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내가 겪는 슬픔은 누구나 겪는 슬픔이다. 억울할 게 없다.

내가 겪는 슬픔은 누구나 겪는 슬픔이다. 

억울할 게 없다.



나는 이렇다 할 '신앙'이 없다. 그렇지만, 종교적인 느낌으로 믿는 바들이 몇가지 있는데, 그중 하나는 내 인생이 남들에 비해 특별히 행복하거나, 특별히 불행하지 않다는 믿음이다. 부자나 빈자나, 아프리카의 유목민이나 유럽의 작가나, 중국의 농부나 한국의 직장인이나, 만족에서 불만족을 빼거나 불만족에서 만족을 뺐을 때, 나오는 결과가 그렇게 크지 않은 범위에서 대채로 비슷비슷하리라고 믿는다. 아무 근거가 없다. 믿음일 뿐이니까. 


_ 어떤 시절에는 매일 아침이 오는 것이 너무 싫을 때가 있었다. 죽고 싶은 건 아닌데, 새로운 하루를 맞는 것는 지긋지긋하게 싫었던 시절이다.



이런 믿음은 옳으냐 그르냐를 떠나서 유용한 점이 많다. 예를 들어, 인생이 우리를 위해 준비해둔 수없이 많은 괴로움들을 겪을 때, 겪어야 하는 괴로움을 받아들이기가 조금 쉬워진다. 그렇다. '겪어야 할' 괴로움으로 당면한 '괴로움'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상당수의 사람들이 이 정도 괴로움을 겪으면서 살고 있고, 내가 지금 겪고 있는 괴로움이 아니라도 비슷한 강도의 다른 괴로움을 겪고 있을 테니, 딱히 억울한 일이 아닌 셈이다. 조금 더 생각해 보면, 모두가 그런 괴로움을 겪고 있다는 것은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인생', 그러니까 '인간의 생'에 시작부터 포함되어 있다는 뜻이므로 내가 어떻게 한다고 해서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조금 쉬워진다. 무엇보다 '괴로움' 그 자체에 무언가를 더 보태어서 당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 이 '믿음'의 특장점이다. 어차피 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니까 덜 억울하고, 모두가 겪고 있는 것이니까 약간의 용기도 생긴다. 말이 조금 이상하지만 '괴로움'을 담백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생각해 보면 그렇다. 돈이 아주 많다고 해서 인생에 슬픈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슬픔'은 어느 때고 찾아온다. 결국 아무리 부자여도 언젠가는 닥쳐올 수밖에 없는 슬픔에 대한 걱정이 없는 것이 아니리라. 오히려 잃을 것이 더 많으니 더 걱정될 수도 있겠다.(부자였던 적이 없으니 확신할 수는 없다.) '인간'이라면 누구든 지고 살아야 하는 슬픔이 있는 법이다. 그렇게 믿는다. 이렇게만 쓰고 만다면, 현실에서 너무 무기력해지는 것이 아닐까? 그렇지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그러니까 별 말 하지 말고 주어진 대로 받아들이면서 살자는 것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다. 그것과는 별개로, 져야 할, 질 수밖에 없는, 거의 예정된 것이나 다름없는 고통과 괴로움들을 그나마 조금 쉽게 받아들기 위해서 나 스스로에게 내가 (꽤나 간절한 마음으로) 요청하는 '믿음'에 관한 이야기이다. 마치 도통한 듯 하지만, '간절한 요청'이 보여주듯 현실은 참 남루하다. 세상에 어찌 억울한 것이 없을 것며, 두렵지 않을 것인가. 다만, 괴로움이 닥쳐오고, 마음속에서 억울함과 두려움이 밀려올 때, 어딘가 의지할 바를 찾다보니 이런 믿음을 만들었다고 해야 할까. 그런 점에서 보자면 차라리 이 '믿음'은 내가 가진 나약함의 징표 같은 것이다.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내 능력으로 감당이 되지 않는 괴로움 속에 있을 때는 이 '믿음'을 내세로까지 확장하기도 한다. '죽음'을 떠올려 보는 것이다. 아마 나의 의식은 사라지고, 육신은 연기와 재로 변할 것이다. 그것들이 돌고 돌아 다른 식물을 키우는 양분이 되고, 그 식물을 먹은 동물의 몸이 되고, 다시 죽어서 같은 순환을 반복하겠지. 이 섭리를 떠올려보면 지금 생애에 내가 겪는 이 '약함'과 '괴로움', '고통'은 정말 아무것도, 진짜 아무것도 아닌 것이다. 그러면 조금 힘이난다.  


_ 그냥 하늘만 봐도 내 인생의 괴로움이란 얼마나 코딱지만 한지…



역설적인 것은, 이런 '믿음' 덕분에 삶에 더욱 충실해질 수 있다. 온갖 종류의 '슬픔의 정서'들은 삶을 해체한다. 우울, 분노, 불안감 같은 것들이 삶을 온전히 유지하게끔 도움을 주는 감정들은 아니니까. 그러나 그것들을 겪지 않을 수는 없다. 누구도 사랑하지 않으며 살 수 있는 인간은 없고, 사랑하는 누군가를 먼저 보내는 경험을 일생에 걸쳐 한번도 하지 않을 수도 없다. 사람이 아니어도 마찬가지다. 더군다나 요즘처럼 인간이 어느 때보다도 오래 사는 시대라면 더욱더 그렇다. 언젠가는 겪어야 할 슬픔이고, 나를 먼저 보내야 하는 누군가도 겪을 수밖에 없는 일들이다. 즐겁고 기쁨이 가득한 생의 어느 순간을 만끽하지 못한다면 정말 억울한 일이다. 매사에 '우주적'으로 생각하여, 언제나 죽고나면 공空으로 돌아갈 뿐이라는 태도로 살 수 있다면 그게 가장 좋겠다. 그러나 그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나처럼 평범하기 그지 없는 사람도 조금 노력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은 것들을 하려고 노력한다. 아래 두가지 문장에 충실하게 살면 남은 생이 지금보다는 한결 가벼워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내가 겪는 슬픔은 누구나 겪는 슬픔이다. 억울할 게 없다.'

'나의 즐거움은 세상 누구도 가져보지 못한, '지금' 나만 느끼는 즐거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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