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더 친해지길 바라~ 공부로~"

"더 친해지길 바라~ 공부로~"



曾子曰 君子 以文會友 以友輔仁

증자왈 군자 이문회우 이우보인


증자(曾子)가 말했다. “군자(君子)는 학문으로써 벗을 모으고, 벗으로써 인(仁)을 보충한다.” - 〈안연(顔淵)〉 24장



=글자풀이=


=주석풀이=


혼자서 가는 여행은 그렇게 힘들지 않다. 누군가에게 맞추지 않고 자기 혼자 다니고 싶은 대로 다니면 된다. 셋 이상이서 가는 여행은 더 쉽다. ‘나’는 잊고 다른 사람들이 하자는 것에 맡기기만 하면 어떻게든 즐거운 분위기에 휩쓸려 다닐 수 있다. 하지만 둘이서 가는 여행은 다르다. 온전히 서로에게 집중된 상태에서 자신의 반응을 숨길 수 없다. 생각해보니 그동안 여자친구 말고는 누군가와 단 둘이 여행을 가본 적이 없었다. 한 달이라는 긴 시간을 보낸 적은 더더구나 없었다. 다른 여행들과 별반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나는, 그저 재미난 시간들을 보낼 수 있을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설렜다.


미국의 웅장한 대자연은 그야말로 감동의 연속이었다. 수십억 년의 시간에 걸쳐 형성된 그랜드 캐년을 걸으며 절로 겸손해졌고, 호쾌하게 떨어지는 요세미티의 수많은 폭포들을 맞으며 절로 즐거워졌다. 그 밖에도 자이언 캐년, 브라이스 캐년, 엔텔로프 캐년 등등을 걸었던 신비로운 순간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경이로운 낮과는 대조적으로 매일 밤 우리는 숲의 한기에 맞서 무사히 잠에 들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샤워로 몸을 데우고, 옷을 껴입고, 핫팩을 여기저기에 붙이고 온기가 사라지기 전에 얼른 잠을 청했다. 그럼에도 한기 때문에 도중에 잠이 깨고 입술이 부르트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힘들기는 했지만 사실 여기까지는 그 전에도 겪어본 것들이라 괜찮았다. 여행 동안 가장 신경이 쓰였던 것은 건화 형과의 어색한 분위기였다. 일정, 식단같이 별 것 아닌 사항들인데도 쉽사리 의견이 일치되지 않았고, 결정이 나도 개운하게 상황이 정리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매번 많은 것들을 결정해야 했고, 아무리 불편한 상황을 피하려고 최대한 건화 형에게 맞추는 쪽으로 대화를 이어나가도 분위기는 계속 어색하기만 했다.




어색한 상황에 처할수록 나는 ‘친하다’는 것에 대해 생각했다. 돌이켜보니, 친함이 무엇인지, 친구 관계를 맺는 것은 무엇인지 근본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학교에 가면 나와 비슷한 또래가 있었고, 그 중에서 취향이 맞거나 대화가 잘 되는 사람과 자연스레 친구가 되었다. 그동안 나에게 친구란 편안한 사람, 마음놓고 편히 행동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물론 가끔 친구들과 다툼이 있긴 했지만 금방 화해를 하거나 다른 친구들을 찾을 수 있었기에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지금 건화 형과 내가 있는 규문(奎文)이라는 공부 공동체는 공부에 뜻을 둔 사람들이 모인 장소다. 건화 형과 나의 관계 또한 취향이나 대화가 아닌 공부로 맺어졌다. 그랬기 때문에 단지 취향을 맞추고 대화를 이어나가는 것만으로는 상황을 해결할 수 없었던 것은 아닐까? 미국에서 돌아온 뒤에 생각해봤다. 공부를 중심으로 관계가 형성되는 이곳에서 친구가 된다는 건 무엇일까?


이질적인 사람들의 모임으로 치면 공자학당만한 곳이 또 있을까. 쌀독이 자주 빌만큼 가난했던 안회부터 재테크의 달인이었던 자공, 실리를 좇는 번지, 도가계열로 추정되는 자장, 야인(野人) 출신으로 공자와는 나이 차이가 별로 나지 않았던 자로까지, 공자학당은 성격, 계급, 출신이 너무나도 다른 ‘이질적 공동체’였다. 《논어》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아무리 공자의 제자들이라 한들 크고 작은 갈등과 다툼이 어찌 없을 수 있었겠는가. 그러나 이렇게 다른 이들을 한데 묶은 것은 바로 ‘문(文)’이었다. 말 그대로, 문(=공부)을 매개로 모인 우정공동체(以文會友)!


문(文)이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문화 및 지식을 말한다. 그들은 이를 통해 역사적인 지평에서 자신을 조망하는 지식을 습득했고, 동문수학하는 벗들과 함께 배우고 생각을 나눔으로써 공통적이면서도 독자적인 실천적 지혜를 형성했다. 공자는 “배우되 생각하지 않으면 남는 게 없고, 생각하되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위정(爲政)〉15장).”라고 했다. 배움과 생각은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 그리고 서로를 촉발하는 과정에서 배움이 깊어질 수 있듯이, 생각 역시 타인과 공유하고 교통(交通)함으로써 성숙해질 수 있다. 공자의 제자들은 실제로 그런 ‘배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의 역량을 키워나갔던 듯하다. 예컨대, 염유는 위나라의 복잡한 정치적 상황에서 공자의 행보가 궁금해 자공에게 물음을 구했고(〈술이(述而)〉 14장), 번지는 공자로부터 가르침을 받고도 이해하지 못하자 자하에게 다시 물어보았다(〈안연(顔淵)〉 22장). 그렇다. 지식을 암기하는 정도는 혼자서도 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에 틈을 만들어 더욱 정밀하게 다듬고 확장시키기 위해서는 함께 배우는 벗의 도움이 절대적이다. 벗을 통해 나의 생각과 행동을 보완하지 않는다면, ‘친함’이란 한낱 사욕과 허영을 용인하는 관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이우보인(以友輔仁)!


‘보(輔)’를 ‘바퀴살’로 풀면, 또 다른 해석이 가능하다. 바퀴살은 수레바퀴가 험한 길을 버틸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툭 튀어 나온 돌과 움푹 파인 구덩이를 지날 때의 충격을 분산시켜줌으로써 수레바퀴가 전복되지 않고 먼 길을 갈 수 있게 해준다. 내가 수레바퀴라면, 벗은 바퀴살이다. 그동안 친구들은 내가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말에 힘입어 아픔으로부터 빨리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런데 어려움을 토로할수록 나의 고민은 신세한탄이 되어 버리고, 친구는 그 신세한탄을 들어주고 동조하는 앵무새처럼 느껴졌다. 이런 친구들이 고맙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런 관계들이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친구들은 나를 위로해주지만 그것은 내가 힘들어하기 때문이지 내가 겪는 문제의 원인을 알고 이해하기 때문은 아니다. 나 역시 친구의 아픔에 공감하며 위로의 말을 건네지만 그뿐이다. 위로와 공감에 그치는 관계는 서로의 역량을 변형시키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한다. 불편하지 않으려고, 기존의 익숙함을 유지하려고 적당히 넘어가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공부로 맺어진 관계는 긴장감을 자아낸다. 관계의 신뢰는 내가 공부에 임하는 태도에 달려있다. 내가 공부에 열정적이면 그만큼 나에 대한 신뢰가 쌓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만큼 관계의 신뢰도가 떨어진다. 상대방도 마찬가지다. 공부로 형성된 벗 사이에는 단순한 친밀감 이전에 ‘공부’를 통한 삶의 비전이나 지향성이 전제되어 있기 때문에, 때로는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책선(責善)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책선이란 상대방에게 선을 권면하는 것으로, 기본적으로 불편한 상황을 전제한다. 상대방의 단점에 대해서는 기꺼이 싫은 소리를 할 수 있어야 하고, 자신의 단점에 대한 상대방의 충고는 아프더라도 겸허히 받아들이고 고쳐나가는 용기와 성실성이 있어야 한다. 벗이 곧 나의 스승인 것이다. 이것이 바퀴살과 같은 벗이 아닐까? 나를 더욱 구체적으로 살필 기회를 주는 존재로서의 벗. 군자(君子)가 왜 배움을 통해 벗을 모으고, 벗을 통해 인(仁)을 도모하고자 하겠는가? 오직 공부를 통해 만난 벗만이 나의 문제를 마주하는 동시에 그 문제를 다르게 볼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나름 연구실에서는 서로의 고민을 얘기하고 같이 공부하는 과정에서 어느 정도 친해졌다고 생각한 나는 건화 형과 갈등을 겪을 때마다 솔직히 놀랐다. 그러나 이번 여행은 아직 우리가 충분히 ‘함께 공부하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기회였다. 시공간이 달라지면 다른 관계가 형성되는 법. 이번 여행에서 일어난 갈등은 그동안 익숙한 패턴 속에서 회피했던 문제들이 불거진 것이었다.


연구실은 상이한 리듬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다. 밖에서는 모일 것 같지 않은 다양한 사람들이 신기하게도 공부를 매개로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 보낸다. 그러나 같이 있다고 해서 저절로 밀도 있는 관계가 형성되는 건 아니다. 관계에서 발생하는 불편함을 마주하면서, 그 ‘사이’에서 공통적인 것을 형성해나가는 것이 누군가를 벗으로 만들고 누군가의 벗이 되는 과정일 것이다.


글_규창(고전비평공간 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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