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인격이 재능이다

인격이 재능이다




子張 學干祿

자장 학간록


자장이 녹(祿)을 구하는 법을 배우고자 했다.



子曰 多聞闕疑 愼言其餘則寡尤 多見闕殆 愼行其餘則寡悔 言寡尤 行寡悔 祿在其中矣

자왈 다문궐의 신언기여즉과우 다견궐태 신행기여즉과회 언과우 행과회 녹재기중의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많이 듣고 의심나는 것을 빼고 그 나머지를 신중하게 말한다면 허물이 적을 것이다.

많이 보고 안심되지 않는 것을 빼고 그 나머지를 신중하게 행한다면 후회가 적을 것이다.

말에 허물이 적으며 행동에 후회가 적으면, 녹(祿)은 그 가운데 있다.” - 〈위정〉편 18장


글자풀이

주석풀이


어떤 공부를 하더라도 자신의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호구지책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읽는 텍스트에서는 끝없는 공부에 대한 얘기만 있지 현실적으로 내가 지출해야 하는 월세, 핸드폰비 등을 해결해줄 수 있는 구체적인 노하우들은 없다. 솔직히 말하면, 통장 잔고가 바닥을 드러낼 때마다 불안감이 스멀스멀 솟아난다. 직장을 다니지 않고 공부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처럼 일을 하면서 안정된 생활 위에서 공부해야 하지 않을까? 공부에서 녹을 구하고자 했던(學干祿) 자장에게도 이런 불안감이 있었던 것 같다. 스승인 공자는 죽을 때까지 뜻을 펼칠 수 있는 지위를 얻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끊임없이 배움과 수신(修身)을 강조할 뿐 재테크나 출세의 노하우 같은 것은 말하지 않았다. 자장은 공자의 말을 지당하게 느끼면서도 ‘공자의 학(學)’이 비현실적이라고 의문을 품었던 게 아닐까?


스승이란 방황하는 제자의 마음을 한 마디로 바로잡아주는 법. 공자는 녹을 ‘구하고자(求)’한 자장의 물음에 다시 배움으로 답하는데, 배움의 길에 이미 녹은 ‘들어있다(在)’는 것이다. 포인트는 구(求)와 재(在)다. 자장은 자신의 공부가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는 무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실용적인 배움을 따로 구하고자 했다. 달리 말하면, 자장에게는 ‘녹을 구하는’ 실용적 공부와 다른 ‘고원한 공부’의 세계가 따로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논어(論語)》에 나오는 자장의 질문은 명(明), 달(達), 정치(政)와 같이 고차원적인 것에 편중됐다. 하지만 공자의 공부는 고원한 경지를 향해 나아가면서도 비근한 일상을 놓치지 않는다.


공자의 핵심사상을 인(仁)이라고 하지만, 실제로 공자는 ‘인’에 대해 거의 말하지 않았다(子 罕言利與命與仁 - 〈자한〉편 1장). 그는 인간관계부터 돈 쓰는 법, 관리의 자세, 정치를 펼칠 때의 태도, 외교문서 작성하는 법 등 매우 다양하고 구체적인 상황에서의 기술을 가르쳤다. 그러면서도 이 모든 것이 ‘실용성’이라는 수단적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인간과 사회에 대한 통찰과 맞닿아 있었다. 요컨대, 공자의 가르침은 인격을 완성하면서도 모든 상황에 적절히 행동할 수 있는 삶의 기술을 익혀나가는 것이다. 공부란 이처럼 고원함과 비근함을 둘 다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공자는 ‘녹은 배움 안에 있다’고 한 것이다.


주희에 따르면, 다문(多聞)과 다견(多見)은 박학(博學)이다. ‘박학’은 옛 성현들이 남긴 텍스트로부터 비근한 일상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에서 배워야 할 것들을 수집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우리에게 ‘박학’은 잡다하게 지식을 익히는 것이지만, 공자에게 ‘박학’은 배움에 뜻을 세우고 품행을 교정할 수 있는 경험을 넓히는 것이다. 궐의(闕疑)와 궐태(闕殆)는 ‘박학’을 바탕으로 내가 실천해야 할 것을 인식하는 과정이다. 이는 〈위정〉편 17장에서 얘기한 지(知)와 부지(不知)에 대한 구절과도 연결된다. 안다는 것은 그것을 실천할 때 조금의 의심이나 불편함도 없는 것을 말한다. 반대로 약간의 미심쩍음이라도 있다면 우선 그것을 제쳐두고 확실한 것부터 실천해야한다. 즉, 무엇이 이해됐는지 아직 이해되지 않았는지 선별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을 거쳐야만 실천이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공자는 이러한 태도를 신(愼)이란 글자로 표현한다. ‘신’은 보통 ‘삼가다’ 혹은 ‘신중하다’로 해석되지만, ‘신’을 파자(破字)하면 ‘마음 심(心)’과 ‘진실할 진(眞)’으로 나뉜다. 그러니까 ‘신중하다’는 것은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요행을 바라는 마음, 사욕(私欲)이 있는지 계속 점검하다는 뜻이다. 즉, ‘신’이란 마음을 진실된 상태로 유지하는 것이고, 실천에서 신중하다는 것은 앎을 사심없고 진실되게 실천에 옮기는 일일 것이다.


우리는 ‘사람은 좋지만 능력이 부족하다’ 혹은 ‘사람은 별로지만 능력이 뛰어나다’라는 식으로 말하며 인격과 능력을 개별적인 것처럼 여긴다. 하지만 공자에게는 인격과 능력이 구별되지 않았다. 노나라 태묘를 관리하는 일을 담당했을 때, 그는 매번 사소한 것까지 물으며 신중하게 처리했다. 이것은 공자가 태묘를 관리하는 예절을 몰랐기 때문이 아니라 일하고 있었던 관리들에 대한 존중에서 우러난 행동이었다. 만약 공자가 자신이 아는 것만을 믿고 독불장군처럼 행동했다면 사람들의 불만과 일처리에서의 실수가 있었을거다. 공자가 일을 처리하기 전에 묻는 과정이 있었다는 것은 일을 잘 처리하는 능력이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잘 맺는 능력과 무관하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타인과 원만한 관계를 구성할 수 있는 능력은 일을 하는 데 있어서 필요한 실질적 능력과 직결되는 것이다. 때문에 수신(修身)의 과정이 자신의 능력을 적재적소에서 펼쳐내는 과정에 전제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 공부해서 어디에 쓰게?’ 공부를 하면서 자주 듣는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에는 험난해도 공부를 몇 십 년 꾸준히 하다보면 사람들이 알아주는 유명인이 되고, 책도 잘 팔리는 작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런 생각을 가졌을 때는 조금만 견디면 눈에 띄는 성과가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시작한 공부는 지지부진하고 너무 힘들었다. 책은 어려워서 읽히지 않았고, 글은 한 줄 쓰기도 어려웠다. 그럴 때마다 내가 목표로 했던 경지는 영원히 닿지 않을 것 같았고 지금 나의 공부도 무기력하게만 느껴졌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외물은 조건에 따라 오고가는 법. 공부의 중심이 외물에 있었으니 당연히 기복이 있을 수밖에.


정이천에 따르면, 천작(天爵)을 닦으면 인작(人爵)이 이른다. 천작이란 각자가 하늘로부터 부여받은 본성을 뜻하고, 인작은 벼슬, 재물 등을 뜻한다. 물론 천작을 닦지 않아도 인작을 얻게 되는 경우가 있고, 천작을 닦는다고 해서 무조건 인작을 얻게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인격이 바탕이 되지 못한다면 아무리 뛰어난 재주를 가졌다한들 그것을 온전히 발휘할 수 없다. 그렇다면 지금 나에게 내가 발휘할 수 있는 재주가 무엇인지를 찾는 일은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나중에 어떤 일을 하더라도 무리 없이 일을 배우고 재주를 펼쳐나갈 수 있는 능력, 곧 나 자신의 인격을 연마하는 것이 더욱 시급한 일이다.


글_규창(고전비평공간 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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