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여는 지혜의 인드라망, 북드라망 출판사 :: 내 삶의 주인으로 살기 위하여

내 삶의 주인으로 살기 위하여



子曰 孰謂微生高直 或乞醯焉 乞諸其隣而與之

자왈 숙위미생고직  혹걸혜언 걸저기린이여지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누가 미생고(微生高)를 정직하다 하는가? 어떤 사람이 식초를 빌리려 하자, 그의 이웃집에서 빌어다가 주는구나!”  - 공야장편 23장

子曰 人之生也直 罔之生也幸而免

자왈 인지생야직 망지생야행이면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치는 정직(正直)이니, 정직하지 않으면서도 살아가는 것은 요행으로 면하는 것이다. - 옹야편 17장


= 글자풀이 =

= 주석풀이 =

“정직하지 않으면서도 살아가는 것은 요행으로 면하는 것이다”라는 구절은 그 뜻을 이해하기 가 쉽지 않다. 정직하지 않게 살아가는 것은 정말 요행으로 화를 면하고 살아가는 것인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지금 시대에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 잘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일상에서 자질구레한 말로 자신을 변호해서 구차하게 그 상황을 모면하는 것부터 남을 속여서 등쳐먹는 사람들까지 도처에 정직하지 못한 사람들 투성이다. 오히려 정직한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혹은 그들에 의해 더 피해를 보는 것처럼 보인다. 솔직히 말하면, 정직한 것은 순진한 것이고, 적당히 정직하지 않게 사는 게 현명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공자에 따르면 그렇게 사는데도 살아지는 건 다 ‘요행’일 뿐이다.


노나라에 미생고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됨이 정직하기로 소문이 났다. 누군가 자신에게 식초를 빌리러 왔을 때, 집에 식초가 없는데도 이웃집에 가서 빌려서까지 식초를 빌려주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자는 그런 행동을 두고 오히려 정직하지 못하다고 말한다. 언뜻 미생고의 행동은 선의(善意)를 다한 친절한 행동처럼 보이기 때문에, 공자가 평가가 좀 부당하다 싶기도 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보통 사람은 알아챌 수 없는 성인(聖人)의 예리하고도 깊은 통찰이 있다.


식초는 중국인들에게 가장 필수적인 조미료 중 하나라 이 집에서 빌리지 못하면 저 집에서 빌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미생고는 자신이 직접 이웃집에 가서 식초를 빌리는 수고를 하면서까지 자신을 찾아온 사람에게 식초를 빌려주었다. 나에겐 없다고 한 마디만 하면 될 것을 굳이 그렇게까지 한 것은 그의 행동에 사심(私心)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주희는 미생고의 행동을 두고 “곡의순물(曲意徇物), 략미시은(掠美市恩)”이라고 평했다. ‘자신의 뜻을 굽혀 외물을 따르고, 타인의 아름다움을 빼앗아 은혜를 팔았다’는 뜻이다. 여기서 외물은 사물뿐만 아니라 타인의 평가나 상황까지를 포함한다. 미생고에게 그것은 ‘친절하다’라는 명성이었다. 그 명성을 얻기 위해 미생고는 자신에게 식초가 있는 것처럼 속이고 직접 이웃에게 가서 식초를 빌려왔던 것이다. 만약 미생고가 사심 없이 솔직했더라면, 그가 받은 감사의 인사도 실제로 식초를 빌려준 그 이웃에게 돌아갔을 것이다. 이런 점에서, 미생고의 행동은 주희가 말한 대로, 타인이 응당 받아야 할 칭찬을 빼앗고, 은혜를 사고파는 물건처럼 다룬 것이라 할 수 있다. 즉, 미생고는 정직하지 못했다.




공자가 미생고를 직(直)하지 않다고 평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생고가 타인의 식초를 빌려서 대신 자신을 찾아온 이에게 건네준 것은 작은 일일지도 몰라도, 타인을 속이며 자신을 포장한 것은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하나의 사건에도 그 사람이 인생을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그 태도와 가치의 편린을 엿볼 수 있다. 공자는 식초사건을 통해 미생고가 일상에서 자신의 명예를 우선하고, 때로는 위선(僞善)을 저지르기도 한다는 것을 간파했기에 그의 성정을 정직하다고 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난 ‘정직하다’는 것이 외부에서 주어지는 가치평가라고 생각했다. 즉, 타인에게 거짓말하지 않거나 사회적 관습을 준수하는 것을 정직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외부의 규칙을 아무리 따라도 정직하기보다는 얄밉게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어, 사소한 잘못을 보아 넘기지 못하고 남에게 고자질하는 경우가 그렇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일도 아닌데 타인의 사소한 잘못까지 체크해서 책임자에게 전달한다. 그러면 책임자는 규칙을 어긴 사람에게 훈계나 적당한 처벌을 내릴 것이고, 그에 비해 그 잘못을 얘기한 사람은 정직하다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하지만 정확히 말하면, 이처럼 타인을 팔아서 자신을 높이는 사람은 정직한 사람이 아니라 위선자이거나 도덕결벽증자일 가능성이 많다. 또, 딱히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고 누가 손해를 본 것도 아니지만, ‘정직하다’고 말하기에는 부족한 경우도 있다. 가령, 이성에게 잘 보이기 위해 때때로 멋있는 말을 할 것이다. 그날따라 말이 잘 나와서 상대방의 호감을 사게 되면 신이 나서 더 많은 것을 말하게 된다. 그러다 결국 자신이 실천으로 옮기지도 못할 말들까지 내뱉는다. 행동보다 말이 앞서는 이런 ‘허풍선이’들은 타인에게 호감을 사더라도 결코 정직한 것은 아니다. 스스로 떳떳하다고 할 수 없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요컨대, 단순히 외부의 규범을 그대로 따르거나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정직한 것이 아니다. 정직이란 스스로를 비췄을 때 어떤 부끄러움도 없을 수 있는 떳떳한 내면의 상태다.


공자, 석가모니, 예수 등 성인의 삶을 보자. 그들의 실천은 때때로 당시 사회의 도덕과 대립했기 때문에 기존권력으로부터 냉대를 받거나 배척당했다. 그러나 사회의 가치를 내면화하고 그것을 따르는 범인(凡人)들과 달리, 성인들은 규범을 넘어 스스로의 가치를 창조해낸다. 이는 주체적인 역량이므로 설령 그들이 어떤 피해를 입게 되었다한들 여전히 스스로에 대해 일말의 후회도 없었을 것이다. 이런 성인의 삶을 정직하다고 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행위가 타인의 시선과 평가가 아니라 자신의 내면과 부합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이치는 정직이다.”라는 공자의 말은 우리가 삶의 주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이치가 이미 우리 자신에게 내재돼 있다는 뜻이다. 정직함, 그것은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 자유롭게 살기 위한 전제다.


글_규창(고전비평공간 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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