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청년, 니체를 만나다』 - 익숙한 것들 속에서 낯설게

『청년, 니체를 만나다』 - 익숙한 것들 속에서 낯설게



누구도 자기 자신과 무관한 것을 관찰할 수 없으며 자신이 아닌 것에 대해서 쓸 수 없다. 아니, 무언가를 관찰하고 무언가에 대해 쓴다는 것은 이미 그것과 자신이 무관하지 않음을 뜻한다. 관찰은 자신을 빼놓고 이루어지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관찰한다는 것은 대상과 나 사이의 익숙한 고요함을 뒤흔들어 놓는 일이라는 점에서 대상과의, 동시에 자기 자신과의 불화와 투쟁을 함축한다. 쓴다는 것은, 그 투쟁을 통해 자기 자신으로부터의 은밀한 탈주를 감행하는 일이다. 요컨대 쓴다는 것은, 무엇을 쓰든 간에 결국 자기 자신에 관한 일이며, 자신으로부터 떠나는 일이다. 그것은 한때 자신이었던, 그리고 여전히 자신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는 어떤 것과의 투쟁과 결별을 함축한다. 이로써 우리는 비로소 미지의 관계로 돌입하게 되는 것이다. 


- 『청년, 니체를 만나다』, 66쪽


‘관찰’은 대개 낯선 것과 마주할 때, 그럴 수밖에 없을 때 가능하다. 이를테면, 매일 들어오고 나가는 자기 집 현관문은 하루에도 몇 차례씩 보게 되지만 관찰하게 되지는 않는다. 거기에서 누군가 들어온 흔적을 발견하게 되거나, 새로 집을 구할 때나 자세히 보게(관찰하게) 된다. 


그렇다면, 매일 느끼는 내 신체, 또는 감각은 어떤가? 그걸 매순간 ‘관찰’한다면 아마도 살아가는 일이 불가능해질 것이다. 내 신체와 감각은 무엇보다 낯선 것을 익숙하게 하는 데 특화되어 있다. 매번 낯설게 느낀다면 생존할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 점에서 ‘글쓰기’는 아주 독특한, 또는 특별한 행위다.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보다 내 감각에 관해, 나에게 들어온 무언가에 관해 쓰는 것이기 때문이다. 


웨이트트레이닝은 익숙한 무게와의 결별



좋은 글이란 무엇보다 솔직하게 쓴 글일 테지만, 그 다음으로는 ‘무언가 다른 것’을 품고 있는 글이다. 그 ‘다름’은 결국 내 감각의 특이성으로부터 나온다. 달리 말해 글을 잘 쓰고 싶다면 나 스스로 낯설어져야 하는 셈이다. 익숙한 것들을 낯설게 보고, 듣고, 맛보아야 한다. 익숙한 걸 익숙하게 전달할 필요가 없으니 말이다. 물론 이것은 하나의 방법론이다. 그러나, 어쩌면 이 방법 말고는 없을지도 모른다. 매 순간 찾아오는 인생의 조각들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방법 말이다. 


인생의 바탕에는 ‘허무-죽음’이 있다. 결국 모두 죽는다는, 최소한 지금까지는 흔들리지 않는 이 사실이 모든 것을 허무하게 만든다. ‘글쓰기’는 그 결과물이 어떤지는 논외로 하더라도 바로 이 ‘허무’를 넘어서려는 노력이 아닐까. 익숙함으로 가득 찬 일상적 세계가 가져오는 격렬한 허무를 어떻게든 다루려는 노력 말이다. 


따라서 하나의 능력이 요구된다. 그것은 낯선 것을 익숙하게 만드는 신체의 습관을 뒤집는 능력이다. 애써 여행을 가지 않더라도, 최신 영화를 모두 챙겨보지 않더라도, 이미 늙어버린 내 신체를 기쁘게 할 다른 무언가를 찾지 않더라도 지금 가지고 있는 이 모든 익숙한 것들을 낯선 것으로 재탄생시킬 능력 말이다. 이른바 ‘창의성’이란 바로 이 능력을 가리키는 이름이지 않을까. 그리고, '나를 떠난다'는 것 역시 바로 그런 의미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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