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우치다 타츠루, 『하루키씨를 조심하세요』 - 제자나 팬의 자세

우치다 타츠루, 『하루키씨를 조심하세요』

- 제자나 팬의 자세





이건 그러니까 '텍스트'를 대하는 태도와 관련이 있다. 언제부터 그런 태도가 스며들었는지는 모를 일이다. 수준 높은 독서란 '비판적 독서'라는 태도다. (여전히 그러하지만) 의식의 어느 한구석도 성숙한 부분이 없던 시절부터 '암, 책은 비판적으로 읽어야지' 했다. 각종 연구서나 논문들은 물론이거니와 칸트나, 맑스나, 하이데거 같은 대가(大家)들의 텍스트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 텍스트는 일단 '비판적'으로 읽어야 한다. 쉽게 말해 '헛점'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는 말인데, 지금 생각해 보면 꽤나 헛힘을 썼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그 노력들을 깡그리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나름 도움이 된 것도 분명 있을테니까. 


여하튼 지금으로서는 그렇다. '비판적 읽기'란 어쩌면 신화 같은 것이다. '객관성'이 판타지인 것과 마찬가지로. 우치다 선생의 저 말이 그렇게나 인상적이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거기서 한 발 더 가보자면, 이제 나는 모든 텍스트를 '제자나 팬'의 입장에서 읽는 편이 가장 수준 높은, 아니 가장 '좋은' 읽기라고 생각한다. 이 읽기 방식은 '비판적 읽기'와 어떻게 다를까?


무엇보다 '비판적 읽기'는 텍스트를 하나의 '객체'로 다룬다. 나(주체)와 그것 사이에는 건널 수 없는 강이 있는 셈이다. 그리하여 그것을 읽고 난 다음에 나에게 남는 것은 비판하느라 구축한 특정한 논리구조, 더불어 그 텍스트에서 채취한 정보 조각들 뿐이다. 어떤 애정이나 우정, 내 삶을 결정적으로 바꾸어 놓는 뒤섞임 같은 것은 일어나지 않는다. 일어나더라도 '제어'해야 하는 것들이다. 다시 말해 '통상적 차원을 극복'하지 못한다. 기왕에 좀 다른 인간이 되려고 읽는 책인데, 그래서야 되겠는가, 그렇게 생각한다. 제자여도, 또는 팬이여도 상관없다. '우리 선생님이 참 훌륭하신데 이건 좀 잘못 생각하신 것 같아'라고 여기고, '나는 이렇게 하지 말아야지' 하면 될 일이다. 


『하루키씨를 조심하세요』는 그런 팬심(fan心)으로 가득한 책인데, 그러한 태도가 마음에 쏙 들어서인지, 읽는 내내 기분이 좋았다. 이건 '겸손'한 것을 보아서 좋아진 기분이 아니다. 차라리 무언가를 열렬하게 사랑하는 그 태도 덕분에 좋아진 기분이다. 유쾌하고, 깊고, 사려깊은 팬의 마음을 흠뻑 느낄 수 있었다.


하루키 씨를 조심하세요 - 10점
우치다 타츠루 지음, 김경원 옮김/바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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