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애 낳았다고 아빠가 되더냐

애 낳았다고 아빠가 되더냐



계획적으로 아빠되기


옛말과는 다르게 요즘엔 아이의 출산, 육아도 ‘계획’이 된다. 아니, 이제는 계획을 해서 낳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다. 안심할 수 있는 동네어른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많아야 아이 두 명인 집에서 육아는 오로지 엄마, 아빠 두 사람의 몫이 되었다. 혼술, 혼밥인 시대에 육아 역시 각자도생의 길을 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를 언제 낳을지는 엄마, 아빠의 자금규모, 맞벌이하고 있는 일의 상태나 휴직의 가능여부, 부모님들의 조력에 대한 확보 등의 조건이 고려된다. 그리고 당연히 지금 살고 있는 집의 전세기간, 직장으로 인한 이사계획 등도 빠뜨려선 안 된다. 아내는 교사라서 우리에겐 방학이라는 조건을 하나 더 고려해야 했다. 




결혼 초 아내와 난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직장이 바쁘기도 했지만 그보단 엄마, 아빠가 되는 것이 다소 두려웠다. 그래서 한동안 아이가 없었다. 한 3년 정도 지나자 양가 부모님들은 아이를 바라셨다. 우리 둘 다 동갑내기에 집안의 장녀, 장남이라 더욱 그러셨다. 체제에 순응하는 편이고 착한사람 콤플렉스가 있는 우리는 그 말을 그냥 흘려들을 수가 없었다. 양가 부모님으로부터 무언의 압박을 받고 나서 아내는 조금 바뀌었다. 

달력을 보고 준비하기 시작했다. 방학 하는 날과 개학날, 사용가능한 출산휴가의 기간, 그리고 이어서 육아휴직의 가능 여부를 확인했다. 아이는 엄마의 뱃속에서 보통 38주 정도 있다가 세상에 나온다. 개학날 즈음을 출산일로 잡으면 방학과 출산휴가를 붙여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이어서 육아휴직을 하게 되면 대략 겨울방학 2개월+출산휴가 3개월+육아휴직 12개월이라는 계산이 가능하다. 거꾸로 우리가 언제부터 부부관계를 해야 하는 지도 잡을 수 있다. 새삼 아내가 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장에 열심이었던 우리는 그 즈음 계획에 맞춰 부부관계에 열심이었다. 임신확률이 높은 배란기는 한 달에 일주일 정도밖에 안 되기 때문에 ‘집중’적인 부부관계가 필요했다. 하면서도 아이를 갖는 건 흔히 삼신할머니가 점지해 주는 거라서 그게 우리 마음대로 될까 싶었다. 그런데 다행히도, 신기하게도 첫째아이는 개학날에 맞춰서 3월에 태어났다. 세 살 터울이 좋겠다는 생각에 3년 후 둘째아이도 4월에 태어났다. 

돌이켜보면 나의 아빠되기는 어느 정도 계획되어 있던 셈이다. 오랫동안 준비하고 아이를 원했던 부부들도 많은 걸 보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그러나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아빠가 된다는 걸 너무 쉽게 생각했던 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애 낳았다고(물론 자기가 낳은 것도 아니면서) 그저 아빠가 되는 건 아니었다. 



환하거나 혹은 생생해지는 어떤 기억들


모든 게 처음인 부모에게 첫째는 어느 정도 실험의 대상이 된다. 먹거리, 잠자리, 놀거리, 나들이 등등 남들 좋다고 하는 건 내 아이에게도 다 맞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헌데 출산은 해 보고나서 바뀌기도 한다. 너무도 당연히 첫째는 산부인과에서 낳았다. 

촉진제를 맞은 아내가 침대 위에 고통스럽게 누워있고, 간호사와 의사들은 익숙한 순서대로 살펴봤고, 아이는 자기를 봐달라며 큰 소리로 울며 나왔다. 그 모든 과정이 지금도 너무 환하게 기억된다. 침대에 누워있는 산모는 아이가 어떻게 나오는지 보질 못 하고, 눈도 뜨지 못한 아이에게 불빛은 의미가 없다. 환한 불빛은 산모나 아이를 위한 게 아니라 대부분 의료행위를 위함이다. 하지만 처음이라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렇다 저렇다 말할 상황도 아니었다. 

출산에 있어서는 둘째가 실험이었다. 산부인과가 아니다 싶었는지 아내는 둘째가 나올 즈음 조산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용인 집 근처에서 찾기 쉽진 않았고 결국 안산까지 가야했다. 진통이 시작되자 우리 셋은 조산원으로 이동했다. 크진 않았지만 아늑한 방 하나를 안내받았다. 진통이 와도 촉진제를 맞지 않았다. 대신 심호흡을 하면서 방안을 걸어 다니며 기다릴 뿐이었다. 늦은 밤에 도착해서 새벽까지 아내는 누웠다 걸었다 앉았다를 반복했다. 첫째는 기다리다 지쳐 잠이 들었다.    

방안에는 은은한 스탠드 하나만 있는지라 몇 시인지 가늠이 잘 안 됐다. 이제 막바지에 이른 아내와 도와주는 산파, 그걸 옆에 앉아서 지켜보는 첫째와 그리고 내가 함께 하고 있었다. 첫째는 엄마 엉덩이에서 동생이 나오는 장면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자기도 아직은 응석받이인데 첫째는 이제 막 세상에 나온 동생을 안아주고 토닥였다. 어둑했던 방안에서 그 모습은 선명하진 않았지만 지금도 생생하다. 환했으나 점점 흐릿해지는 첫째와의 만남과는 너무도 달랐다. 아침으로 나온 미역국을 아내는 첫째와 나눠먹었다.       



육아의 공유 불가능성


그러나 조산원이 좋았다 해도 첫째를 그렇게 낳기엔 많은 불안과 결심을 필요로 한다. 특히 아빠들의 결심이나 각오는 실제 상황과 전혀 관계가 없기에 그저 아내의 의견을 존중해 줘야 한다. 이건 다른 엄마들의 이야기를 들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무리 수중분만이나 조산원의 경험이 좋다 해도 아내의 상황과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탓을 할 수 없이 그 결정과 실천은 나의 몫이다.   

아내와 나는 아이를 낳게 되면 어떻게든 3년을 품에서 키워보자고, 결과적으로는 두 아이 모두 2년 남짓한 시간들을 겨우 함께, 했다. 그래서 아내의 육아휴직 기간이 끝나갈 즈음 나도 회사에 육아휴직을 신청했다. 마침 다니던 회사도 일부 구조조정이 되었고, 육아휴직은 어수선한 분위기를 빠져나갈 좋은 구실이 되었다. 그때 아내의 소개로 다니게 된 곳이 문탁네트워크였다. (아내와의 이야기에서 좀 더 밝히겠지만 늘 이런 식이다. 먼저 다니는 건 늘 아내였고, 바쁜 아내가 나간 빈자리를 메우며 붙박이로 남는 건 나였다.)




보통 아빠들이 육아를 하게 되면 소외감을 종종 느끼곤 한다. 아빠들은 놀이터나 어린이집에서 다른 엄마들과 쉽게 섞이질 못한다. 그러다보니 아이들끼리도 맘 편히 놀리지도 못한다. 괜히 그 집 아이가 울기라도 한다면, 그저 주눅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에게는 문탁이 사랑방이었다. 같이 놀 아이들은 없었지만, 같이 봐 줄 이모나 선생님들은 많았다. 고맙게도 첫째의 돌잔치도 문탁에서 마련해주셨다. 그 즈음 문탁샘의 소개로 어느 웹진에 썼던 첫째의 육아일기는 또 다른 실험이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은 아이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의 욕망을 채우려고 했던 실험이었다. 뽀로로의 노래처럼 아이와 노는 게 제일 좋았지만, 한편으로 매일 아이와 어떻게 놀았는지 보여주고 싶었다. 아이에게 어떤 놀이가 좋을지 고민하기도 했지만, 웹진에 보이는 장면을 다시 연출하기도 했다. 이제는 첫째가 초등학교 3학년이고 둘째가 내년에 입학할 나이가 되니 달리 보이는 게 있다. 그러면서 내 아이의 육아가 다른 사람들과 과연 공유할 수 있는 문제인가 생각하게 되었다. 지금도 수많은 육아서적이 아빠와 엄마들의 입을 통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아이를 어떻게 키웠는지 외에 그걸 어떻게 보여주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서 육아서적을 보는 것은 아닐까 싶다. 

나는 심리상담이나 힐링 관련 에세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우선 어떤 상황들이 일반화되는 느낌이 든다. 나의 상처와 고통은 굉장히 오랜 시간과 복잡한 사건들이 겹쳐 있는데 그게 단순화되어 정리되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을 읽고 깊은 감동을 받고 심지어 눈물까지 흘린다 하더라도, 결국 현실의 문제는 내가 풀어야 하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그걸 책을 통해 잊을 수 있는 건 잠시 뿐이다. 그럴 경우 책은 SNS의 대체수단에 불과하게 된다. SNS의 많은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염려되는 건 현실 속 나의 문제를 회피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나의 허접한 육아일기도 작은 전자책으로 갈무리되어서 나온 적이 있다. 하지만 둘째아이 때 나도 그걸 다시 읽지는 않게 되었다. 왜냐면 아내와 나의 상황이 그때와는 달라졌고, 첫째와 당연히 다른 기질을 가진 둘째는 노는 방법도 달랐기 때문이다. 육아서적으로 아이의 육아를 공유하는 건 그래서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각자의 아이가 처한 상황이나 기질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육아서적을 통해 자책하거나 그대로 따라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차라리 『삐뽀삐뽀 119』를 파고드는 게 나을 수도 있다. 그것도 막상 아이가 고열이 오르면 들춰 볼 경황이 없더라.




재현의 현장에 서다


그 육아일기를 보고 한 번은 방송사에서 연락이 왔다. 아빠의 육아라는 내용으로 취재를 해도 되겠냐는 것이었다. 그때만 해도 재밌을 것 같았다. 방송출연이라는 욕망이 꿈틀거렸다. 하지만 아내를 설득할 명분이 필요했다. 그때 방송국에서 제공한다는 사진앨범에 끌렸다. 집에서만 촬영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가까운 곳에 가족여행도 보내준단다. 그리고 여행가서 찍은 사진을 사진앨범으로 제작해서 주겠다는 것에 혹했다. 첫째가 태어나고 그야말로 정신없이 1년이 지났고, 그때까지 첫째와의 변변찮은 사진이 없었다. 그걸로 아내를 설득했고 우리는 출연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그것이 쪽팔림의 시작이 될 줄은 몰랐다.  

아내의 출근길에 첫째가 울지 않자 PD는 재차 연기를 요청했다. 아내가 현관문을 나갔다 들어오길 몇 번, 내가 보기엔 아이는 장난하는 거냐는 듯 짜증나서 울음을 터뜨렸다. 그 상황에서 PD는 출근길 뽀뽀장면까지 요청했다. 평소엔 당연히 못 갖고 놀게 하는 각티슈를 일부러 사 갖고 와서 아이 앞에 던져 주기도 했다. 아이가 신나게 뽑아 어지를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세미나 반 육아 반으로 이제 막 드나들게 된 문탁까지 카메라가 동행했다. PD의 연출에 의해 생뚱맞은 정장차림으로 첫째를 캐리어에 둘러매고 문탁에 갔다. 이 밖에도 거의 모든 내용이 의도된 연출에 의해 재현되었다. 

가족여행은 남이섬으로 간 것은 좋았다. 가서 오랜만에 아이와 재밌게 놀았고 동행한 사진가도 열심히 촬영해 주었다. 내심 앨범에 대한 기대가 높아졌다. 그러나 결국 우리는 그 사진앨범을 받지 못했다. 몇 번이나 연락했으나 편집이나 이런저런 이유로 받지 못했다. 담당자도 방송국이 아닌 외주 프로덕션에 있는 사람이었다. 아마도 금전적인 이유가 아닐까 싶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안 하는 건데. 이미 늦었다. 

방송내용을 우리 둘 다 맨 정신으로는 볼 수가 없었다. 너무 민망하고 창피했다. 내용을 소개하는 MC들의 감탄과 멘트 때문에 더 그랬다. 보통의 경우처럼 방송 나왔으니 다른 사람들에게 보라고 말하지도 못했다. 우리의 육아가 거짓은 아니지만, 그것을 다시 재현하는 과정은 분명 거짓이었다는 걸 적어도 우리는 알기 때문이었다. 그 뒤로 ‘인간극장’에서도 제안이 들어왔었다. 다른 방송과는 달리 연출이 없다고 강조했으나 바로 거절했다. 하지만 그날 방송 파일은 아직도 갖고 있다. 앞으로 10년 후 아내와의 술안주로 삼기 딱 좋을 거 같다. 아니, 첫째와 술 한 잔을 해야 할까? 





아빠가 되기 위한 조건


첫째의 육아휴직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둘째가 태어났다. 하지만 둘째 때는 일이 바빠져서 어린이집 가기 전까지 아내가 거의 육아를 담당했다. 우리집과 옆집 이웃들이 사는 마을을 만드느라 몇 년의 시간이 정신없이 흘러갔다. 그러다 보니 벌써 둘째는 내년에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요즘의 일상은 다시 육아와 일이 뒤섞여 있다. 잠깐, 아직도 육아라니, 아이가 혼자서 밥 먹고 걸어 다니는데 육아가 필요하냐고? 

아이의 기저귀를 갈아주는 건 잠깐이었다. 그걸로 육아도 끝날 거라 생각했었다. 큰 착각이었다. 처음엔 전업주부처럼 아이와 일상을 보내고 기저귀를 갈아주고 이유식을 먹이면 엄마처럼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아빠는 분명 엄마와 다르다. 성향도 신체도 취향도 말투도 다르다. 때문에 아빠가 엄마처럼 육아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오히려 아빠의 육아는, 아빠되기는 아이가 혼자서 밥 먹고 걸어 다닐 때부터 해야 하는 건지도 모른다. 

육아에 있어서 남녀의 구별은 없으나 어느 정도 시기의 구별은 있어 보인다. 아침에 일찍 출근하는 아내와 함께 첫째는 학교에 간다. 그러고 나면 난 둘째 밥 먹이고 머리 묶고 옷 입히고 어린이집에 데려다 준다. 첫째 수영장이나 초등 방과후에 데려다 주기, 회의나 연수가 있어서 아이들 저녁먹이는 것도 아내와 내가 구별없이 서로의 상황에 맞춰서 한다. 아이에게 엄마 가슴이 꼭 필요할 때가 있다. 그 시기가 지나면 이제 아빠도 동등하게 엄마와 같이 육아를 할 수 있다. 아니, 조건이 허락하는 한 같이 하는 게 맞는 듯하다. 

예전 나의 아빠들은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많은 돈 벌어오는 것으로 아빠가 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의 나는 (어쩌면 결혼 후 지금까지 계속) 상대적으로 집에 있는 시간은 많고, 일로 버는 돈은 적다. 때문에 그런 기준으로 보자면 나는 아빠되기는 진즉에 글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맞벌이 가정이 대부분이고 심지어 점점 아이를 포기하는 가정이 많아지는 요즘엔 아빠되기의 기준이 달라져야 할지도 모른다. 

아이의 기질에 따라 육아가 달라야 하는 것처럼 엄마와 아빠의 상황과 조건에 따라 아빠되기도 달라야 한다. 회의나 연수로 종종 집에 늦을 때 옆집 엄마들보다, 사실 돌봐줄 할머니도 우린 없기에, 내가 있을 때 더 안심이 된다는 게 아내의 말이다. 내년에 이런저런 이유로 결심한 아내의 휴직으로 변화되는, 그러나 어느 집에는 일반적인 전업주부의, 상황이 오히려 나에게는 두근거림이다. 흰머리가 많은 누군가가 신경을 쓰며 바라는 건 결국 흔한 검은 머리라고 했던가. 어떤 아빠들에겐 익숙한 일상이 내게는 새삼 낯선 상황으로 다가온다.  

엊그제 오랜만에 찜질방에 다녀왔는데 둘째는 엄마랑 여탕으로 들어갔고, 첫째는 나의 등을 밀어주었다. 이 글을 쓰게 되니 나의 등을 밀어주는 첫째가 더욱 고마웠고, 엄마가 심심하지 않게 함께 간 둘째가 있음에 감사했다. 두 아이의 탄생과 시작을 계획하고, 부부관계의 날을 잡아 준 아내도 훌륭했다. 아이들이 커서 친구가 되는 날, 나의 아빠되기는 끝이 날까?


글_청량리(문탁네트워크)

설정

트랙백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