지는 것과 같다. 지금 나가면 얼어 죽기 딱 좋으니 기다리라는 것이다. 즉 추위가 가져온 휴식은 바로 앞으로 다가올 새로운 봄 앞의 웅크림이다. 스프링이 힘차게 튀어나가게 하기 위해, 반대 방향으로 꾸욱 힘을 줘야하는 것처럼 말이다.
 

신장의 정(精)은 다차원적인 의미가 있다. 그것은 밥이기도 하고, 나의 존재를 꼿꼿이 서게 만드는 자존감이기도 하다. 또한 목화토금수의 노정을 밟은 이에게 주어지는 선물이기도 하다. 소한이 정(精)이 쌓이는 시기라는 것은 한 해를 살았던 지혜와 더불어 새로운 길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는 자신감과 체력을 키우는 때라는 말이다. 저돌적으로 튀어나가려면 일단, 체력적으로 뒷받침이 되어야 옳다. 며칠간 팔리지 않아 가판대에 늘어진 야채처럼 시들시들해진 몸을 보라. 그렇다. 잘 먹고, 잘 자고, 운동하자. 춥다고? 절기서당은 백팔배를 좋아한다.^^
 

그리고 또 하나. 정(精)은 욕망이 응축되어 물질화된 것이기도 하다. 한 해는 봄에 튀어나간 힘과 방향이 결정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 내달릴 힘과 방향은 다시 말하면 욕망 그 자체다. 즉 겨울의 끝자락에 터질 듯 모아놓은 욕망의 힘이 다음 해를 좌우한다는 것이다. 추워도 너무 추워 생각까지 얼어버린 소한, 생각에 갇혀 있기에 딱 좋다. 특히 겨울은 수(水)기가 꽉 차서 우울해지기 십상이다. 한 해 보낸 내가 지겹고 벗어나고 싶고 답답한데, 그 마음이 너무 무거워 출구 찾기가 쉽지 않다. 그럴 땐 질문을 바꿔야 한다. 새로운 나를 새 봄의 출발선에 세우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 욕망하라. 약선생님의 말처럼 ‘욕망을 욕망하는 것을 욕망하라!’^^ 추위를 뿜으며 저 멀리 봄은 찾아온다.



※ 임진년 소한의 절입시각은 1월 5일 오후 1시 33분입니다.

※ 계사년 소한의 절입시각은 1월 5일 오후 7시 24분입니다.

※ 갑오년 소한의 절입시각은 1월 6일 오전 1시 20분입니다.

※ 을미년 소한의 절입시각은 1월 6일 오전 7시 08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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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봄봄 2013.01.05 20:41 신고 답글 | 수정/삭제 | ADDR

    질문이 있는데요,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겸손도 과잉된 감정이지만, 지나치게 확대해서 생각하는 것도 세계를 제대로 못 보고 있는 것이다." ==>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겸손이 왜 과잉된 감정이지요? 겸손조차 느낄 필요없이 자연의 일부로 보면 된다는 말씀인가요? 아니면 다른 말씀?
    구절이 다소 인간중심적으로 느껴져서 말이지요..

    • 송혜경 2013.01.05 21:45 신고 수정/삭제

      관심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간도 자연의 대순환에 한 몫 하고 있기에, 간혹 보이는 '위대한 자연 앞의 작은 인간'과 같은 표현이 지나친 겸손처럼 느껴졌습니다. 제 요지가 궁금하시면 <입춘>편을 참고하세요.^^

  • 얼음마녀 2013.01.06 08:48 신고 답글 | 수정/삭제 | ADDR

    ※ 임진년 대설의 절입시각은 1월 5일 오후 1시 33분입니다.
    이거 이거... 오타가 난 거 맞지요? 소한의 절입시각이 1월5일인 걸로. ㅎㅎ

    • 감이당 2013.01.06 15:44 신고 수정/삭제

      네 오타네요^^ 제가 정신줄을 놓는 바람에... 죄송합니다.^^ 수정해두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