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철학자들은 어떻게 죽었을까?

철학자들의 죽음

인간의 자유는 어떻게 가능한가?




'철학'을 공부하고 싶거나, 관심이 있거나, 대충이라도 조금 알아보고 싶거나. 어쨌든 철학 공부를 해본 적이 없지만, 무엇이라도 해보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주저하지 않고 이 책을 권한다. 책의 서문에도 나오는 말 한구절을 옮겨보자.


무엇인가에 도취돼 달아나고 벗어나려는 우리의 욕망과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철학적 죽음'이라는 개념은 우리의 깨어 있는 정신의 힘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고대철학자들에게 자명한 공리였으며 시대를 가로질러 매아리치는 키케로의 말이 있다. 

"철학을 한다는 것은 곧 죽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다시 한번 읽는다. '철학을 한다는 것은 곧 죽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왜 '철학' 공부를 하려고 할까? 여러 이유들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겪는 '소멸'에 대한 공포가 커다란 동기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대수명은 100세라고 하지만 얼마나 공허한가. 나는 내일 죽을 수도 있고, 몇 분 후에 죽을 수도 있다. 죽고 난 다음엔 어떻게 되는 걸까? 이런 저런 믿음과 학설들이 있지만,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 죽음 이후의 삶에 대해 '확신'을 가질 수는 있지만, 그것이 '나'의 문제가 되었을 때는 어떤 것도 '확신'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삶의 외부에서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죽음'을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필연적으로 죽음을 맞을 수 밖에 없다는 '유한성'은 '삶'의 문제 즉,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문제로 치환되는 것이다. '죽음' 때문에(또는 덕분에) 오히려 삶에 더욱 천착하게 된다는 역설이다. 능력을 기르거나, 후회를 남기지 않도록 살거나, 공동체성에 따라 살거나 등등 모든 것이 '잘 죽으려면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셈이다. 


따라서 철학을 한다는 것은 죽음을 우리가 말하고 먹고 마시는 입에 달고 사는 법을 배운다는 뜻이다. 우리는 그렇게 함으로써 소멸의 공포와 정면으로 맞설 수 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결국 죽음에 대한 두려움에 무릎을 꿇고 노예로 전락하여 일시적인 망각이나 영원불멸의 갈망 둘 중 하나에 빠지고 말 것이다. 몽테뉴가 말하듯, "죽는 법을 배운 사람은 노예가 되지 않는 법을 배운 셈이다."

'노예'에게 '생명을 빼앗길 수 있다'는 위협은 가장 큰 공포다. '일시적 망각'으로 빠진다면, (우리가 너무나도 좋아해 마지않는) '쾌락'에 몰두하게 되고 이것은 곧 삶을 '중독'의 나락으로 빠뜨린다. '영원불멸의 갈망'도 마찬가지 '죽음'이 너무나 두렵기 때문에 '영원불멸'의 암표상들의 표적이 될 수 밖에 없다. '죽는 법'은 결국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법' 또는 '공포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지 않는 법'이라는 말과 같다. 우리의 삶을 어떻게 '공포' 속에서 건져낼 것인가? 조금 더 익숙한 말로 바꿔보자. '인간 자유는 어떻게 가능한가?' 모든 철학적 고민이 집중되는 질문, 철학적 질문의 왕이라고 부를 수 있는 질문이다. 다시 한번, '인간 자유는 어떻게 가능한가?'


철학자 칸트의 세가지 질문 _ 인간은 무엇을 알 수 있는가, 할 수 있는가, 욕구할 수 있는가. 이 모든 질문은 '인간 자유는 어떻게 가능한가'로 모인다.



『죽은 철학자들의 서』가 정말로 훌륭한 철학 입문서인 이유는 다른 누구도 아니라, '인간 자유는 어떻게 가능한가', '어떻게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 살 수 있는가'와 같은 질문을 평생 입에 달고 살았던 '철학자'들의 '죽음'을 다룬 책이기 때문이다.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것이 직업이 었던 사람들의 '죽음'은 어떠했을까? 호기심이 생기지 않을 수가 없는 주제다. 여기서 철학자들은 온갖 형태로 죽음을 맞이한다. 천수를 누리고 죽고, 교통사고로 죽고, 성병에 걸려서 죽기도 하며, 자살을 택하기도 한다. 이 모든 죽음 속에 그들이 생전에 설파한 '철학'이 녹아 있다. 어쩌면 그들의 철학적 주장은 그들의 '죽음' 속에 응결되어 있다고 할 수도 있을 정도다. 


다만 그런 이유 뿐이라면 '사랑스러운 책'이라고까지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조금 거칠게 말해서) 철학이 '죽음'에 대한 '삶의 태도'를 다루는 학문이라고 한다면, '철학'에서 다루는 죽음은 단지 '슬픔'에 매여있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이 책은 죽음'에 대한 일반적인 반응과는 다른 반응을 창출하는 한다. 거기엔 웃음도 있고, 다른 일상적 사건을 받아들이는 것 같은 무덤덤함도 있으며, 긍정성도 있다. 다채로운 '죽음'의 풍경들이다. 그런 다채로움, 그 자체가 '죽음'을 대하는 독자의 태도를 바꿔놓을 수도 있다. 철학자들의 다른 삶들에 대해서 조금 더 알고 읽는 다면 읽는 내내 웃을 수도 있다. 


"그는 너무나 굳센 나머지 실망이나 분노 같은 부정적 감정을 느끼지 못했다. 이 허무주의적인 세기말에도 그는 긍정적이었다. 질병과 죽음에도 역시. 왜 나는 과거에 그에 대해서 떠벌였던가? 그는 웃었다. 그는 웃고 있다. 그는 여기 있다. 슬퍼하는 건 너야, 멍청아. 그가 말한다."

- 들뢰즈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리오타르가 『르몽드』에 보낸 팩스 중에서, 333쪽

죽은 철학자들의 서 - 10점
사이먼 크리칠리 지음, 김대연 옮김/이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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